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 * *
“어떻게……. 대체 어떻게…….”
최서희는 이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방금 일어난 상황이 여전히 이해가 안 되었다.)
“분명히… 박유진 씨는 저의 전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그렇죠. 못 통제했죠.”
박유진은 눈에서 흘러내리던 피를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방금… 우연히 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어요.”
“한계…요?”
“네. 원래는 제가 다룰 수 있는 전류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근데 방금 최서희 씨의 전류를 상대하면서, 저는 저의 한계를 잠깐이나마 뛰어넘었죠.”
박유진은 자신의 목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최서희는 박유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의 목에는 목걸이가, 정확히는 푸른색 돌멩이가 하나 걸려 있었다.
“아무튼, 이 싸움은 저의 승리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아아, 네, 그건…….”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탓에 최서희는 차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자신이 박유진의 와이어에 묶여 있고, 현재 박유진은 단검을 그녀의 목 근처에 가져간 상태였다.
누가 봐도 최서희가 패배한 상황이었다.
‘더 할 수는 있어. 할 수는 있지만…….’
최서희는 박유진을 올려다봤다.
박유진은 이미 한 차례 그녀의 전류를 완전히 통제했다.
최서희는 아직 더 싸울 수 있었지만, 의미가 없는 짓이라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암만 전류를 이용해 박유진을 더 공격해 봤자, 자신의 전류가 그에게 닿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박유진도 지금 지쳐 보이기는 하지만… 더 싸울 수는 있어 보이네.’
아마 5분.
최서희가 봤을 때, 박유진은 5분도 못 버틸 상태로 보였다.
그러니까 그를 5분 안에 끝낼 수 있으면 자신이 승리하겠지만…….
‘못 이길 거야, 아마.’
최서희는 무슨 짓을 해도 지금 못 이길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애초에 뭘 하기 힘든 것이 박유진은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상황 자체가 지금 최서희에게 너무 불리했다.
“예……. 제가… 졌습니다.”
생각을 마친 최서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분했지만, 최서희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한… 박유진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일렉트로 마스터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박유진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뒤, 와이어와 단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경기장의 출구로 향했다.
“아… 아아…….”
이에 최서희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박유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분해. 분하기는 해. 너무 허무하고, 너무 쉽게 진 건 분해. 하지만…….’
최서희는 박유진에게 다시금 동경심이 들었다.
자신보다 어리고, 등급도 훨씬 낮은 헌터였다.
하지만 그는 대단했고, 그처럼 되고 싶었다.
“바, 박유진 씨!”
최서희는 박유진을 불러 세웠다.
평소에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긴장해,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최서희는 지금 긴장을 안 한 채, 진심을 다해 박유진을 마주하고 있었다.
“바, 박유진 씨의 기술들을… 제, 제게 가르쳐 줄 수 있을까요?”
남의 기술을 함부로 알려 달라고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실례일 수도 있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최서희는 진심으로 박유진과 같은 헌터가 되고 싶었기에, 감히 이런 부탁을 했다.
그리고 최서희의 부탁에, 박유진은 그녀를 돌아보면서 피식 웃었다.
“저의 기술을 배워서 무엇을 하려고요?”
“네? 그, 그건…….”
“저를 다음에 이기기 위해 배우려는 거죠?”
“…네. 저, 저는 박유진 씨보다 더…….”
“그렇겠죠.”
박유진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했다.
“아마 저에게 진 게 지금 분해서, 다음에는 반드시 이겨 보겠다……. 지금 대충 이런 생각들을 하고 계셨죠?”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에요.”
최서희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 했다.
하지만 박유진에게 진심으로 말하는 지금.
어째서인지 말이 잘 나오고 있었다.
“저는 그저 단순히 박유진 씨를 이기고 싶어요. 명성이니 자존심이니,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냥 제 자신을 위해서, 박유진 씨를 뛰어넘고 싶어요.”
“예, 알고 있어요.”
박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최서희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그렇다면 혹시 제게 박유진 씨의 기술들을…….”
“죄송하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그, 그렇군요.”
박유진의 거절에 최서희는 당황했으나, 동시에 납득을 했다.
자신만의 기술을 남에게 쉽게 알려 주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익숙하지 않던 최서희.
그녀는 부탁을 거절당하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 표정이 되었다.
이에 박유진은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애초에 제 기술들은 가르치고 싶어도 못 가르치는 것들이거든요. 게다가 무엇보다 최서희 씨는 제 기술을 안 배우는 편이 더 좋을 거예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예요.”
최서희가 고개를 갸웃하자, 박유진은 바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저는 전류를 극한으로 활용하는 헌터예요. 하지만 최서희 씨는 아니에요. 활용보다는 전류의 위력에 재능을 타고나셨어요.”
“위력…….”
“저는 전류를 이곳저곳에 활용해서 잔재주를 부리지만, 최서희 씨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위력 하나만 믿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시는 편이 더 좋을 거예요.”
