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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50화 (150/240)

150화

【 부산 여행 】

“으음, 좀 일찍 왔나.”

다음 날 아침 9시.

나는 하세리와 만나기로 한 서울역, 그것도 서울역의 열차 승강장에 와 있었다.

“열차는 9시 5분에 온다고 했으니까, 하세리 헌터님도 곧 와야 할 텐데.”

“곧 오겠지. 그 사람은 시간 약속 하나는 확실히 지킬 거 같으니까.”

“뭐, 그렇기야 하겠지. 근데 너 말이야.”

“응? 왜?”

“여기는 왜 온 거냐?”

나는 이민아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이 아침에 이민아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집에서 출발하고 서울역 왔더니, 이민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너 가는 거 보려고 온 거지. 왜? 불만 있냐?”

“불만은 없지. 근데 굳이 나 하나 보러 올 필요가 있나 싶어서.”

“어차피 방학이라 할 것도 딱히 없거든. 하지만 내가 특별히 시간 내서 너를 보러 온 거니까, 고마운 줄 알도록…….”

“그래, 참 고맙다, 인마.”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이에 이민아는 할 말이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으으… 또…….”

“하루 동안 유나나 잘 봐 줘. 너네 부모님께 외박 허락은 받았지?”

“너네 집에서 자고 온다니까 아버지가 바로 허락해 주시더라.”

이민아는 무언가 많은 의미가 담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뭔가 이쯤 되면 그냥 나 보고 너랑 살라는 게 아닌가 싶다.”

“뭐, 너희 아버지라면…….”

딸을 더 강하게 키울 수만 있다면, 이진성은 아마 나와 이민아를 진짜 결혼까지 시킬 위인이었다.

근데 회귀 전에는… 일이 좀 많이 꼬여서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으음, 됐고. 유나 집에 잘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뭔 일 생기면 바로 내게 연락해. 그럼 내가 바로 갈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유나에게 집적대는 놈들은 어지간해서 내 선에서 정리될 테니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전화해라, 알겠지?”

“알겠어, 새끼야. 그래도 유나에게 뭔 일 없게 내가 잘할 테니까, 너는 마음 편하게 부산이나 갔다 와.”

“그래야지. 근데 하세리 헌터님, 슬슬 오셔야 할 텐데. 기차가 이제 곧…….”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9시 3분, 이제 곧 부산행 열차가 올 것이었다.

근데 이 승강장에서 붉은색 머리카락은 안 보이는…….

“나 찾는 중이니, 유진아?”

“음? 아, 오셨군요.”

“뭐야, 안 놀라네.”

“뒤에서 누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거든요.”

나는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의 하세리가 있었다.

평소에는 정장만 입는 모습밖에 못 봤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에 어울리는 사복 차림새였다.

“그건 그렇고, 시간 딱 맞춰 오셨네요. 이제 곧 열차가 들어오니까, 하세리 헌터님과 저는…….”

“유진아, 안 그러기로 했잖아.”

“네?”

“사적인 자리에서는 말 편하게, 그리고 나를 누나라 부르기로 했잖아. 벌써 잊었니?”

하세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말 편하게 하렴.”

“그건… 단둘이 있을 때만 그렇게 하기로…….”

나는 내 옆의 이민아를 슬쩍 바라봤다.

그녀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박유진? 하세리 헌터님과 언제부터 말을…….”

“아, 이민아 양도 있었군요.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어어, 네. 그보다 하세리 헌터님은 왜 박유진과…….”

“유진이와 그사이에 좀 많이 친해졌거든요.”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내 쪽을 슬쩍 바라봤다.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함께… 여전히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치, 유진아?”

“그러니까 단둘이 있을 때 그러기로…….”

“에이, 뭐라는 거니? 네 입으로 ‘사적인 자리’에서 그러기로 했잖아? 그리고 이게 사적인 자리가 아니면 뭘까?”

“그건…….”

뭐, 사실 하세리가 이러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민아는 나와 하세리의 관계를 많이 불편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민아의 눈빛이 여러모로…….

“어, 열차 왔다. 어서 타자, 유진아.”

“네? 잠시만…….”

하세리의 말대로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했다.

나는 이민아에게 인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하세리는 내 손을 붙잡고 나를 열차 안으로 끌고 갔다.

