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 * *
최서희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나보다 약해.’
박유진에게 전류를 딱 한 번 날렸을 뿐이지만, 최서희는 그 자리에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박유진이 지닌 전류가 본인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유진은 내 전기를 통제 못 해.’
같은 전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최서희는 알 수 있었다.
박유진이 다룰 수 있는 전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일정 위력 이상의 전류는 못 다루나 보네.’
최서희는 확신을 얻었다.
자신이 박유진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말이다.
적어도 일렉트로 마스터로서, 박유진을 이길 확신을 얻었다.
‘문제는 암살자로서 나를 상대하게 된다면…….’
박유진이 암살에 일가견이 있다는 걸, 최서희는 최서현으로부터 귀 따갑게 들었다.
그래서 최서희는 그에 대한 대책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파지직.
최서희는 주위로 무차별적으로 전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박유진이 아예 다가오지 못하게끔 말이다.
그녀는 정밀한 전류의 조작을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전류를 끝없이 내뿜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게 아예 못 다가오게 하자. 이렇게 내 주위로 계속 전기를 뿜어내고, 박유진에게 계속 공격을 날리면… 이길 수 있어.’
최서희는 눈앞의 박유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동안 박유진이 신경 안 쓰인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녀가 이 나라에서 전류를 제일 잘 다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박유진이 나타나,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고 싶지 않아.’
최서현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가족이 응원해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박유진이 대단한 건 맞아. 전류를 이용해서 자기장을 만들고, 그걸 또 쓰는 건… 차원이 다른 영역이야. 하지만…….’
최서희는 1인자의 자리를 내어 주고 싶지 않았다.
소심했던 그녀에게 있어 처음으로 생긴, 제대로 된 목표였다.
‘…이길 거야.’
최서희는 속으로 결심하며, 박유진을 다시금 바라봤다.
그녀는 박유진이 단검을 들고 자신에게 돌진해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박유진은 단검을 집어넣었다.
최서희는 이에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왜? 뭐 하는 거지? 전기로는 날 못 이긴다는 것을 박유진도 알 텐데? 아니, 모르는 건가? 몰라서, 설마 전기로 나를 이기려 드는 건가?’
순식간에 피어난 수많은 의문들.
하지만 최서희는 그 의문들을 재빨리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박유진을 이기는 것, 그뿐이었다.
그래서 최서희는 다시 한번 박유진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단번에 끝내기 위해, 강력한 전압의 전류를 날렸다.
‘…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전류는 도중에 멈췄다.
박유진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에게 날아가던 그녀의 전류가 멈춘 것이었다.
‘설마… 내가 날린 전기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전 처음 맞이하게 된 상황.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게 되니 최서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박유진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 * *
‘쉽지 않네, X발.’
나는 욕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떻게든 최서희의 공격을 막아 세우고 있었다.
‘…진짜 쉽지 않아.’
엔드리온의 조각 덕에 최근에 높은 위력의 전류를 여러 차례 다루었다.
하지만 엔드리온의 조각으로 다뤘던 전류의 위력은 해 봤자 B급 헌터 수준이었다.
A급 헌터인 최서희가 날리는 전류는 엔드리온의 것과는 기본적으로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다루는 방법 자체는 알아. 하지만… 지금의 내 신체로 A급 이상의 전류를 다루는 건 무리야.’
이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최서희를 자주 상대했기에 잘 알았다.
그래서 원래 같았으면 최서희와의 이런 정면 승부는 최대한 피했을 터였다.
그랬을 텐데…….
‘너의 능력을 믿어.’
하세리가 했던 격려가 문득 떠올라, 딱 한 번.
딱 한 번 온 힘을 다해 싸우고자 하였다.
“후우우.”
나는 내게 날아오던 최서희의 전기에 집중했다.
아니, 정확히는 분석했다.
최서희가 날리는 전류의 그 구조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의 통제권을 얻기 위해…….
“아윽?”
아니, 불가능했다.
C급 헌터의 몸으로 A급인 최서희 전류를 다루기란 무리였다.
나와 최서희 간의 그 격차가 너무 심했다.
경험을 살려 이렇게 막을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다루는 건 힘들었다.
‘사실 회귀 전에도… 최서희의 전류를 직접 다루는 건 거의 불가능했어.’
회귀 전, 내가 A급 헌터, 최서희가 S급 헌터였을 당시.
그 당시에 우리 둘이 붙을 때마다, 나는 우회적인 방법들을 택해 최서희에게서 승리를 가져왔다.
아마 지금도 그러는 편이…….
“음? 아……. 또 느껴지네.”
최서희의 전류를 어떻게든 직접 다루려고 시도하던 중, 또다시 느껴졌다.
그러니까… 선이 느껴졌다.
선, 나의 한계가 말이다.
‘이 선을 느끼는 것도 오랜만이네.’
회귀 전, 내가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매번 시도할 때.
