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 * *
“…으음? 이 남자는 대체…….”
부산에 위치한 거대한 길드.
그 길드 건물 내의 휴게실에서 최서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냅다 전화를 끊어 버리는 건 뭔…….”
“왜 그래, 언니? 차인 거야?”
“아, 안 차였어! 그냥 박유진, 이 남자가 바쁘다고 제멋대로 전화를…….”
“그게 차인 거라고 하는 거야, 언니.”
“서, 서현아…….”
최서희는 자신의 여동생, 최서현에게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최서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보다 언니. 박유진이 그냥 제멋대로 끊었다고?”
“그랬다니까. 네가 말한 대로 자신감 있게 말했고, 한 번 사람들 앞에서 누가 더 우위인지 대결을 해 보자고 말을…….”
“뭐, 진짜 바빴나 보네.”
최서현은 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최서희는 무언가 불만인 듯,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사람 하는 말은 끝까지 들어 주지…….”
“이런 걸로 삐지지 마, 언니. 그 나이에 이런 걸로 삐져서 되겠어?”
“아, 안 삐졌어…….”
“그래, 언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최서현은 최서희의 이러한 반응이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최서희는 여동생의 이러한 반응에 조금 시무룩한 반응을 보였다.
“떨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면 될 거라면서…….”
“당당하게 말하면 보통은 다 들어 주니까.”
“으으. 나 최근에 A급에 들어서서 나름 유명해진 헌터라며. 그럼 보통은 다들 나를 만나러 온다고 네가 말을…….”
“언니는 부산에서만 좀 알아 주는 편이지, 전국적인 인지도는 아직 낮아. 그리고 박유진은 그, 누구였냐…….”
최서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 하세리. 헌터 협회의 총괄 부서장이잖아. 박유진은 그런 사람과 어울려 다니는데, 언니 따위가 신경 쓰이겠어?”
“…하아.”
최서희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동생에게 아무 말도 못 한 채, 긴 금발 머리카락만을 매만졌다.
이에 최서현은 자신의 언니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언니는 대체 왜 박유진을 갑자기 만나고 싶어 하는 건데? 방구석 히키코모리 주제에.”
“나, 나 히키코모리는 아니야.”
“하긴, 대인기피증에 가깝지.”
최서현은 최서희와 똑같은 금발을 목 뒤로 넘기며 말했다.
“아무튼, 박유진은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만나고 싶은 거야?”
“그, 그냥… 그게…….”
최서희는 잠시 망설였으나, 그녀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머, 멋있어서…….”
“…그러니까 박유진이 잘생겨서 만나 보고 싶다고? 에라이, 언니. 겨우 그딴 이유로 내게 찾아와서 박유진 번호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그런 쪽으로 멋있다는 게 아니라! 그, 그러니까 박유진이 전기로 자기장 일으켜서 막 철들을 조정했잖아?”
“그치. 그것 때문에 지난주에 난리였잖아. 일렉트로 마스터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느니…….”
“멋있잖아! 낭만 있고! 전기로 철을 조종! 같은 일렉트로 마스터로서 이건 직접 보고 싶다고!”
최서희는 눈을 빛내며 최서현에게 말했다.
처음 보는 언니의 모습에 최서현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어어어, 그, 그렇구나. 근데 아까 언니가 박유진과 한 번 붙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응, 맞아.”
“박유진과 싸워 보고 싶은 이유라도 있는 거야?”
“그, 그게…….”
최서희는 다시금 뜸을 들였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 내가 요즘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라고… 다,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
“맞잖아? 지금 한국에 A급 일렉트로 마스터는 언니가 유일하니까.”
“근데 박유진을 보니까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 박유진이 보인 능력이라면, 어쩌면 나보다…….”
“에이. 언니, 박유진은 D급 헌터야. 언니는 A급이고. 아무리 박유진이 보인 게 대단하더라도, 그 격차는 무시 못 해.”
