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이걸 저년의 발목에 채우라고요?”
“응, 할 수 있지?”
“할 수는 있는데…….”
신예진은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전한 거… 맞죠?”
“사실 나도 모른다.”
“아니, 스승님.”
신예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 이 도구가 통했을지 모르지만, 저년은 신이에요. 이게 통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건 해 보기 전까지 모르는 거지.”
“으으음, 근데 신에게 이 발찌가 통할까요? 윤경이가 천재는 맞는데, 과연 신의 영혼까지 통제할 물건을 만들었을 거 같지는…….”
“그러니까 해 보기 전까지 모르는 거라니까.”
“그렇기는 한데… 뭔가 좀 불안해서요.”
신예진은 와이번 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쓰면 뭐랄까……. 영혼이 연결되는 그런 느낌이 들던데, 그렇다는 건 스승님의 영혼이 저 도마뱀 새끼와 연결되는 거잖아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거 안전한 걸까요? 스승님이 신을 자기 휘하로 부리게 되는 건데, 스승님의 영혼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내 영혼에 무리가 갈까 봐 걱정이라는 거지?”
“그렇죠. 물론 스승님이 대단한 거는 맞는데, 인간이 신의 영혼을 과연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는…….”
“네 말이 뭔지 이해해. 하지만 말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신예진에게 말했다.
“가끔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어. 네 말대로 이 발찌를 와이번에게 채우는 건 위험할 수도 있어. 하지만 만약에 성공하면… 잘만 하면 이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신을 노예로 부리게 된다면 그것만큼 대단한 것도 없겠죠. 하지만 스승님의 몸 상태로 하기에는 위험한…….”
“괜찮아. 어차피 앞으로 신들과 계속 싸우려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해.”
앞으로 몇 번은 신들이 더 쳐들어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전까지 준비를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제가 끼어들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신예진은 여전히 긴가민가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발찌를 들고 가던 중, 무언가 생각났는지 다시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스승님.”
“왜?”
“방금 생각난 건데… 이 발찌… 원래 제가 차던 거잖아요?”
“그치. 근데 그건 왜?”
“왜 저를 풀어 준 거예요?”
신예진은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원래 저를 완전히 못 믿던 거 아니었어요? 제가 스승님에게 해코지할 가능성이 있으니 일부러 족쇄를 달아 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풀어 준 거야, 인마.”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최근에 느꼈어. 너 이제 나에 대한 적대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이야. 보니까 내가 네 가면을 멋대로 가져간 것에 대한 응어리도 다 푼 것 같고……. 뭐, 그냥 나를 완전히 믿고 따라 주는 것 같더라고.”
나는 사람에게 쉽게 믿음을 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적어도 여러 번 만나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한 후에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지난 반년 동안 함께한 신예진은 나의 그 기준들을 전부 만족시켰다.
“안 그래도 조만간 그 발찌 풀어 줄 생각이었어.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그냥 일찍 풀어 준 거야.”
“그러니까… 이제 저를 완벽히 믿어 준다는 거예요?”
“얼마 전부터 완벽히 신뢰하고 있었어. 그리고 오늘… 와이번과 싸우면서 그 신뢰도는 더 올라갔고.”
“스, 스승님, 저는…….”
“됐어.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하자.”
나는 와이번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발찌 채워 줘. 저 녀석 다시 깨어나기 전에 하는 편이 좋을 거야.”
“네.”
신예진은 와이번 쪽으로 빠르게 이동해 그녀의 발목에 발찌를 채웠다.
그러자 잠시 뒤, 나와 와이번을 잇는, 빛으로 이루어진 얇은 실 같은 것이 나타났다.
“…으윽?!”
그리고 잠시 뒤, 엄청난 압박감이 내 몸을 덮쳐 왔다.
이 느낌 자체는 익숙했다.
예전에 하윤경과 신예진에게 그 발찌를 채우던 당시.
