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 * *
신예진은 박유진이 와이번의 손에 붙잡히는 걸 무력히 볼 수밖에 없었다.
몇 분 전까지 신예진과 박유진은 와이번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따로 합을 맞춘 적은 없었지만, 둘의 연계는 완벽에 가까웠다.
지난 반년 동안 박유진에게 꾸준히 배운 덕에 신예진은 자기도 모르게 박유진의 전투 스타일을 파악하게 되었다.
덕분에 와이번을 수월하게 상대했지만 결국 한계가 왔었다.
“저것이… 드래곤.”
그림자에서 나오자 눈에 들어온 거대한 존재.
그 존재가 내뿜는 위압감에 신예진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정신 줄을 붙잡았다.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와이번의 손에 붙잡힌 박유진.
그 모습에 신예진은 움직이려고 했으나 그녀는 이내 멈추었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 아아…….”
신예진은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암살 계열의 헌터.
저렇게 크고 강력한 상대에게 그녀의 암살 기술들이 통할 리가 없었다.
“아, 안 돼…….”
와이번이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하자 박유진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신예진은 침착함을 잃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도 해야…….”
신예진에게 있어 박유진은 몇 년 만에 다시 갖게 된 소중한 가족이었다.
반년밖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그 반년 동안 신예진은 박유진에게 가족의 정을 여러 차례 느꼈다.
그렇기에 신예진은 잃고 싶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가족을 잃었던 적이 있던 그녀였기에 더더욱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근데 내가 뭘 할 수 있지?’
신예진에게 있는 거라고는 암살 능력.
그리고 그림자로 이동하는 능력뿐이었다.
고작 이런 능력들로 저 거대한 드래곤에게 뭘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방법이… 방법이 진짜 없는 건가?’
신예진은 다시금 박유진, 그리고 박유진을 붙잡고 있는 와이번을 바라봤다.
현재 박유진은 무언가 시도하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신예진은 불안감을 느꼈다.
박유진이 지금 하려는 그 수가, 박유진에게 있어 매우 위험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신예진은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 너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구나. 나의 사도의 동료여.
“어?”
신예진의 머릿속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의 권능을 줄 수는 없다. 그건 이미 박유진에게 줬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 기운으로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능력을 증폭시켜 줄 수는 있을 거다. 그러니 그걸 잘 활용해 보도록 해라.
“응? 그게 무슨…….”
낯선 남자의 말을 신예진은 이해를 못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대해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스승님이…….’
와이번은 박유진을 죽이려 하고 있었고, 박유진은 무언가 위험한 수를 강행하려는 듯했다.
그래서 신예진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자신에게 능력이 있든 없든, 뭐라도 해 볼 생각이었다.
“멈춰, 이 도마뱀 새끼야!”
신예진은 크게 외치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 안에서 기운이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박유진에게서 받았던 그 기운, 그러니까 신의 기운들이 심장에 모여… 조금 더 짙어지는 것만 같았다.
신예진은 이게 뭔가 싶었는데, 그 순간.
“음?”
와이번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림자가 땅에서 튀어나와 그녀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어?”
그리고 당황한 것은 신예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자가 질량을 가지고 땅에서 떨어져 나온 상황.
그 현상을 본인이 일으켰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걸 본인이 어떻게 일으킨 건지, 그녀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포로 】
‘…대체 뭐지?’
그림자가 질량을 가진 채 바닥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이 와이번을 붙잡아 땅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있었다.
‘신예진이 하는 건가?’
일단 그림자를 이용하는 걸 보니 신예진과 무언가 관련이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예진에게 저런 능력이 있다는 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자에게 질량을 부여해, 그것을 조종한다고?’
비슷한 능력을 본 적은 많았다.
그림자와 관련된 헌터들은 꽤 많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예진은 분명 그런 능력이 없던…….
‘아니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나는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그림자에게 붙잡힌 와이번은 땅바닥을 향해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이건 무슨…….”
드래곤으로 변한 와이번의 힘은 꽤 강했다.
하지만 이 그림자들이 지닌 힘이 더 강한 듯했다.
게다가 와이번은 목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라 힘을 제대로 못 내고 있었다.
‘…될 거 같다.’
갑작스러운 그림자의 기습에 와이번은 주의가 분산되었다.
그로 인해 나를 붙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빠진 상태였다.
이때라면 시도해 볼 만했다.
파지지직!
나는 내 주위로 전류를 내뿜었다.
원래는 최대 화력으로 내뿜어 와이번과 동귀어진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졌다.
“으아악?! 따갑잖아!”
내가 전류를 내뿜자 와이번은 놀라며 나를 손에서 놓쳤다.
그렇게 나는 땅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보통이었다면 높은 곳에서의 착지는 별 어려움 없이 했겠지만…….
‘…아, X발.’
지금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방금 와이번의 손아귀에서 몸 곳곳의 뼈가 박살 났던 참이었다.
이런 몸으로 제대로 착지할 수 없었다.
‘죽지는 않겠다만… 좀 많이 아프겠네.’
등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뭐, 치유를 받으면 되겠지만 아마 당분간 침대 신세를…….
“스승님!”
“…음?”
추락의 고통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예진이 추락하던 나를 받아 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으음, 글쎄다. 괜찮다고 하기에 애매해서 말이지.”
