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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55화 (155/240)

155화

【 일렉트로 마스터 】

“유진아. 너도 얼른 누워 봐. 어서.”

“누나. 그냥 얼른 잠이나…….”

“아아, 오라니까.”

“…잠시만이다.”

나는 침대 쪽으로 가, 누워 있는 하세리 옆에 앉았다.

하지만 하세리는 그런 나를 불만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누우라니까. 왜 앉기만 하는 거야?”

“아직 잠이 안 오거든. 누나가 잠드는 거 먼저 보고…….”

“어서 누워.”

“윽?”

하세리는 나를 잡아당겨 강제로 침대에 눕혔다.

그 결과,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하세리와 마주 보게 되었다.

“후훗. 같이 누웠네? 같은 침대에.”

“누나 지금 많이 취한 거 알지?”

“알아. 근데 나 필름이 끊기거나 그런 건 아니야.”

하세리는 내 머리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에 취기가 보였으나, 심각할 정도로 맛이 간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랜만에 취하니까 기분이 좋네. 그것도 네가 내 옆에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아.”

“전에도 취한 적이 있나 봐?”

“아주 가끔, 으음, 1년에 한 번? 집에서 취할 때까지 혼자 마시거든.”

“의외네. 누나는 건강한 것들만 먹어서, 술은 안 좋아할 것 같았는데.”

“술은 좋아해. 와인은 더 좋아하고.”

“그래? 결국 같은 술 아닌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고, 이에 하세리는 내 가슴을 살살 몇 대 쳤다.

“와인 달라! 와인은 건강에 좋잖아!”

“어어, 그래? 혹시 과학적인 근거라든가…….”

“아무튼 그런 거라고!”

하세리는 아이가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하세리의 이런 모습은 꽤 신선했기 때문이다.

매번 어른스럽고 여유로운 모습만을 보이던 하세리가 이러는 건, 여러모로 귀한 장면이었다.

“맞아, 누나. 와인은 건강하지.”

“당연하지. 게다가 와인은 고급스럽잖아. 품격이 있는 나와 잘 어울리지. 후훗.”

“…그래, 그래. 누나 말이 다 맞아.”

“그 반응 뭐야? 너 방금 대답이 좀 느렸어?”

하세리는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내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약하게 때리는 거라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나는 아프다는 시늉을 했다.

“아야야야. 누나, 아파.”

“몰라. 네가 나쁜 거야, 유진아.”

“내가 나쁜 거야?”

“응, 네가 나쁜 거야.”

하세리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 후, 그녀는 이내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아니야. 방금은 장난이야. 유진이, 너만큼 좋은 사람도 없는데.”

“크큭. 누나. 이제 슬슬 자자.”

“싫어. 나 아직 안 졸리다고.”

“퍽이나 그러시겠어.”

나는 내게 달라붙은 하세리를 보며 또다시 피식 웃었다.

“근데 누나.”

“응?”

“왜 방 하나로 잡은 거야?”

나는 아까부터 품고 있던 의문을 물었다.

뭐, 남녀가 한방을 쓰는 거니……. 하세리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하세리에게서 직접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방 하나로 잡은 이유? 으으음……. 후훗. 사실 방 자체는 처음에 두 개로 예약했어.”

“그래? 그럼 어쩌다가 방이 하나가 된 거야?”

“아까 테라스에서 와인 마실 때… 내가 방 하나를 취소했거든.”

하세리는 칭찬해 달라는 투로 말했다.

“호텔 직원에게 따로 연락해서… 짐들을 전부 2인용 방으로 옮겨 달라고 했어.”

“왜 그렇게 한 거야?”

“뻔하잖아.”

하세리는 내 얼굴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너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너랑 밤늦게까지 같이 있고 싶으니까 그런 거지.”

“누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봐?”

“당연하지. 아니, 마음에 든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것도 아주 제대로 내 마음에 들었지.”

“…그렇구나.”

회귀 전에도 하세리에게 이와 비슷한 말을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동료라는 의미가 강했다.

지금처럼 뭐랄까…….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유진아. 너 덕분에 내 고모를 막을 수 있었고……. 너 덕분에 요즘 인생이 참 즐거워진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근데 인생이 즐거워졌다는 건…….”

“그냥… 뭐랄까……. 너랑 있는 것 자체가… 꽤 재밌거든.”

하세리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는 하품을 했다.

“하아암, 으음. 잠이 오네……. 잠 안 자고… 너랑 더 떠들고 싶은데…….”

“얼른 자. 많이 피곤해 보인다.”

“으음, 유진이와 더… 이야기를……. 하암…….”

하세리는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눈을 완전히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하세리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완전히 잠들었다.

“…이 누나도 참.”

나는 잠든 하세리를 보며,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과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니까.”

하윤경을 빨리 처리한 덕인지, 하세리의 성격이 내 기억과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하세리의 이런 성격 변화는 내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보기 좋았다.

‘그래도 뭔가… 이번 생에도 여자 문제가 많이 생길 것 같지만…….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미래의 나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자…….”

나는 내 얼굴에 올려진 하세리의 손을 내리며,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하세리는 내 옷소매를 붙잡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내게서 떨어뜨렸다.

“오늘은 소파에서 자는 건가.”

5성 호텔답게 방 시설이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그 시설 중에는 아주 커다란 소파도 포함되었다.

물론 저 편안해 보이는 침대에서 못 자는 건 아쉽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집에서는 맨날 바닥에서 잤는데, 소파면 감지덕지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다시금 하세리 쪽을 바라봤다.

