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강당.
참고로 이 강당은 사찰국밥의 본사 내에 있는 것이었다.
워낙 규모가 큰 길드라 그런지, 길드 건물 내에 별것들이 다 있었다.
아무튼, 그 강당에 있는 무대.
그 무대 위에 지금 내가 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떨리니?”
“이 정도로는 안 떨리지.”
나는 피식 웃으며 하세리에게 대꾸했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이기는 했네.”
나는 강당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소 백 명은 넘을 듯한 수의 사람들이 강당에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기자들인 듯했다.
“내 등급 검사가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질 일인가?”
“관심 가질 일이 맞지 않을까?”
하세리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너 얼마 전까지 E급이었잖아. 근데 그 E급이 이제 D급을 넘어서 C급이 되려는 건데, 이 정도면 꽤 화젯거리지.”
“등급이 올라가는 건 꽤 흔한 일 아닌가?”
“보통 헌터들은 한 단계 올리는 게 고작이야. 당장 나만 해도 B급에서 A급으로 올라가고, 그 후로는 못 올라가고 있잖아.”
“누나는 A급으로 올린 거잖아. D급에서 C급으로 올리는 거랑 차원이 다른 거라고.”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방금 말은 나름 진심이기는 했다.
A급까지 올라가 본 내 경험상 E급에서 C급으로 올리는 것보다, B급에서 A급으로 올라가는 게 훨씬 힘들었다.
“나도 알아. 근데 있지? 너는 E급에서 D급, 그리고 이제 곧 C급으로 올라가는 거잖아?”
“그게 왜?”
“E급에서 C급으로 올라온 사람은 아마 네가 세계 최초일걸?
“하긴, 그러려나.”
회귀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E급에서 C급으로, 두 단계나 상승한 사람은 내가 최초라고.
애초에 E급에서 등급을 올린 헌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근데 누나. 내가 등급이 올랐는지는 나도 아직 확실치가 않아.”
확실히 내 신체 능력이 좋아지기는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손가락에 끼워진 이 검은색 반지 덕이었다.
‘하지만 신체 능력만 올라간 거지, 다른 능력들은 어떤지 몰라.’
내 신체 능력은 확실히 C급 헌터의 수준이 맞았다.
하지만 나의 다른 능력, 그러니까 내 전류가 C급인지는 아직 감이 안 잡혔다.
“또 그 소리 하네. 너 C급 맞다니까.”
“뭐, 곧 알게 되겠지.”
나는 무대 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기계, 그러니까 등급 검사기를 바라봤다.
이제 저 기계가 준비되는 대로, 나는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등급이 어떻게 됐는지 보여 줄 예정이었다.
“준비 거의 다 됐어요.”
하세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서현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전에 등급 검사하신 적 있죠? 저 기계에 손을 올리면, 결과가 몇 분 뒤에 저 화면에 나올 거예요.”
“네,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네, 그럼… 더 전달할 사항은 딱히 없고……. 네. 이따 무대 중앙에 가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등급이 확 오르셨으면 좋겠네요.”
최서현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편이 화제를 더 모을 거고…….”
“그래야 사람들이 내일의 이벤트에 더 관심을 가지겠죠.”
“맞아요. 잘 아시네요.”
최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언니가 이기는 걸 봤으면 하거든요. 그래야 사람들이 더 이상 의심을 안 할 테니까요.”
“최서희 씨가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라는 것을요?”
“네. 그렇죠.”
“뭐, 그건 내일…….”
“그건 내일 알게 되겠죠.”
내 옆에 있던 하세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그리고 내일 결론이 날 거예요. 한국 최강의 일렉트로 마스터는 다름 아닌 헌터 협회의 박유진 씨라는 것을요.”
“…내일 두고 보면 알게 되겠죠.”
최서현과 하세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두 여자 사이에서 팽팽한 기 싸움이 이루어지는…….
“서현아. 여깄었구나?”
“언니?”
갑자기 우리 쪽으로 다가온 최서희.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이었다.
“어디 갔나 해서.”
“으, 응.”
갑작스러운 최서희의 등장에 최서현은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최서희는 이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등급 검사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시기를 바랄게요.”
“…네, 감사합니다.”
최서희는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그녀 나름대로의 호의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 대하는 게 서툴러서 차갑게 보이는 것뿐이지.’
말했듯, 이 시기의 최서희는 대인기피증 수준으로 사람을 못 만나고 다녔다.
그런 그녀가 내게 이렇게 다가와 이런 응원의 말을 한 건, 그녀 나름대로 노력한 거다.
‘문제는 너무 차갑게 보인다는 거지만 말이야.’
근처에 있던 기자들에게 최서희의 이런 모습이 또 찍혔다.
아마 최서희의 차가운 모습이 대중에게 또 한 번 각인되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등급 검사기도 곧 작동하겠네.’
아마 이제 잠시 뒤에 시작을…….
“박유진 씨. 바로 시작하면 될 것 같네요. 설치가 완료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예, 알겠어요. 그럼 바로 해 보죠.”
나는 이 말을 끝으로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이러는 것도 오랜만이네.’
회귀 전, 내가 C급에서 B급으로 올라갈 때.
그리고 B급에서 A급으로 올라갈 당시.
그때 실시한 등급 검사에도 이 정도의 인원들이 모였다.
이런 상황이 되니, 옛날 생각들이 계속 떠올랐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경험이 자주 있었기에, 긴장은 안 됐다.
