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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52화 (152/240)

152화

최성구.

이 남자를 자주 만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남자는 내 기억에 확실히 남겨져 있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내게 대련하자고 요청했으니까.’

과장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최성구를 만날 때마다 그와 대련을 했다.

말 그대로 만날 때마다 말이다.

그는 그 정도로 전투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냥 전투 자체를 즐겼던 거지.’

이진성과 닮은 듯 안 닮은 듯했다.

이진성은 전투를 시작하면 이성을 잃지만, 전투 중에는 그 누구보다 크게 웃고 다녔다.

하지만 이진성은 전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전투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던 편이었다.

‘최성구는 오히려 전투를 피하지 않았지.’

그는 전투 중에는 누구보다 이성적이었고, 이진성과는 달리 전투를 좋아했다.

이러한 점 외에도, 두 길드장은 명확한 대비를 이루는 점들이 많았다.

‘리더십이나 지휘력이 거의 없지만, 무력 하나로 길드장이 된 이진성. 무력은 길드장치고 많이 약하지만,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길드장이 된 최성구.’

회귀 전, 몬스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채 날뛰던 시기.

사람들은 당시에 헌터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와 최서희, 누가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인지 비교를 자주 했었고…….

‘누가 최고의 길드장인지에 대한 비교도 많았지.’

그 비교의 대상은 이진성과 최성구였고, 솔직히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두 아저씨는 서로 대비되는 점들이 많았기에, 나 또한 이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하하하! 표정이 좋아 보이네! 마음에 들어! 그럼 점심 같이 먹고, 이따 훈련실에 가서 한번 붙어 보자! 하하하!”

“네? 그, 어어, 자, 잠시만요.”

최성구의 말에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최성구 씨와 그런…….”

“사양 말게! 서로 알아 가는데, 주먹을 치고받는 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최성구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말을 들은 채도 안 했다.

“기대되는구먼! 내 딸에 맞먹는 전기는 어떤 느낌일지 아주 기대가 된다고!”

“그렇게 기대하실 것까지는…….”

“자! 다들 여기 모여서 앉아 봐! 다들 박유진이라는 친구 누군지 알지? 이번에 전기로 막 자기장을 일으켜서…….”

최성구는 지금이나 그때나 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에너지가 너무 넘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남자가 지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호탕한 길드장 주위로 길드원들이 모여들려고 하던 그때.

“최성구 씨. 박유진 씨와 나중에 따로 약속을 잡으시는 건 어떨까요?”

“응? 세리야, 뭐라고?”

“박유진 씨는 아직 식사 중이거든요.”

아까부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하세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박유진 씨를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막 대하지 않았으면 해요.”

“세리야,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네, 알아요. 최성구 씨는 그럴 분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조심은 해 주세요. 박유진 씨가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하세리는 차분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가웠다.

“박유진 씨는 제가 아끼는 소중한 인재거든요. 괜한 일로 다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어, 그래. 알겠다. 네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들어줘야지.”

최성구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에너지는 여전했다.

하지만 하세리 덕인지, 아까 전보다는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유진. 혹시라도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내가 막 몬스터들을 잡고 온 참이라, 아직 아드레날린이 안 가라앉았거든.”

“괜찮아요. 기분 나쁘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허허, 착한 친구구나. 아, 그래도 말이야. 내가 너와 한번 붙어 보고 싶다는 건 진심이었어. 나도 서희처럼 전기를 쓰는데, 그러다 보니 너에게도 흥미가 가더라고.”

최성구는 진심으로 기대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때? 나중에 날 잡고 이 아저씨와 대련 한번 해 볼래?”

“으음, 그건 말이죠…….”

나는 빠르게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회귀 전의 최성구는 A급까지 올라갔었다.

하지만 이때의 최성구는 아마 아직 B급일 것이다.

‘할 만할 것 같은데?’

최성구와 몇 번 싸워 봤기에, 그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지금 당장 대련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게다가 그것 말고도…….

‘최성구와 싸우는 게… 솔직히 재밌기는 해.’

호탕한 성격답게, 최성구의 전투 방식도 매우 간단명료했다.

그래서 나는 그와 싸우는 걸 좋아했다.

나 또한 뇌를 비우고, 본능에 맡긴 채 싸울 수 있었으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아무 생각 없이 싸울 때의 그 특유의 쾌감이 있었다.

그걸 떠올리며, 나는 최성구에게 긍정의 답을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나중에 이야기 나누는 게 어떨까요?”

이번에도 하세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다면 식사를 마친 후에 그 이야기를 마저 하는 건 어떨까요? 박유진 씨도 그편이 편해 보이는데.”

“일리 있는 말이야. 밥 먹을 때만큼은 절대 건드는 게 아니지. 이건 내 실수야.”

최성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 뒤,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밥 맛있게 먹고, 이따 내 길드장실에서 보자. 아, 그리고 여기 국밥 맛있지?”

“네. 제가 먹어 본 국밥 중에 최고네요.”

“하하하하! 맞아! 여기 이모 손맛이 아주 끝내주거든! 내가 괜히 여기서 길드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야!”

크게 웃으며 말한 뒤, 최성구는 식당의 반대쪽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그의 길드원들도 그를 따라가, 그의 주변에 앉았다.

“야, 아무튼! 내가 그때 딱! 나타나서 그 새대가리를 내리찍었잖아! 그치?”

“에이, 길드장님. 그때 제가 길드장님을 업어서…….”