나는 신예진의 품에 안긴 채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래도 죽지 않았으면 된 거지. 아무튼, 저 그림자 말이야.”
나는 와이번과 힘 싸움을 유지하는 그림자들을 가리켰다.
“네가 한 거지?”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니, 저의 능력으로 하는 건 맞는 거 같지만, 이걸 어떻게 하는지는 저도 잘…….”
“최대한 조절해 봐.”
나는 신예진의 품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야야야…….”
몸 곳곳의 뼈가 제대로 박살 나 있었다.
그래서 서 있는 것도 버거웠다.
‘그래도 아직 왼쪽 다리는 멀쩡한 것 같고……. 뭐, 다리 하나면 충분하지.’
게다가 오른팔도 상대적으로 상태가 꽤 양호한 편이었다.
그 외의 곳들은 꽤 심하게 다쳤지만 오른팔과 왼쪽 다리. 이 두 곳이 멀쩡했고… 이 정도면 싸우기에 아직 충분했다.
“…아윽.”
그래, 싸울 수는 있었다.
다만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스승님, 지금 뼈가 이상하게 꺾인 게 보이는데, 그냥 여기서 도망을…….”
“됐어. 오히려 지금이 기회야. 네 덕에 겨우 온 기회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저 그림자.
신예진이 불러낸 저 거대한 그림자 덕에 다시 한번 기회가 보였다.
“신예진. 저 그림자를 계속 붙들고 있어. 그걸로 와이번을 계속 잡아끌도록 해.”
“하, 하지만… 저 이거 어떻게 다루는지 몰라요. 일단 제 능력은 맞는 거 같은데, 제가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는…….”
“어떻게든 해. 그러면… 저 망할 신도 어떻게든 끝낼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예진아.”
나는 힘겹게 말했다.
“부탁할게.”
“…네. 해 볼게요.”
나의 진심이 통한 건지 신예진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와이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자 그림자들이 와이번을 더 세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 이건 대체 무슨 힘인 거야?!”
와이번은 여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신예진의 그림자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와이번을 공격하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후.”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나를 찾아왔다.
전류를 내 안에서 끌어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남은 거미줄은… 딱 1회분이네.’
아까 다 털어버린 거미줄이 그 사이에 아주 약간 충전되었다.
‘그리고 엔드리온의 조각을 쓴다면… 공격의 위력이 반감해서 들어가도…….’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런 후, 그림자와 씨름 중인 와이번을 향해 달려갔다.
‘…저기다.’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한 와이번.
변한 그 몸의 목 부분에 상처가 있었다.
덩치에 비하자면 아주 작은 상처였지만 그 상처가 내가 만들어 낸 치명상이라고 확신했다.
파지직.
나는 남은 전류를 전부 자바니아에 집중시킨 채 거미줄을 근처 건물을 향해 날렸다.
그리고 와이어 타듯이 몸을 날려 그대로 와이번의 상처 근처로 몸을 날렸다.
“어엇?!”
와이번은 뒤늦게 나의 이 공격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녀가 반응할 틈도 없이 나는 자바니아를 다시 한번 와이번의 목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악!”
와이번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목에서 전류가 튀었다.
그리고 잠시 뒤, 와이번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점점 작아지더니 와이번은 이내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우우.”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단검을 와이번의 목에서 뽑았다.
그리고 그대로 와이번의 근처에 쓰러졌다.
“스승님!”
신예진은 다루던 그림자들을 없애며 내게 달려왔다.
“몸이…….”
“몸 박살 난 거 아니까, 굳이 말하지 마.”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지만 신예진이 걱정할까 봐 최대한 내색을 안 했다.
“그보다 와이번. 저 녀석 죽었냐?”
“목이 그렇게 뚫렸는데 살아 있을 리가…….”
“확인해 봐.”
“그러니까 아무리 봐도 죽었… 어? 뭐야? 왜 숨을 쉬는…….”
“신을 만만히 보지 마.”
나는 피식 웃으며 신예진에게 자바니아를 건넸다.
“죽이고 와. 목과 심장을 한 번씩 찌르면 죽을 거다.”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와이번은 죽음의 문턱까지 간 상태라고 말이다.
아마 여기서 조금만 더 건들면 와이번의 신체는 다곤처럼 분명 무너질 터였다.
“빨리 끝내자. 이러다가 나도 죽겠다.”
“네, 바로 하고 올게요.”
못 움직이는 나를 대신해 신예진이 와이번의 숨통을 끊으러 갔다.
원래 같았으면 이대로 신을 죽이고 이번 일도 마무리 지었을 터였는데…….
“…신예진. 잠깐만.”
“네?”
“다시 와 봐.”
문득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죠?”
“잠시만.”
나는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 중 하나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나와 신예진을 이어 주고 있던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음? 스승님? 방금 뭐를…….”
신예진도 그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바로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별것 아니야. 너 그 발찌 있지? 내가 너의 제약들을 전부 풀었으니까, 너는 그 발찌 이제 풀어도 괜찮아.”
“네? 그러니까 저와의 이 관계를 파기하고… 왜 굳이……. 아니, 그보다 갑자기 왜…….”
“좋은 생각이 났거든.”
나는 쓰러져 있는 와이번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신예진.”
“네?”
“너 그 발찌 풀고… 그걸 와이번의 발목에 한번 채워 볼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