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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39화 (139/240)

139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마, 말 그대로야.”

하윤경은 붉어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다.

마치 들키고 싶어 하지 않은 비밀을 들킨 어린아이 같았다.

“어렸을 때…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그때 괴수들의 신인가 뭔가가 말하며 이상한 소리를 했고, 그때부터…….”

“…신이라.”

뭔가 요즘 따라 신의 존재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일단 신이라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확실해.’

내가 회귀해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경우로는 불가능했다.

인간 이상의 존재, 그러니까 신이라는 위치쯤은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 추측 상… 전지전능한 신이라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게다가 유일신의 개념도 아닌 거 같고. 신들이 다양하고 많이 존재하는 것 같았지.’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 돌멩이, 그러니까 엔드리온 조각.

그리고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검은색의 반지를 슬쩍 바라봤다.

분명 이 두 개의 아이템들도 신과 관련됐던 듯했다.

우우웅. 우웅―

그런 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푸른 돌멩이는 작게 진동했다.

하지만 이 돌멩이가 내게 뭘 말하려고 하는 건지, 이번에는 눈치챌 수 없었다.

“흐음. 아무튼, 하윤경. 너는 어렸을 때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렸고, 그 이후로 신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신이 되고자 하는 목표가 아니었어. 그건 내가 어른이 된 후에 생긴 목표야. 어렸을 때 가지게 된 목표는… 인류를 진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어.”

“그 괴수들의 신인가 하는 목소리가 그렇게 시킨 거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 아니,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 그 목소리가 내게 뭘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그래?”

나는 내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봤다.

반지에게서 딱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즉, 하윤경의 말에는 거짓이 없다는 의미였다.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정확히 뭔 의미냐?”

“그때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려고 하면… 머릿속에 안개가 나타나는 기분이야. 뭔가 보일 듯 말 듯 해.”

“하지만 인류를 진화시키라 했던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네?”

“무엇을 하라고 했는지는 기억나거든.”

“뭐라고 했는데?”

“인류는 육체라는 한계에 막혀 있다. 그 육체의 한계를 내가 깨라… 그렇게 말했었지.”

“그 한계를 깨는 방법이 설마, 몬스터와 인간의 융합이었냐?”

“응, 맞아. 그거였어.”

하윤경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위대한 정신에 몬스터의 강력한 육체가 합쳐지면, 우리는 분명 더 한 단계 위로…….”

“개소리를 참 정성스럽게도 하는구나.”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목소리를 들은 후, 너는 강박적으로, 그리고 세뇌를 당한 것처럼 그런 실험들을 시작한 거냐?”

“세뇌를 당한 게 아니야. 나는 계시 같은 걸 받은 거야. 내가 인류를 한 단계 더 위로 올릴 운명을…….”

“딱 봐도 세뇌됐네, 뭘.”

하윤경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즉, 이게 진실이라는 것이었다.

‘세뇌…라고 봐도 무방해 보이네.’

상황을 정리하자면, 하윤경이 어렸을 때 이 ‘괴수들의 신.’

그 존재가 하윤경의 머릿속을 가지고 놀았다.

그 결과, 하윤경은 미친 듯이 사람들을 잡아다 끔찍한 짓들을 했었다.

인류의 진화라는 명목하에, 강박적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본인은 인류 그 자체를 뛰어넘어, 신이 되려고 했던 거고.’

나는 회귀 전, 하윤경과의 마지막 전투를 떠올렸다.

당시의 하윤경은 진짜로 신이 되려고 했고, 실제로 그 마지막 단계까지 갔었다.

내가 그녀를 즉사시켜서 겨우 막았지만 말이다.

“하윤경, 그럼 질문을 바꿔서… 너는 왜 신이 되려고 했던 거냐?”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내 목소리가 닿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 그 존재에게 내 목소리를 직접 들리게…….”

“겨우 그딴 이유 때문에 수천, 수만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그런 짓들을 한 거냐?”

