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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43화 (143/240)

143화

* * *

옥상에서의 전투.

그 전투에서 신예진은 확실하게 느꼈다.

‘강하다.’

박유진, 이 남자는 신예진과 나이가 비슷했다.

하지만 그녀는 엄청난 경험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에게서 느껴졌던 그 벽인 것 같아.’

벽.

하지만 박유진의 벽은 노인에게서 느꼈던 벽과 느낌이 달랐다.

노인의 벽은 매우 높았지만, 못 뛰어넘을 수준은 아니었다.

‘근데 박유진은… 내가 못 뛰어넘을 거 같아.’

박유진에게는 암살과 관련된 능력이 없었다.

그는 그저 전류만을 다루는 헌터.

스펙만 보면, 암살자와는 전혀 안 어울렸다.

그러나 신예진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박유진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암살자들보다 더 암살자다웠고, 그 어떤 암살자보다 강했다.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거지?’

신예진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박유진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남자였다.

나이만 따지자면 자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박유진은 생긴 것보다 훨씬 깊은 연륜을 가진 듯했다.

엄청난 수의 전투를 겪은 것만 같은 남자였다.

‘…못 이긴다.’

박유진의 주먹을 몇 대 맞은 후, 신예진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박유진을 절대 못 이긴다고 말이다.

암살자로서의 재능은 신예진이 더 뛰어났다.

하지만 노력의 시간, 그리고 쌓인 경험은 박유진이 압도적이었다.

‘언젠가 새로운 스승을 만나거라.’

신예진은 문득 스승의 유언이 떠올랐다.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개화시킬 스승을 만나라는, 그런 내용의 유언을 말이다.

스승이 죽은 후, 신예진은 그의 유언을 잠시 잊고 살았다.

새로운 스승 없어도, 자신의 재능 하나를 믿고 최고의 암살자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박유진과의 전투로, 신예진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혼자서 절대… 박유진을 뛰어넘을 것 같지가 않아.’

아직 배울 게 많았다.

신예진은 그걸 깨닫자마자, 고개를 들어 박유진을 바라봤다.

시야에서 계속 사라지던 그는 어느새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단검을 들어 올리면서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봐 온 암살자들 중에 제일 강해. 할아버지보다도 훨씬… 만약 박유진에게 배울 수 있다면…….’

신예진은 박유진이 쓰고 있는 가면을 바라봤다.

그 가면은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

박유진은 자신의 것을 훔친 도둑이었다.

어떻게 보면 도둑에게 한 수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지만…….

‘뭐 어때. 어차피 내게는 자존심도 없는데.’

자존심이 먹여 살려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신예진은 진작에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박유진에게 부탁을…….

“…어어?”

신예진은 순간적으로 살기를 느꼈다.

이에 고개를 다시 들어 박유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유진은 단검을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한 눈빛으로 말이다.

‘…X발.’

신예진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저, 저를 제자로 받아 주세요!”

새로운 스승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 * *

‘…뭐지?’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일단 눈앞의 상황부터 정리했다.

“박유진 님, 저는 박유진 님에게 암살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저를 제자로 받아 줄 수 없을까요?”

“…으음?”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이 여자를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 여자는 대뜸 내게 무릎을 꿇었다.

자기를 제자로 받아 달라면서 말이다.

‘나를 꾀어내는 건가?’

내게 속임수를 쓰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전투에서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해 이런 수법은 자주 쓰였다.

그래서 나는 방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자로 받아 달라고요?”

“예,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왜요?”

나는 신예진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어느새 내게 존댓말로 깍듯하게 말하고 있었다.

“저는 최고의 암살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유진 님의 가르침이 필요해요!”

“…그냥 살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거 아니고요?”

“무, 물론 죽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하지만 방금 한 말도 절대 거짓이 아니에요.”

신예진은 나를 올려다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최고의 암살자가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보다 강한 박유진 님의 가르침이 필요해요.”

“최고의 암살자라…….”

나는 신예진을 바라봤다.

일단 겉으로만 봤을 때, 그녀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저 정도로 간절한 표정을 짓기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신예진… 재능만 봤을 때 최고의 암살자가 될 가능성은 있어.’

아까 싸우면서 확실히 느꼈다.

같은 암살자로서, 그녀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눈에 보였다.

물론 아직 미숙한 면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잠재력이 나올 터였다.

‘순수한 무력으로 나를 뛰어넘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암살자로서는 나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네.’

같은 암살자로서, 개인적으로 보고 싶기는 했다.

그림자를 사용하는 최고의 암살자를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유를 말해 봐요.”

“…이유요?”

“제가 그쪽을 가르쳐야 할 이유. 있나요?”

“가르쳐야 할 이유…….”

내 질문에 신예진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 이유를 아는 것이 꽤 중요했다.

그도 그럴 게, 신예진을 가르쳐 봤자 내가 얻는 이득이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신예진이 언제 내게 칼을 들이댈지 모르지.’

신예진은 방금까지 나를 공격한 여자였다.

그녀를 섣불리 믿을 수 없었다.

등을 보였다가, 그녀가 언제 내 등에 칼을 꽂아 넣을지 몰랐으니 말이다.

“박유진 님이 자기 손으로 최고의 암살자를 키울 기회가…….”

“딱히 안 끌리네요. 게다가 그쪽이 최고의 암살자가 될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 그럼… 수, 수업료? 돈이 필요하시면…….”

“돈이라. 끌리기는 한다만, 확실한 이유가 되지는 않네요.”

나는 신예진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간절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걸 뭐든지 할게요.”

“뭐든지요?”

“…네. 뭐든지.”

나는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다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하나만 묻죠. 대체 왜 그렇게까지 제게 배우려고 하시는 거죠? 뭐든지 한다는 조건까지 걸면서요.”

