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 * *
“오빠, 괜찮은 거지?”
“어, 괜찮아. 걱정 마.”
버스 타고 이동하면서, 나는 유나와 통화를 했다.
“내일 아침까지만 거기에 있어. 거기 숙소 괜찮냐?”
“응, 여기 시설 엄청 좋아. 침대도 편해.”
“잘됐네. 혹시라도 뭔 일 있으면 내게 바로 연락해, 알겠지?”
“알겠어, 오빠. 오빠도 나 걱정하지 마. 게다가 걱정할 것도 없는 게, 민아 언니가 내게 엄청 잘해 주고 있거든.”
“아, 그러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옆에 이민아 있어?”
“응, 민아 언니 내 옆에 있어.”
“바꿔 줘 봐.”
이내 이민아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박유진. 너 괜찮아?”
“괜찮다니까. 내가 쉽게 죽을 인간도 아니고.”
“쉽게 죽지는 않아도, 쉽게 다칠 수는 있잖아.”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자. 아무튼, 그쪽은 아무 문제 없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없었어.”
“너희 길드 몰래 침입하는 사람은 없었고?”
“없었다니까. 우리 길드를 습격할 용감한 인간이 이 땅에 얼마나 있겠냐?”
“하기야…….”
길드 ‘용혈.’
복지도 좋고 대우도 좋다고 한다.
거기다 길드 경비까지 상당히 엄격하다고 했다.
애초에 내가 유나를 그곳에 맡긴 이유는 그 좋은 경비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유나 거기에서 하룻밤 보내는 거, 너희 아버지가 허락하셨냐?”
“어, 그게… 처음에는 허락 안 하셨거든? 원래 우리 길드는 외부인을 쉽게 안 들이는 편이라. 근데…….”
“근데?”
“유나 얼굴을 직접 보고 네 여동생 아니냐고 묻더니… 허락해 주시더라.”
“…의외네. 그보다 너네 아버지 유나를 기억하고 계셨네. 저번에 뷔페에서 딱 한 번 만나지 않았었나?”
“아마 그럴걸?”
“으음…….”
나는 턱을 매만졌다.
이진성, 그 아저씨는 회귀를 해도 생각이 도저히 짐작이 안 갔다.
“아, 그리고 아버지가 너에게 이 말 전해 달라고 하셨어.”
“뭐를?”
“이번에 빚 하나 진 거니까, 기억하고 있으래.”
“…그래, 알겠다.”
이진성에게 빚을 진다……. 뭔가 썩 좋은 어감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빚진 건 맞았다.
다른 건 몰라도, ‘용혈’, 그 길드만큼 유나를 지키기 좋은 장소가 없었다.
거기를 공짜로 쓰게 해 줬으니, 빚을 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야, 그보다 박유진. 너 오늘 하세리 헌터님과 무슨 일 있다면서 어디 갔다고 했잖아.”
“어, 그게 왜?”
“혹시 그게, 그… ‘지하 40층 규모의 대형 연구 시설.’ 그거냐?”
“…뉴스에 뜬 거냐?”
“응. 지금 뉴스에 막 속보로 뜨고 있던데? 헌터 협회의 하세리 외 1인이 발견해 낸 범죄 시설의 참상 어쩌고저쩌고 말이야.”
“소문이 빨리도 퍼졌네.”
언젠가 뉴스를 탈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한 시간 내에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너 맞구나. 그치?”
“이따 직접 만나서 설명해 줄게.”
“꼭 설명해라. 아, 그리고 있잖아. 하세리 외 1인, 그거. 뉴스 보니까 하세리 헌터님과 헌터 협회의 부서장? 아무튼 그 1인이 협회 쪽 사람이라는데? 너 하세리 헌터님과 단둘이 간 거 아니었어?”
“…이것도 이따가 설명할게.”
그나저나 하세리.
그 누나는 벌써 뉴스에 내가 부서장이라고 말하고 다니고 있었다.
그 누나도 참 알다가도 모를 누나였다.
“아무튼, 유나 잘 지키고 있어 줘. 아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거 아니니까.”
“에이, 걱정 마. 유나는 내가 어떻게든 지킬 거니까. 그보다 너는 내일 점심쯤 온다고?”