붉은 머리의 화염술사는 어느새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번에도 참 아름답게 내 눈에 들어왔다.

“이 누나도… 이번에는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네.”

나는 피식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소파도… 편하기는 하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았다.

조만간 집 거실에 소파 하나를 살까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 전에 유나 침대는 새로 사 줘야지.’

유나도 낡은 매트리스 하나 쓰는 마당인지라, 유나의 잠자리부터 어떻게 하는 편이 먼저일 듯했다.

‘그나저나 하세리는…….’

나는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세리는 편안한 표정으로 여전히 자고 있었다.

“…옷이라도 갈아입히고 재울 걸 그랬나.”

외출복을 입고 잠든 하세리.

저러고 자고 있으니 뭔가 조금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아니다.”

괜히 옷 갈아입히고 재웠다가 이상한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저렇게 재운 편이 더 나은 선택지였던 듯했다.

‘아직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니…….’

나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스마트폰으로 유나와 이민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간단히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고, 그 후 오늘의 이벤트를 위해 이런저런 검색들을 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이 흐른 후.

“으음…….”

하세리가 일어났다.

“으으, 머리야……. 뭐가 어떻게…….”

“일어났어, 누나?”

“…유진아?”

내 목소리에 하세리는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네가 왜 이 방에…….”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 안 나?”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에 하세리는…….

“…아.”

바로 기억을 해낸 듯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세리의 얼굴은 급속도로 붉어졌다.

“내가 어제 취해서, 방 하나 취소하고, 너랑 같이…….”

“잘 기억하고 있네.”

“…아, 그, 그렇구나. 미안. 내가 너에게 폐를 끼쳤네.”

하세리는 차분히 내게 말했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했을 뿐, 그녀의 눈동자는 꽤 떨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내가 너에게 이상한 짓은 안 했지?”

“침대에 같이 눕자고 떼쓴 것 말고는 딱히?”

“으으으……. 아아. 그, 그래.”

하세리는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빠르게 손으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나 꼴 말이 아니니까 나 보지 마. 나 화장 다 번져서, 너에게 이상한 모습은…….”

“이미 볼 것 다 본 마당에 뭔 소리야.”

“야! 그런 말은…….”

“크큭. 알겠어.”

뭐, 솔직히 말해 하세리의 볼 꼴 못 볼 꼴을 이미 다 보기는 했었다.

회귀 전에 같이 여러 전투를 함께한 덕이었다.

화장 이상하게 번지고, 머리가 엉망이 된 건 약과였다.

하세리의 더한 꼴은 이미 여러 번 목격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배려해 줘야지.’

이상한 누나였지만, 하세리는 저래도 여자기는 여자였다.

내가 약간은 배려해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정리하고 있어. 나 먼저 씻고 나올 테니까.”

“어? 어, 아. 그래. 씻고 와. 나도 나갈 준비할 테니까. 오늘 할 일 많으니까 빨리 하자.”

“크큭. 잠이나 좀 깨고 있어.”

나는 여벌 옷을 챙기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들어가고 잠시 뒤.

화장실 밖에서 이불을 걷어차며 뭐라 외치는 하세리의 목소리를… 그냥 못 들은 척해 줬다.

* * *

약 한 시간 뒤.

나와 하세리가 나갈 준비를 전부 마친 후.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우리 두 사람은 호텔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나, 기운 좀 내.”

“무슨 소리니? 내가 지금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데.”

“내 눈을 보고 말해 봐.”

“…으읏.”

하세리는 언제나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미소를 유지하지 못했다.

“어제 내게 주정 부린 게 그렇게 부끄러워?”

“평소에 안 하던 행동과 말들을 했으니까……. 으음…….”

“크큭.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말이야.”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술 취한 누나, 꽤 귀엽더라.”

“…너, 누, 누나 놀리면 못쓴다.”

“크큭. 그래, 그래.”

나는 하세리를 한 번 놀려 준 뒤,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누나 또 정장 입었네?”

“입어야지.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협회에서도 동의한 공식적인 행사니까.”

“나와 최서희의 대결이 대체 왜 공식적인 행사인 걸까…….”

“한국 최강의 일렉트로 마스터를 가리는 대결이잖아. 그 정도면 협회에서 공식적인 행사로 취급할 만하지.”

“최강의 일렉트로 마스터라…….”

나는 잠시 말없이 턱을 매만졌다.

회귀 전에는 A급이었던 내가 S급인 최서희보다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현재 나는 C급. 그리고 최서희 A급.’

여러모로 상황이 달랐다.

솔직히 말해, 내가 질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길 가능성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나에게도 방법이 몇 가지 있는…….

“고민하는 표정이네. 네 생각 맞혀 볼까? 최서희를 어떻게 이겨야 할지 고민 중이었지?”

“맞아. 방법이 여러 가지 있기는 하지만, 전부 쉽지는 않을…….”

“유진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평소대로 싸워. 그리고… 너의 능력을 믿어. 전기를 다루는 데 있어, 네가 지금 전 세계에서 최고야. 그러니까 그 능력을 믿고 뭐든 해 봐.”

“…하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겠지.”

이미 더한 상대들도 수없이 많이 상대했었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최서희쯤은 얼마든지 상대가 가능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후우우우.”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스타디움.

그러니까 사찰국밥 소유의 스타디움 안.

나는 최서희와 마주한 채, 전투를 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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