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 * *
“몬스터들이 생각보다 진짜 약하기는 하구나.”
“9급… 아니, 9급도 안 되는 게이트일 거야.”
나는 내게 달려오던 갑옷 입은 병사를 죽이며 말했다.
“아마 E급이나 D급 헌터들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그런 게이트지.”
“그 정도면… 나 혼자서도 이 게이트를 닫을 수 있으려나?”
“하고도 남지. 애초에 이 정도 게이트면 나도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자바니아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아무튼 빨리 가자. 아마 이제 곧 이 게이트의 보스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응, 그럴 거 같아. 지금 내 본능도 그렇게 말해 주고.”
이민아는 게이트의 안쪽을 향해 가리켰다.
“아마 저쪽으로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올 건데… 왼쪽으로 가면 보스 몬스터가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네 본능을 한번 믿어 보자.”
나는 새삼스럽게 이민아의 본능이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회귀 전, 나는 이 게이트에 온 적이 있어, 내부 지리를 얼추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방금 이민아가 말한 방향이 정확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진짜 예언에 가까운 본능이라니까.’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이민아가 지닌 저 늑대인간의 본능은 유용했다.
실제로 저 본능 때문에 위험을 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는 고지대로 이동할게. 너는 정면으로 계속 가도록 해.”
“알겠어.”
이민아는 늑대인간 폼으로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나는 근처의 고지대로 올라가, 위에서 이민아를 조용히 따라갔다.
“이민아. 전방 약 20m. 서른네 마리 있다. 창을 든 몬스터 스물일곱 마리에, 활을 든 몬스터는 일곱 마리. 활을 든 놈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너는 본대를…….”
“이야야야야!”
“…그래. 알아서 해라.”
나는 활을 든 몬스터에게 자바니아를 던지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나와 이민아는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얼마 안 가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위치한 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방에 들어가자마자, 이민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박유진?”
“음? 왜?”
“저 거북이가 사라도켈이야?”
“그치.”
“…X나 크네?”
“큰 거북이라고 말했잖아.”
“아니, 저렇게 클 줄은 몰랐지!”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앞의 보스 몬스터를 바라봤다.
탱크 다섯 개를 합친 듯한 크기의 거북을 말이다.
“저거 우리 잡을 수 있는 거 맞아?”
“진정해, 인마. 그리고 응. 잡을 수 있어. 저건 덩치만 큰 거지, 의외로 별것 없는 녀석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앞을 바라봤다.
현재 눈앞에는 사라도켈과 그를 지키는 병사들이 있었다.
“병사들은 내가 맡을게.”
병사들이 던지는 창을 전류로 막으며 이민아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는 사라도켈을 잡도록 해. 참고로 저놈의 껍질은 공격하지 마. 껍질로 안 덮인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공격하고, 특히 눈. 눈부터 공격해, 알겠지.”
“아, 알겠어! 그럼 바로 간다!”
“빨리 끝내자.”
이민아는 거대한 거북이를 향해 돌진했고, 나는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에게 전류를 날리기 시작했다.
* * *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네?”
“이 게이트 쉽다고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인마.”
나는 숨어 있던 몬스터의 숨통을 끊은 뒤, 사라도켈의 시체 옆에 있던 이민아를 향해 다가갔다.
“확실히 죽은 거지?”
“숨은 안 쉬고, 심장도 안 뛰고 있으니까… 죽은 거 맞겠지?”
“이 정도면 죽은 거지. 사라도켈에게 언데드와 관련된 특성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나는 사라도켈의 시체를 자바니아로 몇 번 찔러 봤다.
하지만 예상대로 반응은 없었다.
즉, 확실히 죽은 것이었다.
“오케이. 아마 게이트의 핵은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나올 거다.”
“핵은 지금 파괴 안 할 거지?”
“그치. 그건 협회 쪽에게 먼저 연락한 후에 해야 되니까.”
나는 자바니아에 묻은 피들을 털어 낸 뒤, 단검집에 집어넣었다.
“이민아. 일단 사라도켈 시체 있잖아.”
“응? 이거 왜?”