“자기장으로 철근 뜯어내는 게 D급 헌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도 아무리 봐도 언니가 더 강한 것 같은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최서현은 진심으로 의문을 표했다.
최서희는 그녀에게 있어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언니였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최서희의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최서현은 진지하게, 최서희가 세계 최강의 일렉트로 마스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게…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박유진이 나를 이길 것 같다는 말들이 많았거든.”
“언니. 또 이상한 커뮤 보던 거…….”
“마, 많이 본 건 아니야! 진짜로!”
“하아아, 그래. 일단 그렇다 치자. 아무튼, 사람들이 박유진이 언니보다 셀 거 같다고 했어?”
“응,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직 내가 아직 한국에서 전기로는 최강이다. 이걸 보이고 싶거든.”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되네.”
최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언니가 인정받으면, 자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박유진 이기고, 박유진과 따로 이야기 나누고도 싶거든. 어떻게 자기장을 일으키고, 어떻게 전기로…….”
“이야기는 할 수 있고? 언니는 낯선 사람과 말 잘 못 하잖아.”
“그, 그건…….”
“그리고 일단 박유진과 만나야지. 방금 차이고 온 참이지 않았어?”
“으으…….”
할 말이 없었는지 최서희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이에 최서현은 피식 웃으며 근처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걱정 마. 박유진을 어떻게든 이곳으로 오게끔 만들 테니까.”
“진짜?”
“응, 그러니까 언니는 그냥 능력 기르는 것에나 집중하고 있어.”
최서현은 근처에 있던 자신의 노트북을 켜며 말했다.
“우리 길드 인스타에 박유진 언급하고, 거기다 소문에 의하면 박유진이 지금 협회 쪽 사람이 됐잖아? 그거까지 언급하면 아마 분명 반응이…….”
“잠깐. 서희야? 우리 길드 인스타? 그럼 우리 길드 이름을 쓰는 거지?”
“왜? 언니는 아빠와 엄마가 만든 우리 길드가 부끄러워?”
“너는 안 부끄럽니?”
“…X나 부끄럽지.”
최서현은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엄마와 아빠에게 몇 년째 길드 이름을 바꾸자고 하는 중인데, 끝까지 안 바꾸시더라. 진짜 어떻게 길드 이름이…….”
* * *
“사찰국밥?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응,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아니, 어떻게 길드 이름이 사찰국밥이야?”
이민아는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럴 만했다.
나도 이 길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 길드 만든 사람이 동료들과 매일 국밥을 먹으면서 길드를 만들어 갔대. 길드 창시자는 그때의 그 낭만과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길드 이름을 그렇게 지었고.”
“아니, 무슨 국밥집도 아니고, 어떻게 길드 이름이…….”
“이름은 저래 보여도,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야. 적어도 부산에서만큼은 그 길드를 따라올 길드가 없어.”
사찰국밥.
이름은 진짜 무슨 국밥집 같았지만, 부산에서 꽤 알아주는 길드였다.
게다가 전국적인 단위로 봤을 때도 규모가 결코 작은 길드가 아니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길드면 꽤 유명할 법도 하지만…….
‘그 길드 이름 때문에… 에휴.’
강하고 좋은 길드였지만, 정작 그 길드원들은 그 길드의 이름을 말하고 다니기 꺼려 했다.
쉽게 말해, 길드원들도 부끄러워하는 게 사찰국밥이라는 길드의 이름이었다.
그렇다 보니, 길드의 규모에 비해 그 인지도가 꽤 떨어지는 편이었다.
“뭐, 아무튼.”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내 옆의 이민아, 그리고 내 앞의 신예진을 한 번씩 바라봤다.
고연대의 훈련장에서 나온 후, 한숨 돌릴 겸 근처의 카페로 온 참이었다.
그리고 이민아는 아까 내게 전화를 건 여자에 대해 물었고, 그에 대한 답을 하던 중이었다.
