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37화 (137/240)

137화

* * *

하윤경을 강제로 보낸 지, 약 한 시간이 지난 후.

“그러니까 고모가, 아니, 그러니까 하윤경은 죽었다는 건가요?”

“예, 전투 중에 옆방의 약품이 폭발했는데, 그 폭발에 하윤경이 휘말렸어요.”

“흔적도 없이 전부 태워졌다……. 상당히 큰 폭발이었나 보네요. 박유진 씨, 다친 곳은 없어요?”

“네, 저는 괜찮아요. 엄폐물 뒤에 숨어서 폭발을 피했거든요.”

“그렇군요.”

하세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직접 일으킨 폭발의 현장을 말이다.

“근데 하윤경, 진짜로 죽은 거겠죠? 시체도 남기지 않은 게 뭔가 이상하네요.”

“걱정 마세요. 하윤경이 죽는 걸 제가 확실히 봤거든요.”

“박유진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면…….”

내 거짓말에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죽은 거면… 너무 쉽게 죽은 게 아닌가 싶네요. 하윤경이 저지른 짓들. 단순히 죽음으로 청산이 안 될 거 같은데 말이에요.”

“동감이에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살려 두기에도 너무 위험한 여자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것도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하세리는 지하 27층에 위치한 약 제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희귀하면서도 위험한 약재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네요. 이것들로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걸까요?”

“정상적인 짓은 안 했겠죠.”

내 대답에 하세리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하세리 헌터님.”

남자 한 명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전종원이라 불리는, 하세리의 비서 역할을 하던 남자였다.

“우선 민간인들의 구출은 전부 끝났습니다.”

“고생했어요. 그럼 이 시설에서 일하던 관계자들은 다 잡았나요?”

“예, 현재 경찰들과 협력해 체포하고 있습니다.”

“도망친 사람들은 없었고요?”

“몇 명 있었지만, 전부 잡았습니다.”

전종원은 내 쪽을 슬쩍 바라봤다.

“박유진 씨가 알려 준 장소에 인력들을 배치했고, 실제로 그곳으로 나온 사람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시설에는 탈출로가 총 여섯 개 있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갈 수 있는 길은 해 봤자 그게 전부죠.”

“매우 잘 아시네요.”

전종원은 나를 의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곳에서 전에 일하신 적 있나요? 아니면 하윤경, 그 여자와 전에…….”

“전종원 씨, 박유진 씨는 저희 편이에요.”

하세리가 전종원의 말을 끊었다.

“괜한 의심은 거두도록 하세요.”

“…예.”

“네, 뭐. 그건 그렇고, 여기에 몬스터들도 상당히 많이 있던 거 같은데, 그건 잘 처리하고 있나요?”

“현재 협회의 헌터들이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들 중에 위험한 놈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희나 헌터에게 연락하려고 합니다.”

“하긴. 희나 언니가 있으면 편하기는 하겠네.”

주말에 불러내는 건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라고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좋아요. 일단 이 지하 시설에 있는 몬스터들을 마저 빼내세요. 그다음에 경찰들과 이곳의 조사를 시작하죠. 협회와 경찰이 함께 조사를 진행할 거고, 제가 직접 통제하도록 할게요.”

“그럼 경찰 측에다가 미리 말을…….”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경찰청장에게 아까 연락했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사 시작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전종원은 다시금 계단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와 하세리는 단둘이 남게 되었다.

“경찰청장과도 인맥이 있나 봐요?”

“협회 고위직에 있다 보면 인맥이 다양해지거든요. 내년부터 저와 함께 일하면 알게 되실 거예요.”

“네, 뭐, 그렇겠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하세리는 그런 나를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다가 잠시 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유진 씨.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하윤경과 전에 따로 만난 적 없는 거죠?”

“제가 이 시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러시나요?”

“예, 그런 거죠. 이런 시설이 존재했다는 건, 아마 정부에서도 몰랐을 거예요. 근데 박유진 씨가 너무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게 의심하셔도 할 말이 없기는 하네요. 근데 맹세코, 저는 하윤경과 따로 연줄이 있다거나 한 게 아니에요. 이 시설에 대한 건 따로 조사해서 알아낸 거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저는 암살자 계열이라, 이곳을 몰래 조사했었죠. 게다가 암시장에서도 몇 년 동안 정보를 수집했었죠.”

이건 아예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회귀 전에 몇 년 동안 하윤경의 뒤를 쫓았다.