“그건…….”

신예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제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암살자로서의 재능이요.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제 스승님과 약속했어요. 이 재능을 반드시 피워 내기로. 그래서…….”

“그 스승. 몇 년 전에 죽었죠?”

“5년쯤 됐죠?”

“가르친 건 암살의 기술들이고요?”

“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고요?”

“그렇죠? 그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찍어 본 거죠.”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죽은 노인.

암살의 기술을 가르칠 법한 노인은… 내가 알기로 몇 없었다.

뭐,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스승의 유언을 따라 최고의 암살자가 되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내 도움이 필요하다. 이거죠?”

“네, 맞아요. 그러니 제발 저에게 가르침을…….”

“뭐든지 한다고 했죠? 뭐든지?”

“…네. 최고가 되고 싶어요. 저의 재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서, 저를 키워 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라도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흐음…….”

신예진.

만약 진짜 내 편이 된다면, 여러모로 유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그녀를 상대로 방심할 수 없었다.

즉,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좋은 안전장치가 하나 있었다.

“…가르쳐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시키는 일들을 여러 번 할 텐데, 그중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들도 있을 거예요.”

“괜찮아요. 저도 최고의 자리를 쉽게 먹을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요.”

“마음가짐이 확실하시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민아에게 문자를 보내 조금 늦게 들어갈 예정이니, 유나를 잘 봐 달라고 했다.

그런 후, 다시금 신예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따라오세요. 저쪽 건물의 옥상 보이죠?”

나는 와이어를 꺼내 들며 말했다.

“저쪽으로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해 보죠.”

이 말과 함께 나는 와이어를 던져, 옆 건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리고 나를 잘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 확인했는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스승님?”

신예진은 근처의 그림자에서 몸을 드러냈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매우 조용히 말이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은 확실하네요. 그리고 저를 스승이라고 부르지 마요. 아직 정해진 건 없으니까.”

* * *

“야, 하윤경. 나 왔다.”

“뭐야? 생각보다 일찍 왔네?”

“원래는 내일이나 모래에 올 생각이었는데, 일이 있었거든. 자. 들어오시죠.”

내 뒤로 신예진이 따라 들어왔다.

“북한산에 이런 곳이… 이곳이 스승님의 비밀 아지트 같은 건가요?”

“비밀 아지트는 맞죠. 그리고 아직 저 그쪽 스승님 아니라니까요.”

나는 대충 대꾸한 뒤, 다시금 하윤경을 바라봤다.

하윤경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박유진. 저 여자는 또 누구냐?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이, 어째 네 주변에는 하나 같이 여자들밖에… 에엑?!”

“시끄러워, 꼬맹아.”

“너, 너… 내 머리를 치는…….”

“됐고. 네가 차고 있는 그 발찌와 나의 이 반지 말이야. 여기에 남은 거 몇 개 더 있지?”

“더 있기는 하다만……. 왜? 너 혹시 저 여자까지 노예로 부리려고…….”

“그거 한 세트로 가져오기나 해. 게다가 노예 한 명 부리는 게, 너처럼 수천 명을 실험한 것보다는 나아.”

내 명령에 하윤경은 지하로 내려가 반지와 발찌 하나씩을 들고 왔다.

물론 매우 싫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뭐, 내게는 딱히 상관없었지만.

“스승님, 그건 뭔…….”

“잘 들으세요. 이 반지와 발찌는…….”

나는 신예진에게 이 반지와 발찌에 대해 설명했다.

이 반지를 착용하면 내게 절대복종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말이다.

“그러니까 이걸 착용하면… 저는 무조건 스승님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건가요?”

“스승이라고 부르지 말라……. 아니다. 아무튼, 네. 무조건 제 말을 따라야 하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이상한 짓은 안 시킬 거니까.”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아직 신예진 씨를 완전히 믿지 못해서요. 혹시라도 신예진 씨가 제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못 건드리게 하기 위한 보험이죠.”

“그렇…군요.”

“네. 어쨌든 이것을 착용하면 제자로 받아 줄게요.”

“…그냥 스승님의 가족을 건들지 마라, 이 명령만 내리는 거죠? 이상한 명령을 안 내리고?”

“이런 것 갖고는 거짓말 안 해요.”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까지 감수해야 하는 건가…….”

신예진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자바니아를 슬쩍 바라봤다.

‘만약 거절하면 여기서 바로 죽인다.’

신예진은 원래라면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내 노예, 아니.

내 진짜 제자가 된다면 경우가 달라질 것이었다.

근데 표정을 보니 거절할 것 같은…….

“네, 좋아요.”

“음?”

“그 조건 받아들일게요.”

신에진은 이 말과 함께 내 손에서 발찌를 가져가 발목에 착용했다.

솔직히 스스로의 의지로 착용할 줄 몰랐기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신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만약 제가 이 조건을 거절했으면, 저 죽일 거였죠?”

“…눈치는 좋네요.”

“그리고 사실 아까… 옥상에서 저는 죽었어야 할 목숨이죠. 박유진 님의 변덕 때문에 안 죽은 거지만.”

신예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죽는 것보다 노예일지라도 사는 편이 더 낫겠죠. 그러는 편이… 저를 키우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요.”

“생각보다 제대로 된 인간이었네요. 암살자치고는.”

나는 피식 웃으며 반지를 손가락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내 반지와 신예진의 발찌에서 잠시 옅게 빛이 났다.

이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뭐, 이렇게 된 이상, 잘 부탁드립니……. 아니. 잘 부탁할게, 제자야.”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신예진은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에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특이한 사람이네.’

뭐, 그 특이함 덕분에 훌륭한 노예, 아니.

노예가 아니라, 훌륭한 제자를 손에 넣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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