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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71화 (171/240)

171화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내 내 안의 무슨 알 수 없는 기운이 퍼지는 듯했다.

나는 이 기운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당장은 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다곤이 점점 더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그 목소리……. 그때 꿈에서 봤던… 그 거대한 거미의 목소리였어.’

거기다 지금 내 검은색 반지, 그러니까 그 거미들이 가득했던 게이트에서 얻은 반지.

그 반지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일 터였다.

‘거미줄을 이용하라는 건가? 하지만 거미줄을 실전에서 이용하기에는 아직…….’

이 검은색 반지를 얻은 지 이제 반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반년 동안, 나는 이 거미줄을 이용하는 걸 꾸준히 연습했다.

하지만 암만 연습을 해도 거미줄의 내구도는 쉽게 오르지 않았다.

‘너무 쉽게 끊어진다는 게 문제였지.’

반년 동안 연습한 성과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 노력 덕분에 거미줄은 일반인들을 붙잡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일반인 기준이었다.

평범한 헌터라면 내 거미줄을 쉽게 끊어 낼 터였고, 무엇보다…….

‘내가 거미줄 위에 아직 못 올라타.’

지난번 거미들의 게이트에서 만난 스타페리아.

그는 거미줄 위에서 너무나도 가볍게 걸어 다녔다.

하지만 그걸 하기에는 아직 내 거미줄이 너무 약한…….

“자, 박유진! 네놈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해 주마.”

다곤은 크게 웃으며 내게 여유롭게 다가왔다.

이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가 않네.’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검은색 반지가 끼워진 왼손을 들어 올렸다.

“음? 네놈, 지금 뭐 하는…….”

“지켜나 보세요.”

이 말과 함께 내 손가락 끝에서 거미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거미줄들을 무너진 서울역의 곳곳에 날렸다.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

“거참, 지켜보기나 하라니까요.”

나는 거미줄을 이곳저곳에 날렸다.

최근 거미줄을 이용한 수련을 꾸준히 했다.

그 덕에 나는 거미줄을 한 번에 최대 500m까지 뽑아낼 수 있었다.

‘그래, 약 500m. 그걸 다 뽑으면, 그 이후로 약 10분 동안 거미줄을 못 뽑아내.’

신중히 거미줄을 써야 했다.

엔드리온의 조각은 다곤에게 일격을 가할 때, 그러니까 강력한 한 방을 날려 주기 위해 아껴 둬야 했다.

즉, 지금 내게 있는 수간은 내 단검과 이 거미줄밖에 없었다.

“…거미줄인가?”

“네, 거미줄 맞아요.”

나는 다곤 주위로 거미줄을 계속 날렸다.

거미줄은 다곤 주위로 무작위로 설치되었고, 이내 감옥처럼 그의 주위를 감쌌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겨우 이딴 거미줄로 나를 상대할 생각이었던… 으음?”

다곤은 거미줄을 쳐 내기 위해 삼지창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팔을 들어 올렸는데, 그의 팔이 거미줄에 걸린 것이었다.

“거미줄 따위가… 어떻게 내 힘을…….”

“평범한 거미줄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피식 웃으며 거미줄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내게 들어온 이 정체불명의 힘 덕에, 내 거미줄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다곤의 힘으로도 쉽게 못 끊어 내는 거미줄이라면… 싸울 만해.’

나는 거미줄을 마저 설치한 뒤 주위를 둘러봤다.

다곤 주위로 엄청난 수의 거미줄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상태였다.

그 거미줄들이 어떻게 설치됐는지 한 번씩 살핀 후, 나는 거미줄을 향해 도약했다.

‘이게 되려나?’

거미줄을 향해 도약하면서도 나는 섣불리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다.

지금까지 거미줄 위에 타는 걸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그때마다 거미줄이 끊어졌다.

과연 이번에는…….

“…됐다.”

거미줄 위에 올라섰고, 이번에는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거미줄이 내 체중을 버텨 낸 것이었다.

“이상한 잔재주를 숨기고 있었구나, 박유진.”

다곤은 이 말과 함께 힘으로 자신의 팔을 거미줄에게서 뜯어냈다.

다곤이 온 힘을 다하면 거미줄을 뜯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다곤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이것만 해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이 거미줄들이 나의 발판이 된다면…….’