또는 S급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일 때마다, 어떠한 선을 마주하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선이 내가 더욱 강해지는 걸 늘 막아 세웠다.
그 선을 넘기만 하면 S급보다도 훨씬 강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 선을 넘지 못했다.
‘그 선을 여기서 또 느끼네.’
눈에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느껴지는 것뿐이었다.
최서희가 날리는 이 전류를 직접 통제하려면, 이 선을 조금이라도 넘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안 되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늘 실패만 했으니까.’
반복된 실패 탓인지, 나는 그 선을 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그 선을 넘을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었는데…….
우웅.
“음?”
갑자기 내 반지, 그러니까 검은색의 반지가 작게 진동했다.
아니, 반지만 진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또 왜 그러는 거냐?”
내 목에 걸려 있던 푸른색 돌멩이까지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내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이 돌멩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도 모르게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선을 한번 넘어 보라고? 네가 도와줄 테니까?”
우우웅!
또다시 진동하는 엔드리온의 조각.
대체 이 상황이 뭔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금 최서희의 전류에.
거기다 나를 막아 세우는 이 선에게 집중했다.
“밑져야 본전이겠지.”
나는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엔드리온의 조각과 이 검은 반지.
이 두 물건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마치 나를 그 선 밖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은 힘이었다.
아니,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선을 넘을 수 있게끔… 나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어.’
정체불명의 힘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힘이었다.
하지만 이 힘은… 내가 그 선을 넘을 수 있게끔 밀어주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힘이었지만, 당장은 그 힘에게 기대기로 했다.
‘선이… 보여.’
불명확하게만 보이던 선이, 나의 한계가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선을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딱 한 발자국, 아니.
한 발자국조차도 아니었다.
아주 약간,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거리.
나를 막고 있던 그 선을 아주 살짝만 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게 엄청난 영향이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엄청난 힘.
그 힘을…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전류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 선을 넘는 순간, 나는 아직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거라면…….”
선을 아주, 아주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던 수많은 힘이 내 몸에 흘러 들어왔다.
아주 조금 넘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 감각을 잊지 말거라.’
머릿속에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나는 이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전에 엔드리온의 조각에게서 들렸던 목소리였다.
이 상황이 대체 뭔가 싶었지만, 당장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이 힘이라면 그 어떠한 전류도 다룰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류를 어떤 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했다.
이 선만 넘을 수 있다면 말이다.
파지지직!
나는 멈춰 세우고 있던 최서희의 전류에 다시금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날리던 전류들을 전부 없애 버렸다.
“…어?”
자신의 전류가 순식간에 전부 사라지자, 최서희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최서희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내게 또다시 전류를 날렸다.
아까보다 훨씬 강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그녀의 공격을 멈춰 세웠다.
“후우우우. 힘드네.”
강력한 전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감 자체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내 신체에는 여전히 무리가 가기는 했다.
지금 당장, 내 코와 눈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못 할 건 아니야.’
몸이 무리하는 것뿐,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나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한 채,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최서희가 날리던 전류의 통제권이 완전히 내게로 넘어왔다.
“어, 어떻게…….”
최서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 안 쓴 채, 바로 다음 행동을 이어 나갔다.
“…제가 이겼네요.”
이 말과 함께, 나는 최서희의 전류를 그녀에게 그대로 돌려줬다.
“크어억?!”
최서희는 내 공격을 막으려는 시도는 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도는 무의미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날린 것은 원래 최서희의 전류.
다른 건 몰라도, 최서희의 전류는 세계적인 기준에서도 꽤 강력했다.
최서희 본인조차도 이 정도 위력의 전류를 쉽게 막지 못할 터였다.
“으어어억…….”
내가 날린 공격을 맞고 뒤로 멀리 날아간 최서희.
그래도 자신의 전류를 맞은 거라, 심한 상처는 안 입은 듯했다.
그저 멀리 날아간 총격으로 인해 쉽게 몸을 못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기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휘리릭!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최서희에게 와이어를 날렸다.
와이어가 날아가, 최서희의 상체를 묶었다.
이에 최서희가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자바니아를 꺼내 들었다.
“저의 승리입니다.”
나는 자바니아를 최서희의 목에 가져가며 말했다.
최서희는 나를 올려다봤다.
패배해서 억울하다기보다는, 내게 상당히 궁금한 것이 많은 표정이었다.
“대체… 제 전류를 어떻게……. 통제권을…….”
“…하다 보니까 되더라고요.”
나는 내 목에 걸린 엔드리온의 조각, 그리고 내 손가락에 있던 검은색 반지를 바라봤다.
두 아이템 모두 진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가 선을 넘게 해 주던 그 힘도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선을 넘던 순간의 그 감각. 그 감각은 아직도 기억이 나.’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선을 넘는, 그러니까 나의 한계를, 아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이 감각.
이 감각만을 계속 기억하고, 또다시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면… 나는 분명 회귀 전보다 몇백 배는 강해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