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 *
이민아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여자를 바라봤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을 가진 여자였다.
그리고 머리색과 똑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항상 검은 코트를 입고 다니는 박유진처럼 말이다.
‘둘이… 뭔가 잘 어울리네.’
둘 다 암살자 같은 분위기라, 무언가 잘 어울리는…….
‘아니, 암살자 같은 게 아니라… 박유진은 암살 계열 맞고… 저 여자도 그쪽 계열이겠지?’
박유진은 저 여자를 자신의 새 제자라고 불렀다.
새 제자, 즉…….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것 보니까 전기 쓰는 건 아닌 것 같고……. 박유진에게 암살 기술들을 배우려는 거 맞는 거 같은데…….’
이민아는 신예진을 다시금 바라봤다.
누군가가 박유진에게 배우려는 것 자체는 별문제 없었다.
박유진은 능력이 뛰어났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이민아는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왜 하필 또 여자냐고? 박유진, 얘는 맨날 여자와 엮이네.’
박유진이 다른 여자와 어울릴 때마다, 이민아는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했다.
정확히는 시기와 질투였다.
이민아는 오로지 자신만 박유진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까지는 그 마음을 어떻게든 잘 넘겨 왔지만…….
‘…X나 예쁘네.’
이민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신예진의 외모.
그녀의 눈에 비친 신예진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X발, 뭐 이리 예쁜 건데?’
박유진이 자주 어울리는 여자들이 하나 같이 예쁘다는 걸, 이민아 또한 잘 알았다.
하세리 같은 경우에는 여유롭고 어른스러운 매력이, 주하나 같은 경우에는 모든 걸 포용하는 성녀와도 같은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신예진은 그거와는 달랐다.
그도 그럴 게 신예진은… 그냥 예뻤다.
‘이렇게 예쁘면 그냥 연예인이나 하지, 왜 헌터 일이나 하려는 거야?’
이민아는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예진을 보니 그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박유진… 얘 눈이 꽤 높네.’
긴 흑발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깨끗한 피부.
이민아는 처음으로 외모에서 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 이민아. 표정 또 왜 그래? 뭔 일 있냐?”
“…아무것도 아니야.”
이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새침하게 대꾸했다.
이에 박유진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이따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
“알겠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신예진, 쟤 조금만 가르쳐 주고 나올 테니까.”
박유진은 그렇게 말한 후, 신예진과 함께 훈련장 중앙으로 갔다.
이민아는 그 둘을 지켜보며, 근처 벤치에 앉았다.
신예진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이다.
* * *
‘저 녀석은 또 왜 삐졌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 신예진을 보더니 저 모양이었다.
뭔가 잘못한 건 없는 듯했는데, 왜 저러는지 감이 안 잡혔다.
‘이따 따로 물어보든가 해야지.’
아마 이따 맛있는 것 좀 먹이고, 같이 놀아 주면 평소처럼 금방 기분이 풀릴 터였다.
그때 물어보면 아마 대답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뭐, 이민아는 그렇다 치고.
“신예진, 그동안 잘 지냈냐?”
“네, 스승님! 윤경이와 잘 지냈어요.”
“하, 그 아줌마와 벌써 말 놓은 거냐?”
뭐, 보나 마나 신예진이 일방적으로 하윤경에게 말을 놓았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신예진은 내게는 사근사근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마 이건 연기.
전투에서 보여 줬던 모습이 진짜 성격일 터였다.
‘착하고 얌전한 성격은 아닐 것 같네.’
욕도 이민아만큼 하고, 성격도 꽤 사나웠던 듯했다.
뭐, 그래도 그 발찌를 차게 했으니, 내게 오는 피해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스승님. 이 훈련장 저도 써도 되는 거예요? 보니까 고연대 학생들만 쓸 수 있던 거 같은데.”
“원칙상 안 되는 거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없어.”
“으음, 암살과 똑같군요.”
“그치. 암살도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됐고. 그래서, 너는 내게서 뭘 배우고 싶은 거냐?”
“전부요.”
“전부?”
“네. 저는 스승님의 암살 기술들을 전부 배우고 싶어요.”
“…전부라.”
나는 잠시 속으로 생각했다.
신예진에게 저 발찌를 채웠으니, 그녀는 아마 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신예진의 능력은 잠입에 특화되었으니, 잘만 키우면 쓸 곳이 많을 거야.’
게다가 신예진은 암살자로서 재능이 있었다.
이 재능을 내가 어떻게든 이끌어 내면, 분명 내게 언젠가 도움이 될 듯했다.
‘그래. 저 발찌를 계속 차고, 이 녀석이 나를 죽일 마음만 없다면……. 내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물론 다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신예진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몰랐다.
그런 만큼, 나는 그녀를 신중히 가르쳐야 했다.
“알겠다. 그럼 우선… 아, 그 전에. 너 혹시 몇 살이냐?”
“저요? 저… 아마 19살일 거예요.”
“아마?”
“네, 제가 그… 너무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어서… 저도 제 나이가 정확히 뭔지…….”
“미안. 괜한 걸 물어봤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신예진은 진짜 별문제 없다는 듯이, 이런 것에 익숙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나저나 19살이면, 지금의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안 나는 것이었다.
“근데 나이는 갑자기 왜요?”
“그냥 궁금했거든. 아무튼, 시작하자. 우선 기본적인 것들부터 확인할게.”
“기본적인 것들이요?”
“여기서부터 저기 훈련장 끝까지 뛰어갔다 와 봐.”
“저기를 찍고 오라는 거죠?”
“응. 하지만 최대한 ‘조용히’ 뛰고 와 봐. 알겠지?”
“아아, 그런 거군요.”
신예진은 내 의도를 알아차린 듯했다.
