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77화 (177/240)

177화

【 협동 】

“치료 다 됐어요, 박유진 씨.”

“고마워요, 주하나 씨.”

나는 치료가 다 된 내 몸을 내려다봤다.

아직 잔상처가 많고,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하지만 전투를 다시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호전되었다.

“그나저나 주하나 씨는 이번에도 오셨네요.”

“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전국의 모든 힐러들이 불려 왔죠.”

주하나는 내 상체에 포션을 발라 주며 말했다.

“그리고 신과 관련된 사태에서는… 앞으로 저를 반드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런가요?”

“네. 그도 그럴 게, 박유진 씨는 다곤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힐러들 중 저에게 치료를 맡기셨잖아요?”

“아는 사람에게 치료받는 편이 마음 편하거든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주하나는 따뜻하게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박유진 씨가 매번 저에게 치료를 맡기다 보니, 윗분들이 저를 박유진 씨 전담 힐러로 배치하는 것이 어떠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전담 힐러라.”

나는 피식 웃으며 하얀 머리의 힐러를 바라봤다.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겠죠. 근데 주하나 씨가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 같은…….”

“저는 괜찮아요.”

주하나는 내 곁에 앉으며 이번에는 내 다리를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전담 힐러면 몰라도, 박유진 씨의 전담 힐러면… 오히려 저는 환영이죠.”

“그런가요?”

“네. 그동안 박유진 씨께 이런저런 도움들 받았는데, 이렇게라도 갚아 드려야죠. 게다가 그것 말고도…….”

주하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박유진 씨의 전담 힐러가 되면, 제 입장에서 좋아요. 왜냐하면 지금 박유진 씨는 신에게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헌터라 유명한데, 제가 그런 박유진 씨의 옆을 지키는 전담 힐러가 되면…….”

“출셋길이 열린다, 뭐 이런 건가요?”

“네, 대충 그런 거죠.”

주하나는 조금 민망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박유진 씨를 이용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요.”

“이런 것 같고 미안해할 것 전혀 없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주하나 씨는 제 전담 힐러가 안 됐어도, 결국 더 높은 곳에 올라가셨을 거예요. 최근에 힐러 업계 쪽에서 주하나 씨 이름을 꽤 자주 들었거든요.”

“에이, 그건 다 과대평가죠.”

“제가 봤을 때는 그 평가들이 오히려 과소평가 같던데요. 주하나 씨처럼 현장 전투에 참여하고, 거기다 이렇게까지 실력 좋은 힐러는 흔치 않아요.”

“별것 아니에요.”

주하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내게 다시금 미소를 지어 줬다.

“그나저나 박유진 씨의 전담 힐러가 되면, 언젠가 박유진 씨와 같이 전투에 참여할 일이 있을까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야죠. 하지만 어쩌면… 저와 함께 신을 상대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고요.”

* * *

“치료 다 받았냐?”

“네, 스승님.”

주하나에게 마저 치료를 받은 후, 나는 바로 신예진을 만나러 갔다.

“움직이는 데 지장 없지?”

“네.”

“전력을 다해서 싸울 상태이고?”

“네, 몸을 완벽하게 회복시켰어요.”

“잘했어. 그건 그렇고… 세리 누나는 일하러 갔지?”

“네. 아까 제 상태 확인하시고 바로 어디 가더라고요.”

“그 누나는 바쁠 만하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수원의 외곽에 위치한 높은 건물.

그 건물에 헌터들의 베이스캠프가 세워졌다.

그리고 하세리는 이번에도 상황 통제를 맡기로 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이리저리 치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단한 누나라니까.’

하세리는 헌터로서도 강했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건 바로 지휘 능력이었다.

큰 사건이 터지면 그녀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사람들을 이끌었다.

덕분에 회귀 전에도 하세리 덕에 여러모로 편했고, 이번 생에서도 그 혜택을 확실히 누리고 있었다.

‘하세리 아니었으면 지금쯤 많이 혼란스러워겠지.’

한국 곳곳에 모인 헌터들을 전부 통제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하세리 정도의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나저나 해외에서 헌터들을 파견 보내고 싶어 한다고 들은 거 같은데, 너는 뭐 들은 게 있냐?”

“아까 사람들 대화하는 거 들었는데, 해외에서 헌터들을 이곳으로 보내 게이트를 조사하고, 게이트를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좋지 않을까요? 이번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괜찮을 거 같은데.”

“뭐,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해외에서 도움을 너무 많이 받으면 귀찮아질 수도 있어.”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움을 계속 받다 보면, 해외에서 온 헌터들의 간섭이 심해질 수 있거든. 그렇게 되면, 일을 내가 원하는 대로 처리 못 할지도 몰라.”

“아,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치. 지금 내가 혼자 저 게이트의 주인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세리 누나가 윗분들에게 잘 말해 놨기 때문이야. 근데 해외의 윗분들에게는 그게 통할지 미지수지.”

“으음, 그럼 이 사실을 제가 하세리 씨에게 말하고…….”

“아니, 그럴 필요 없을 거야. 아마 세리 누나는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마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판을 잘 만들어 줄 거야.”

회귀 전, 나는 하세리와 온갖 일들을 같이 겪었다.

그 덕에 그녀가 이 상황에서 무슨 선택을 할 것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쯤 하세리는 해외에서 오는 연락들을 적당히 거절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빨리 움직여 줘야지.”

