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 *
“세리야.”
“네, 협회장님.”
“이번에 꽤 크게 일을 저질렀던데?”
서울에 위치한 헌터 협회의 본사.
그 건물의 최상층에서 하세리와 헌터 협회의 협회장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말 동안 무슨 지하 연구 시설을 발견하고, 거기에 갇혔던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고?”
“네, 그렇죠.”
“구출된 사람들만 최소 600명. 불법적으로 소유되고 있던 몬스터들. 거기다 실험의 흔적들과 위험한 과학 기술력들의 발견.”
협회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작은 사건이 아니야. 납치됐다던 사람만 600이야, 600. 그런 사건을 네가 자진해서 맡겠다고?”
“네. 알고 계시겠지만, 그 시설의 주인은…….”
“알아. 너의 고모라면서. 너도 그것 때문에 무언가 책임감을 느껴서 이러는 거겠지.”
“…네. 그렇죠.”
“헌터가 이런 사건을 통솔하는 건 불법은 아니지.”
“네. 헌터들에게도 사건 현장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
“권한은 있지. 하지만 그래도 경찰 쪽의 눈치는 어느 정도 보라고.”
협회장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네가 경찰청장과 면식이 있어서 그런 거지, 다른 헌터가 너처럼 했으면 바로 내게 항의가 들어왔을 거야, 알지?”
“그 정도는 알고 있죠. 그리고 저도 제 인맥의 힘을 알아서, 이 사건을 통제했던 거예요.”
“그랬겠지. 에휴.”
하세리의 여유로운 대답에, 협회장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적당히 사건을 마무리 지어. 괜히 일 크게 벌이지 말고.”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전국에 이 사건에 대한 뉴스가 퍼졌어요. 아무래도 600명, 아니, 아마 1,000명 가까이 납치가 됐던 사건인지라.”
“하아아. 그럼 알아서 하거라. 대신 경찰들에게 눈치껏 공적 좀 넘겨줘. 나는 경찰 쪽과 좋은 관계 유지하고 싶으니까.”
“그런 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알아. 너는 인맥 관리 하나만큼은 잘하니까.”
협회장은 피곤하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하세리는 그런 협회장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다 이내, 협회장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에 그, 박유진? 그 친구를 부서장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문제라도 있나요? 부서장의 임명 권한은 제게…….”
“아니, 아니. 그건 문제없어. 애초에 모든 부서들의 관리는 총괄 부서장인 네 책임이니까.”
협회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냥 몇 가지만 확인하고 싶은 거야. 박유진을 18부서에 넣지 않았니? 하지만 18부서는 없는 부서잖아.”
“없었죠. 제가 주말에 새로 만든 부서니까요.”
“그럼 18부서는 뭐 하는 부서인데? 우리는 기존에 17개의 부서나 있었어. 이미 많았는데, 또 만들어 봤자…….”
“네, 17개나 있었죠. 그 부서들 덕에 어지간한 일들은 전부 처리가 됐죠.”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라고. 여기서 굳이 뭘 더…….”
“하지만 잠입 전문 및 척후들을 위한 부서가 없었죠.”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 게이트 안으로 척후들을 먼저 보내는 편이라, 각 부서마다 척후들 한두 명은 있어요. 하지만 척후들만 모여 있는 부서는 지금까지 없었죠.”
“…필요 없던 게 아닐까. 애초에 척후들만으로 부서를 만들어 봤자…….”
“공식적으로는 척후들을 위한 부서예요. 공식적으로는.”
“그럼 뭐, 비공식적인 거라도 있니?”
“으으음. 협회장님, 협회 소속의 길드는 전국에 약 80개 가까이 있어요.”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나?”
뜬금없는 이야기에 협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하세리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계속했다.
“그 길드들이 전부… 저희가 주는 예산을 과연 정직하게 쓰는 걸까요? 아무래도 이제 슬슬 한 번 확인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자네 설마, 내가 전에 말했던…….”
“예, 협회장님은 몇 년 전부터 감찰부 하나 만들자고 말씀을 하셨죠. 이번 기회에 한 번에 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
“흐으음.”
협회장은 턱을 매만졌다.
잠시 말이 없다가, 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박유진. 그 친구가 최근 고연대 헌터 대전 우승자지?”
“네, 그 친구예요.”