하윤경에 의한 피해자가 더 안 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노력 덕에 회귀 전에 하윤경을 잡았고…….

‘이번에는 매우 쉽게 잡았지.’

회귀 전에 하윤경 하나를 잡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그 덕에 나는 이번에 하윤경을 별 어려움 없이 잡아들였다.

아니, 잡아들이는 것에 끝나지 않고, 완전히 내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 거라면 뭐. 박유진 씨를 믿어야죠. 근데… 방금 암시장이라고 하신 거죠? 그러니까 박유진 씨께서 암시장에서 정보를…….”

“하세리 헌터님도 암시장을 이용하시잖아요.”

“아니, 저는 그저, 그러니까 인맥 관리를…….”

“같은 암시장 이용자들끼리 눈감아 줍시다. 알겠죠?”

나는 능글스럽게 말했다.

이에 하세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내년에 박유진 씨 데리고 암시장 가는 것도 재밌겠네요.”

“암시장 데이트? 뭐, 그것도 그것대로 재밌겠네요.”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후, 나는 미소를 천천히 지우며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하세리 헌터님. 이따 이곳의 조사를 시작하면, 별 이상한 연구 결과들을 다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중 위험한 것도 많겠죠.”

“네, 그렇겠죠.”

“위험한 것들은 하세리 헌터님이 알아서 폐기해 주세요. 잘못된 이의 손에 들어가면 대참사가 일어날 기술력은…….”

“걱정 마세요. 그런 건 말씀 안 해도 제가 알아서 할 생각이었거든요.”

하세리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박유진 씨와 마찬가지로, 헌터로서의 의무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네, 알고 있습니다.”

헌터로서의 의무, 그러니까 사람들을 구하는 것.

하세리는 가끔 인재에 대한 이상한 집착을 보이긴 했지만, 사람들을 구하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회귀 전에 그녀와 지내며, 그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럼 믿고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회귀 전의 하세리는 당시에 그 일을 매우 잘 해 주었다.

덕분에 하윤경이 만든 위험한 기술들 중 그 어떠한 것도 악용되는 일이 없었다.

아마 지금의 하세리도 그 일을 잘 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제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요, 뭐. 아, 혹시 원하신다면 저와 같이 이곳을 조사하실래요? 박유진 씨와 함께 일하는 편이 더 재밌을 거 같은데.”

“함께 조사하는 걸 허락해 준다면, 저야 좋죠.”

전에도 이 넓은 시설을 전부 조사했었다.

그 경험을 이용해 또다시 조사를 하면, 아마 보다 확실하게 후환을 없애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 전에…….

“하세리 헌터님. 지금 시간이… 네, 벌써 오후 4시네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협회에서 아침에 출발했을 텐데.”

“네, 그렇죠. 아무튼, 하세리 헌터님. 저 잠시 가 볼 곳이 있어서 그런데, 이따 저녁에 다시 와도 될까요?”

“으음… 몇 시쯤에 다시 올 건가요?”

“아마 10시쯤일 듯하네요.”

북한산을 갔다 오면 시간이 그 정도 흐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10시라. 상관없겠네요. 이 시설이 워낙 커서, 아마 밤새워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네, 그럼 그때 다시 오도록 하죠.”

“알겠어요. 아, 그리고 박유진 씨, 하나 더요.”

하세리는 다시금 나를 부르며 말했다.

“지하 30층에 가 보니 이채민밖에 없었다는 거, 들으셨죠?”

“…네, 협회 소속 헌터님께 들었죠.”

아까부터 마음에 상당히 걸리는 점.

바로 정수민, 이지현, 조원선.

이 셋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지하 30층, 내가 그들을 묻어 둔 돌무더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남아 있던 건 정신을 잃은 이채민, 그 아저씨 한 명뿐이었다.

“탈출한 흔적은 안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죠. 혹시 박유진 씨, 이에 대해 아는 게 있을까요?”

“이건 저도 모르겠네요.”

이 지하 시설은 정문으로 들어오는 길 하나.

그리고 비상 탈출로 여섯.

총 일곱 개의 출입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셋은 그 어느 출입구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이상했다.

그 셋은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는 상태일 터.

다시 말해, 흔적도 없이 이곳을 탈출할 상태가 아니었다.

“…이따 저녁에 여기 다시 오면, 그거와 관련해서 조사를 해 보죠.”