그로 인해 이민아에게 뭐라 말할 틈이 없었다.

“에? 자, 잠깐! 박유진, 너…….”

이민아는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나와 하세리는 같이 열차에 탑승한 후였다.

이민아는 우리를 따라 열차에 올라탈지 말지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사이에 열차 문이 닫혔다.

그렇게 이민아와 제대로 인사를 못 한 채, 열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세리 누나?”

“왜, 유진아?”

“방금 이민아 앞에서 일부러 내게 말을 편하게…….”

“맞아, 일부러 그런 거지.”

하세리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은, 능글스러운 느낌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랑 민아 양의 사이가 항상 좋아 보여서… 뭔가 질투 났거든. 나도 너랑 어울리고 싶은데, 그 자리를 매번 민아 양에게 뺏기는 것 같았단 말이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그러게. 왜 그랬을까? 그리고 나도 왜 질투 났는지 모르겠더라.”

하세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게서 떨어졌다.

그녀의 지금 말들이 진심인지 아니면 장난인지 감이 잘 안 잡혔다.

“빨리 와. 저쪽에 자리 잡아 놨어.”

“응? 아, 그래.”

내 손을 잡고 좌석으로 향하는 하세리.

회귀 전과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이었다.

뭐랄까… 전에 볼 수 없던 활기가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활기가 넘치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그래, 하세리의 이런 모습… 나쁘지 않았다.

* * *

“근데 생각해 보니까 왜 열차를 타고 가는 거야?”

좌석에 자리 잡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나는 문득 의문이 들어 하세리에게 물었다.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굳이…….”

“이 편이 더 낭만 있잖아.”

하세리는 들고 온 간식, 그러니까 사과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 주며 말했다.

“네 말대로 디멘션 도어를 타고 가는 편이 더 빠르기는 해. 하지만 이렇게 바깥 풍경을 보면서 KTX 타고 가는 편이 여행 느낌 나고 좋잖아?”

“여행 느낌이라… 뭐,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네.”

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지금 날씨도 꽤 좋아서, 분위기만 보면 놀러 가는 것이기는 했으나…….

“근데 우리 지금 놀러 가는 게 아니잖아? 부산에서 최서희를…….”

“알아. 나도 잘 알지.”

하세리는 사과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으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단둘이 부산에 가는 거잖아. 게다가 지난번에 말했지만, 이건 약속했던 데이트에 포함되는 거다?”

“뭐, 그런 거라면…….”

“후훗. 아, 그리고 유진아. 내 옷, 어떤 거 같냐?”

“누나 옷?”

“사복 차림은 처음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어때?”

하세리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자기의 옷을 제대로 보라는 듯이 말이다.

“청바지에 반팔 셔츠. 나도 처음 입어 보는 건데, 어떤 거 같아?”

“예쁘네. 애초에 누나는 얼굴 자체가 예뻐서 뭘 입어도 어울릴 거 같은데, 뭐.”

“으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는 하지. 근데 나는 내 옷을 물어본 거야, 유진아.”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내게 더 가까이 붙었다.

“내 옷의 어디가, 어떻게 예쁜지 말해 줘.”

“청바지의 핏이 괜찮은 거 같다, 이렇게?”

“…그런 게 맞기는 한데……. 으으음, 당황을 안 하네.”

하세리는 무언가 실망한 표정으로 내게 멀어졌다.

“네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들이대도 눈 하나 깜박 안 하네.”

“별 상황을 다 겪어 봤는데, 이런 걸로 당황하겠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고, 이에 하세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그리고 유진이, 너 여자에 면역이 있는 거 보니까, 여자 경험이 좀 있나 봐?”

“이건 노코멘트할게.”

“후훗, 부정은 안 하네?”

“알아서 생각해.”

여자 경험… 회귀 전에는 별일들을 다 겪기는 했었다.

덕분에 여자들 몇 명이 내게 달라붙어도, 별 감흥 없이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부산에서의 일정 어떻게 될 예정이야?”

“일단 부산에 도착하면, 바로 사찰국밥의 본사 쪽으로 갈 거야.”

“숙소 들르거나 그런 거 없이 바로?”

“응. 길드장을 포함해, 사찰국밥 측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그 후, 거기서 네 등급 평가를 할 예정이야.”

