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최서희에게 전화가 온 다음 날.
하세리가 갑자기 오전에 나를 헌터 협회 본사에 불렀다.
뭔 일인가 싶었다.
최근에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여름방학이라 수련과 신예진을 가르치는 것 외에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호출에 바로 본사로 갔다.
그리고 하세리가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은 다름이 아닌…….
“박유진 씨. 혹시 부산에 갔다 오실 수 있을까요?”
“부산이요?”
“네. 부산 가서, 최서희라는 헌터를 만나고 오셨으면 하거든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서희를 이기고 오실 수 있을까요?”
“최서희를 이기고 오라고요? 그 전에 최서희라면…….”
“네, 그 최서희 맞아요.”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내게 건넸다.
그 서류에 금발의 여성의 사진이 있었고, 그녀에 대한 인적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 최근 A급에 오른 사찰국밥이라는 길드의 간판 헌터죠.”
“네, 사찰국밥의… 크큭.”
나는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게, 사찰국밥.
그 길드의 이름은 암만 들어도 적응이 안 됐다.
대체 어떻게 길드 이름이 사찰국밥인지, 매번 의문이었다.
“네, 길드 이름치고는 많이 특이하죠.”
하세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하세리도 짧은 순간 동안 웃은 것을 말이다.
그래, 솔직히 이런 길드 이름을 듣고 아무 반응 안 하는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이름은 이래도, 이 길드는 꽤 규모가 큰 편이에요.”
“예, 알고 있어요. 저도 들은 적 있거든요. 부산에서 가장 세력이 큰 길드라면서요.”
“맞아요. 게다가 부산에서 뿐만이 아니에요. 규모만 따지면 이진성 씨의 길드, 그러니까 ‘용혈’ 바로 아래 단계일 거예요.”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그리고 사찰국밥 길드장의 딸이 최서희죠.”
“네, 그것도 알고 있어요. 그나저나 하세리 헌터님. 아까 저보고 부산에 가서 최서희와 싸우고 오라고…….”
“제가 도발을 당했거든요.”
“네?”
“이거 보시죠.”
하세리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태블릿을 내게 건넸다.
확인하니 무슨 SNS의 게시글이었다.
보니까 사찰국밥, 그 길드의 공식적인 SNS인가 뭔가 하는 모양이었는데…….
“…음?”
게시글의 내용은 대충…….
어제 최서희가 ‘헌터 협회’의 박유진에게 대결을 신청했으나, 박유진은 도망치듯이 거절했다.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를 가릴 대결에서 도망친 박유진, 사실상 판정패다.
그러니 헌터 협회의 하세리는 박유진이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라고 말하고 다니는 걸 그만해라.
뭐, 내용은 더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하세리 헌터님?”
게시글을 다 읽은 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하세리를 바라봤다.
“제가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라고 말씀하시고 다니셨나요?”
“맞잖아요. 박유진 씨만큼 전기를 잘 다루는 사람은 한국에, 아니, 전 세계에도 없죠.”
“전류를 잘 다루는 거와 강한 거는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보다 박유진 씨. 어제 진짜 최서희가 박유진 씨에게 따로 연락을 했나요?”
“하기는 했죠. 하지만 그때 제가 바빠서 연락을 거의 바로 끊었어요.”
“흐음, 그랬군요. 그나저나 사찰국밥, 저번에도 저를 막 도발하더니 이번에도…….”
하세리는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하세리는 지금 상당히 하찮은 일에 진지함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세리 헌터님. 저를 부산에 보내는 게…….”
“박유진 씨, 이건 협회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예요. 박유진 씨는 이제 공식적으로 협회의 소속. 근데 현재 가장 유명한 협회원인 박유진 씨가 이런 식으로 저격을 당한 거예요.”
“그건 저는 딱히 상관이 없는…….”
“제가 상관있죠.”
하세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하세리는 여러모로 이상한 곳에서 자존심을 부리는 듯했다.
“제가 욕을 듣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저의 사람이 욕먹는 건 매우 신경 쓰이죠.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박유진 씨를 깎아내렸죠.”
“그게 왜요?”
“박유진 씨는… 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에요.”
하세리는 그 말을 하며 내 눈을 피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는 하세리는 남의 눈을 피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의문을 표하려고 했지만, 하세리는 빠르게 말을 계속했다.
“박유진 씨가 평가 절하당하는 걸 못 참거든요. 그래서 최서희를 이기고, 이번 기회에 사람들에게 보여 주세요.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가 박유진 씨라는 것을요.”
“저를 생각해 주신 건 고맙네요. 근데 말이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최서희를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네요.”
“왜 안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최서희는 최근에 A급에 오른 헌터고, 저는 아직 D급이잖아요.”
“박유진 씨는 말만 D급이지, 사실상 그 이상이잖아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등급 검사받으시면 당연히 C급 이상으로 나오지 않을까요?”
“잘해 봤자 C급이죠. 하지만 C급으로 올라도 최서희 상대할 때 큰 차이는 없을 거예요. D급이든, C급이든, A급 헌터를 못 이기는 건 똑같을 테니까요.”
“근데 박유진 씨는 E급일 때 이민아 양을 가볍게 이기지 않았나요?”
“이민아와 최서희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헌터예요. 게다가 B급과 A급의 격차가 상당하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저도 A급이라 그 사실을 잘 알아요.”
