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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70화 (170/240)

170화

“…스승님, 만약 죽으러 갈 생각이면…….”

“죽을 생각 따위는 없어. 나도 당연히 살아서 돌아오고 싶지.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생각하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다곤을 잡으러 가는 거죠?”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이에 신예진은 결심한 듯한 눈빛을 내게 보였다.

“그럼 저도 따라갈게요. 저는 절대 혼자 스승님을…….”

“따라오고 싶어도 못 따라올 거다. 저 초록색 벽 보이지?”

나는 서울역 쪽을 가리켰다.

초록색 벽이 여전히 서울역을 둘러싸고 있었다.

“저 벽을 너는 못 넘어갈 거야. 지금 한국에서 저 벽을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그럼 스승님은 지금 혼자서 그 괴물과 다시 싸우러 가겠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 아무것도 안 하면, 다곤은 결국 힘을 키울 테고, 그러면 나도 결국은 죽게 될 거야. 그럴 바에, 뭐라도 해 보는 편이 낫지.”

“…맞는 말씀이라 할 말이 없네요.”

하지만, 이라고 신예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스승님의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저는 예전에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괜찮아. 너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다.”

나는 신예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뭐, 내가 죽으면 내 죽음을 슬퍼할 틈 따위는 없겠지만.’

다곤을 막지 못하면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을 거다.

아마 살아남기 바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벌써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내가 살아 돌아올 수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스승님이 유언장까지 준비한 거면…….”

“거기까지만 말해. 무슨 말 하려는지 알 것 같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으나, 신예진의 표정은 더욱더 심각해졌다.

“저는 스승님과 지낸 지 반년밖에 안 됐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정을…….”

“아직 내 죽음이 확정된 건 아니니까, 벌써 내가 죽은 것처럼 말하지 마.”

이 말을 끝으로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다시금 말을 계속했다.

“그래도 내가 죽으면, 유나를 잘 봐주고… 이민아도 잘 봐줘. 특히 이민아는 보나 마나 또 폭주할 게 뻔하니까. 그리고… 으음…….”

“네?”

“내가 죽은 게 확인되면, 바로 하윤경을 죽여 줘.”

“…윤경이를 죽이라고요?”

“내 통제를 벗어난 하윤경은 너무 위험하거든.”

* * *

신예진과 대화를 끝낸 후, 나는 바로 서울역으로 향했다.

“후우우.”

서울역을 둘러싼 초록색 벽 앞에 도달하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최종 점검이나 하자.”

내 상태를 확인하는 거였지만, 뭐, 솔직히 애초에 확인할 것도 별로 없었다.

‘자바니아 있고, 코트 멀쩡하고, 와이어는……. 으음, 아까 전투로 조금 망가졌지만 못 쓸 정도는 아니고…….’

몇 시간 쉬고 온 덕에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최상의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목숨을 건 전투를 하기에는 충분했다.

“…해 보자.”

전투를 위한 최종 점검을 끝낸 후, 나는 벽을 향해 다가갔다.

그 여신의 말에 의하면, 나는 이 벽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솔직히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이게 되네.”

내 몸은 벽을 너무나도 가볍게 통과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벽에 전부 튕겨져 나갔는데, 신의 축복인가 뭔가를 받은 나는 다르기는 다른 듯했다.

아무튼 나는 손쉽게 벽을 통과해 서울역 안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

“흐음.”

폐허가 된 서울역의 내부.

사람의 흔적은 안 보였다.

대신…….

- 키으이아…….

- 크그그…….

몬스터들의 흔적이 많이 보였다.

아니, 흔적이 아니라 그냥 서울역 안에 몬스터들이 꽤 있었다.

나는 빠르게 근처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다.

‘이 근방의 몬스터는 총 57마리. 다곤은 서울역의 중앙에 있는 거 같고…….’

근처의 몬스터들을 전부 잡고 다곤에게 가는 것도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 체력이 너무 소모될 것이 뻔했다.

게다가 몬스터들을 상대하면 다곤은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눈치챌 터였다.

‘몰래 가자.’

서울역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내가 다 아는 몬스터들이었다.

즉, 이들의 특징을 다 알고 있었으니 그들의 시야에 안 걸리고 지나가면 될 듯했다.

‘자, 우선…….’

나는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몬스터들에게 안 걸린 채 서울역의 대합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대합실의 중앙에… 다곤이 있었다.