“최서희가 그 길드에 속해 있는 여자야.”
“어? 그 사람 일렉트로 마스터 아니에요? 최근에 A급에 올랐다는 사람?”
“그 사람 맞아.”
나는 신예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A급? 최서희가 A급이라고?”
“네, 최근에 뉴스에서 봤어요, 스승님.”
“그래?”
최서희가 이때쯤 A급에 도달했던 듯했다.
그녀는 아마 나보다 두 살인가 세 살 더 많았으니, 아마 지금 23살쯤이었을 터였다.
그녀의 나이에 비해, 상당히 일찍 A급에 오른 것이었다.
‘뭐, S급에 오르게 될 누나인데, 이때 A급이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
그나저나 최서희, 그 누나도 여러모로 특이한 누나였다.
아니, 특이하다기보다는…….
‘종잡을 수가 없었지.’
어떨 때는 냉정하다가, 어떨 때는 큰소리치다가……. 참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도 최서희에 대해 얼핏 듣기는 했어.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가 될 인재, 뭐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던 것 같은데?”
“맞아. 실제로 최서희의 전류는 위력이…….”
“하지만 그것도 옛말 아닌가요, 이민아 씨?”
신예진은 빈 커피잔을 매만지며 말했다.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가 될 사람은 스승님이라고… 그런 여론이 최근 많더라고요.”
“아, 하긴… 박유진의 재능이라면 어쩌면…….”
“재능은 무슨.”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D급이 A급을 어떻게 이기냐.”
“그건 모르는 거지. 너는 E급일 때 나를 이겼잖아. 게다가 너도 머지않아 A급 될 수 있는 거 아니야?”
“뭐, 그렇기는 하지.”
정확히는 A급 이상을 노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근데 박유진. 그 최서희라는 여자가 너를 만나고 싶어 하던 것 같은데, 만나러 갈 거야?”
“딱히 없다. 가까운 곳이라면 모르겠는데, 굳이 부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최서희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내게 이득이 되는 게 있으면 갔겠다만,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내가 굳이 가지 않더라도 최서희 성격상, 아니.
‘최서현 성격상 최서희를 내게 데려오겠지.’
최서현은 까칠했지만, 자기 언니만큼은 확실히 챙기던 여자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가 먼저 최서희를 만나러 갈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 너무 예쁘셔서 그런데 혹시 전화번호를…….”
“죄송해요. 저 남자 만날 생각 없어서요.”
속으로 생각하던 중, 신예진에게 다가온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신예진은 매우 익숙하다는 듯이 그 남자를 돌려보냈다.
“인기 많네?”
“그건 모르겠지만, 이렇게 남자들이 가끔 달라붙더라고요.”
신예진은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제가 그렇게 예쁜 것도 아닌데, 왜 남자들이 저를…….”
“쿨럭?! 무, 뭐?”
커피 마시다가 사레들린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신예진을 바라봤다.
“네가 안 예쁘다고, X발?”
“이, 이민아 씨? 가, 갑자기 왜…….”
“…에이 씨. 됐다. 이래서 예쁜 것들은….”
이민아는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에 나는 피식 웃었다.
‘자기도 꽤 예쁘면서, 신예진을 질투하기는.’
신예진도 지금 보니 상당히 미인이었다.
하지만 이민아 또한, 개인적으로 신예진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좀 사납고, 기가 세 보이기는 했지만, 이민아도 상당한 미인이었으니 말이다.
‘뭐, 됐고. 최서희 관련된 일은 당분간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최서희를 내가 보러 갈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라고 나는 그리 생각했었다.
다음 날, 헌터 협회.
하세리가 나를 불렀기에 그녀를 찾아갔다.
그리고 하세리가 내게 한 말이…….
“박유진 씨. 시간 된다면 부산에 갔다 오실 수 있나요?”
“…부산이요?”
“최서희라는 여자를 한 번 만나고 와 줬으면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