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 * *
“스승님. 언제 오신 거예요?”
“한 30분쯤 됐어.”
하윤경과의 대화를 마친 후.
나는 다시금 지하 1층의 주거 공간으로 올라와 주방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거기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신예진이 다시금 나타났다.
“장 보고 왔다면서?”
“네. 아무래도 먹을 게 슬슬 떨어져서, 근처의 마트 좀 갔다 왔어요.”
“근데 마트에 먹을 게 있었냐? 그저께 다곤이 깽판 쳐 놔서 음식들 사재기 들어갔을 텐데.”
“네, 확실히 많지는 않더라고요.”
신예진은 장바구니를 근처 식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 장바구니 안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와 윤경이의 입은 짧은 편이라 이 정도면 2주일 정도는 버틸 거예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최대한 구해 와 줄 테니까.”
“괜찮아요, 스승님. 스승님께 항상 받기만 하는 입장인데, 제가 어떻게…….”
“너에게 이번에 목숨을 한 번 빚졌잖아.”
“네?”
내 말에 신예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곤과 싸울 때. 네가 그때 안 끼어들었으면 나는 죽었을 수도 있어. 죽지 않더라도, 상당히 심각한 치명상을 입었겠지.”
“아, 그거 말씀이군요. 그거라면…….”
신예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다시 말했다.
“스승님 덕분에 저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더 강해지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편하게 살 수 있고……. 그렇다 보니까 그때 저는 스승님을…….”
“알겠어, 인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 덕에 살았고, 진짜 고맙다는 거야. 그리고 이 빚을 잊지 않을게.”
“아, 아니에요, 스승님. 오히려 제가 지난 반년 동안 스승님께 훨씬 많은 걸 받은…….”
“뭐, 알아서 생각해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후, 나는 신예진을 위아래로 한 번 스윽 훑어봤다.
“그러고 보니 몸은 좀 괜찮냐? 지난번에 의사에게 들으니까 너 내장 엄청 심각하게 다쳤다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신예진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의사가 준 포션을 먹으니까 하루 안에 확 나아지더라고요.”
“그래도 당분간은 집에서 쉬도록 해. 너 그때 다곤에게 제대로 맞았잖아.”
“네, 아주 제대로 맞았죠.”
신예진은 이 말과 함께 자신의 옆구리를 매만졌다.
“근데 어떻게 보면 살아남은 게 기적이네요. 다곤의 공격을 맞고 죽은 헌터들도 많다는데, 저는 살았잖아요.”
“…그치. 너는 운이 좋은 경우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직 회복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신예진은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다곤이 대충 휘두른 삼지창에 죽은 헌터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이민아는 오른쪽 팔이 아예 박살이 났었지.’
힐러들의 엄청난 노력, 그리고 늑대인간 특유의 재생력.
이 두 요소 덕분에 이민아의 팔이 불구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소 몇 달은 오른팔을 제대로 못 움직일 게 뻔했다.
‘이제 슬슬 그 녀석도 보러 가기는 해야겠네.’
신예진과 더불어, 이민아 또한 다곤과의 첫 전투에서 제 역할을 잘해 주었다.
이민아가 그때 다곤의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내가 다곤의 상체에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그 타격 덕분에 비늘이 깨졌고, 그 덕분에 두 번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
혼자였으면 이기기 힘든 싸움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앞으로 나 혼자 싸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내 주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회귀 전에 유나를 한 차례 잃어서인지, 나는 내 주변인들이 다치는 걸 많이 꺼리는 중이었다.
당장 신예진과 이민아, 이 두 사람이 다친 것.
최대한 티를 안 내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상당히 신경 쓰고 있었다.
‘뭐, 그래서 하윤경에 다시 연구를 하라고 시킨…….’
하윤경에 대해 생각하며 지하 연구실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슬쩍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나의 눈길을 눈치챘는지, 신예진이 이에 대해 물었다.
“윤경이는 지금 연구실에 있는 거죠?”
“응, 맞아. 내가 뭐를 또 시켰거든.”
“지난번의 그 사라도켈인가 하는 몬스터의 등껍질을 이용한 그 작업인가요?”
“아, 그것도 나중에 시켜야겠네. 근데 지금 하윤경이 하는 건 그게 아니야.”
“그럼 지금 뭘 하는 거죠?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 보니까, 뭔가 되게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그런 게 있다.”
아까 하윤경에게 이 연구를 다시 허락했을 때.
하윤경은 상당히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해도 된다고? 인류를 뛰어넘게 할 연구를 다시…….’
‘방금 말한 거지만, 너의 그 연구는 최후의 수단이야. 그리고 그것도 나만 쓸 최후의 수단. 다른 사람에게 절대 쓰게 할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상관없어! 나는 이 연구를 완성만 하고 싶어! 그리고 인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내가 연구를 다시 허락하자 하윤경은 광기와 흥분이 가득한 모습으로 일을 시작했다.
물론 허튼짓을 안 하도록 온갖 제약을 다 걸어 놓기는 했지만… 뭔가 영 불안했다.
‘그래도 이 돌멩이가 없으면 하윤경은 그 연구를 완성 못 하겠지.’
나는 내 목에 걸린 엔드리온의 조각을 매만지며 아까 하윤경과 한 대화를 떠올렸다.
‘박유진. 그럼 네 목에 걸린 그 돌멩이를 내게…….’
‘아니, 이건 당장은 안 줄 거야.’
‘뭐라고?’
