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 신예진 】
나의 본업은 헌터였다.
하지만 암살자 일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잔재주들이 많이 생겼다.
그 잔재주들 중 하나가 바로 과학.
다양한 방식으로 암살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과학에 대한 지식이 쌓였다.
얕은 지식이었지만, 그 얕은 지식만으로도 어지간한 과학 논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윤경이 준비한 이 자료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었기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야, 하윤경.”
“응?”
“너 신의 존재를… 대체 어떻게 증명해 낸 거냐?”
“거기에 적혀 있지 않아? 몬스터를 통해…….”
“아니, 그러니까 이게 말이 되냐고? 몬스터와 인간의 비교를 통해 공통점을 찾아내고…….”
“맞아. 거기서 나는 영혼의 존재를 확실히 찾아냈어. 거기서부터 신의 존재를 추격했고.”
“…진짜 미쳤구나.”
하윤경의 광기에 전생이나 지금이나 여러 번 놀란 적 많았다.
하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엄청난 광기였다.
“이걸 12년에 걸쳐서 알아냈다고?”
“그치. 네가 들고 있는 저 자료들은 내가 12년 동안 노력해서 알아낸 거야.”
“아니, 노력이 무슨… 12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실험한 거야?”
“이런 말이 있지. 너는 그동안 먹은 빵의 수를 기억…….”
“시끄러워, 미친년아.”
나는 하윤경에게 차갑게 한마디 했다.
그런 후, 다시금 하윤경이 준비한 자료들을 읽었다.
‘하윤경이 이런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겨우 이 정도로 당황하지 말자.’
자료에 적힌 수많은 실험에 관한 보고들.
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은 채 다시 자료들을 읽었다.
하윤경의 만행들이 당황스러운 건 맞았으나, 내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의 존재를… 진짜로 증명해 냈다고?’
신이 있다는 건 나도 얼추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전부 내 경험에 의한 심증들뿐, 사람들에게 내세울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러나 하윤경, 이 미친 여자는 그걸 해냈다.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 냈다.
과학에 대한 얕은 지식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이 자료들을 이해하기 충분했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낸다. 뭐, 이것까지는 알겠어. 알겠는데…….’
나는 자료의 페이지들을 넘겼다.
핵심은 지금부터였다.
‘진짜로 신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까지 왔었구나.’
아니, 정확히 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을 훨씬 뛰어넘은, 내가 감히 이길 수 없는 존재.
그 존재가 되기 코앞까지 갔었다.
만약 회귀 전, 하윤경이 이 계획을 성공시켰으면…….
‘하윤경이 아니라 내가 즉사당했겠지.’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윤경을 이렇게 쉽게 잡은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근데 진짜로… 엔드리온의 조각. 그 돌멩이만 있으면 이 공식이 완성되는구나.’
회귀 전, 나는 하윤경의 연구소를 조사했다.
거기서 그녀가 만든 말도 안 되는 기술력을 전부 살폈다.
하지만 이런 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 본 것이었다.
‘그때 진짜 꼼꼼히 살폈는데 못 찾았어. 아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본인이 아니면 절대 못 찾게 해 놓았나 보네.’
그나저나 이 기술력.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된다.
진짜 신이 되는 건지는 몰랐다.
하지만 인간 기준에서는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적어도 그 정도의 강함을 지닌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래, 이게 맞겠어.’
나는 이 자료들을 한 번 더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파지직―
결심을 한 나는 손끝에 전류를 발생시켰다.
그걸 이용해 자료들에 불을 붙였다.
“박유진? 너 뭐 하는 거야?”
“이건 너무 위험해.”
나는 자료들을 전부 태웠다.
말 그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다.
“이 기술…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가는 일이 커질 거야.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겠지.”
나는 하윤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윤경. 너는 앞으로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이 기술에 대해 말하지 마. 절대로. 말하라고 누가 협박해도, 말하지 마. 말할 바에 그냥 죽어.”
“…응?”
