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69화 (169/240)

169화

* * *

“3일 뒤에 게이트가 수십 개 나타날 거라고?”

“아마 서울역 상공에 나타날 거야.”

서울역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남산 공원.

그곳에 헌터들은 베이스캠프를 세운 채 서울역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게이트를 주시하고 있었다.

“서울역 근처에 수십 개의 게이트들이 나타나면 거기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나오겠지. 그렇게 몬스터들은 서울역을 중심으로 점점 더 세력을 넓혀 갈 거야.”

“세력을 넓히면 어떻게 되는데?”

“더 많은 게이트를 소환하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하세리의 말에 대답했다.

“다곤의 목적은 인류를 지구에서 쓸어버리는 거야. 그러기 위해 물량 공세를 하려는 것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이 예측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이 정보들을 몰래 주입한 것만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이트를 더 많이 소환할 수 있는 땅이 필요해.”

“그러니까 더 많은 게이트를 소환하기 위해 공간이 더 필요하니, 다곤이라는 놈이 지금 땅따먹기 전쟁을 시작했다는 거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이에 하세리는 턱을 만지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정도면….막을 만하지 않을까?”

이내 생각을 정리한 하세리는 내게 말했다.

“다곤이 세력을 확장하는 걸 막으면 그만인 거잖아. 지금 다른 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으니 아마 우리도 물량으로 몰아붙이면…….”

“누나, 아까 다곤을 직접 공격해 봤잖아.”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곤에게 인간의 공격은 안 통해. 아마 핵폭탄 수십 개를 날려도 다곤은 멀쩡할 거야.”

“하지만 네 공격은 통했잖아?”

“나는… 조금 특수한 경우거든.”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색 돌멩이, 그리고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검은색 반지를 바라봤다.

“전 세계 사람 중에 나와 같은 경우인 사람들이 몇 명은 더 있을 거야. 하지만 당장 다곤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

“그럼 말해 줘. 어떻게 하면 다곤에게 공격을 통하게 할 수 있어? 말만 해 주면 내가 바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몰라.”

“모른다니?”

“신과 관련된 어떠한 일을 해야 되는데, 누나가 할 만한 게 있는지 모르겠어.”

검은색 반지를 얻은 건 엔드리온의 조각이 가르쳐 줬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과 비슷한, 신의 힘이 담긴 반지를 하세리가 찾아낼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물건을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지 나 또한 몰랐다.

“그러고 보니 누나. 서울역 쪽으로 사람들을 몇 명 보냈다고 했지?”

“몇 시간 전에 보냈지.”

“그 사람들 돌아왔어?”

“응, 전부 무사히 돌아왔어. 근데 그 사람들 모두…….”

“서울역 안으로 못 들어갔지?”

“…응, 맞아.”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울역 쪽을 바라봤다.

초록색 벽이 여전히 서울역 주위에 있었다.

“저 초록색 벽을 못 통과했다고 해.”

“그럴 거 같더라.”

서울역을 완전히 뒤덮은 원통 모양의 벽.

외부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벽이었다.

“지하로도 못 들어갔지?”

“응, 저 벽은 지하까지 이어져 있더라. 그것도 아주 깊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못 들어가겠더라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렇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누나. 내가 서울역에서 돌아온 지 몇 시간 지났는지 알아?”

“여섯 시간 정도 지나지 않았나?”

“그러네. 여섯 시간 정도 지났겠구나.”

아까 낮 12시쯤에 다곤과의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현재는 오후 6시.

겨울이라 해가 어느새 완전히 진 후였다.

“아까 다른 헌터들에게 들은 건데, 전국의 헌터들을 전부 서울로 호출했다면서?”

“보통 사태가 아닌 것 같았거든.”

“잘했어. 누나 말대로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쁘지 않아? 전국의 헌터들이 수천은 될 텐데, 그 사람들을 누나가 전부 통솔해야 하는 거잖아.”

“쉽지는 않을 거 같더라. 수백 명까지는 통솔한 적은 있어도, 수천은 처음이거든.”

하세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 내일 아침쯤에 모든 헌터들이 서울에 모일 거야. 나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지겠지.”

“그렇겠네. 근데 누나, 사람들을 모으는 건 좋은데, 저 초록색 벽 있지? 저 벽을 없애지 않는 이상 다곤을 잡으러 못 갈 거야.”

“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 연구원들과 마법사들을 있는 대로 투입해서 저 벽을 분석하고 있어. 일단 그 사람들 말로는 내일 아침까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더라.”

“…그렇구나.”

나는 하세리의 말에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 내일 아침까지 저 벽을 못 뚫을 것이었다.

내 직감이 그렇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다곤은 3일 동안 저 벽 안에 숨어 있을 생각인 건가?’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 의문들의 대한 해답을 찾기에, 현재 힌트들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나도 뭘 알아야 상황에 맞게 행동을…….

우웅.

“어?”

다시금 느껴지는 진동.

이번에는 엔드리온의 조각에게서 느껴지는 진동이 아니었다.

검은색 반지가 진동하는 것이었다.

‘뭐지?’

허구한 날 진동하는 돌멩이와는 달리, 이 반지가 스스로 진동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뭔가 싶었는데, 그 순간.

“…어엇?”

갑자기 내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지금 현 상황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갑자기 많은 양의 정보가 머리에 들어와 순간적으로 어지러웠다.

“응? 유진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누나. 좀 쉬고 있어.”

“응? 너 어디 가?”

“잠깐 들를 곳이 있거든. 내일부터 바빠질 테니까 쉴 수 있을 때 쉬고 있어.”

“후훗. 알겠어. 대신 이따 다시 와 줘. 나 혼자 있으면 심심하거든.”

“…알겠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밤에 다시 하세리를 보러 올 일은 없을 듯했다.