“겨우 그딴 이유가 아닌…….”

“입 다물어, 미친년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윤경의 대답들은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신. 신이 흑막 같은 건가?’

나는 엔드리온의 조각과 검은색의 반지를 다시금 바라봤다.

일단 나 또한 신들과 연이 생긴 인간이었다.

그리고 만약…만약 진짜로 내가 신을 상대해야 한다면…….

‘…나중에 생각하자.’

아직 신에 의한 위협은 눈에 안 들어왔다.

힘을 기른 뒤 직접적인 위협이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됐다.

게다가 신이든 뭐든,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쓰러뜨리면 됐다.

복잡한 문제가 아닌, 매우 간단한 문제였다.

“내가 왜 미친년인데? 나만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천재가…….”

“천재인 건 인정하는데, 이성적이지는 않은 거 같다. 이성적인 사람은 수천 명을 납치해서 실험 안 하거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네 옷이나 새로 사 와야겠다.”

하윤경은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옷들을 걸치고 있었다.

계속 저 꼴로 두기에는 조금 불편했다.

“옷 사 올 테니까 그동안 뭐 좀 먹어 놔. TX4869? 그 약 열량 소모 엄청나다면서. 앞으로 고생 좀 할 텐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 놔라.”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지 않을…….”

“있게 될 거야. 너처럼 유용한 부하를 놓칠 생각 없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한 시간 안에 다시 올 테니까, 그동안 뭐 좀 먹어 놔. 아, 그리고 다 먹고, 신에 대한 네 연구 자료들을 정리해서 준비해 놔.”

“…신에 대한 연구 자료?”

“신이 되고 싶었다며? 그럼 당연히 신에 대해 연구해 놓은 게 있겠지. 그것 좀 읽어 보고 싶으니까, 정리해서 프린트해 놔.”

“그건 안 돼! 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

하윤경은 떨리는 눈빛으로 외쳤다.

“내가 수십 년 동안 모은 자료들이야. 나만을 위해 쓸…….”

“헛소리 말고 해 놔.”

“으읏?”

내 말과 함께 반지에서 옅게 빛이 났다.

그리고 하윤경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주먹을 세게 쥐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는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내가 언젠가 죽일 거야. 이 치욕적인 일을… 내가 절대 안 잊고…….”

“어린아이가 그런 말 해 봤자 전혀 안 무섭다니까. 그리고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 네가 만든 이 반지를 이겨 낼 수 있다면 말이야.”

“저 반지와 이 발찌는 내가 만든 거야! 그럼 얼마든지…….”

“말 잘했다. 하윤경, 너는 앞으로 저 발찌를 풀기 위한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마.”

“아아… 어엇… 그…….”

“몸이 어려지더니 머리도 어려졌나 보네.”

나는 비웃음이 담긴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이에 하윤경은 낭패를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밖에서 유아복들을 좀 사 올 테니까, 내가 시킨 일이나 잘 해 놔.”

“유아복? 너는 진짜 나를 어린애 취급이나 하는…….”

“너에게 맞을 옷은 지금 유아복 말고는 없어. 됐고, 밥 먹고 일이나 시작해.”

“…알겠다.”

“좋아. 아, 그리고 있잖아.”

나는 내 목에 걸려 있던 푸른 돌멩이를 하윤경에게 건넸다.

“프린트까지 다 하면, 이 돌멩이 좀 분석해 줘.”

“분석?”

“응. 부수거나 그러지는 말고. 나 이거 계속 써야 하거든. 그러니까 대충 스캔만 해서, 이게 어떻게 뭘로 구성됐는지… 그런 것들 좀 알아봐 줘.”

우웅! 우우웅! 우웅! 우웅―!

내 말에 푸른색 돌멩이는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돌멩이를 하윤경에게 건넸다.

“다시 말하는 거지만, 이 돌멩이에 이상한 짓 할 생각은 하지 마. 그냥 간단히 분석만 해.”