하지만, 이라고 말하며 하세리는 나를 바라봤다.
무언가 확신에 찬 듯한 눈빛이었다.
“박유진 씨라면 A급 헌터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가요?”
“D급이나 C급이 A급을 못 이기는 게 상식이죠. 하지만 박유진 씨는 상식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꼭 그렇지만은 않죠.”
“후훗.”
하세리는 작게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묘하게 진지했다.
“박유진 씨. 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박유진 씨라는 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저 최근 들어 박유진 씨를 저의 가장 소중한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아, 뭐, 그건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더더욱 알아줬으면 해요. 그러니까 박유진 씨가 얼마나 대단한 헌터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면 좋겠다는 거죠.”
“…그렇군요.”
이 누나의 이런 면은 지금이나 회귀 전이나 한결같았다.
근데 그건 그렇고…….
‘최서희를 만나러 부산까지 간다…….’
사실 최서희와 한 판 붙는 거야 큰 상관 없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부산까지 내려가는 게 귀찮지.’
진짜 말 그대로 귀찮은 게 이유였다.
최근 헌터 대전을 치르고, 하윤경까지 잡았다.
그렇다 보니 숨 좀 돌리고, 현재 상황을 이번 방학 동안 정리하고 싶었다.
근데 또 부산에 내려가는 건 너무나도 귀찮은…….
“귀찮다는 표정이시네요. 최근 들어 너무 피곤하니 좀 쉬고 싶다는 눈빛이고.”
“…티 많이 났나요?”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런 쪽으로 눈썰미가 좋아졌거든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후, 그녀는 이내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박유진 씨가 최근에 고생하신 거 잘 알아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박유진 씨가 일주일 정도 푹 쉬었으면 했어요.”
“그런 마음을 가져 주셔서 고맙네요.”
“후훗. 저는 박유진 씨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죠. 최서희를 이기고, 이번 기회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으셨으면 해요.”
“근데 아무리…….”
“부탁할게요. 박유진 씨의 예비 상사로서, 그리고…….”
하세리는 말끝을 흐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듯했다.
하세리답지 않은 반응이라 뭔가 싶었는데…….
“누나로서 부탁하는 건데, 안 될까?”
“…네?”
“치, 친한 누나로서 부탁하는 건데, 안 되겠냐고?”
하세리는 다시금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번에 누나와 같이 데이트해 주기로 한 거 기억하지?”
“네, 기억하죠. 헌터 대전 때 그러기로 약속했었잖아요.”
“그 약속, 이번에 지키는 셈 치고 부산에 가자. 내가 식비와 숙소비는 다 내 줄 테니까, 너는 가서 최서희를…….”
“알겠어요, 하세리 헌터님.”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거면 들어줘야죠. 저도 하세리 헌터님께 그동안 신세 진 게 많으니까요.”
“고마워, 유진아. 그리고… 어어…….”
“네?”
“누나라 불러. 그리고 말 편하게 하고. 부담스러우면… 단둘이 있을 때만이라도 그렇게 해.”
하세리는 다시금 내 눈을 피하며, 붉은색 머리카락을 꼼지락거렸다.
좀처럼 보기 힘든, 하세리의 소심한 모습이었다.
“물론 싫다면… 그냥 계속 존대해도 괜찮아요. 괜히 박유진 씨께 강요하거나 그러고 싶지는…….”
“알겠어, 세리 누나.”
“…예?”
“알겠다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존댓말 쓰겠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편하게 말할게.”
“으, 응. 그래. 그러자.”
“크큭. 그건 그렇고, 누나라 불리고 싶었나 봐?”
“부정하지는 않을게.”
하세리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다시 지으며 말했다.
“누나라 불리니까 뭔가 몇 년 어려진 것 같고… 나 전부터 동생 한 명 갖고 싶기도 했거든.”
“나 같은 동생은 여러 가지로 귀찮을 텐데.”
“뭔 소리니? 멋지기만 한데.”
“말이라도 고맙다. 뭐, 아무튼. 부산에 가자고?”
“내일이나 모레에 가자. 말한 것처럼 너는 그냥 몸만 오도록 해. 숙소나 이동 수단은 이 누나가 전부 좋은 걸로 마련해 줄 테니까.”
“든든하네.”
이민아도 그렇지만, 하세리도 만만찮은 갑부였다.
돈 많은 여자들과 자주 어울리고 다니다 보니, 가끔 기둥서방?
그런 존재가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 맞다. 유진, 네 여동생 말이야. 혹시 부산 가는 데 데려올 거니?”
“아니. 걔는 이제 개학해서 학교 가야 되거든. 아마 못 올 거야.”
마음 같아서는 유나도 여행에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유나는 이미 중학생이라, 대학생인 나보다 방학이 훨씬 일찍 끝났다.
아마 지금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듯했다.
“으으음. 그렇다면… 우리 둘이서, 단둘이 부산에 가는 건가?”
“그렇겠지? 우리가 부산 가는 데 따라올 사람은 더 없을 거 아니야.”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따라올 사람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
“야, 나도 갈래! 나도 부산 같이 가자고!”
“아니, 너는 갑자기 왜 따라오려고 하는 건데?”
몇 시간 뒤.
나는 이민아를 난처하게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