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 * *
“이민아와 여행 갔다 올 거니까, 하룻밤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지?”
“오빠,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하세리와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던 유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하룻밤 정도는 혼자 보내도 전혀 문제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갔다 와.”
“그래. 너도 이제 어린애는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말만 이렇게 했을 뿐, 사실 유나를 혼자 놔둘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신예진에게 따로 부탁해야지.’
유나와 거리를 둔 채 지켜보라고, 신예진에게 그리 부탁할 생각이었다.
나는 얼마 전에 유나에게 신예진을 소개했다.
그 덕분에 사실 신예진은 집에 들여, 집 안에서 유나를 하룻밤 보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신예진에게 집 밖에서 유나를 보라고 시킬 예정이었다.
‘유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니까.’
유나를 따로 배려해, 혼자 집에 있을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물론 말만 혼자 있는 거지, 사실상 신예진이 따로 그녀를 보고 있기는 할 것이다.
‘유나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회귀 후, 내가 만든 적들이 몇몇 있었다.
그 적들이 있는 한, 유나를 혼자 두기에는 살짝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그 몇몇 적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유나를 이렇게나마 봐 줘야 했다.
“아, 맞다. 오빠, 나 집에 친구들 불러도 될까?”
“…집 너무 어지럽히지만 마.”
“응, 알겠어. 헤헷.”
“흐음, 친구들이라…….”
나는 해맑게 웃는 유나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여러모로 행복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는 나와 유나, 둘 다 하루하루 살기 바빴다.
그래서 우리 남매는 친구 따위를 제대로 만들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어느 정도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자, 유나는 이렇게 행복한 학창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것도 신예진에게 따로 말해야겠네. 유나가 친구들과 우리 집에서 놀 것 같으니 참고하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들을 정리하며, 다시금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일의 여행을 위한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오빠, 강원도로 쪽으로 간다고 했나?”
“바닷가 근처에 숙소 잡았거든. 거기서 좀 놀다 올 거야.”
“으으음. 바닷가 근처의 숙소에서 논다? 그것도… 민아 언니와 단둘이?”
“그치.”
“오오오. 그럼 둘이 같은 숙소의 같은 침대에서 같이… 아악?!”
나는 내 여동생의 이마를 살짝 때렸다.
이에 유나는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야야……. 아, 왜 때려?!”
“머릿속에 음란한 것들이 가득해 보여서, 정신 차리라고 한 대 쳐 준 것뿐이다.”
“뭐가 음란하다는 건데? 애초에 남녀가 단둘이 여행을 가는 거면, 누구나…….”
“그래, 그래. 알아서 생각하거라.”
나는 피식 웃으며 짐을 마저 챙겼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내일 집에 초대한다는 친구들 말이야.”
“으, 응? 왜?”
“남녀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 건데, 혹시 그중에 남학생도 있어?”
“어어어어, 그, 그건…….”
내 질문에 유나의 눈동자가 수상할 정도로 떨렸다.
“어, 없는 건 아닌데……. 딱 한 명 있는데, 그게…….”
“알겠다.”
유나에게도 사생활이 있으므로, 깊게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빠로서는… 으음…….
“집에 부르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건전하게만 놀아라. 잊었을까 봐 말하는 건데, 너 아직 중학생이다.”
“나, 나도 알거든! 그, 그게 왜?!”
“그냥 그렇다고. 아무튼, 그 남자애 사진 있냐?”
“…없어.”
“대답 늦은 거 보니 있구나.”
“어, 없다니까!”
“한번 보여 줘 봐.”
“…으으.”
유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자신의 스마트폰에 있던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같이 셀카 찍은 거냐? 근데 이 친구……. 흠, 되게 예쁘장하게 생겼네. 너 이런 취향이었구나.”
“뭐, 뭔 개소리야! 아, 아무튼 봤으니까 됐지!”
“그래, 뭐…….”
나는 유나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근데 있잖아.”
“응?”
“너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는 건 알겠는데. 혹시 나중에 다른 친구들 다 돌려보내고, 저 남자애와 단둘이 있을 생각은 아니지?”
“…아, 아니지! 내, 내가 왜 그런…….”
“너 거짓말 진짜 못하는구나.”
“무,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래, 인마. 알겠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건 안 바라니까, 제발 건전하게만 놀아라. 너무 늦게까지 놀지도 말고. 알겠지?”
“아, 알겠어, 오빠.”
“그거면 됐다. 그리고… 혹시 용돈 더 필요하냐? 요즘 데이트 비용 만만치 않을…….”
“내, 내가 알아서 할게!”
유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내게 소리쳤다.
“오, 오빠는 오빠 일이나 신경 써! 내일 민아 언니와 놀러 간다면서!”
“그치. 근데 뭐,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애초에 이민아와 놀러 다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아예 1박 2일로 놀러 가는 거였지만, 아마 평소와 크게 다를 건 없을 듯했다.
“나는 지금 그보다 너의 그 예비 남자 친구가 더 신경 쓰이는데? 그래서 둘이 같은 반이야? 아니면 뭐, 연상 연하?”
“아으으! 신경 쓰지 말라고! 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오, 오빠는 얼른 여행이나 가라고!”
얼굴이 더더욱 빨개진 채 소리치는 나의 여동생.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오오, 그러니까 유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거야?”
“남자 친구는 아니고 뭐, 그, 뭐시기냐. 썸남? 그거라던데.”