“이번에 전기로 스타디움 철근을 끌고 온 그 일렉트로 마스터?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희대의 천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천재 일렉트로 마스터는 맞죠.”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해. 애초에 전기로 자기장을 일으켜 철근을 끌어오는 건… 아마 박유진이 최초일 테니까.”
협회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천재를 부서장 ‘따위’로 쓰려고 하다니. 하세리, 자네도 참 특이해.”
“걱정 마세요, 협회장님.”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인재의 재능을 낭비하는 짓 따위는 안 하니까요.”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박유진이 부서장이 된다는 거 뉴스에 말했었지?”
“네, 말했었죠?”
“그 친구도 지금쯤 고생하고 있겠구먼. 고연대 헌터 대전 우승에, 바로 부서장 임명이면… 쉽지 않겠어.”
협회장은 창문 밖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월요일의 해가 떠 있었다.
* * *
“에라이. 더럽게도 많이 오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며 한숨을 쉬었다.
“뭔 놈의 기자들이 이렇게 많은 거냐?”
내 작은 원룸 밖에 모인 인파.
대부분이 기자들이었다.
하윤경의 연구 시설의 조사를 얼추 마무리한 후, 집에 돌아가는 길.
그때 이런저런 사람들이 내게 따라붙었다.
“야, 왔냐?”
“오빠, 왔구나?”
집에 들어서자, 유나와 이민아가 나를 맞이해 줬다.
“너희들 먼저 와 있었네?”
“네가 집에서 만나자고 했잖아. 그래서 유나 데리고 바로 온 거지.”
“고생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그리고 고마워. 유나 봐주느라 귀찮았을 텐데.”
“딱히 귀찮지는 않았어. 오히려 뭐랄까… 조금 재밌었지.”
이민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유나와 계속 붙어 있어서 유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됐거든.”
“맞아. 그리고 나도 언니와 더 친해졌어.”
유나는 이민아를 대뜸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와 닮은 능글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이다.
“오빠. 그냥 민아 언니랑 결혼해라. 민아 언니와 가족 되면 재밌을 거 같아.”
“유, 유나야? 어, 언니는 그런 건…….”
“아, 왜애애? 언니, 보니까 우리 오빠 엄청 좋아하는……. 아악?!”
“시끄러워, 인마. 시끄러워.”
나는 유나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말 그대로 살짝 때린 거지만, 유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쒸이이. 나는 왜 때려? 맨날 민아 언니만 때렸잖아?”
“맨날 때리지는 않는다.”
“너는 또 뭔 개소리냐?”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으나,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무시했다.
“뭐, 아무튼. 주말 동안 별일 없었다는 거지?”
“그렇지.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와서 공격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어.”
“그렇구먼.”
“야, 그보다 너는 주말 동안 뭔 일을 하고 온 거냐?”
이민아는 창문 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또 뭔 일을 했으면, 이번에는 네 집 앞까지 기자들이 온 거냐고?”
“…너도 뉴스로 대략적인 소식은 듣지 않았냐?”
“무슨 지하의 거대한 불법 연구소 발견하고, 협회의 부서장? 그거 된 거?”
“잘 아네. 그리고 그게 다야.”
나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민아와 유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아니, 오빠. 설명 좀 제대로 해 봐. 그 지하 연구소를 오빠와 하세리 헌터님이 같이…….”
“게다가 그거 하윤경? 하세리 헌터님의 고모분? 그분의 소유였고, 들으니까 그 사람과 전투를…….”
“둘 다 진정해 봐. 간단히 설명해 줄 테니까.”
“아니, 간단히 설명하지 말고 자세히 설명해, 새끼야.”
결국 나는 이민아와 유나에게 주말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물론 비밀로 지켜야 할 것들은 적당히 숨기며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그걸 하세리 헌터님에게 말하고, 같이 가서 저곳을 단둘이서 정리했다, 이거야?”
“뭐, 대충 그런 거지?”
“저런 곳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몇 달 전부터 조금씩 조사했던 거지.”
“언제 조사한 거래. 너랑 항상 붙어 다녔는데, 너 그러는 거 못 봤는데.”
“다 방법이 있는 거지.”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유나가 입을 열었다.
“오빠, 협회의 부서장? 아까 뉴스에서 하세리 헌터님 인터뷰한 거 나오던데, 거기서 하세리 헌터님이 오빠를 부서장인가 뭔가로 임명했다는 건…….”