나는 거미줄을 타고 앞으로 몇 발자국 나아갔다.

균형을 맞추면서 걷는 게 어려웠지만, 이 정도면 할 만했다.

‘스타페리아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거야. 스타페리아는 거미줄을 발판 삼아 뛰어다녔어. 그때 그 움직임을 떠올리고 따라 하는 거야.’

나는 내 머리 위에 있던 거미줄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거미줄을 향해 도약하려던 순간, 다곤도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잔재주도 소용없다! 겨우 이런 잔재주로… 어엇?”

“예, 그런 잔재주도 통하는 것 같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더 높은 곳의 거미줄로 도약했다.

그러면서 나는 다곤을 내려다봤다.

삼지창을 휘두르려던 다곤의 팔이 다른 거미줄에 걸렸다.

“…이크.”

거미줄 위에 착지하면서 균형을 잃을 뻔했다.

아직 거미줄 위에 올라타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감이 잡히고 있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으니까… 해 보자.”

이 말과 함께 나는 거미줄들 사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점차 감을 잡았다.

덕분에 거미줄 위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박유진! 네놈은 또 어디에 숨은 거냐!”

거미줄 사이를 달리며 다곤에게 다가가던 중, 갑자기 다곤이 크게 외쳤다.

“무슨 수작이냐?! 거미줄이 네놈의 모습을 숨겨 주는 것이냐?”

다곤은 진짜를 나를 못 찾고 있었는지 계속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에 나는 잠시 의문이 들었다.

거미줄들을 촘촘히 설치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거미줄들 사이에 공간은 꽤 있었다.

나는 대놓고 다곤의 근처에 있었지만 다곤은 그런 나를 못 찾고 있었다.

‘설마… 거미줄들 사이에 있으면 내 모습이 안 보이는 건가?’

생각해 보니 예전에 스타페리아를 상대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거미줄 사이에 들어간 스타페리아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만약 모습이 사라졌던 게 거미줄의 능력이라면?

그리고 그 능력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거라면…….

- 깨달았구나, 나의 새로운 사도여.

그 순간, 머릿속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생선에게… 거미와 암살의 새 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해라.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어.”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후, 나는 다곤을 향해 전류 한 줄기를 날렸다.

“아악? 그쪽이냐?!”

다곤은 전류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삼지창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팔이 또다시 거미줄에 걸리게 되었다.

“젠장! 이딴 거미줄에 내가…….”

다곤이 거미줄과 씨름하는 사이, 나는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나는 거미줄을 타고 이동해 방금 있던 자리의 반대쪽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또다시 전류를 날려 줬다.

“으윽? 비겁한 인간 놈이! 모습을 숨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제가 왜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하죠?”

나는 거미줄을 타고 이동하며 비웃듯이 말했다.

“저는 암살자예요. 비겁하게 싸워야죠.”

“날파리 따위가 감히…….”

다곤은 힘으로 거미줄을 끊어 낸 후, 내게 삼지창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방금 있던 저리를 벗어난 후였다.

‘자, 다곤의 시야는 지금까지 싸우면서 대충 다 파악했으니…….’

나는 다곤의 시야를 살핀 후, 그의 머리 위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후,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며 그대로 떨어졌다.

다곤의 눈을 노리며 말이다.

만약 이 공격이 성공하면 다곤의 양쪽 눈 모두 상처 입힐 수 있는…….

“거기구나!”

“윽.”

하지만 다곤은 빨랐다.

내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바로 움직여 내 공격을 막았다.

그런 후, 그는 나를 옆으로 쳐 냈다.

“으으.”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

“아니요. 그쪽은 이미 저를 놓쳤어요.”

나는 바로 거미줄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다곤은 다시금 내 모습이 안 보이는지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체 왜 감지가 안 되는 것이지? 신의 감각이라면 이딴 잔재주는 타파를 해야… 아으윽?!”

“이건 그냥 잔재주가 아니라서요.”

나는 거미줄 사이에 숨은 채 다곤에게 다시 전류를 날렸다.

“신에게 선물 받은 잔재주라……. 좀 많이 약해 보이는 그쪽이 타파 못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약해 보인다고?! 감히…….”

“크큭. 근데 약해 보이는 걸 어떻게 하라고요.”

“반드시 잡아서 네놈의 사지를… 아악?!”

“일단 잡고 말해 보세요.”

