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 * *
“팔은 좀 어떠냐?”
“이제 아프지는 않은데, 거의 못 움직이겠어.”
이민아는 붕대를 두른 팔을 내게 보여 주었다.
“힘을 주면 근육이 많이 아프고……. 애초에 뼈도 지금 제대로 부서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수준이야.”
“그래도 치료는 되는 중이지?”
“뭐, 일단은 그렇지.”
이민아는 병동 침대에 편히 몸을 눕히며 말했다.
“의사 말로는 이 정도 상처는 원래 같으면 절단했어야 했대.”
“하지만 힐러들이 몇 시간 내내 치료하고, 네 늑대인간 특유의 치유력 덕에 살았다 했지?”
“맞아. 다들 놀라더라. 뼈와 근육, 그리고 신경 조직이 죄다 파괴됐는데… 내 몸이 이걸 또 고치고 있다고 하더라.”
“그렇겠지. 게다가 너는 그냥 늑대인간 유전자도 아니고……. 아.”
“음?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말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민아에게 이식된 유전자가 라이칸슬로프의 것이라는 건 당장 알려 줄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너 당분간은 전투 같은 건 못 하겠지?”
“마음 같아서는 하고 싶지. 나도 하고는 싶은데…….”
“일단 회복부터 해. 괜히 이 상태로 나서다가 더 심하게 다치지 말고.”
“쳇.”
내 말에 이민아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불만 가지지 말고 팔 다 나을 때까지 쉬어. 다른 헌터들과 함께 싸우지 못해서 불만인 거면…….”
“다른 헌터들과 함께 못 싸워서 불만인 게 아니라, 너와 함께 못 싸워서 불만이 거야.”
이민아는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봤다.
“너 보나 마나 앞으로 계속 혼자 싸울 생각이겠지?”
“혼자 싸워야지. 애초에 지금 나 말고 신과 싸울 만한 헌터는 없어.”
“나도 돕고 싶어서 그런 거야. 여차하면 내가 지난번처럼 적의 시선이라도 끌어 주면…….”
“그래, 그러면 도움은 많이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곤 상대할 때, 네가 시선을 끌어 준 게 아주 큰 도움이 됐거든.”
“응,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도 그러면…….”
“하지만 안 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 다곤과 싸우다가 팔이 완전히 박살 났잖아. 이번에는 팔이었지만, 다음에는 어디를 어떻게 다칠지 몰라. 잘못되면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르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이민아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야 네가 혼자 몰래 가서 다곤을 이기고 왔지만, 다음에도 네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
“알아.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싸워야지.”
“박유진, 어떻게 보면 네가 죽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몸을 조금 사릴 필요가…….”
“이런 일에는 원래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거야. 그리고… 너무 걱정은 하지 마라.”
나는 이민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피식 웃었다.
“나 쉽게 죽을 놈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렇기는 한데……. 너는 언제까지 혼자서 싸울 수는 없을 거야. 내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너는 언젠가 혼자서 싸우는 데 한계가 올 거라고.”
“…그러냐?”
이민아의 본능은 무시할 만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녀의 본능이 그렇게 말했을 정도면 어쩌면 진짜로 신들을 혼자서 상대하는 데 한계가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나처럼 그 뭐냐, ‘신의 축복?’
그것을 받은 사람이 지구 어딘가 또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만큼의 전투력이 지녔을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나만큼 강하다고 해도 그들이 나와 협력해 신을 상대해 줄지도 불확실했다.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야지.’
나는 정체 모를 여신 덕에 회귀를 해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그 여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했고, 이 사태를 막는 것이 그것이었다.
빚지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 나는 최대한 노력을 할 생각이었다.
‘뭐, 애초에 인류의 존망을 위해 싸우는 거면… 그 여신의 부탁이 아니었어도 열심히 싸우겠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혼자서 싸우는 데 한계가 오는 거……. 만약 진짜 한계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혔다.
나와 함께 싸워 줄 동료가 나타날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너.”
“음?”
“아까 우리 아빠 만나고 왔다 하지 않았어?”
“그치. 반강제로 끌려가서 만났지.”
“이상한 말씀은 안 하셨어?”
“별것 없고 그냥 나보고 이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냐, 뭐, 이런 이야기를…….”
나는 이민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잠시 뒤, 유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 나 왔어. 언니, 일단 언니 말대로 이 근처 정육점에서 소고기 사 오기는 했는데…….”
“오, 좋아. 그거 줘 봐.”
이민아는 유나가 사 온 소고기를 받더니 그걸 그대로 입에 넣었다.
“으음, 맛있다. 병실에 있어서 이런 거 한동안 못 먹었는데.”
“너 구운 고기는 이제 아예 안 먹는 거냐?”
“먹으라면 먹는데, 뭔가 생으로 먹어야 더 맛있어서.”
“그러다 탈 나면 어쩌려고?”
“이런 거 먹는다고 나는 탈 안 나. 탈 났을 거면 진작에 났겠지.”
“하기야. 네가 지금까지 날고기 엄청 먹었으니까.”
나는 헛웃음 지으며 대꾸한 뒤, 내 옆에 앉은 유나를 바라봤다.
“출발할 준비는 아까 다 했지?”
“응, 원한다면 지금 당장 출발할 수도 있어.”
“30분 뒤에 출발하자. 그리고 나 어제 집 구한 거 말했지?”
“구로 쪽에 있는 거?”
“맞아. 이따 나랑 같이 가자.”