“이 자료들을 이중, 아니, 삼중, 사중으로 보안을 걸어서 보관해. 절대 남들이 못 찾게 숨기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뜸을 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너는 절대 이 기술을 활용하지 마.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너는 이 기술과 관련해서 뭘 하는 건 일절 금지야.”
“뭐? 박유진! 이건 내가 평생을 걸쳐서 얻어 낸…….”
“너 같은 미친년의 손에 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기술이야. 아니, 마음 같아서는 그냥 전부 삭제하고… 너의 기억을 전부 지우고 싶어.”
진심이었다.
이 기술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삭제, 그리고 하윤경의 기억을 망가뜨린다.
이 편이 훨씬 안전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예전의 나라면 그랬겠지만…….
‘신의 존재가 확인된 이상… 일단 남겨 두자.’
나는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일과 연관된 듯했다.
그러니… 조커 카드 하나쯤을 패에 잡고 있는 편이 좋았다.
“내가 허락하면 그때 이 기술에 손대게 하는 걸 허락할게. 덤으로, 그 기술을 완성할 수 있게 이 돌멩이까지 줄 거야.”
우웅! 우웅!
내 말에 목에 걸린 돌멩이는 항의를 하듯 진동을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 그 기술을 네가 쓰게 하지는 않을 거니까.”
“그럼 누구에게 쓰게 할 생각인데?”
“…알 것 없어.”
나는 하윤경이 프린트한 자료들을 전부 불태웠다.
그런 후 다시금 하윤경을 바라봤다.
“일단 내가 시킨 것들 다 하느라 고생했어. 귀찮았을 텐데 말이야.”
“네가 저 반지로 시켰으니까 한 거야. 아니었으면 너는 그냥 죽이고…….”
“만약의 일은 가정하지 마. 네가 희망하는 것들은 절대로 안 이루어질 테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어린아이를 내려다봤다.
“됐고, 너는 앞으로 여기서 나를 위해 일하게 될 거야. 나를 위한 약품, 장비,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연구도 하겠지.”
“…반항하는 건 무의미하겠지. 저 반지가 있는 한은.”
“잘 아네.”
“하지만 내가 언젠가 저 반지와 이 발찌를…….”
“할 수 있으면 해 봐. 그리고 미리 말하는 거지만, 나는 쉬운 상대가 아닐 거야.”
말은 이렇게 여유롭게 했지만, 사실 하윤경을 상대로 방심은 금물이었다.
저 여자는 진짜로 방법을 찾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살려 두는 것 자체가 꽤 위험했다.
‘하지만 살려 둘 가치는 있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원래는 하이 리스크의 일에 뛰어드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윤경을 곁에 둬서 얻는 리턴이 상상 이상으로 컸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가 볼게. 아마 3일 내로 다시 찾아올 테니까, 그동안 연구 하나 좀 부탁할게.”
“연구를 부탁한다고?”
“늑대인간에 대한 자료들을 준비해 줘. 그리고 늑대인간의 본능을 통제할 방법 같은 것 좀 알아봐 주고.”
“이민아, 그 여자애 때문이냐?”
“그렇지. 내가 걔를 좀 많이 아끼는 편이거든.”
하윤경을 손에 넣었으니, 제대로 써먹어 줄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내가 사 온 옷들 좀 입어 봐라. 대충 사이즈 맞아 보이는 것들로 샀거든.”
“…저 옷들을 입으라고? 나보고?”
내가 사 온 옷들을 보자, 하윤경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박유진. 혹시 모를까 봐 하는 말인데, 나는 40 넘은 여자야. 저런…저런 유치한 옷들을 나보고 입으라는…….”
“지금의 너는 어린애야. 그럼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게 자존심이…….”
“방에 가서 갈아입고 와.”
반지에서 빛이 났고, 하윤경은 새 옷을 들고 근처 방 안으로 갔다.
하윤경은 고개를 흔들며 소리치고 내게 욕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다.
본인이 만든 구속구에 의해, 하윤경은 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크크큭. 이야, 잘 어울리네요, 하윤경 어린이.”
“너… 내가 언젠가 죽이고, 뼈를 다…….”