박유진의 말에 최서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최서희는 전부터 자신의 전류가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 만약 위력을 올리는 것에만 계속 집중하면… 저는 언젠가 박유진 씨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이길 거라고는 보장은 못 해 드리지만, 이길 가능성은 올라가겠죠. 아까도 저랑 싸우면서 눈치챘겠지만, 제가 다룰 수 있는 전류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런 거라면…….”
“지금까지 했던 대로만 계속하세요.”
박유진의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에게 한 번 졌다고 침울하실 거 없어요. 최서희 씨는 일렉트로 마스터로서의 재능이 확실하니까요.”
“…아.”
최서희는 자기도 모르게 박유진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의 말들을 듣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수긍하고 있었다.
“오늘 이렇게 싸울 수 있어서 기뻤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서로 더 강해진 모습으로 붙어 보도록 해요.”
“네? 에? 아아, 예! 아, 알겠어요!”
“후훗. 그럼 이만 가 보죠.”
박유진은 이 말과 함께 다시 가던 길을 돌아갔다.
그리고 최서희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내게 재능이…….”
본인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박유진에게 그 말을 듣자, 최서희는 더욱더 확신했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재능을 더욱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눈앞에 있는 저 남자를 이기기 위해, 반드시.
* * *
“하아, 하아. X발. 갑자기 막판에 말을 거네.”
경기장을 벗어나, 스타디움의 복도에 들어선 후.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기서 조금만 더 있었다가는… 경기장에서 쓰러졌겠네.”
눈과 코에서 아직도 피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내장 쪽도 살짝 다친 것 같았다.
“무리했으니까, 당연한 건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C급 헌터의 신체로 A급 헌터의 전류를 완벽히 다루었다.
아무리 나라도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해냈네.”
회귀 전에는 이렇게까지 무리해도 대체로 성과가 없었다.
피를 토해 가면서까지 몸을 혹사시켜도, 나는 결코 그 선을 넘길 수 없던 것이다.
“…후우.”
나는 내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방금 이 손으로 내 한계를 뛰어넘었다.
처음으로 내 안에 있던 선을 넘었다.
‘물론 이 둘이 뭔가 나를 도와준 것 같았지만 말이야.’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 돌멩이와 내 손가락의 검은색 반지를 바라봤다.
아까 그 선을 넘을 때, 이 두 아이템에게서 어떠한 힘이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은 그 힘이 전부 사라져, 아마 당장 내 한계를 또 넘어 보라고 하면 못 할 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선을, 내 한계를 한 번 넘었다는 거야.’
넘은 것과 안 넘은 것은 매우 컸다.
그러니까 경험의 유무는 앞으로의 내 성장에 있어 꽤 중요했다.
이 감각을 잊지만 않고 계속 노력하면…….
“이번에는 진짜 될지도 몰라.”
S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수준을 노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근거는 전혀 없었으나,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부터라도 연습을 해 보고 싶었지만…….
“아으으으.”
일단 치료가 먼저였다.
아니, 치료보다는 당분간 요양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최서희를 진짜 이겼네.”
나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 멀리 경기장 쪽에서, 수많은 관객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저 사람들 모두, 내가 최서희를 이기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니까 내가 최서희의 전류를 완벽히 통제해 내는 것을 봤다는 뜻이었다.
‘전생과는 여러 가지 의미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겠네.’
생각보다 일찍 사람들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이어질지, 아마 생각을 해 보는 편이…….
“유진아! 괜찮아?”
“음? 아, 세리 누나.”
복도 끝에서 들려온 하세리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안 좋아 보여서 바로 너 찾은 건데……. 몸 많이 안 좋아? 너 지금 눈과 코에서 피가…….”
“심각한 건 아니야. 아마 치료받고, 하루 이틀 요양 좀 하면 괜찮아질 거야.”
“일단 치료받으러 가자. 그리고… 미안. 너를 무리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신경 쓰지 마. 게다가 중요한 건 내가 이겼다는 거니까.”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이에 하세리도 내게 미소를 지어 줬다.
“고생했어, 유진아. 네가 한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이제 쉬도록 해. 나머지 일들은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후훗. 든든하네. 그나저나 누나. 우리 오늘 바로 서울로 올라갈 거야?”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는데, 네 상태 보니까 부산에 조금 더 있다가 가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그치. 부산에서 요양을 조금 하다 가는 것도… 아. 아니다. 오늘 바로 가자.”
“네 여동생 때문에?”
“그것도 있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민아와 약속한 게 있어서. 방학 끝나기 전에 같이 1박 2일로 여행 가기로 했거든. 빨리 돌아가서…….”
“흐음, 1박 2일?”
하세리는 갑자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아. 생각해 보니까 부산에 3박 4일 정도만 요양하고 가자. 아니, 그것도 짧다. 그냥 일주일, 아니. 그냥 더 방학 끝날 때까지 여기서 보내고 갈까?”
“누, 누나? 갑자기 또 왜…….”
하세리의 급발진에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