나는 다곤의 신경을 살살 긁으며 거미줄 뒤에 숨은 채 그에게 계속 대미지를 입혔다.

‘눈을 기습하는 건 실패했으니 다음 작전으로 가자. 지금 거미줄은 충분하니까…….’

나는 거미줄 뒤에 숨은 채 계속 다곤을 공격했다.

그렇게 그 짓을 여러 번 반복했고, 슬슬 다곤의 인내심이 떨어질 때 즈음.

“모습을 안 드러내겠다면 강제로 나오게 해 주마!”

다곤은 내 예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삼지창을 들어 올려, 다시 한번 땅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났고, 이미 한 차례 무너진 서울역이 다시 한번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곤의 패턴을 알고 있었기에 이 또한 예상하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미리 몸을 빼 지진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크하하하! 자, 박유진! 네놈을 숨기던 거미줄들은 전부 사라졌다!”

다곤의 말대로 내가 설치한 거미줄들은 지진으로 인해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 네놈이 숨을 곳은 없다!”

건물의 붕괴로 인해 흙먼지가 자욱한 상태였다.

다곤은 그 흙먼지가 사라지기를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고… 이것 또한 내가 예상한 다곤의 모습이었다.

휘리릭!

“으음?”

나는 흙먼지 뒤에 모습을 숨긴 채 다곤의 팔에 거미줄을 날렸다.

다곤이 이에 반응하기 전에…….

휘리릭!

휘릭!

다곤에게 수많은 거미줄들을 날렸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거미줄들을 다곤의 몸에 날려 그를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무슨 짓이냐?! 네놈은 어디서 이걸…….”

다곤은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봤지만, 흙먼지 때문에 내 모습을 못 찾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다곤에게 수십 개의 거미줄을 날려 그를 꼼짝도 못 하게 했다.

하지만 물론… 거미줄로는 다곤을 오래 붙잡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잔재주는 여기까지다!”

다곤 주위의 초록색 기운이 더 짙어지더니 다곤은 이내 힘으로 거미줄들을 끊어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곤은 순식간에 내가 날린 거미줄들의 절반가량을 끊어 냈다.

그러나 이 또한… 내 계획의 일부였다.

“네, 제 잔재주는 여기까지죠.”

“…네, 네놈 언제…….”

“그리고 다곤. 너도 끝이야, 이 개새끼야.”

다곤이 거미줄에게 정신이 팔렸던 사이, 나는 그의 바로 옆까지 접근했었다.

그리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자바니아를 다곤의 맨살이 드러난 명치를 향해 휘둘렀다.

‘힘 좀 빌린다.’

나는 엔드리온에게서 낼 수 있는 모든 전류를 이끌어 내 그걸 자바니아의 칼날에 응축시켰다.

그렇게 강력한 전류가 담긴 일격이 다곤에게 제대로 들어갔고…….

“크아아아악! 크가가각!”

다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무너진 서울역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내 다곤의 비명은 멈췄고…….

파직.

다곤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치운 건가.”

나는 자바니아를 빼내며 다곤에게서 멀어졌다.

그러자 다곤의 몸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아.”

서울역 상공에 있던 거대한 게이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즉, 내가 신을 이긴 것이었다.

* * *

같은 시각.

다른 세계의 어딘가.

“…다곤이 패배했다.”

“예, 위대하신 분이여. 저도 방금… 다곤 님의 신체가 소멸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상외의 일이구나.”

괴수들의 신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곤은 명부 신들 중에서 가장 약했지만… 그는 내가 내린 임무를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 그가 실패하다니. 어쩌면 내가 박유진을 너무 만만히 본 게 아닌가 싶구나.”

“하지만 그래 봤자 인간입니다. 그리고 저희에게는 아직… 더 많은 명부 신들이 있습니다.”

“그렇다. 그 여신이 아주 크게 규율을 어긴 탓에 우리는 지구에 몇 번 더 명부 신을 보낼 수 있지.”

괴수들의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신전 밖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박유진이 들어왔다.

게이트가 사라지는 걸 바라보는 박유진을 말이다.

“세 명의 신에게서 축복을 받았으니… 역시 만만치 않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보다 위대하신 분이여. 다음 명부 신은 누구로…….”

“와이번을 보내라. 얍삽한 놈은 얍삽한 놈으로 상대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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