어디서 구해 온 건지, 다곤은 바위로 만든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는 건가?’

다곤은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몸 주위에 초록색 기운이 휘감겨 있었다.

저 초록색 기운이 무엇인지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일단 지금이 기회겠네.’

다곤은 완벽히 무방비한 상태였다.

이에 나는 다곤의 몸을, 그중 그의 상체를 살폈다.

비늘이 깨져 그의 맨살이 드러나 부분을 말이다.

‘뭔가 저기를 제대로 찌르면 다곤이 죽을 것 같단 말이지.’

헌터로서의 본능이 내게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바니아를 꺼내 든 채 다곤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말이다.

그렇게 다곤에게 다가가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려던 순간.

“왔구나, 박유진.”

다곤은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크큭, 날파리처럼 빠르기는 빠르구나.”

“제가 다가오는 게 들렸나요?”

“아니. 그 어떠한 소리도 안 들렸다. 만약 나의 거대한 장벽이 안 알려 줬으면 네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조차 인지를 못했을 거다.”

“아, 그 벽 때문이었군요.”

다곤의 말에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그 초록색 벽을 지날 때부터 다곤은 내가 왔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그나저나 참 대단하군. 진짜 전혀 소리를 안 내고 내게 접근하더군. 만약 나의 장벽이 안 알려 줬으면 확실히 기습을 당했을 거다.”

“참 아쉽네요.”

나는 다시금 싸울 자세를 취했고, 다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삼지창을 들어 올렸다.

“그건 그렇고, 나를 다시 상대하러 홀로 이곳에 온 것이냐?”

“그쪽을 막을 사람은 지금 저밖에 없어서요.”

“용기가 넘쳐난다는 건 인정하마. 아무리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나를 단신으로 상대하러 온 인간은 네가 처음이다.”

“용기고 뭐고, 그딴 건 상관없어요. 저는 그저… 헌터로서 제 할 일을 할 뿐이에요.”

이 말과 함께 나는 자바니아를 다곤에게 던졌다.

그의 맨살이 드러난 명치를 향해 던진 것이었지만 다곤은 너무나도 가볍게 자바니아를 쳐 냈다.

“네놈이 말한 해야만 하는 그 일…….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그래야죠.”

이 말과 함께 나는 근처의 무너진 기둥을 향해 와이어를 날려 그 위로 이동했다.

‘여기는 고지대가 많지는 않네.’

서울역 내부의 상가 건물들 몇 개의 천장에 설치된 철봉들.

내가 활용할 만한 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있는 걸 최대한 활용해야 할 듯했다.

“또 날파리처럼 싸우는 거냐?!”

“이게 제 전투 방식이라서요.”

나는 높은 곳에 자리 잡으며 다곤에게 전류 한 줄기를 날려 줬다.

전류를 맞은 다곤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이내 나를 노려보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이번에는 봐주지 않겠다. 네놈을 확실하게 이 자리에서 죽여 주마.”

이 말과 함께 다곤의 모습은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전투의 막바지 때, 다곤의 몸에 이상한 모양의 뼈들이 돋아났었다.

그리고 지금, 그게 다시금 반복되는 중이었다.

거기다 아까부터 다곤 주위에 있던 초록색의 기운들이 점점 더 짙어졌다.

‘긴장해야겠다.’

신체의 변형 후 다곤이 보여 준 속도와 힘은 엄청났다.

내 신체 능력의 몇십 배를 상회하던 수준이었다.

‘게다가 지진 같은 것도 일으킬 수 있는 것 같으니… 그것들을 고려해서 싸우면…….’

다곤을 상대로 어떻게 싸울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곤은 내게 삼지창을 던졌다.

삼지창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내게 날아왔으나…….

‘이 정도는 예상했지.’

다곤의 전투 방식을 나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내 경험을 살려 다곤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장난은 거기까지다!”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다곤은 내게 달려들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원래 같았으면 나는 이에 반응을 못 했을 거다.

하지만 말했듯 나는 다곤의 전투 방식을 파악해 그가 어떻게 공격해 올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타이밍에 맞게 와이어를 날려 다곤의 돌진을 피했다.

“아니요. 저는 장난을 조금 더 칠 생각이라서요.”

나는 근처 고지대로 이동해 다곤에게 전류를 또다시 날려 줬다.

그 후로 이 짓을 반복했다.

‘정면 승부로 다곤을 이기는 건 힘들어.’