“그때쯤 갈게. 너도 무슨 일 생기면 내게 바로 연락해라, 알겠지?”
“알겠어. 그리고 너도 뭔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내가 바로 달려갈 테니까.”
“후훗, 그래. 알겠다.”
나는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 달리는 버스의 창문 밖을 바라봤다.
‘일단 유나는 안전한 것 같네.’
하윤경이 유나를 해치려 사람을 보냈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던 듯했다.
‘하윤경을 빨리 치기 잘했어.’
상대 쪽에서 먼저 수를 쓰기 전에 내가 먼저 친다.
하윤경이 뭘 준비할 틈도 안 주려던 것이었다.
‘위험 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지.’
사실 나도 뭔가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좀 더 제대로, 더 확실하게 준비하고 하윤경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하윤경도 본격적으로 나에 대한 대비를 할지 몰랐다.
‘내가 암만 준비를 제대로 해 봤자, 완벽히 준비된 하윤경은 못 이겼겠지.’
나는 도박을 했고, 그 도박에 성공했다.
나에 대한 대비를 아예 안 하던 하윤경은 생각 이상으로 내게 쉽게 당했다.
‘회귀 전에 만났던 하윤경에 비해 너무 여유가 넘쳤었지.’
회귀 전, 그러니까 50대에 들어선 하윤경.
그때의 하윤경은 빈틈이 거의 안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40대의 하윤경.
50대 때에 비해 방심을 많이 했다.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어.”
특히 가장 운이 좋았던 건 하윤경을 한 번에 잡았다는 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한 번 놓쳤었는데, 그로 인해 서울의 절반이 불탔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지.’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하윤경을 만나러 북한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윤경을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 * *
“흐음, 대충 이쯤이었던 거 같은데.”
버스에서 내린 뒤, 나는 북한산의 등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그런 후, 등산길을 벗어나 산속 깊이 들어갔다.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하윤경은 두 개의 연구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그중 메인 연구 시설은 아까 하세리와 함께 점거했다.
그리고 그 외의 연구 시설은 이곳, 북한산의 지하에 있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었지.’
지하 3층까지 있는 시설.
지하 1층에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지하 2층과 3층에는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들이 있었다.
‘딱 하윤경 한 명만을 위한, 말 그대로 예비용 연구소였지.’
뭐, 연구소라는 점을 빼고 보면, 상당히 좋은 벙커이기도 했다.
나중에 몸을 피해야 할 일이 생기면, 유나를 여기에 숨기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 될 터였다.
“뭐, 근데 일단 위치를 파악해야 뭘 하든가 할 텐데…….”
나는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이곳에 온 건 상당히 오랜만이라 기억이 애매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아, 맞다. 이걸로 가능하겠구나.”
나는 내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봤다.
하윤경이 직접 만든 그 마도구를 말이다.
“흐음, 이걸 처음 쓰는 거기는 한데… 회귀 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나는 반지를 낀 손가락을 매만졌다.
그러면서 집중했다.
“분명 이 근처에서 느껴질 텐… 아. 찾았다.”
이 반지와 짝이 되는 발찌.
그 발찌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그 기운을 따라, 더 깊숙한 산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했다.
“그래, 이 바위였지.”
나는 바위의 왼쪽 아래 부분을 손으로 세 번 두들겼다.
그러자 바위 위로 1부터 9까지의 숫자들이 빛내며 나타났다.
“269845.”
나는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생각난 숫자들을 눌렀다.
그리고 바위는 이내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바위 아래에 있던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문 위에는 숫자판이 있었다.
“이 문의 비번은… 7145963.”
숫자를 누르자, 철문은 열렸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의 모습이 드러났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철문은 자동적으로 닫혔다.
그리고 그 위로 바위가 다시 원래 위치로 옮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약 2분 정도 내려가자, 이내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아니, 방이 아니라 커다란 집의 풍경이었다.
방 세 개, 부엌, 화장실, 소파와 침대 등.
있을 건 어지간히 다 있는 흔한 아파트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전에 와 본 적이 있어, 이곳은…….
“…안 통해.”
“끼엑?!”
식칼을 들고 내게 접근하던 하윤경.
나는 그녀의 손에서 칼을 쳐 낸 뒤,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이, 이거 놔! 너만 죽이면 내가 다시…….”