‘말했잖아. 네 연구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그러니 네 연구를 써야만 하는 그 상황이 오면, 그때 너에게 이 돌멩이를 주도록 할게.’
그래, 하윤경의 그 연구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가능하면 쓸 일이 없기는 바라는 게 좋았다.
우우웅.
엔드리온의 조각이 진동했다.
마치 이런 내 계획에 불만이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
“이제 슬슬 가 볼게. 좀 쉬고 있어. 그리고 하윤경이 이상한 짓 하는 것 같으면 바로 내게 연락해.”
“네? 벌써 가시게요?”
“어차피 하윤경에게 시킬 일들이 더 있어서 금방 다시 올 거야.”
“아, 그렇군요. 그럼 다녀오세…….”
신예진은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스승님. 아마 또 다른 신이 조만간 또 공격해 오겠죠?”
“아마 그렇겠지. 근거는 없지만, 내 감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어.”
“그럼 앞으로 저도 스승님과 함께 싸워도…….”
“그건 안 돼.”
나는 단호하게 신예진의 말을 끊었다.
“너를 포함해서 내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할 생각 없어. 싸우고 다치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하다.”
“하지만 스승님. 혼자서는…….”
“이건 명령이야.”
“…네.”
“그래. 알았으면 됐다. 어쨌든, 좀 쉬고 있어. 이따 다시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게.”
【 두 번째 명부신 】
신예진과 인사하고, 하윤경의 지하 연구소를 나온 뒤.
나는 용혈 길드의 본사로 향했다.
거기서 잠시 지내기로 했던 유나, 그리고 길드 내 병실에서 요양 중인 이민아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그래, 분명 그럴 계획이었는데.
“자, 마시거라. 녹차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어째서인지 길드장실에 반강제로 끌려와, 이진성과 1대1로 티타임을 즐기는 중이었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상황을 돌아봤다.
나는 이민아와 유나를 보러 용혈로 왔다.
이민아는 아까 내게 전화로 말했었다.
나에 대한 걸 말해 놨으니 건물에 들어오는 건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이다.
‘뭐, 건물에 들어오는 건 전혀 문제없었지. 근데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사람들이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게 문제지.’
뭐가 어찌 됐든 나는 현재 용혈의 길드장인 이진성과 어색한 대면을 하고 있었다.
“자네 여동생.”
이진성이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다른 것도 아닌, 유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길드에 이틀 전부터 지냈었지?”
“예, 그렇죠.”
“민아가 데려온 거라 일단 지내게 놔뒀지만, 자네 여동생을 너무 자주 이곳에 맡기지 말게. 이곳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외부인을 함부로 들일 만한 장소가 아니야.”
“예, 알겠어요.”
이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이건 내가 일방적으로 이진성에게 호의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제 여동생을 여기에 있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운 거면 내 부탁이나 하나 들어주는 건 어떤가?”
“…부탁이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면 고맙겠네.”
이게 본론인 듯했다.
이진성은 그저 내게 차 한 잔을 대접하기 위해 이곳에 부른 게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신이 나타난다는 말이 요즘 자주 들리네.”
“…그렇죠.”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 주제였다.
“그리고 그 신에게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자네만이 현재 유일하다고도 들었네.”
“제게 묻고 싶은 게 무엇인지…….”
“간단하네. 어떻게 하면 신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되는지, 그 비밀을 알려 주게.”
이진성은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강압적으로 말했다.
“으음, 그게… 이건 비밀이라기보다는…….”
“신의 축복을 받으면 신들에게 공격할 수 있다……. 이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혹시 이게 사실인가? 비싼 비밀이겠지만 그 값을 치를 테니 알려만 주면 고맙겠네.”
“신의 축복이… 아마 맞을 거예요.”
“그런가? 그럼 그걸 어떻게 받는지 그 방법을…….”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나는 이진성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말했다.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저도 그 정확한 방법을 몰라요.”
“모른다고?”
“예, 그게… 뭐, 저도 제가 언제 어떻게 신의 축복을 받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는 거라서요.”
거짓말이었다.
게이트에서 얻은 반지와 천둥새들에게서 얻어 온 엔드리온의 조각.
나의 이 체질은 그 두 아이템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진성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특히 천둥새들이 가지고 있는 엔드리온.
그것만큼은 이진성에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른다라…….”
이진성은 나를 잠시 조용히 쳐다봤다.
그가 여기서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눈치채면 아마 앞으로 나의 일정이 조금 많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진성은 그냥 넘어가는 듯했다.
“알겠네. 그건 그렇고, 혹시 자네 내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나?”
“으으음, 저 같은 게 감히 이 길드원이 될 수 있을지가…….”
“자네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인간이라네.”
이진성은 진지하게 말했다.
“신들이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는 마당에, 자네가 그 신들에게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는 인간이야. 그러니 자네의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지.”
“그렇군요. 근데 저는 현재 협회 소속인…….”
“협회인가? 흠, 알겠네.”
이진성은 내 말에 무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이내 나 보고 이만 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민아는 5층의 병동에 있고, 자네 여동생은 6층의 숙소에 있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네. 잊지 않았으면 하게. 나는 나의 길드를 더욱더 키우고 싶네. 그러니… 상황에 따라서는 자네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르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래, 저게 내가 아는 이진성이었다.
길드 하나만을 위해 뭐든지 하는 인간 말이다.
‘저 아저씨 시동 걸리기 전에 이민아를 여기서 빼내든가 해야지.’
나는 이진성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