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 * *
“스켈그로우, 이 약을 어디서 구해 오신 거예요?”
“이 약을 갖고 있는 지인이 한 명 있었거든요.”
하윤경의 연구소를 나오고 몇 시간 뒤.
나는 헌터 협회 내의 병실에서 주하나에게 마저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대체 어떤 지인이 스켈그로우를 이렇게 많이 가지고 계신 거죠? 보통 한 병도 많이 갖고 있는 건데, 어떻게 세 병이나…….”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든요.”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윤경은 실제로 그쪽 분야의 전문가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세 병이면 충분할까요?”
“충분하고도 남죠.”
주하나는 약재들을 한곳에 섞으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 주하나는 내게 매우 짙은 초록색을 띠는 포션을 건넸다.
“자, 마시세요.”
“…이거 마셔도 되는 거 맞죠?”
“몸에 좋은 거니까 걱정 마세요. 물론… 맛이 조금 많이 없을 거예요.”
“참 안심이 되는군요.”
나는 피식 웃으며 포션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포션이 혓바닥에 닿은 순간.
“우욱? 엑? 으윽?”
“맛이 조금 많이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이, 이건 조금 많이가 아닌데요?”
맛이 없는 음식이야 많이 먹었다.
하지만 이 포션은 뭐랄까, 본능적으로 거부되는 맛이었다.
그냥 포션 자체를 몸이 거부했다.
“참고 드셔야 해요. 그래야 뼈가 다시 자라거든요.”
“네,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나는 포션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단숨에 포션을 입에 털어 넣었다.
“…우엑.”
“잘했어요. 이거 효과는 확실한데, 맛이 엄청 역하기로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아예 못 드시는 분도 있을 정도예요.”
“왜 못 마시는지 알 것 같네요.”
나는 근처에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대꾸했다.
“이걸로 된 건가요?”
“네, 스켈그로우를 드셨으니 치료는 전부 마무리됐어요. 하지만 앞으로 약 열두 시간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해요.”
주하나는 내 몸 상태를 확인하며 설명했다.
“뼈가 완전히 다 자라고 자리 잡으려면 그쯤 걸릴 테니까요.”
“알겠어요. 어차피 반나절 정도는 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온몸의 힘을 빼며 말했다.
이에 주하나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쉴 수 있다면 다행인데, 혹시 수원 상공에 아직 게이트가 있는 건…….”
“아,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온다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없애려면… 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셔야 한다고요?”
“네, 게이트 핵을 직접 없애야 하거든요.”
아까 하윤경의 연구소에서 나는 하윤경에게 와이번의 몸을 분석하게 했다.
그리고 알아본 결과, 와이번의 몸에 게이트의 핵 같은 건 없다고 했다.
다곤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게이트 안에 놓고 왔다는 뜻이겠지.’
다곤은 아마 스스로의 실력을 과신해 자신이 핵을 지니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듯했다.
하지만 와이번은 달랐다.
그녀는 핵을 안전히 게이트 안에 놓고 온 듯했다.
‘뭐, 그편이 합리적이기는 하지. 오히려 다곤이 이상했던 거야.’
귀찮겠지만 아무래도 게이트 안으로 직접 들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 작업을 조금 천천히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내가 와이번에게 온갖 제약을 다 걸어 놨으니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말고, 게이트로 그 어떤 수작도 부리지 말라고 와이번에게 명령을 내려 놓은 상태였다.
그 제약이 유효한 이상, 아마 게이트에서 이상한 게 튀어나오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래 놔둘 수는 없겠지.’
수원 상공에 거대한 게이트가 계속 있으면 사람들이 불안해할 터였다.
몸이 다 낫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으음……. 그러니까 저 게이트 안에 직접 들어가신다고요?”
“네, 몸이 다 낫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에요.”
“혼자 가시는 건가요?”
“혼자서 가겠죠? 달리 데려갈 사람이 없으니까요.”
뭐, 데려갈 거면 이제 누군가를 데려갈 수는 있을 터였다.
신예진에게 신의 기운을 나눠 줬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내 신의 기운을 나눠 주면 될 듯싶었다.
“누군가를 데려갈 수는 있나 보네요? 전에 들어 보니까 박유진 씨 외에는 하이퍼 게이트에 못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아, 네, 뭐. 상황이 조금 바뀌었거든요.”
“네,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신예진 씨? 박유진 씨의 친구분이 박유진 씨와 함께 신과 싸웠다고 들었거든요. 원래는 박유진 씨 외의 사람은 신에게 공격이 안 통하지 않았나요?”
“말씀드린 것처럼 상황이 바뀌어서요. 설명하자면 길어요.”
말 그대로 설명하자면 길었다.
게다가 주하나가 이 소문을 접했을 정도면 하세리도 들었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아마 하세리는 신예진이 어떻게 신에게 공격을 통하게 했는지 그걸 내게 물어볼 터였다.
‘근데 이 소문이 더 크게 퍼지면 귀찮아지겠네.’
아마 이 소문에 관심을 가장 크게 가질 건 해외의 정부들일 것이었다.
언제 신에게 공격당할지 모르니 신에게 대적할 헌터들이 나라마다 필요할 터.
근데 인공적으로 그런 헌터를 만들 방법이 있다?
‘아마 조만간 해외의 높으신 분들이 나를 찾아오겠네.’
보나 마나 엄청난 금품 등의 것들을 제시하며 그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할 듯했다.
내 경험상 이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그냥 당분간 은둔을 해 버리는 것도…….
“박유진 씨.”