“크큭, 귀엽네, 귀여워.”
하윤경은 밝은 분위기의 원피스를 입은 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비웃어 줬다.
“속옷이나 잠옷들도 많이 챙겨 왔으니까, 마음에 드는 거 입어.”
회귀 전, 나를 개 같이 고생시킨 하윤경.
그 망할 여자를 이렇게 엿 먹이니, 기분이 썩 괜찮았다.
* * *
“박유진 씨.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네.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요.”
몇 시간 뒤, 나는 다시금 하윤경의 제1 연구소로 돌아갔다.
하윤경을 혼자 두고 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반지를 통해 확실하게 온갖 제약을 다 걸어 놨다.
아마 며칠 정도는 잠잠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의 조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현재 지하 10층까지 전부 확인했어요.”
“이상한 건… 많이 있었겠죠?”
“네.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하세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 수 있던 건지… 놀라울 따름이네요.”
“뭐, 하윤경은 별 이상한 걸 다 만든 사람이었으니까요.”
회귀 전의 나도 하세리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말도 안 되는, 시대를 앞서간 기술력들.
‘만약 하윤경이 착한 인간이었다면… 분명 노벨상 같은 거 받고, 인류에 엄청난 기여를 했겠지.’
하지만 현실은 하윤경이 미쳐 버려서 온갖 만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나저나 하윤경이 미쳐 버린 이유는 어렸을 때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슨 괴수들의 신인가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에 말이다.
‘그냥 미쳐서 하는 헛소리일 수도 있어. 하지만 신의 존재가 있다는 게 거의 확실시되는 마당에… 마냥 헛소리라 생각하기도 애매해.’
아무래도 이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뭐, 그것 말고도…….
“그건 그렇고, 정수민, 이지현, 조원선. 이 셋은 아직 못 찾았나요?”
“네. 일단 이 시설을 전부 다시 살폈지만, 아무런 흔적도 못 찾았어요.”
“흐음, 그런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 셋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역시 이상했다.
“제가 다시 확인해 보죠. 그리고 방금 말한 그 위험한 물건들과 기술력들은…….”
“예, 일단 보이는 대로 전부 폐기하고 있어요. 유용한 것들은 일단 놔두고 있지만, 딱 봐도 위험한 것들은 없앴어요.”
“그렇군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하세리는 이런 쪽으로는 확실한 일 처리를 보여 줬다.
“뭐, 저도 이제 그 일을 돕도록 할게요. 그럼 바로 다시 시작할까요?”
“네. 바로 시작하죠. 그리고 빨리 끝내도록 해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할 거 많을 테니까요.”
“…할 게 많다니요?”
“일단 박유진 씨께서 협회의 부서장이 됐으니, 이것과 관련된 일들 좀 하고… 아, 그리고 헌터 대전 우승하셨잖아요? 아마 그것과 관련해서 박유진 씨를 찾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렇기야 하겠다만… 아니, 그 전에 아까 뉴스에…….”
“네, 저와 협회의 부서장 1인이라고 했죠.”
하세리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고, 이에 나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취업을 미리 하는 거야 나쁘지는 않다만… 전에 말했듯이 저는 일단 졸업을 먼저 하고 싶어서요.”
“괜찮아요. 학업과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테니까요. 그러니까 박유진 씨. 앞으로 저랑 열심히 잘 해 봐요.”
“네, 뭐…….”
솔직히 협회에서 부서장 자리를 받는 거면 나야 좋았다.
돈이 꽤 나오는 위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뭔가 일이 복잡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헌터 대전 우승해서 얼굴도 팔렸으니…….’
다음 주부터 뭔가 많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의 그 예감은 적중했다.
그도 그럴 게, 시간이 흘러 다음 주 월요일.
“너지? 너 맞지? 내 가면 훔쳐 간 놈.”
전에 본 적 있는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네, 오랜만이네요, 신예진 씨. 저번에 암시장에서 만난 후로 처음인가요?”
나는 피식 웃으며 내 앞에 나타난 여자 암살자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