“하아아. 아무래도 이 명령도 해 놔야겠네. 하윤경,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내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어. 알겠지?”
내 말과 함께, 반지와 발찌에서 빛이 났다.
이에 하윤경은 어금니를 깨물며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그러니, 내 눈에는 그저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칼 원래 자리에 놓고 와. 그리고 앞으로 저런 거 조심히 써. 이제 어린애가 됐는데, 조심해야 하지 않겠냐?”
“내가 왜 어린애…….”
“놓고 오기나 해. 그리고 거실로 바로 와.”
나는 하윤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윤경은 나를 노려봤지만, 그녀는 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걸 지켜보며, 나는 거실에 있던 소파로 가서 앉았다.
식칼을 원래 자리에 놓은 하윤경은 이내 내 앞으로 왔다.
“그나저나 옷이나 새로 사 줘야겠네. 어른 옷을 어린애가 입기엔 너무 크다.”
“시, 시끄러워! 그게 불만이면 나를 원래 모습으로…….”
“내가 그런 위험한 짓을 왜 하냐? 됐고, 이제부터 질문 몇 개 할 거야. 솔직하게 대답이나 해.”
나는 소파에 거만하게 앉으며 피식 웃었다.
이에 내 앞에 서 있는 하윤경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윤경 본인이 만든 이 반지의 효과가 너무 뛰어난 덕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정수민, 이지현, 조원선. 그 셋. 네가 따로 빼돌린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개조한 그 셋, 갑자기 사라졌어. 혹시 네가 무슨 수를 쓴 거 아니지?”
“그건 나도 모르는 거야. 애초에 네가 나를 이 꼴로 만들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흐음…….”
반지에게서 딱히 느껴지는 게 없었다.
즉, 하윤경은 진짜로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네.”
그 셋은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윤경의 짓이라 생각했는데, 만약 하윤경이 아니면 대체 누가…….
‘이따 돌아가서 알아봐야겠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이 꼬맹이와 이야기를 마저 나누었다.
“알겠다. 그럼… 이 시설에 대해 설명해 봐. 식료품이 얼마나 있고, 수도와 전기는 어떻게 연결된 건지, 그리고 지하 2층과 지하 3층. 거기에 어떤 장비들이 있는지.”
“그건 네가 직접 알아보기나…….”
“대답해.”
내 반지에서 옅게 빛이 났다.
이에 하윤경은 움찔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 식료품은 저 큰 냉장고 안에 전부 들어 있어. 대부분이 냉동식품이라… 지하 2층에는 주로 기계와 관련된… 지하 3층에는 인체나 생물들과 관련한…….”
하윤경에게 약 10분 동안 이 시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괜찮네. 앞으로 자주 이용해야겠어.”
“여기는 내가 직접 만든, 나만을 위한…….”
“하윤경, 상황 잘 파악해. 너는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어. 괜히 힘 빼지 말고, 상황을 받아들여.”
“…X발.”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는 나지막하게 욕을 중얼거렸다.
거기다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동정심이 안 들었다.
이 인간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동정심이 들 수가 없었다.
“됐고, 다음 질문한다.”
“어? 또 있어? 그…그러니까, 그… 좀만 쉬면… 나 설명하느라 힘들고 다리도 아파서……. 그리고 나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 몸 상태가…….”
“귀찮게 하기는.”
“어, 어쩔 수 없어! 네가 갑자기 어린애의 몸이 되어 보면…….”
“이 질문에만 대답해. 그럼 쉬게 해 줄게.”
회귀 전, 나는 하윤경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를 즉사시키는 바람에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의문들을 해소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들 중, 가장 컸던 의문은…….
“너는 왜 인류를 진화시키려고 했던 거냐? 그리고 너는 왜… 신이 되려고 했던 거고?”
“그건… 어어…….”
“대답해.”
반지에서 빛이 났다.
하윤경은 말하기 싫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야 알 수 있는 건가.’
하윤경은 신이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 하나 때문에, 그녀는 광기에 가까운 짓들을 저질렀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하윤경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
“목소리?”
“자기를 괴수들의 신이라고 하는 존재의 목소리가…….”
“…뭐?”
괴수들의 신?
그건 또 뭔 개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