나와 그 두 여자가 연결되던 그 느낌과 똑같았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너무… 강해.’
하윤경과 신예진에게 발찌를 채울 때 느꼈던 그 감각.
마치 그 두 사람의 영혼을 내가 흡수해 내 휘하에 두게 되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는데…….
‘뭔 놈의 영혼이… 이렇게 거대한 거야?’
하윤경과 신예진의 영혼은 내가 쉽게 흡수하고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와이번은 신이라 그런지 그 둘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 몸으로 감당하기에 와이번의 영혼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허억! 하아아……. 으윽.”
신예진의 경고대로였다.
인간이 신의 영혼을 온전히 담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만 같았다.
“스승님! 그냥 발찌 풀어 버리고, 와이번은 그냥 죽이는 걸로…….”
“아니. 기다려 봐.”
“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기다려 보라고.”
나는 힘겹게 대꾸하며 눈을 감았다.
그래, 인간이 신의 영혼을 굴복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비하려면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해도 상관없어.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하지만 성공하면… 성공만 할 수 있다면 이 판에서 훨씬 유리해질 거야.’
나는 나의 내면에 집중했다.
현재 내 안에 와이번의 힘이 끝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물을 작은 컵으로 받아 내는 느낌이었다.
원래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할 수 있을 거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이미 두 명의 신에게서 힘을 받은 몸.
그렇기에… 어쩌면 나의 그릇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클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의 그릇을 더 크게 늘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상당한 압박감, 그리고 방금 있던 전투로 인해 망가진 몸.
덕분에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어떻게든 나의 내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아.”
나의 예측이 맞았다.
그러니까 나의 그릇이 어쩌면 생각보다 클지도 모른다는 것.
그 예측이 맞았던 것이다.
* * *
“박유진 씨, 몸은 어때요?”
“죽을 거 같아요.”
약 두 시간 뒤.
수원에 있는 대형 병원.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수많은 힐러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으으으…….”
의사 말로는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라고 했다.
몸의 뼈가 절반 이상 박살 났고, 온갖 장기들도 심각했다고 한다.
“박유진 씨, 이제 다리 쪽을 고쳐 드릴게요.”
“네, 부탁할게요.”
나는 온몸의 힘을 빼며 주하나에게 대꾸했다.
그래도 주하나의 말에 의하면 나는 일단 고비는 넘겼다고 한다.
내장 기관들이 다친 건 얼추 다 해결했으니 이제 뼈만 제대로 붙이면 된다고 들었다.
그리고 원래 같았으면 주하나 실력의 힐러에게 골절상을 고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고 한다.
몸속에 있는 장기들은 까다롭지만 뼈는 그냥 적당히 이어 붙이면 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래, 원래 같았으면 그랬을 터였는데…….
“으음, 어어어, 으으음.”
“…많이 어렵나요?”
“쉽지 않을 거 같네요. 뼈가 그냥 부서진 거면 쉽게 끝나는데… 박유진 씨 같은 경우에는 뼈가 거의 가루가 된 상태예요. 이쯤 되면 그냥 뼈를 없애고 새로 자라게 하는 편이 더 나을 거 같은…….”
주하나는 진지하게 뼈를 다시 자라게 할 생각이었는지 꽤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이에 별말을 안 했다.
적어도 이쪽 분야는 나보다 주하나가 더 나을 터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주하나에게 치료를 계속 받던 중.
“유진아, 이제 좀 괜찮아?”
“아, 세리 누나.”
붉은 머리의 화염술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치료가 얼추 다 끝났다고 들어서 왔는데, 괜찮은 거지?”
“뭐, 고비는 넘겼다고 하더라.”
나는 내 다리를 치료하는 주하나를 슬쩍 바라봤고, 이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 목숨에 지장이 갈 만한 부상들은 전부 치료를 끝냈어요. 근데 지금 문제가 뼈들인데……. 아무래도 뼈를 없애고 새로 자라게 만드는 편이 좋을 거 같아요.”