【 거미줄 】

“그러니까 다곤은 지금 내게 입은 상처 때문에 회복 중이라는 건가?”

남산 공원의 한적한 곳.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정보들을 정리했다.

“저 커다란 게이트를 유지하는 것과 수십 개의 게이트를 불러내는 건 다곤이 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다곤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아까 하세리와 있을 때 내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정보들 때문에, 지금 내가 뭘 해야 할지 조금씩 갈피가 잡혔다.

“다곤은 현재 회복하기 위해 서울역 주위에 결계를 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는 중……. 회복하는 데 3일이 걸리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곤을 죽이면 게이트가 사라진다……. 그래. 정리하자면 대충 이런 것 같은데…….”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반지가 준 정보들 덕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남았다.

“저 초록색 벽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무엇보다 다곤을 내가 죽일 수 있는 건가?”

다곤을 죽이는 것.

이 점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었다.

일단 다곤이 진짜 신인지 몰랐… 아니, 그보다 신이라는 존재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까 다곤과 싸울 때, 다곤은 자신을 불멸자라고 했어. 그렇다면 죽일 수 없는 존재인 건가? 만약 죽일 수 없는 거면, 다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확실한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 해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이것을 일단 하세리와 이야기를…….’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하세리를 찾아가려고 했다.

오늘 밤에 다시 그녀를 찾을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근데 그러려던 순간, 이번에는 엔드리온의 조각에게서 진동이 울렸다.

아니, 진동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돌멩이에게서 푸른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이내 한 여자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때 봤던 여신이냐?”

- 맞단다, 나의 축복을 받은 아이여.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여신.

그 형체가 뚜렷하지 않았으나 일단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것쯤은 알 것 같았다.

-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요점만 말하고 가 주마. 우선, 네가 생각한 것처럼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단다. 신들은 기본적으로 불사의 존재들이거든.

“…그럼 진짜로 방법이 없는 거야?”

- 끝까지 들어 보거라. 신들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신들의 육체는 소멸이 된단다.

“소멸?”

- 신들의 신체가 죽음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게 되면, 그들의 신체는 소멸하지. 그리고 신체가 소멸한 신이 다시 시체를 얻는 데 최소 100년은 걸린단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다곤에게 죽음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히면…….”

- 다곤 신체는 소멸할 거다. 그리고 다곤의 신체가 소멸하면, 저 차원의 틈도 같이 사라지겠지.

여신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아니, 하나만 덧붙이자면, 저 초록색 벽 말이다. 신의 축복을 받은 너라면 가볍게 통과할 수 있을 거다.

“뭐라고?”

-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스스로 잘해 보거라. 그리고 내가 준 이 지식들을… 다른 명부 신들을 상대할 때도 유용하게 쓰거라.

이 말을 끝으로, 푸른 빛으로 이루어졌던 여신은 사라졌다.

그녀와 나눈 대화는 매우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 덕분에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을 잡았다.

* * *

“주하나 씨, 이민아는…….”

“민아 양의 치료는 끝났어요.”

잠시 뒤.

나는 이민아의 치료가 이루어졌던 병원으로 향했다.

거기서 나는 주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근데 주하나 씨를 이렇게 또 만날 줄은 몰랐네요.”

“힐러들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니까요. 늘 보던 힐러들만 보는 거죠, 뭐.”

하얀 머리의 힐러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민아 양은 생명에는 지장이 전혀 없어요. 하지만 문제는 팔이 너무 심각하게 다쳤다는 거예요. 불구가 된 건 아니지만, 아마 재활하는 데 몇 개월은 걸릴 상처에요.”

“죽지 않은 게 어디에요. 뭐, 일단 고마워요. 주하나 씨가 이민아를 빠르게 치료하지 않았으면 어쩌면 이민아의 팔이 진짜로 불구가 됐을지도 모르죠.”

“저는 제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으음, 그보다 박유진 씨도 지금 상처를 좀 입은 것 같은데, 지금 제게 치료를…….”

“나중에 받도록 할게요. 지금 제가 갈 곳이 있어서요.”

나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민아를 잘 봐 주세요. 그 녀석 또 날뛰면, 그냥 마취시키고요.”

“네, 뭐, 알겠어요. 그리고 어디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따 돌아오시면 저 찾아오세요. 상처를 바로 치료해 드릴 테니까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돌아오는 것.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나는 주하나를 찾아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아마 심각한 상처들을 서너 개 얻고 돌아올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주하나와 간단한 대화를 마친 후, 나는 병원을 나와 서울역 쪽으로 향했다.

* * *

‘아무도 없네.’

서울역 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시민들이 전부 대피를 해 아무도 이 주변에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있기는 했다.

“신예진. 거기 있는 거 안다.”

“네, 스승님.”

신예진은 근처의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그림자에서 안 튀어나오네.”

“밤에는 그림자가 별로 없어서요. 사실상 밤에는 제 능력이 봉인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하기야, 그렇겠네. 뭐, 그보다 몸은 좀 괜찮냐?”

“네. 치료를 받아서 멀쩡해졌어요.”

“그래도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쉬도록 해. 괜히 나 따라오지 말고.”

“하지만 스승님은 지금… 보니까 또 혼자서…….”

“내 걱정보다 네 걱정이나 먼저 해. 뭐, 아무튼. 마침 잘 왔다.”

나는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 신예진에게 건넸다.

“받아. 그리고 있지…….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유나를 잘 부탁한다.”

“네? 그게 무슨……. 그보다 이 봉투는 무슨…….”

“유언장이야.”

“…네? 유언장이요?”

“응, 유언장.”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른 존재도 아닌, 신을 홀로 상대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내 목숨쯤은 판돈으로 내놓아야 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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