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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54화 (154/240)

154화

하세리와 함께한 부산 관광은 꽤 재밌었다.

그냥 이곳저곳 놀러 다니며 관광지들을 구경한 게 전부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알찬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하세리의 색다른 모습들을 보는 것도 재밌었던 덕이었다.

“누나. 포즈 좀 자연스럽게 해 봐. 너무 굳어 있잖아.”

“이, 이렇게?”

“이번에는 표정이 어색하네.”

사진 찍을 때의 포즈가 너무 어색한 하세리.

“유진아? 이거 카메라로 셀카? 이거 어떻게 찍는 거야? 카메라 전환을 어떻게…….”

“누나,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거야?”

“지, 진짜 모르는 거야. 내가 셀카를 지금까지 찍은 적이 없어서…….”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거야?”

거기다 그녀는 셀카라는 것을 아예 처음 찍는다고 말했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 보니까, 회귀 전의 하세리가 사진을 찍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야, 이거 이렇게 찍으면 되는 건가?”

“누나, 그렇게 하면 누나가 안 나오잖아.”

“우리 더 붙어야 되는 건가?”

“같이 나오려면 그래야지. 그리고 각도를 잘 맞춰 봐. 누나 이상하게 나오잖아.”

“이, 이렇게?”

“…핸드폰 줘 봐.”

결국 셀카는 내가 찍었다.

아무래도 하세리에게 사진 찍는데 재능은 없는 듯했다.

“오. 너 왜 이렇게 잘 찍어. 셀카 자주 찍어 봤어?”

“자주 찍지는 않아. 하지만 몇 번 찍어 본 경험은 있거든.”

회귀 전에 이민아와 가끔 찍었고, 회귀 후에는 뭐…….

‘유나와 이민아와 가끔 찍었지.’

사진 찍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국 남는 건 사진이 아닌가 싶었다.

뭐, 그건 그렇고.

“누나. 이거 한번 먹어 보자.”

“음? 저 길거리 음식들을?”

“응. 이거 한 번 먹어 봐.”

나는 닭꼬치 하나를 주문했으나, 하세리는 뭔가 영 꺼리는 표정이었다.

“나 이런 거 안 먹는데…….”

“한번 먹어 봐. 이런 것도 먹어 봐야지.”

하세리는 항상 건강한 음식들만 먹는 편이었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하세리는 건강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불량식품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궁금했다.

하세리가 이런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이다.

“이거… 먹어도 괜찮은 거지?”

“괜찮다니까. 먹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가 주문한 닭꼬치를 한 입 먹으며 말했다.

사실 아까 국밥집에서 먹은 것도, 하세리에게 있어 간당간당한 적정선이었다.

하세리는 달거나 짠 음식은 피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다.

하세리가 이런 길거리 음식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뭔가 여러모로 재밌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오. 우와, 맛있네?”

“어? 그래?”

“으음, 오. 야, 이거 맛있는데?”

여러모로 예상과 다른 하세리의 반응에 나는 당황했다.

뭔가 거부 반응 같은 걸 일으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세리는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

그것도 매우 감탄하면서 말이다.

“오오. 이야, 사람들이 이런 걸 먹는 이유가 있었구나.”

“…누나, 설마 이런 거 한 번도 먹은 적 없었어?”

“없지. 내 고모, 그러니까 하윤경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거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서…….”

“하기야, 그 여자라면…….”

하윤경은 하세리를 장기말로 쓰려고 했다.

그것도 오래 쓸 장기말로 생각했으니, 쓸데없이 건강하게 키운 듯했다.

‘나중에 돌아가면 하윤경에게 한 달 동안 채소들만 먹게 하든가 해야지.’

불량식품을 안 먹게 한 건, 건강 측면에서 좋을지 몰라도… 그 맛 자체를 모르게 한 채 키웠다는 건 대체 뭔…….

“야, 이거 맛있다. 하나 더 먹어야겠다.”

“어, 뭐, 먹는 건 상관없는데, 이따 저녁을 무슨 식당에 예약했다고…….”

“아, 맞아. 거기도 이제 가야겠네. 곧 저녁 시간이잖아.”

하세리는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러면서도 닭꼬치 하나를 더 주문했다.

“이거만 먹고 출발하자.”

“으, 응. 맛있게 먹어.”

그리고 하세리는 진짜로 맛있게 먹었다.

마치 ‘이런 맛을 몰랐다니, 인생을 손해 봤어.’와 같은 느낌이었다.

‘…상관없겠지.’

뭔가 하세리의 봉인 하나를 푼 느낌이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하세리는 책임감이 가득한 어른인데, 이런 건 알아서 잘 조절하겠지.

…그럴 거라 나는 믿었다.

* * *

“어때? 고기는 맛있어?”

“당연히 맛있지. 근데 고기보다는…….”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해운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알고 예약한 거야?”

“지인을 통해 알아봤지. 지인 중에 호텔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래서 부산에서 가장 좋은 5성 호텔로 온 거야.”

“…여기 5성 호텔이었어?”

“그럼 몇 성이라고 생각했어?”

“…그냥 시설 좋은 호텔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지. 어쩐지 좋더라.”

나는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을 다시금 둘러봤다.

올 때부터 뭔가 고급진 느낌이 들기는 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숙소라 그랬지?”

“응. 아까 오기 전에 우리 짐을 카운터에 맡겼잖아? 직원들이 짐을 우리 방으로 옮겨 줄 거야.”

“서비스 좋네.”

나는 스테이크를 자르며 말했다.