“얘 시체에서 등껍질만 따로 뜯어내고 있을 수 있어?”
“등껍질을 뜯으라고?
“네 늑대인간 손톱을 이용하면 어찌어찌 뜯어낼 수 있을 거야.”
“어어, 알겠는데……. 이 등껍질은 왜?”
“꽤 귀한 재료거든. 그래서 몰래 좀 가져가려고.”
사라도켈의 등껍질을 가루 내서 원하는 내 장비들 위에 코팅할 예정이었다.
그럼 내 장비들은 전보다 더 강한 내구도를 얻을 수 있었다.
‘회귀 전에는 혼자 다 했지만, 이번에는 하윤경에게 맡기자.’
과학적인 지식은 나보다 많을 터이니, 아마 더 잘하지 않을까 싶었다.
뭐, 아무튼.
이 게이트의 몬스터들에 대한 건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될 듯했다.
지금부터 나는 더 중요한 걸 해결해야 했다.
“후우우.”
“음? 박유진? 어디 가?”
“잠시 확인할 게 있거든. 금방 돌아올게.”
“어어, 아, 알겠어.”
이민아는 무언가 미심쩍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이내 내 부탁대로 등껍질을 마저 뜯었다.
그리고 나는 사라도켈이 있던 방을 지나, 게이트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분명 이쯤이었는데……. 아, 찾았다.’
잠시 걷자 이내 내 앞에 거대한 방이 나타났다.
그 방 안에 들어가자, 수많은 알들이 있었다.
전부 밝은 빛을 띠고 있는, 반투명한 알들이었다.
마치 물고기들의 알 같았다.
차이점이라면 크기가 타조알만큼 크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여기보다 더 안쪽이었지.’
나는 그 알들을 전부 지나쳤다.
그리고 이내, 작은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방에 도달했다.
‘새끼 몬스터들을 보관하는 방. 이 방이 맞아.’
수십 마리의 작은 몬스터들, 그러니까 인간과 해양 생물들을 반쯤 섞은 몬스터들.
그 몬스터들의 새끼들이 전부 게이트의 이 방 안에 모여 있었다.
“…분명 이곳에 있을 거야.”
이 게이트는 10년 정도 일찍 이곳에 나타났다.
그것도 내 근처에 말이다.
‘회귀 전에 이 게이트는 남해 쪽에서 나타났어. 하지만 오늘 강원도에, 그것도 내가 있던 장소 근처에 나타났지. 분명 그런 데에 이유가 있을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근처를 몬스터의 새끼들을 계속 살폈다.
그리고 이내 찾아냈다.
“…드베르그.”
문어와 인간을 반반 섞은 듯한 외형의 몬스터.
회귀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작고 약한 모습이었다.
‘그때는 열 살 아이 정도의 크기였는데……. 지금은 다섯 살도 안 된 것 같네.’
모습은 달랐지만, 내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작은 녀석이 그 드베르그가 맞다고 말이다.
나는 다른 새끼 몬스터들을 옆으로 밀쳐낸 뒤, 드베르그를 들어 올렸다.
내 손길에 드베르그는 놀라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래 봤자 새끼 몬스터였다.
내게 전혀 피해를 끼치지 못했다.
‘죽이자.’
나는 자바니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직 많이 어린 드베르그의 가슴을 향해 칼날을 가져갔으나…….
‘흠……. 근데 드베르그를 역으로 이용할 구석이 있으려나?’
나는 몇 개월 전에 봤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그 꿈에서 본 드베르그는 마치 주술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게이트에서 이상한 주술을 쓰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전부 약했지만, 분명 이 세계에서 쓰이지 않던 주술이었다.
‘드베르그……. 이 몬스터는 재능이 있었기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던 거겠지. 그럼 만약, 이 몬스터를 내가 키워서 역으로 내가 이용한다면… 만약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면…….’
나는 잠시 속으로 고민했다.
하윤경과 마찬가지로, 죽이기에는 조금 아까울 수도 있는 몬스터였다.
아무래도 잠시 고민을 해 보는 편도 나쁘지 않을…….
“…음?”