“알겠다. 그런 거면 간단히 스캔만 돌리면 되니까.”

하윤경은 내게서 돌멩이를 받아 갔다.

이에 엔드리온의 조각은 더 크게 진동했다.

“흠… 스스로 진동하는 돌멩이라.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돌멩이인가 봐?”

“평범한 돌멩이는 아니지.”

나는 이 말과 함께 돌멩이를 바라봤다.

“가만히 좀 있어라. 얌전히 검사받기나 해.”

…우웅―

마지막으로 소심하게 진동을 울린 후, 돌멩이는 이내 조용해졌다.

이에 하윤경은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사람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돌멩이인가?”

“그런 셈이지. 이거의 정확한 정체는 나도 몰라. 그러니까 한 번 알아봐 줘.”

“으음, 알겠다. 다른 것들과는 별개로, 이거는 조금 흥미가 가네.”

하윤경은 과학자의 눈빛을 보였다.

확실히 미친 여자는 맞았지만, 동시에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쪽으로 자주 이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알아서 잘 해 봐. 네 옷들 사 올 테니까, 그동안 내가 시킨 것들 다 해 놓고.”

이 말과 함께, 나는 지하 시설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

나는 하윤경에게 맞을 법한 옷들을 사 들고 다시 시설 안으로 들어왔다.

“야, 나 돌아왔다. 잘 있었냐?”

나는 별생각 없이 지하 1층의 거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 거실에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나를 맞이했다.

“박유진.”

“…뭐냐?”

“이거… 제발 내가 쓰게 허락해 줘.”

하윤경이 거실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엔드리온의 조각을 소중하다는 듯이 붙잡고 있었다.

“이거면… 이 작은 돌멩이 하나면 완성할 수 있어. 신의 육체에서 떨어져 나온 이 조각이면 가능하다고.”

“뭔 소리냐?”

나는 들고 온 옷들을 소파에 놓으며 물었다.

“이 돌멩이가 신의 육체라고?”

“신의 일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해. 저 일부를 분석하고 내가 만든 공식에 대입하면, 나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어.”

하윤경은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어린아이가 됐음에도, 그녀의 눈에서 광기가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작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네가 내린 명령 때문에 못 하고 있어. 그러니까 박유진. 부탁한다. 이건 인류를 보다 한 단계…….”

“진정이나 해, 인마.”

나는 하윤경에게서 엔드리온의 조각을 다시 회수했다.

하윤경은 돌려주기 싫었는지, 돌멩이를 꽉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힘으로 그걸 다시 가져왔다.

“그리고 이 돌멩이를 그런 용도를 쓰게 할 생각 전혀 없으니 포기해.”

“아아… 하지만 저것만 있으면… 나는… 인류는…….”

하윤경은 엔드리온의 조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엔드리온의 조각을 다시 목에 찼다.

“신의 일부? 신과 관련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우웅. 우웅―

진동하는 돌멩이.

뭔가 내게 항의를 하는 것만 같았다.

“검사받은 것 때문에 삐진 거냐? 미안해. 근데 네가 뭔지 궁금한 걸 어떻게 하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 뒤, 다시금 하윤경 쪽을 바라봤다.

“이 돌멩이 분석한 거, 혹시 프린트했냐?”

“…저 식탁 위에 있어. 그리고 그 옆에… 신에 대한 내 연구 자료도 있고.”

“아, 그러네.”

나는 식탁에 놓인 종이들을 들어 올렸다.

이때 하윤경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박유진. 네가 저걸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해하면, 다시 생각해 줘. 너만 허락하면, 나는, 아니. 너와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조용히 하고 있어. 판단은 내가 할 거니까.”

하윤경의 입을 다물게 한 뒤, 나는 하윤경이 프린트해 둔 자료들을 읽었다.

내가 엄청난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전부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얕은 지식으로 자료들을 읽었는데…….

“하, 참 나. 이런 미친…….”

예상보다 더 황당한 내용에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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