내 말을 들은 이민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야? 너 집 새로 구했어? 언제?”
“어제 전세로 구했다.”
“어제? 신들이 나타나는 이 시국에?”
“장사할 사람들은 언제든 한다. 그리고 좀 급하게 구할 필요가 있었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나와 한번 만나겠다는 사람들이 전부 집 근처에 대기 타고 있더라. 그래서 집에 들어가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나 대신 유나에게 다가가려는 사람들도 많아서 말이지.”
“그래서 집을 급하게 옮긴 거야?”
“그치. 그리고 당분간 사람들에게 새집 주소 안 들키게 주의해야지.”
“으으음, 그, 그렇구나.”
이민아는 무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봤다.
“근데 그 새집 있잖아. 어어, 그, 그냥 순수히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혹시 방이…….”
“어, 네가 지낼 방도 있는 걸로 구했어. 방 세 개인 집이니까, 앞으로 심심할 때마다 자고 가라.”
“히……. 그, 그렇구나.”
이민아는 태연한 척했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나중에 놀러 와라. 물론… 우리 집이 그때까지 멀쩡하다면 말이야.”
신들이 나를 여전히 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새로 산 집이 오래갈 것 같지가 않았다.
* * *
“이 작업은 얼마나 오래 걸릴 거 같냐, 하윤경?”
“금방 끝날 거다.”
하윤경은 내 장비들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사라켈돈이었나?”
“사라도켈.”
“그래, 이 사라도켈의 등껍질을 네 장비들 위에 코팅하는 작업.”
하윤경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성분의 분석은 다 끝났고, 시뮬레이션도 전부 돌렸으니…. 아마 한 시간 내로 끝날 거야.”
“코팅하면 내 장비들의 내구도가 전반적으로 상승할 거 같냐?”
“네 코트를 제외하면, 기존보다 약 30% 정도 상승할 거다.”
“내 코트는 왜?”
“이미 내구도가 엄청난 물건이라, 다른 장비들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거든. 아마 코팅을 하면 네 코트는 아마… 5% 미만의 내구도 상승률을 보일 거다.”
“상승하는 것만 해도 어디냐. 알겠으니까, 오늘 내로 코팅 끝내라.”
나는 소파로 가 앉으며 말했다.
유나를 집에 데려다준 후.
나는 바로 북한산에 위치한 하윤경의 연구소로 갔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금 하윤경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있잖아. 내 와이어, 그거는…….”
“못 고친다. 네가 명령을 해서 살펴보기는 했다만, 처음 보는 마법이 복합적으로 배열된 장치였어.”
하윤경은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고칠 거면 원 제작자에게 부탁하든가 해야 할 거야.”
“그렇단 말이지.”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 와이어, 그러니까 이 ‘무한 와이어’라는 아이템은 여러모로 독특한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조만간 고민수를 찾아가든가 해야지.’
그러고 보니 고민수, 그 아저씨도 안 본 지 매우 오래되었다.
하세리에게 부탁해 그와 약속을 잡게끔 할 생각이었다.
‘근데 만난다고 해도, 무한 와이어, 이거 다시 얻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 그렇다면 당분간은 거미줄에 의존해야 하나.’
나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검은색 반지를 바라봤다.
아직 거미줄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았지만, 당장은 와이어를 대체할 만한 건 이것 외에는 없었다.
다음 신이 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연습을 많이 해야 할 듯했다.
“스승님. 이거 드세요.”
“음? 아, 고마워.”
과일을 깎아 온 신예진이 내 옆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뭔가 되게 깊게 고민하시는 표정이네요.”
“딱히 깊은 고민은 아니었어.”
나는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보다 오히려 네가 더 고민이 있다는 표정인데?”
“아……. 그렇게 보였나요?”
“뭔 고민이냐? 말해 봐.”
“그건…….”
신예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스승님과 함께 싸우고 싶어서요. 다음에 신이 또 공격하면, 그때는 저라도 같이…….”
“안 된다고 했잖아.”
“저는 스승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신예진은 확고히 말했다.
“스승님 덕분에 저는 제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어요. 그리고 이 행복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저는 스승님이 절대로 다치는…….”
“네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겠어. 알겠는데 말이야.”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도울 수 있을 일이 거의 없을 거야. 공격이 안 통하는 적을 상대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적의 시선이라도 끌면…….”
“끌다가 한 방 맞으면 넌 죽을 거야. 아니면 죽지 않더라도 바로 나가떨어지겠지.”
“그건…….”
“너는 뒤에서 다른 사람들이나 지켜 줘. 앞에서 싸우는 건 내가 할…….”
나는 차분히 말하며 신예진을 설득했다.
근데 그러던 중…….
“으윽?”
갑자기 정체 모를 압박감이 내 몸을 옥죄었다.
“허억? 헉, 으윽…….”
숨이 거칠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지만, 동시에 왜 내가 이러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스, 스승님? 괘, 괜찮아요? 얼굴이 엄청 창백해지셨어요.”
“후우, 후우우……. 왔어.”
“네?”
“왔다고. 그놈.”
“왔다는 거라면… 설마…….”
“신. 신이 또 나타난 거야.”
내 본능이 지금 말해 주고 있었다.
또 한 명의 신이 곧 이 지구에 나타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후우.”
하세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응, 누나. 왜?”
- 하이퍼 게이트. 지금 관측되고 있어.
“그럴 거 같더라. 이번에는 어디야?”
- 수원.
“알겠어.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