“그건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다.”
다른 게 아니라, 이건 나도 진짜 몰랐다.
애초에 부서장으로 임명된 건 워낙 갑작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럼 오빠, 협회에 취직한 거네? 근데 그거… 좋은 건가?”
“그것도 모르는 거지.”
나는 헛웃음과 함께 대꾸한 후, 이민아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냥 살짝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넌 또 왜 그러냐?”
“너 부서장, 그거 때문에 다음 학기부터 학교 안 나오거나 그러면… 나 또 혼자서 학교를…….”
“학교는 계속 다닐 거니까 걱정 마. 힘들게 입학했는데, 졸업장은 따야지.”
“진짜지?”
“이런 걸로는 거짓말 안 한다니까.”
나는 이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꾸한 뒤, 창문 밖을 슬쩍 바라봤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집 밖에 모여 있었다.
근데 그중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외국인들은 왜 있는 거냐?”
외국에서 온 듯한 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연구원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아니, 지금 보니까 한국 연구원들도 섞여 있네? 뭐지?’
기자들이야, 새로운 부서장 임명 소식으로 나를 찾아올 만했다.
근데 연구원들은 왜……. 게다가 외국에서 기자들이 왜 나를…….
“아, 오빠 몰랐어? 지금 오빠 해외 뉴스에도 얼굴 나왔잖아.”
“…내가 왜?”
“그, 뭐냐, 헌터 대전 때 전기로 막 자기장 일으켜서 스타디움 철근 뽑아내고 그랬잖아. 그것 때문인 것 같던데.”
“맞아, 그것 때문이지.”
옆에 있던 이민아도 입을 열었다.
“전기로 자기장을 만들고, 그걸로 철을 다루는 일렉트로 마스터. 전기로 그런 활용을 보인 건 네가 처음이라고 막 난리더라.”
“하기야… 그렇겠네.”
생각해 보니 헌터 대전 당시.
나는 전류의 활용을 대중에게 보여 줬다.
이 당시의 일렉트로 마스터들의 능력 활용은 전부 강한 전기를 발사하는 것뿐.
이런 식으로 활용한 건 전 세계에서 내가 최초일 터였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 연구원들까지 있는 건가? 내가 전류를 어떻게 활용한 건지 알아내기 위해?”
“그런 것이지 않을까?”
“하아아. 귀찮네.”
회귀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전류를 활용하는 걸 보이자,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뭐, 관심을 가져 봤자 나한테서 얻어 낼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전류의 활용.
이건 따로 연구한다고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처럼 직접 벽을 겪어 봐야 터득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 맞다. 오빠, 그러고 보니 부산에 사는 일렉트로 마스터? 어떤 여자분이 오빠에게 연락하고 싶다고 뉴스에…….”
“아, 그 사람.”
부산의 일렉트로 마스터.
내가 알기로는 그 누님 한 명밖에 없었다.
‘하기야, 내가 전류로 이러는 걸 봤으니, 당연히 관심을 가질 만…….’
속으로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음?”
거실의 접이식 식탁.
그 식탁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
저 그림자가 뭔가…….
휙―!
나는 자바니아를 꺼내, 식탁 밑을 향해 던졌다.
자바니아는 바닥에 꽂혔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 박유진?”
“오빠? 왜…….”
“잠시만 나갔다 올게.”
나는 자바니아를 바닥에서 뽑아 들었다.
그러면서 식탁 밑의 바닥을, 정확히는 식탁 밑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흠.”
나는 코트 안에서 실키의 가면을 꺼냈다.
그리고 그림자 앞에서 보란 듯이, 그 가면을 얼굴에 썼다.
“금방 돌아올게. 뭔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이 말과 함께 나는 집 밖으로 나갔다.
이민아와 유나는 여전히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갈 길을 갔다.
그리고 그대로, 이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자.”
옥상에 올라간 뒤, 나는 내 뒤쪽을 바라봤다.
그쪽에는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의자 밑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거기 있는 거 아니까, 얼른 나오시죠.”
나는 실키의 가면을 쓴 채, 의자 밑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안 거냐?”
그림자에서 여자 한 명이 서서히 떠올랐다.
전에 대림동 암시장에서 본 여자였다.
“신예진 씨였죠? 오랜만이네요.”
나는 실키의 가면의 원래 주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