“움직이는 거라면…….”

“신을 다시 상대할 준비를 해야지.”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신예진을 바라봤다.

“그런 의미에서, 신예진. 다시 물을게. 너 나와 같이 신을 상대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어요. 스승님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죠. 근데…….”

신예진은 확신이 안 선다는 표정이었다.

“다곤 때처럼 와이번에게 제 공격이 전혀 안 통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싸워야 되는 거죠?”

“다 방법이 있어.”

나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검은색 반지를 바라봤다.

“일단 따라와 봐. 내일 저녁까지 확실히 준비해 두자.”

* * *

“자, 그럼 한번 해 보자.”

“어어… 스승님? 이거 진짜로 되는 거 맞죠?”

“맞을 거야……. 아마도.”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이것에 대해서 몇 시간 전에 들은 것뿐.

실제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스승님 말씀은… 스승님이 받은 그 신의 축복의 일부를 제게 넘겨준다는 거죠?”

“뭐, 그런 셈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축복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 몸 안에 있는 이 신의 기운을 너에게 조금 넘겨줄 거야.”

“그리고 제가 그 기운을 받게 되면…….”

“응, 아까 말한 것처럼… 너의 공격도 신에게 통하게 될 거야.”

몇 시간 전, 와이번과의 첫 전투가 끝난 직후.

아라고노트가 내게 말했다.

그 내용은 바로 내가 지닌 이 신의 기운을 타인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에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대상은 단 한 명.’

이론상 한 명 이상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아라고노트가 내게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그게 힘들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당장은 딱 한 명에게 힘을 나누어 주는 편이 더 효율적일 거라고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게…….

“스승님, 근데 제게 이 힘을 나누어 주면… 스승님이 신에게 가하는 공격의 위력이 반토막 난다고…….”

“응, 맞아. 몇 시간 전에 말했었지?”

아라고노트가 내게 미리 말했었다.

힘을 나누어 줄수록, 내가 신에게 입힐 피해의 위력이 감소할 거라고 말이다.

‘한 명과 나누면 반토막 나고, 두 명과 나누면 3분의 1, 그리고 네 명과 나누면 4분의 1이 되는……. 뭐, 대충 그런 거라고 했지.’

아라고노트도 따로 말했었다.

힘을 나누어서 함께 싸우는 게, 어쩌면 악수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의 공격이 주는 피해가 크게 감소하는 건 꽤 큰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나와 함께 싸워 줄 사람이 있어야 될 거 같아.’

다른 신은 몰라도, 와이번은 혼자 이기기 힘들었다.

적어도 와이번을 상대하려면 신예진의 도움이 필요했다.

“근데 스승님. 제가 과연 도움이 될까요? 스승님의 공격 위력을 절반으로 줄일 정도로 제가…….”

“나도 다 생각이 있어. 그러니까… 자.”

나는 신예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검은색 반지가 끼워진 내 손을 말이다.

“손잡도록 해.”

“…네.”

“좋아, 그럼…….”

나는 아라고노트가 내게 말했던 것들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가진 신의 기운을 나누는 방법은 분명…….

“나, 거미들의 왕이자, 아라고노트의 사도로서… 내가 받은 이 축복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양도하겠다. 이는 맹세의 일부이며…….”

내 말에 반지로부터 검은색 기운이 조금 빠져나와 그대로 신예진 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끝났다. 그래서… 조금 달라진 거 같아?”

“글쎄요. 뭔가 몸 안에 이상한 기운이 들어온 거는 같은데…….”

“그럼 아마 맞게 된 것일 거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기운은 24시간 정도 유지될 거야. 그러니까 그사이에 간단히 같이 합을 맞추고, 그 후에 출발하자.”

“스승님. 합을 맞춘다는 건…….”

“와이번은 그래도 신이야. 신을 잡는 건데, 최소한의 준비를 해 주는 게 예의잖아, 안 그래?”

* * *

비슷한 시각.

수원의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게이트 안.

“좋아, 이것도 고쳤고… 여기도 마력을 보충했으니……. 으응, 좋아. 다 됐다.”

게이트의 내부를 고치던 와이번은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더 이상 붕괴하는 일은 없겠네. 근데 이렇게 보니까, 내가 확실히 일을 급하게 처리했구나.”

와이번은 게이트의 내부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 차원의 틈을 너무 급하게 만들었던 게… 오랜만의 임무로 신나서 그랬었나 보네. 하아아아, 근데 내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와이번은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붕괴하지만 않았으면 지금쯤 박유진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인류를 쓸어버리고 있었을 텐데. 게다가 박유진을 생포하고, 내 마음대로…….”

와이번은 자신의 몸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으으음……. 이따 박유진을 잡으면 내 노리개… 아니, 노예로 만들고 내 마음대로……. 근데 그 전에 박유진을 잡아야 하는데, 이제 슬슬 다시 출발을…….”

생각을 정리한 와이번은 다시금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가려던 순간.

“음? 이 기운은… 박유진? 설마 자기 발로 다시 근처로 온 건가?”

와이번은 게이트 바로 밖에 있는 박유진의 기운을 감지했다.

이에 와이번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직접 오다니……. 찾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겠네, 크큭. 히… 오히려 좋아. 그럼 이번에야말로 박유진, 그 인간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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