“아, 그러니까 스켈그로우? 그 약을 쓰시려는 건가요?”
“네, 뼈를 일일이 붙이는 것보다 그 약을 쓰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약 가격이…….”
“가격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일단 치료에 집중해 주세요.”
돈 문제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한 뒤, 하세리는 다시금 내 쪽을 바라봤다.
“환자에게 막 묻는 건 미안하지만… 괜찮다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상관없어. 주하나 씨가 말한 것처럼 고비는 넘겼다니까.”
“고마워. 아무튼 확인할 게 몇 개 있는데…….”
“게이트가 아직 남은 것 때문이지?”
“응, 그것 때문이야.”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말에 의하면 와이번은 분명 처치가 되었어. 근데 수원 상공에 아직 게이트가 남아 있어.”
“그 문제는 걱정할 필요 없어, 누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리할 방법을 알고 있거든.”
“진짜? 설마 혼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거나, 그런 위험한 일이면 그냥 미리 말해 줘.”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거야. 아무튼, 걱정할 거 없어. 와이번은 확실히 잡았으니까 나머지 작업은 쉬울 거야.”
“…유진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하세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너 혹시 내게 뭐 숨기는 거 아니지? 만약 위험한 일을 나 몰래 하려는 거면…….”
“위험한 일 같은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물론 뭐 숨기는 건 맞지만 말이다.
그것도 아주 큰 것을 숨기고 있었다.
“뭐, 아무튼……. 주하나 씨. 혹시 치료하는 데 오래 걸릴까요?”
“네, 그리고 필요한 약품을 구하기 전까지 그냥 치료를 중단하는 편이…….”
“그럼 깁스만 해 주고, 목발 하나만 가져와 주세요. 저 빠르게 갔다 올 곳이 있어서요.”
“네? 이 상태로 어디를 간다는 거예요? 지금 몸의 뼈 자체가 박살 난 상태인데.”
“괜찮아요. 게다가 금방 갔다 올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 * *
“스켈그로우? 그거 여기에 몇 병 있기는 있어.”
“그럼 몇 병 내게 줘. 내 치료에 필요할 거래.”
“그래? 근데 스켈그로우는 뼈를 아예 새로 자라게 하는 약물인데……. 뼈가 아예 가루 수준이 된 게 아니면…….”
“가루가 된 거 맞아.”
“아, 그럼 필요하겠네.”
북한산에 위치한 하윤경의 연구소.
나는 수원에서 최대한 빨리 이곳으로 왔다.
물론 몸 곳곳의 뼈가 박살 난 상태라…….
“신예진, 수고했어.”
“이 정도 갖고 뭘요.”
신예진에게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온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윤경 연구소에 있는 스켈그로우를 몇 병 가져가려는 것도 있었지만…….
“하윤경, 내가 보낸 그 녀석은 잘 가둬 놨지?”
“당연하지. 이런 상황을 위해 만들어 놓은 감옥이 있거든.”
“아니, 대체 뭔 상황을 생각했길래 그런 감옥이 있는 거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하윤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네가 만든 그 발찌……. 설마 그것도 신에게 쓸 것을 생각하고 만든 것이었냐?”
“내가 만든 대부분의 발명품들은 신에게 쓰일 것을 가장해서 만들어진 것들이야.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낸 그 순간부터 그래 왔거든.”
“너도 참 대단하다.”
하윤경의 광기에 나는 다시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하윤경. 안내해 봐. 신예진, 나 계속 부축해 줘.”
“네, 스승님.”
나는 신예진의 부축을 받으며 하윤경과 같이 연구소의 깊은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지하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야! 박유진! 이거 풀어! 빨리 풀라고! 감히 신을 이렇게 가둬?!”
손과 발이 쇠사슬에 묶인 와이번.
그녀는 감옥 철창을 두들기며 나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