속으로 생각들을 정리하던 중,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까…….
“크르르르!”
나를 향해 달려오는 이민아가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본능에 살짝 먹힌 상태였다.
“또 뭔…….”
이민아가 왜 저런 상태가 됐는지 파악을 하려고 했으나… 그럴 틈도 없이 어느새 이민아는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고는…….
“크르르라라라!”
“엇?”
그녀는 내 손에 잡혀 있던 드베르그를 낚아챘다.
그리고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이민아는 드베르그의 목을 꺾어 버렸다.
즉… 이민아는 순식간에 드베르그를 죽인 것이었다.
“어? 어어, 이, 이민아? 방금 왜…….”
“죽여야 해.”
“음?”
“이 새끼 몬스터. 죽여야 해. 반드시 죽여야 해. 그래야만 한다고, 내 본능이 말해 주고 있어.”
이민아는 본능에 먹힌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죽으면 엄청나게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내 본능이 그렇게 말해서… 여기로 달려와서 죽인 거야.”
“…네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는 거지?”
“응.”
“뭐, 알겠다. 일단 진정해. 네 본능부터 가라앉히자. 최근에 본능 통제하는 법, 나와 연습한 거 기억하지. 그거 그대로 해 봐.”
“아, 알겠어. 우선 심호흡을…….”
“맞아, 그렇게 천천히 해.”
이민아의 본능을 가라앉히며, 나는 바닥에 떨어진 드베르그의 시체를 바라봤다.
‘으음. 그래도 죽이는 편이 더 나았겠다.’
드베르그가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따를 가능성도 분명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죽이고 후환을 없애는 편이 더 합리적일 듯했다.
‘게다가 이민아의 본능이 저렇게까지 튀어나온 거면, 그냥 죽이는 편이 더 나을지도.’
아무튼, 드베르그를 죽이기 위해 이 게이트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이민아가 그 목적을 완수했다.
‘근데 드베르그를 죽였으니, 미래가 완전히 바뀌는 건가?’
여름 방학 때 봤던 그 꿈에 따르면, 게이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원인은 드베르그 때문인 듯했다.
지금 드베르그를 죽였으니, 어쩌면 미래가 크게 달라질지도 몰랐다.
“후우, 후우. 으음……. 오케이. 박유진. 나 본능 가라앉힌 거 같아.”
“그렇게 보이네. 좋아. 일단 나는 여기서 볼일 다 봤으니, 보스 방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사라도켈의 등껍질을 몰래 조금 챙기고, 내가 세리 누나에게 연락할게. 그럼 아마 협회에서…….”
본능을 가라앉힌 이민아와 함께, 나는 다시금 보스 방으로 향해 걸어갔다.
근데 그러던 도중,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
“으윽?”
“바, 박유진? 왜 그래? 괜찮아?”
“갑자기 몸이 무거운……. 윽?”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으, 으음?”
하지만 정신을 잃은 것과 동시에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떠 보니, 어둠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둠뿐이었다.
눈을 감는 것과 눈을 뜬 것에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여기는 어디…….”
대체 뭔 상황인가 싶었는데…….
- 흐으음. 어어, 아. 됐다. 여신님. 박유진과 연결됐습니다.
- 아, 말하면 되는 거지?
- 예, 말하면 됩니다.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들은 적 있는, 내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남녀의 목소리였다.
- 아, 아. 박유진. 내 말 들려? 그보다, 내가 누군지는 알아?
“나를 회귀시킨…….”
- 오, 맞아. 잘 기억하네. 게다가 지난 여름 때, 너에게 꿈을 보여 줄 때 나타나기도 했는데, 기억나?
“전부 기억난다. 그보다, 지금은 대체 왜…….”
- 아무래도 이제 슬슬 나도 ‘조금은’ 개입해도 괜찮을까 싶어서.
“개입?”
-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그걸 다 설명해 줄 시간도 없어. 그러니까 딱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말을 계속했다.
- 드베르그를 죽임으로써, 너는 인류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어. 그리고 이것에 대해, 내가 이야기해 줄 게 있는데……. 혹시 들을 의향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