나는 최대한 비겁하게 싸울 생각이었다.

다곤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며 그에게 대미지를 누적시킨다.

그리고 다곤이 방심한 틈을 보이면, 그때 일격을…….

“장난치는 건 거기까지다!”

원거리에서 다곤에게 계속 공격들을 날리던 중, 다곤은 삼지창을 갑자기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삼지창을 땅에 내려치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다곤이 지진을 일으키는 건 예상 범위 내였다.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지진은 지난번의 것과는 달랐다.

“으윽?”

지난번에 일으킨 지진보다 두 배, 아니, 세 배에 가까운 위력이었다.

엄청난 흔들림에 나는 고지대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네놈은 더 이상 날뛸 수 없을 거다.”

다곤은 다시 삼지창을 땅에 내리쳤다.

그러자 서울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대합실 그 자체가 붕괴했다.

“…미치겠네.”

건물이 무너지자 이내 천장에서 파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건물의 바닥도 같이 무너졌다.

‘싸움은 나중에. 일단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자.’

나는 무너지는 건물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을 이곳저곳에 날렸다.

그렇게 몇 분 뒤, 서울역은 완전히 무너졌고…….

“아으으, 다곤……. 저 미친 새끼…….”

내 위에 깔린 건물 파편들을 치우며 나는 어찌어찌 몸을 일으켰다.

살아남기 위해 몸을 이곳저곳에 날렸고,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목숨만 건졌다는 것이었다.

“…더럽게 아프네.”

무거운 파편들에 깔린 탓에 몸의 뼈 몇 군데가 박살 났다.

거기다 장기도 몇 군데 다쳤는지 움직일 때마다 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제 네가 날뛸 곳은 없다.”

다곤은 전혀 상처를 입지 않은 표정으로 삼지창을 다시 들어 올리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네놈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네놈은 이제 인간답게, 신인 이 몸 앞에 기어 다니거라!”

“글쎄요. 저는 그쪽을 아직 저의 신으로 인정을 안 해서요.”

나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무너진 파편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고지대가 몇 군데 보이기는 했다.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거라도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와이어를 꺼내 들려고 했는데…….

“…X발.”

허리에 걸려 있던, 와이어가 담겨 있던 통.

그게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방금 전 건물 파편에 깔리면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나 버린 것이었다.

“크하하하! 이제야 네놈과 정면에서 승부를 볼 수 있겠구나. 네놈은 더 이상 날파리처럼 날아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거라. 그 작은 단검으로 내 힘에 맞서 봐라.”

“…….”

“이제야 표정이 볼 만해졌구나! 크하하하! 아! 네놈을 끝장내기 전에…….”

다곤은 삼지창을 이번에 하늘을 향해 가리켰다.

그러자 무너진 서울역의 상공에 초록색 기운들이 모이더니, 이내 거대한 환영이 나타났다.

그 환영은 다름이 아니라…….

“저희의 싸움을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건가요?”

나와 다곤, 우리 둘의 모습이 서울역 상공에 거대하게 나타났다.

너무 크면서도 선명해 아마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네놈을 본보기로 삼을 생각이다. 네놈이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는 걸 인류에게 보여… 절대로 내게 반할 생각을 못 하게 할 생각이다.”

“흐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아니, 쉬울 것이다. 인류는 네놈을 시작으로 결국 내게 굴복할 테니까.”

다곤은 승리를 확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 박유진. 각오하거라. 네놈의 소중한 사람들, 네놈이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의 끔찍한 죽음을 이제 곧 목도하고…….”

다곤은 크게 웃으며 말했고, 그 모습은 서울역 상공에 나타난 환영에 의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다음 수에 대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와이어는 더 이상 못 쓴다.

즉, 지금 나에게 기동성은 전무했다.

그렇다면 다곤과 정면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 몸이 너무나도 약했다.

‘전류도 쓸 수 있겠다만… 얼마나 통하려나. 엔드리온의 조각으로 최대한 끌어다 쓰면…….’

지금 그나마 유효한 수단이 바로 내 전류였다.

내가 목숨을 걸고, 내 한계를 넘을 각오로 전류를 이끌어낸다면 결과가…….

우우웅.

“어?”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검은색 반지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동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 나의 새로운 사도야. 나를 잊지는 말아라.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전에 들어 본… 거미처럼 무언가 음침한…….

- 이번에는 내가 나설 차례인 것 같으니… 내 힘을 잘 받아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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