“오오오. 우리의 어리고 여린 유나가 남자를…….”
이민아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남자애 어떻게 생겼는지 봤어?”
“사진으로는 봤지.”
“어떻게 생겼어?”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까 놓고 말하자면, 뭔가 기생오라비스러운 느낌?”
나는 어제저녁에 봤던 사진을 떠올리며 말했다.
“여리여리하고……. 잘생겼다기보다는 예쁜 느낌이더라.”
“유나 그런 취향이었구나. 의외네.”
“왜 의외인데?”
“그야… 유나는 뭔가 브라콘 기질이 있어서 뭔가 너처럼 듬직한 그런 느낌의… 아악?!”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인마.”
나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이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브라콘은 무슨, 브라콘이야.”
“아니, 근데 생각해 보면 너희 남매는 의외로 그런 요소들이… 크아악?!”
“매를 벌어요, 매를.”
나는 이민아의 머리를 한 대 더 치며 말했다.
이에 이민아는 울상을 지었지만, 더 이상 이상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유나의 오빠로서 유나에게 썸남이 생긴 거 어떻게 생각해?”
“특별한 생각은 없다. 오히려 잘된 거지. 학창 시절에 연애 좀 해 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뭐야? 반응이 생각보다 시시하네.”
“나는 유나에게 크게 바라는 게 없거든.”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건강하게 계속 자라 주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라고 나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좀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네. 유나, 얘는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이상한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이네.”
“에이, 내가 봤을 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그래?”
“응. 내가 유나와 요즘 자주 어울리고 다녔잖아. 유나, 얘 생각보다 엄청 성숙해. 아마 남자 보는 눈은 확실할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기는 한데……. 그래도 영 걱정이 되거든.”
회귀 전에 유나를 이미 한 번 잃은 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걱정들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괜찮다니까. 너도 유나 좀 믿어 봐. 뭐, 됐고. 야, 얼른 먹자. 나 배고프다.”
“어, 그래. 먹어야지. 먹는데…….”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눈앞의 음식들을 바라봤다.
“야, 너는 강원도까지 와서 육회를 먹겠다는 건 대체…….”
“아, 왜? 맛있잖아!”
“아니, 바닷가 근처까지 와서 먹는 게 육회인 건 뭔…….”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물 밖을 슬쩍 바라봤다.
현재 강원도의 경포 해수욕장으로 온 상태였다.
이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적당히 놀다가 저녁을 먹으려던 터였다.
원래 계획은 바닷가 근처니까 당연히 회를 먹을 줄 알았는데…….
“야, 솔직히 회보다 날고기가 훨씬 맛있지!”
“그러니까 너의 그 늑대인간 입맛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라니까.”
“아, 몰라! 나 육회 아니면 안 먹어.”
“그래, 뭐……. 이왕이면 생선보다 고기가 낫겠지.”
“그치?!”
“그래, 그래.”
어차피 나는 먹는 거에 큰 욕심이 없던지라, 그냥 이민아에게 맞춰 주기로 했다.
근데 회귀 전에 이민아는 맨날 육회 먹다가, 나중에 가서는 분명…….
“이러다가 너 그냥 날고기도 그냥 먹겠다.”
“날고기? 아, 맞다. 나 지난번에 날고기 한 번 그대로 먹어 봤는데, 맛이 의외로 괜찮더라?”
“아니, 진짜로 먹어 본 거냐?”
회귀 전에도 이민아가 날고기를 먹기는 했었다.
근데 그땐 대학 졸업 이후였지, 이렇게 빨리 먹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회귀한 것이 이민아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것이 확실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회귀한 지 약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이때까지 잘했으니,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속으로 이렇게 합리화했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들을 정리하던 중.
“아, 맞아. 박유진, 너 조만간 집을 새로 구한다고 했지?”
“아마 겨울 방학 중으로 월셋집 하나 구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구나. 그럼… 혹시 나와 전에 했던 약속을 기억…….”
“유나 방과 네 방. 그리고 내 방. 이렇게 방 세 개 있는 집으로 구할 거니까, 걱정 마.”
“지, 진짜지?!”
이민아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럼 나 조만간 너네 집에 가서 살아도 되는 거야?”
“자주 놀러 오고, 자주 자고 가는 건 괜찮지만, 아예 사는 건 아직 무리지. 너 일단 네 가족에게서 독립부터 해야 하잖아.”
“아, 뭐. 그, 그렇지.”
“후훗. 그러고 보니, 너 길드 인턴? 그건 조금 알아봤냐?”
“알아보기는 했는데… 엄마가 그냥 자꾸 나보고 우리 길드에 있으라 하시네. 딴 길드는 갈 생각도 하지 말고.”
“너를 독립시키기 싫은 건가.”
“모르겠어. 정작 아빠는 별말씀을 안 하시는데. 그것보다 나 일단 직접 돈 모으려고 우리 길드에서 일을 간단히 시작한…….”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식당.
그 식당에서 나와 이민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꽤 괜찮은 여행이네.’
특별한 목적이 없는, 말 그대로 놀고 쉬기 위한 여행.
이 여행 동안 이민아와 같이 이곳저곳 놀러 다니며, 푹 쉴 수 있었다.
내일까지 이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은 내가 쉬는 꼴을 보기 싫은 듯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오늘 저녁.
해수욕장 근처에 갑자기 게이트를 불러내지 않았을 터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