“근데 여기 엄청 비싸지 않아?”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이거 내 출장비로 쓴 거니까.”

“…출장비?”

“이것도 어떻게 보면 출장이거든. 이제 곧 협회 소속이 될 박유진의 명성을 올리는… 뭐, 대충 그런 거 말이야.”

“별 이상한 출장을 다 하네. 그보다 출장에 이렇게 돈 많이 써도 괜찮은 거야?”

“돈은 충분해. 협회는 이런 것에 돈을 안 아끼거든.”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근데 고기를 입에 넣은 하세리의 표정은 뭔가 묘했다.

“누나? 고기 맛이 혹시 이상해?”

“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뭐랄까… 고기 맛이 좀… 밋밋하다고 해야 되나…….”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다시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으으음. 아까 먹은 닭꼬치 맛이 너무 셌나? 고기 맛이 너무 싱거운데?”

“아아, 그런 거구나.”

아마 하세리는 아까 생전 처음으로 달고 짠 맛을 느꼈을 거다.

그렇다 보니, 아주 건강하게 구워진 이 고기가 싱겁게 느껴질 만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렇…겠지? 근데 아까 먹은 맛이 확실히…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

하세리는 옆에 따라 둔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말했다.

그런 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유진아. 그건 그렇고, 이따 해운대 쪽으로 한 번 가 볼까?”

“밥 먹고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으음, 사실 산책은 아니고… 해운대 쪽에 분위기 좋은 식당 하나 있어. 테라스가 있는 식당인데, 거기도 예약했거든.”

“술집이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와인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지.”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닷가가 아주 잘 보이는 테라스. 거기서 남녀 둘이서 와인. 분위기 있지 않아?”

“여기 분위기도 괜찮기는 하다만, 이미 예약한 거 같으니…….”

“안 갈 수가 없겠지?”

“내가 싫다고 해도 데려갔을 거면서.”

“후훗. 당연하지. 거기 비싼 돈 주고 예약한 곳인데.”

“어쩔 수 없겠네.”

나는 내 옆에 놓여 있던 와인 잔을 들며 말했다.

“이거 다 먹고 2차나 하러 가자.”

* * *

“그러니까 네가 어렸을 때부터 유나를 혼자 키웠다는 거야?”

“유나가 나랑 헤어지기 싫다고 하더라고. 막 울면서 내게 매달리는데, 걔를 어떻게 버리겠냐?”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대꾸했다.

그리고 하세리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도 대단하네. 어렸을 때부터 일하고.”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했을 뿐이지.”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

하세리와 나는 이곳에서 술을 마신 지 어느덧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나와 하세리가 마신 술의 양은 상당했다.

‘근데 이렇게 마셔도 나는 이제 안 취하네.’

저번에 얻은 이 검은 반지는 내 몸에 들어오는 모든 독들을 해독했다.

그리고 그 독 중에 아무래도 알코올이 포함된 듯했다.

그래서 암만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반면에, 하세리는…….

“흐, 장하다. 우리 유진이.”

살짝 발음이 꼬인 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정신은 아직 멀쩡해 보였지만, 그녀의 행동은 확실히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너 왜 맨날 같은 옷만 입어? 같은 검은색 코트만 맨날 입는데, 다른 옷들 좀 입어 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딱히 다른 옷을 입을 필요가 없거든. 근데 누나도 맨날 정장만 입고 다녔잖아.”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예쁘게 입고 왔잖아. 청순하게.”

“크큭. 누나. 그만 마셔. 취한 것 같다.”

“음? 나 안 취했어.”

하세리는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시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좀만 더 마시고 가자.”

“이쯤 마시고 들어가자. 내일도 할 일 있는데, 너무 많이 마시면…….”

“그럼 가기 전에 이것만 대답해.”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내 내 무릎 위에 털썩 앉았다.

“누나?”

“너… 민아 씨 좋아하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네.”

“그럼 어떻게 물어보기를 원한 거야? 아니, 됐고. 대답해 줘. 어서.”

“이민아를… 뭐,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

“좋아한다는 거야? 여자로서?”

“이건… 뭐라 딱 대답하기가 애매하네.”

아무래도 회귀 전에 겪었던 일 때문에, 이민아의 관계를 뭐라 딱 말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가진 이 기억을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아직까지 나와 이민아의 관계가 크게 변하지 않을 듯했다.

“으으음, 으으으음. 그래, 둘이 애매한 관계구나?”

“그렇게 봐도…….”

“그렇다면…….”

하세리는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취했는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누나? 무슨 말을…….”

“있어, 유진아. 그런 게 있어.”

하세리는 나를 올려다봤다.

술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상당히 붉어져 있었다.

“후우우.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확 속도를 내서 새치기하고 싶지만… 너무 빠르면 네가 놀라서 도망가겠지.”

“…누나. 많이 취한 것 같다. 얼른 들어가서 이제 자자. 누나 방 어디로 잡았어?”

“그건 호텔 들어가면 직원이 안내해 줄 거야. 근데… 유진아. 사실은 말이야. 너에게 말 안 한 게 있어.”

“뭔데?”

나는 차분히 하세리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 사실 방 두 개로 안 잡았어.”

“…뭐?”

“방 하나로 잡았거든.”

* * *

몇 분 뒤.

“후훗. 자, 유진아. 너 얼른 와서 내 옆에 누워.”

침대에 누운 하세리는 나 보고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 생도… 여자 문제가 많을 것 같네.’

확실한 근거들은 아직 없었지만, 내 감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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