“알겠어요. 그럼 저도 그때까지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볼게요.”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쨌든, 박유진 씨는 지금 어디 다녀오신다는 거죠?”

“예, 슬슬 가 볼까 하는 중이죠.”

“혹시 사라진 그 셋과 관련된 건가요?”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정수민, 이지현, 조원선.

하윤경에게 물어보면 그들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참고로 나는 지금 하윤경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로 변한 하윤경을 말이다.

“최대한 빨리 갔다 오도록 할게요.”

“천천히 갔다 오세요. 어차피 이제 딱히 급할 것도 없어 보이거든요.”

하세리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그리고 가시기 전에 말이에요. 그러니까…….”

“네?”

“이 사건의 규모가 꽤 큰 편이라는 거, 박유진 씨도 아시겠죠?”

“작지는 않죠. 거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실험을 위해 납치됐던 거잖아요.”

“맞아요. 그렇다 보니, 아마 일반적인 헌터는 이 사건에 개입을 못 할 거예요. 적어도 협회 관계자, 그것도 협회에서 고위직은 맡아야 아마 이곳의 조사를 할 수 있겠죠.”

“아…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나는 이곳의 조사를 못 한다, 이걸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세리도 처음에는 내가 이곳을 조사하게 해 주려고 했던 듯 보였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게 안 된다는 것을 그녀도 방금 알아차린 듯했다.

‘어쩔 수 없으려나.’

회귀 전의 나는 A급 헌터였기에, 고위직이 아니더라도 이곳을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공식적으로 D급 헌터.

이 사건은 D급 따위가 낄 레벨의 사건이 아니기는 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럼 저는 이만 여기서…….”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네?”

“박유진 씨가 고위직이 아닌 게 문제라면, 제가 박유진 씨를 고위직으로 만들면 되거든요.”

“…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에 하세리는 더 크게, 그리고 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협회의 총괄부서장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죠.”

협회의 조직 체계는 협회장, 부협회장, 그다음으로 총괄부서장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당시의 협회에는 총 열일곱 개의 부서가 있었다.

하세리는 그 부서들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지금 열일곱 개의 부서가 있는데, 조만간 열여덟 번째 부서를 만들 생각이에요.”

“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18부서의 부서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박유진 씨가 부서장 하실래요?”

“…네?”

“고위직이 아닌 게 문제면, 고위직으로 만들면 그만이죠.”

하세리는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협회의 다른 자리면 모르겠는데, 부서장은 너무 높은 자리…….”

“박유진 씨 같은 분에게는 높은 자리가 어울리는 법이죠.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부서장 임명은 제 권한. 이에 대해 뭐라 할 사람은 없죠.”

“아니, 너무 갑작스러운지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튼 헌터 협회의 18부서의 부서장, 박유진. 협회의 부서장이라면 이곳을 마음 편히 조사할 수 있을 거예요.”

“뭐, 그렇기는 하겠다만…….”

나는 갑작스러운 임명에 머리를 긁적였다.

하세리는 그런 나를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 * *

한편 그 시각.

인간이 모르는 공간의 어딘가.

“하윤경. 내가 직접 머리를 헤집었던 인간이… 이번에도 실패했군.”

정체 모를 존재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심지어 지난번보다 더 쉽게 당했어. 그 회귀한 남자에게.”

존재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짜증 난다는 듯이 말이다.

“그나저나 회귀라니……. 그 여자도 별 이상한 장난을 다 치는군. 졌으면 그냥 패배를 인정할 것이지, 뭔 말도 안 되는 수작을…….”

그 존재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수작을 부린 게 고작 인간 하나의 회귀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하지만 수작을 부렸으니… 나도 그에 맞는 것을 준비해 줘야지.”

그의 근처에 세 명의 인간이 쓰러져 있었다.

장수풍뎅이와 융합한 남자, 몸에 칼날들이 돋아난 여자, 그리고 사이보그가 된 남자였다.

“하윤경이 재밌는 장난감을 준비해 줬으니, 그것들도 갖고 놀아야지. 괴수들의 신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정체 모를 존재는 먼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딘가 먼 곳에 있는 박유진이 눈에 들어왔다.

하세리와 함께 있는 박유진이 말이다.

“그나저나 그 여신은 저딴 인간에게 미래를 맡긴 건가? 어이가 없군. 쓸데없는 발버둥이야.”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진심으로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이다.

“뭘 하든 가망이 없을 터일 텐데,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쓸데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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