“할아버지도 전에 이런 거 많이 시켰거든요.”
“조용히 움직이는 게 암살자의 기본 소양이니까. 됐고, 뛰어갔다 와.”
“넵!”
신예진은 대답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봤다.
‘조용하기는 하네. 발소리도 안 나고. 움직임 자체가 매우 가벼워.’
방금 말했듯, 조용히 움직이는 게 암살자의 기본이었다.
그러니 신예진은 기본 소양은 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점이 보였다.
“스승님. 어땠어요?”
“나쁘지 않아. 조용했고 빨랐어.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
“네?”
“숨소리. 암살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해. 숨이 차도, 그 숨소리를 최대한 죽여야지.”
“아…….”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신예진.”
“네, 스승님.”
“지금부터 움직이지 마.”
내 명령에 신예진은 잠시 이해 못 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내 의도를 눈치채고는 가만히 서 있기 시작했다.
“좋아, 잘하고 있어.”
나는 신예진 주위를 돌며 그녀를 바라봤다.
신예진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가만히 있었다.
내가 그녀 주위를 돌아다니며 시선을 끌어도, 신예진은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기본기는 확실하네. 누가 가르쳤는지 몰라도, 너를 아주 잘 가르쳤어.”
“…….”
내 말에 신예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이에 나는 피식 웃었다.
“됐어. 그쯤하고, 이제 움직여도 된다.”
“넵.”
신예진은 대답과 함께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땠나요, 스승님?”
“방금 말한 것처럼 기본기는 확실히 잘 다져져 있어. 물론 아직 몇 가지 더 확인할 게 있는데…….”
이후로 나는 신예진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더 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기초적인 것들은 가르칠 필요가 없겠어.’
암살자로서의 기본적인 것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아니, 방금 신예진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이미 암살 의뢰를 몇 차례 성공했었다고 했다.
즉, 초보 암살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잘하는 건 또 아니야.’
아직 가르칠 수 있는 건 많아 보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신예진이 보이는 저 재능들.
같은 암살자로서, 저 재능들을 한 번 제대로 키워 보고 싶었다.
“좋았어. 너의 수준은 대충 알겠다.”
“그럼 저를 바로 가르쳐 주는 건가요?”
“그래야지. 우선 너를 조금 더 민첩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도 느린 건 아니야. 하지만 특정 수준 이상의 적들은…….”
“그, 스승님?”
“음? 왜?”
“저 스승님에게 배우고 싶은 것들… 혹시 미리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신예진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이에 나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말해 봐. 내게서 뭐 배우고 싶은데?”
“와이어 쓰는 거요! 스승님 헌터 대전에서 싸우는 영상 봤는데, 엄청 유용해 보였어요!”
“와이어? 가르쳐 줄 수야 있는데, 굳이? 너는 그림자 이동, 그것만 있어도 기동성은 충분하잖아.”
“이게 생각보다 제약이 많거든요. 적들이 가끔 그림자를 아예 없애 버리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하기야… 알겠다. 나중에 와이어 구하면 가르쳐 줄게.”
“감사합니다!”
신예진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을 보니, 나를 속이려는 듯한 건 아닌 듯했다.
신예진은 진심으로 내게서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최고의 암살자가 되겠다는 그녀의 목표가, 결코 가벼운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를 배신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방심은 하지 말자.’
신예진은 암살자로서 재능이 뛰어났다.
그 재능의 칼날이 언제 내게 향할지 모르니, 신예진을 다루는데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아, 스승님. 그리고 저 단검 쓰는 법도 배울 수 있을까요?”
“단검술은 굳이 배울 필요가 있나? 너 너클로 싸우는 거 아니었어?”
“네. 할아버지가 너클을 써서, 저도 주먹 쓰는 법을 배운 것이거든요. 근데… 암살에 있어 너클보다는 단검이 더 좋은 거 같아서요. 단검이 뭐랄까… 즉사시키기 조금 더 좋아 보이거든요.”
“뭐, 못 가르칠 것도 없지.”
그나저나 단검술이라.
단검은 매번 쓰다 보니 실력이 는 거라, 이걸 잘 가르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그리고 스승님. 혹시… 스승님이 제 시야에서 벗어나던 기술 있잖아요.”
“…그것도 가르쳐 달라고?”
“안 될까요?”
“그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시야 벗어나기.
1대1 상황에서 내가 가장 애용하는 기술.
하지만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 기술은 적의 시야를 완벽히 파악해야 하거든. 나야 인간의 시야 범위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지만…….”
“적의 시야만 파악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 그건 기본이고, 기척을 완전히 지우고 움직여야지. 실력 좋은 인간들은 네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소리만으로 네 위치를 파악할 테니까.”
“으음…….”
신예진은 긴가민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는 갑자기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주먹을 피했지만.
“음?”
신예진은 내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서 소리가 들려와, 나는 재빨리 손을 옆으로 뻗었다.
“끄악! 아야야. 이게 잡히네요.”
“…소리를 완벽히 지우지 못했으니까.”
나는 신예진을 놓아주며 말했다.
“근데 너 방금, 그걸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스승님의 말씀대로… 스승님의 시야를 파악하고…….”
“내 시야는 어떻게 파악한 건데?”
“그건… 사람들 상대하다 보니까 감이 대충 잡혔거든요.”
“…그 감으로 이걸 한 번에 해냈다고?”
나는 신예진을 바라봤다.
어쩌면 나보다 어린 이 여자.
생각 이상의 재능을 가진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 재능을 보다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야, 이민아.”
“…응?”
훈련장 구석에서 우리를 멍하니 구경하던 이민아.
내 부름에 이민아는 흠칫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에, 왜?”
“너 여기 와서… 신예진과 한번 붙어 봐라.”
“…뭐?”
이민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의문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