긴장보다는… 궁금증이 더 컸다.
과연 내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 말이다.
‘지난번에는 한 단계 오른 D급… 이번에는 과연…….’
하세리, 최서현, 최서희, 그리고 강당 반대쪽에 있는 최성구.
사찰국밥의 몇몇 길드원들.
거기다 사진과 영상을 찍는 수많은 기자들까지.
그 모든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등급 검사기에 손을 올렸고…….
우웅―
기계는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근처의 화면에서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C등급……. 거기다 C등급 중에서 상위 4%?”
생각보다 훨씬 높은 등급의 결과가 나왔다.
예상보다 높았기에 나는 조금 당황했고…….
“거봐. 누나가 말했지?”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하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기뻐하는 미소였다.
“너는 확실하게 성장했다니까.”
* * *
“겨우 다 마쳤네.”
내 등급이 공개되고, 약 한 시간이 지난 후.
나와 하세리는 부산의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자들은 진짜. 뭐 이리 집요하게 물어보던 건지.”
“고생했어, 유진아.”
하세리는 자신의 어깨로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그래도 C급, 그것도 C급 상위권으로 나온 덕에 사람들이 너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지금 인터넷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
“좋은 건가?”
“장단점이 있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잠재력이 큰 유망주라고 사람들이 너를 인식했다는 거지. 이건 나중에 분명 도움이 될 거야.”
하세리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설명했다.
“그건 그렇고, 원래 네 인터뷰 훨씬 길었어야 했어. 근데 누나 덕에 빨리 끝난 거야, 알지? 내가 쓸데없는 질문들은 다 쳐 내 줬잖아.”
“그건 고마워. 근데… 에휴. 어떻게 강해진 거냐느니, 내 태생에 뭐가 있냐느니, 뭐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건지.”
“근데 솔직히 궁금할 법도 해. 나였어도 E급에서 C급에 올라선 헌터가 있다? 별것 다 물어봤을 거야.”
“그럼 설마, 누나도 내게 이따 별것 다 물어보려는 거야?”
“후훗, 들켰네.”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이따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물어볼게. 당장은 데이트나 하러 가자.”
“데이트?”
“나랑 나중에 데이트 한번 해 주기로 했잖아. 이번 기회에 하는 거지.”
“기자들에게서 빨리 빠져나온 이유가…….”
“부산에 왔는데, 관광 한 번 못 하고 가면 아쉽잖아?”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내 손을 붙잡았다.
이에 내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하세리는 나를 끌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야 할까? 으음, 해운대는 마지막에 가고… 흰여울마을? 아니다. 감천마을. 거기부터 가자.”
“관광 코스를 다 알아보고 왔나 봐?”
“후훗. 특별히 알아본 거니까, 리드해 주는 내게 고마워하도록 해.”
“크큭, 그래, 뭐. 고맙다.”
“흐음, 별로 성의가 없지만… 뭐, 오늘만큼은 이 누나가 봐줄게.”
하세리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나를 올려다봤다.
붉은 머리를 목 뒤로 넘기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뭐랄까… 꽤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C급 된 거 축하해. 물론 너라면 등급이 올라가는게 당연하지. 거기다 어쩌면… 매우 당연하게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야겠네.”
“해야지 아, 하지만 오늘은 그런 쪽으로 노력하지 마.”
하세리는 내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오늘은 나와 데이트를 즐겁게 하는 것에 집중해 줘. 알겠지?”
“오늘 하루 정도면 뭐, 최대한 노력해 볼게.”
나는 하세리에게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하세리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다시금 내게 가까워졌다.
“기대할게. 자, 그럼 가자.”
하세리는 내 손을 붙잡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피식 웃었다.
‘즐거워 보이는데… 오늘 하루 정도는 어울려 주자.’
평소의 하세리는 일만 하는 바쁜 누님이었다.
그런 누님이 나와 함께 놀고 싶다는데, 거절은 못 할 듯했다.
* * *
‘후훗. 유진이.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
박유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며, 하세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느꼈던 즐거움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야.’
하세리는 지금껏 인재들을 발굴하는 재미로 지난 몇 년을 보냈다.
인재를 찾고, 본인 손으로 키우고, 나중에 자신의 훌륭한 인맥으로 만드는 것.
이런 식으로 하세리는 인맥을 넓혔고, 이에 그녀는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최근, 하세리는 박유진을 만나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유진이를 더 강하게 키우고 싶은 건 아니야. 어차피 유진이는 혼자 알아서 잘 성장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평범한 인맥 따위로 두고 싶지도 않아.’
하세리는 다시 한번 박유진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보니,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같이 있는 거 자체가 꽤 즐겁네.’
하세리는 그동안 어디 놀러 가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어딘가로 여행 갈 시간에, 그녀는 협회의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이렇게 박유진과 시간을 보내며, 그와 이렇게 어디 놀러 가는 것 자체가 기대가 되었다.
‘이렇게 즐거운 이유는… 뭐, 뻔하기는 하지.’
하세리는 자신이 박유진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지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당장 그걸 대놓고 티 낼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유진아. 오늘 우리 이렇게 노는 거… 이민아 양에게는 비밀이다?”
“이민아에게 비밀이라고? 왜?”
“으음… 뭐라고 해야 되나.”
하세리는 장난을 치는 아이와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새치기하는 기분이라, 뭔가 조금 미안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