“내 등급 평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고, 이에 하세리는 바로 설명을 해 줬다.

“어제 사찰국밥 측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너와 최서희 대결이 일종의 이벤트잖아? 그 대결을 하기 전에, 너의 등급을 재측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

“그래?”

“네가 도저히 D급으로 안 보인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많았거든. 그래서 이왕 대결을 할 거면, 등급부터 제대로 다시 검사받고 하자고 하더라.”

“등급 검사라. 상관없기는 한데, 혹시 나 검사받는 현장에 기자들 또 불러모으는 거 아니지?”

“내가 부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알아서 다 모일 거다.”

하세리는 내 입에 간식 하나를 더 넣어 주며 말했다.

“너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매우 핫한 헌터야. 그래서 네가 뭘 하든,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어.”

“유명한 것도 피곤하네.”

“익숙해져. 최서희를 이기면 더 유명해질 테니까.”

“에휴. 그리고 이야기 나온 김에 다시 말하는 거지만, 나 최서희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야. 내가 봤을 때, 네가 이길 거다.”

“근거는?”

“없어. 내 감이야. 하지만 내 감은 꽤 좋은 편이거든.”

“하,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뒤, 이번에는 내가 사과 한 조각을 하세리 입에 넣어 줬다.

“으음?”

“뭐야? 겨우 이런 걸로 당황한 거야?”

“아니… 갑자기 이러면…….”

살짝 붉어진 얼굴의 하세리.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기에, 이번 기회에 잘 구경했다.

“뭐, 됐고. 부산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찰국밥 본사에 간다는 거지?”

“으, 응. 그렇지.”

“…재밌겠네.”

최서희.

그 여자를 다시 이렇게 만나는 건… 여러모로 기대가 되기는 했다.

* * *

11시 조금 넘은 시각.

나와 하세리는 거대한 길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으흠. 여기가 사찰국밥이구나. 생각보다 엄청 크네.”

“누나 여기 처음 오는 거야?”

“직접 오는 건 처음이지. 그동안 부산에 올 일이 없었으니까.”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다란 건물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그 와중에 1층에 국밥집이 또 있네.”

건물의 1층에 위치한, 너무나도 눈에 띄는 국밥집.

그것도 그냥 국밥집이 아니라, 엄청 크고, 엄청나게 좋아 보이는 국밥집이었다.

“국밥에 진심인 걸 보니까, 이름값을 하는 길드네.”

“그치. 그리고 누나. 저 국밥집 꽤 맛있다는데, 이따 한 번 들렀다 갈래?”

“그래?”

“저 국밥집이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 중 하나거든.”

“그럼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가 보자. 근데 너 부산에 와 본 적 있어? 너 뭔가 여기가 익숙한 것 같은데.”

“뭐, 몇 번 와 보기는 했지.”

회귀 전, 나는 최서희와 꽤 자주 만남을 가졌다.

몬스터 퇴치를 위해 같이 모인 적도 많았으나…….

‘나 하나 제대로 이겨 보겠다고 부른 적도 많았지.’

덕분에 최서희를 보러 이 길드에 자주 왔었다.

뭐, 귀찮았지만, 덕을 하나 본 것이 있었다.

‘저 국밥집을 자주 이용할 수 있었지.’

다른 건 몰라도, 저 국밥집의 맛이 일품이기는 했다.

부산에 올 때마다 저기를 들렸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건물에서 몇 명 나오고 있다.”

“으음, 그러네? 어디 보자.”

하세리는 건물 출입구에서 나온 사람들을 살폈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고,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익숙한 얼굴은 다름이 아닌…….

“저 사람이 최서희야, 유진아.”

“응, 알아.”

“소문대로 되게 차가워 보이네.”

하세리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금발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차갑다라…….’

뭐, 확실히 최서희는 겉으로 보면 차가운 여자였다.

그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고, 사람들의 말에도 거의 대꾸를 안 하는… 차가운 분위기의 차가운 여자.

근데 최서희를 자주 만나 본 나는 잘 알았다.

‘저거 긴장하는 거다. 확실하게 긴장하는 거야.’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긴장감으로 표정과 말투가 차가운 것뿐.

이때의 최서희는 차가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나는 매우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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