“야, 야, 야! 인마! 그런 건 눈치껏 넘어가 주는 게, 어? 어유, 너! 그러다가 감봉을…….”

최성구는 큰 목소리로 길드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그만 즐거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길드원들 모두 즐거워 보였다.

마치 최성구의 즐거움이 전파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좋은 분이지, 최성구 씨는. 너무 과도하게 에너지가 넘치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훌륭한 사람처럼 보이네.”

나는 피식 웃으며 하세리의 말에 대꾸했다.

“길드원들이 진심으로 따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여.”

“괜히 부산 최대 규모의 길드를 만든 건 아니지. 사람을 이끄는 능력과 재능이 있는 분이야.”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근데 뭐랄까… 사람에게 너무 거리낌이 없어서 조금 피곤한 타입이야. 그래서 방금처럼, 가끔 세게 말을 해 줘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도 회귀 전에 저 아저씨와 몇 번 만나 본 덕에, 하세리의 말뜻을 잘 알았다.

저 아저씨가 폭주할 때, 가끔식 한 번 제지해 줄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뭐, 아무튼. 밥이나 마저 먹자, 누나. 이거 먹고, 카페에서 조금 쉬다가…….”

“길드장실로 가서 차후의 일정을 이야기해야지.”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아마 별것 없을 거야. 너와 최서희의 대결은 내일이라서 오늘은 그냥 등급 검사만 하고 끝날 테니까.”

* * *

“하하하!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따 오후 3시쯤에 우리 길드 앞에 사람들 불러 모으고, 거기서 유진이의 등급 검사를 진행하자.”

식사를 마치고, 길드 내의 카페에서 하세리와 휴식을 취한 뒤.

최서현이 나타나, 우리 두 사람을 길드장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최성구와 최서희, 그리고 몇몇 길드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세리는 최성구와 오늘, 내일의 일정을 바로 조율하기 시작했고…….

“그럼 3시에 박유진 씨의 등급 검사를 진행하고… 아마 높은 확률로 박유진 씨의 등급은 올라갈 것 같아요. 그럼 아마 또 모인 기자들이 박유진 씨에게…….”

“시답잖은 질문들을 하겠지.”

“그렇죠. 하지만 한 시간 안에 전부 해산시킬 생각이에요.”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오늘 부산에서 할 일들이 조금 있거든요.”

“그렇구먼. 그럼… 유진아. 오늘 등급 검사가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 같은데, 이따 한 판 붙어 볼래?”

최성구는 내 쪽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길드 지하에 우리가 스파링할 좋은 훈련장이 있는데, 어때? 이따 저녁 먹기 전에 한 판?”

“시간만 된다면, 저도 개인적으로 한번…….”

아까 말했듯, 최성구와 대련하는 걸 나 또한 즐기는 편이었다.

그래서 한번 해 보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버지.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들에게 막 싸움을 신청하고 그러지 말라고요.”

“응? 야, 서현아. 헌터들끼리 서로 알아 가는데 싸움보다 더 훌륭한…….”

“더 훌륭한 수단은 많죠. 게다가 그럴 시간 없어요. 내일 언니를 위해 준비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최서현은 근처에 있던 서류들을 최성구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일단 길드장으로서 얼굴 비춰야 할 곳들 있고, 그리고 내일 대결을 생중계할 거란 말이죠. 이에 대한 준비, 그리고 아버지는 또 여기서…….”

“아, 알겠어, 서현아. 하나씩 천천히 해 보자.”

“네, 그래야죠. 그리고…….”

“그리고 박유진 씨도 오늘 시간이 없을 거예요.”

이번에는 하세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등급 검사 다 끝마치는 대로, 부산에서 저와 같이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요.”

“…그래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하세리를 바라봤다.

부산에서 같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이내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이왕 부산에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면 아쉽잖아? 그러니까 이따 저녁에 놀러 가자.”

“…알겠어.”

아무래도 하세리는 부산에서 나와 놀러 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솔직히 말해, 하세리의 진짜 목적은 이게 아닌가 싶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까 굳이 1박 2일로 오자고 한 게 조금 이상했지.’

부산 와서 할 일들이야 해 봤자 내 등급 검사와 최서희와의 대결.

빡빡하게 일정을 잡으면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하세리 성격상, 그것뿐이었다면 그녀는 빠르게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1박 2일로 일정을 느긋하게 잡은 건, 분명 부산에서 천천히 놀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세리치고는 의외네.’

그녀는 딱히 어디를 놀러 가는 걸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말만 놀러 간다고 하고, 사실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하세리의 눈빛을 보니, 그건 또 아닌 듯했다.

그도 그럴 게, 하세리는 진짜로 놀러 가기를 기대한다는 눈빛이었다.

“내일 일정도 이제 이야기하도록 하죠. 11시에 대결을 시작한다고요?”

“그치. 세리, 네가 그때쯤이 적당할 것 같다면서.”

“그렇죠. 그럼 그때 사람들을 경기장에 모이게 하고…….”

하세리와 최성구, 그리고 최서현까지.

세 사람은 이 이벤트성 대결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그리고 그 대결의 주인공인 나와 최서희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약 15분이 지난 후.

“좋았어요.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고……. 박유진 씨. 3시에 사람들 앞에서 등급 검사 진행하도록 할 테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근데… 만약 제 등급이 안 올라가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A급 헌터인 제가 장담할게요. 박유진 씨는 등급이 오를 것이고, 그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도록 하세요.”

그리고 몇 시간 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 앞에서… 나는 몇 달 만에 등급 검사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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