“음? 네?”
“혹시 저를 게이트 안으로 데려가실 수 있나요?”
“주하나 씨를요?”
“네.”
주하나는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
“박유진 씨와 함께 그 게이트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걱정되는 건가요?”
“저는 요즘 항상 박유진 씨를 걱정하고 있어요.”
주하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들이 나타난 이후부터 박유진 씨가 죽지 않을까 항상 긴장한다고요.”
“죽을 일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말은 참 쉽게 하시네요.”
주하나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무튼, 박유진 씨. 저를 저 게이트 안으로 같이 데려가 줄 수 있을까요. 박유진 씨가 걱정돼서 함께하려는 것도 있는데, 그것 말고도…….”
주하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민아 씨의 팔을 고칠 수단을 찾고 싶어서요.”
“이민아의 팔이요?”
“네.”
주하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민아의 팔과 저 게이트가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없을 수도 있어요.”
주하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다만 상관이 있으면… 어쩌면 이민아 씨의 팔을 조금 더 빨리 고칠지도 모르거든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알고 있겠지만, 이민아의 씨의 팔은 지금 심하게 다쳤어요. 하지만 심하게 다쳐도, 박유진 씨가 방금 마신 스켈그로우 같은 약물을 쓰면 치료가 아예 불가능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라고 주하나는 계속 말했다.
“이민아 씨의 상처는 조금 달라요. 뭐라고 해야 하나, 저주? 저주 같은 게 걸린 느낌이에요. 물론 이민아 씨의 엄청난 신체 능력이 그 저주조차 치료해 버리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나을 거예요.”
“근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죠?”
“예. 짧으면 반년, 길면 1년은 걸리겠죠. 하지만 만약… 만약 저 게이트 안에서 그 저주를 풀거나 완화시킬 재료가 있다면, 훨씬 짧아질지도 몰라요.”
“그런 재료가 저 게이트 안에 있을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 하지만 이민아 씨의 팔에 걸린 저주를 분석했으니 그 분석 결과를 토대로 찾아보면… 혹시 모르는 거죠.”
“흐음.”
나는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이민아의 팔을 빨리 고치면 나의 전력이 꽤 보강이 되는 것이었다.
특히 신을 상대할 때 이민아가 함께해 준다면 내 입장에서 편할 것이다.
하지만…….
“꼭 주하나 씨가 가야 되는 건가요? 다른 사람을…….”
“혹시 저랑 가기 싫으신 건가요?”
“아니요. 그냥… 주하나 씨가 괜히 위험해지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진심이었다.
나는 내 주변 사람이 가능한 안 다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주하나가 게이트 안에 함께 안 들어갔으면 했는데…….
“괜찮아요. 이미 그 정도 위험은 각오했거든요.”
주하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게다가 박유진 씨의 전담 힐러로서, 이런 위험쯤은 감수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굳이 감수 안 해도 되는…….”
“저는 하고 싶어요.”
주하나는 내 손을 슬쩍 잡으며 미소 지었다.
“박유진 씨의 그 위험 부담을 제가 조금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저는 좋거든요.”
“…어쩔 수 없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안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이민아라는 전력 보강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리스크가 컸지만 그만큼 리턴이 확실했다.
‘게다가 지금 상황이야말로, 이민아를 본격적으로 각성시키기 알맞아.’
지금까지 이민아의 각성을 위한 밑 준비는 얼추 했으니 이번 기회에 그걸 터뜨리는 것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민아의 팔부터 제대로 고치는 게 맞았다.
그런 상황이니…….
“내일 출발하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나요?”
“박유진 씨와 함께하는 건데,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죠.”
하얀 머리의 힐러는 참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내게 지어 주었다.
* * *
같은 시각.
다른 세계의 어딘가.
“와이번이 붙잡혔다는 건가?”
“예, 위대하신 분이여. 와이번 님은… 예, 박유진에게 포로로 붙잡힌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인간이 신을 붙잡는 게?”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아마 전에 위대하신 분께서 손을 봤던 인간 여자가…….”
“아, 하윤경인가. 하긴, 그 여자라면 와이번을 붙잡을 수단을 만들어 놨을 수 있겠구나.”
괴수들의 신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래전에 심어 놓았던 씨앗을… 이렇게 역으로 내게 한 방 먹이는구나.”
“하지만 위대하신 분이여. 최근에 하윤경의 머릿속을 한번…….”
“맞아. 씨앗을 다시 한번 심어 놨지. 아직은 그 효과가 안 나타났지만, 중요한 순간에 분명 큰 역할을 해 줄 거다. 그건 그렇고 말이다.”
괴수들의 신은 신전의 밖을 바라봤다.
“와이번이 만들어 놓은 차원의 틈. 그것은 아직 건재한 건가?”
“예, 그렇습니다. 현재 와이번 님이 잡혔을 뿐, 차원의 틈 자체에는 손상이 없습니다.”
“아마 박유진이 그것을 없애려 하겠지?”
“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도록 하지.”
괴수들의 신은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토스카에게 준비하라고 전해라. 그리고 차원의 틈을 만드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하도록.”
“아, 와이번 님이 만들어 놓은 틈을 이용하는 겁니까?”
“그편이 빠르고 효율적일 테니까.”
괴수들의 신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박유진은 다곤을 죽이고, 와이번까지 붙잡았다. 이제 쉽게 이길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될 거다. 그러니 그에게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바로 몰아붙이도록 해라.”
“예, 토스카 님에게 이 말씀까지 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자, 그럼… 토스카의 독에서 박유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