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많은 와이번들.
나는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전류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 끼에에엑?!
“어우, 좀 죽어라, 제발.”
나는 괴상하게 생긴 파충류의 목에 자바니아를 찔러 넣었다.
‘엄청 많네.’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이번들부터 시작해, 무슨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생긴 몬스터들까지.
상당히 많은 수였다.
하지만 이 몬스터들은 엄청나게 강하지 않았다.
즉, 충분히 이겨 볼 만했다.
- 크워워워!
“…아.”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생긴 몬스터가 내 쪽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자바니아로 그 불길을 흡수했다.
‘좋아. 적당히 흡수하고…….’
자바니아로 불길을 흡수하자 이내 내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나는 그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달려가 자바니아로 목을 베었다.
“후우우.”
거대한 파충류를 쓰러뜨린 후, 나는 바로 다음 몬스터를 노리려고 했다.
근데 그러려던 순간.
“윽?”
땅에서 악어 한 마리가 튀어 올라 내 왼팔을 깨물었다.
물론 나는 전류를 이용해 바로 그 악어를 나가떨어지게 했지만.
“에라이.”
왼팔에 꽤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뼈가 약간 부러지고, 피도 많이 나는 상황이…….
“박유진 씨. 잠시만요.”
근처에 있던 주하나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옅은 빛이 나기 시작했고, 그 빛이 내 팔을 향해 날아왔다.
“…역시 힐러가 있으면 편하네.”
빠른 속도로 낫는 내 팔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암만 세월이 지나도 게이트 토벌에 힐러가 필수인 이유가 있었다.
“주하나 씨. 한곳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니까 자리를 자주 옮겨 주세요.”
“네!”
“그리고 위험하면 바로 저 부르고요.”
이렇게 말한 뒤, 나는 다시금 앞을 바라봤다.
수십 마리의 와이번들과 파충류들이 있었지만… 딱히 크게 긴장은 되지 않았다.
와이번, 그 여신을 상대하고 온 덕인지 어지간한 몬스터들이 이제 약하게 보였다.
“…빨리 끝내자.”
나는 더 많은 전류를 불러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아으으으.”
“가만히 계세요. 바로 치료 시작할게요.”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심한 상처들은 없으니까요.”
약 30분 뒤.
나는 바닥에 뻗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하나는 옆에서 내 상처들을 치료해 주는 중이었다.
“네, 다행히 심한 상처는 없네요.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 주세요. 박유진 씨의 뼈는 이제 막 새로 만들어진 거라, 아직 몸에 적응하려면…….”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무리를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기는 하죠.”
주하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뼈가 생기자마자 여기 오는 걸 막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새로 생긴 뼈라 이렇게 바로 움직이면 안 되는데.”
“신경 쓰지 마요. 제가 선택한 거니까요.”
나는 천천히 상체만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그나저나 이곳……. 아까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참 이질적인 곳이네요.”
“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주하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게이트의 내부는 그냥 하나의 장소에 불과한 것 같은데, 이곳은…….”
“하나의 세계 같네요.”
“네, 딱 그 느낌이에요. 어디 폐쇄된 공간이 아닌 하나의 세계 같은…….”
주하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지금까지 온갖 게이트를 다 다녔지만, 이런 게이트는 진짜 처음이에요.”
“네, 그건 저도 마찬가지네요. 흐음, 주하나 씨. 혹시 이 연구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어떤 연구요?”
“약 20년 전이었나? 그때 과학자들이 게이트에 대해 연구하던 중, 게이트의 외부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고 해요.”
“아, 네. 그거 들은 적 있어요. 게이트는 폐쇄된 공간인데, 그 공간 너머로 무엇이 있는지……. 그 연구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당시에 과학자들은 게이트의 벽을 허물고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죠. 근데 결과는… 아시죠?”
“네, 벽을 암만 허물어도 끝이 안 보였다고 하죠.”
주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약 1년 동안 게이트 안에서 벽을 계속 허물었는데도 벽과 바위들뿐이었다죠?”
“네. 그 후로 사람들은 게이트 벽 너머에 대한 관심을 끊었죠. 게이트 너머로는 알 수 없는 법칙에 의해 막혀 있다, 이런 결론을 내린 상태였죠.”
하지만, 이라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다른 게이트들처럼 막혀 있는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 이런 게이트는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저도 신기하고, 동시에 궁금하네요. 만약 여기서 계속 걷다 보면 결국 다른 게이트들처럼 막히는 곳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제 감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네요. 뭔가 이곳은 그냥 막힘 없는, 엄청 넓은 하나의 세계 같아요. 저희가 들어온 저 게이트는 일종의 통로고요.”
나는 뒤쪽에 있는 게이트를 가리켰다.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균열.
수원의 상공에 나타난 것과 동일하게 매우 컸다.
“그러니까 이 게이트는 세계와 세계를 잇는 통로라는 말씀이시죠?”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네요. 뭐, 아무튼. 충분히 쉰 거 같으니 슬슬 출발해 보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굳은 근육들을 풀어 줬다.
“일단 이곳에 분명 이 게이트의 핵이 있을 거예요. 그걸 찾고…….”
“이민아 양의 팔을 고칠 재료도 구해야겠죠?”
“네, 그것도 찾아야죠. 근데 문제는 그 두 개를 전부 찾을 수 있냐는 거죠.”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는 보통 게이트봐 훨씬 넓어요. 아니, 넓은 정도가 아니라, 여기는 아마 또 다른 행성에 가까울 정도로 넓을 거예요. 이곳에서 과연 그 두 개를 모두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찾아봐야겠죠?”
“네, 찾아봐야죠. 그러니까 출발…을 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릴게요.”
“네? 뭐를요?”
“뭔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러니까 오늘은 딱 다섯 시간만 탐험하고 돌아가는 걸로 할까요?”
“상관은 없는데… 박유진 씨. 뭔가 불안하신 표정이네요.”
“네, 조금… 아니, 많이 불안해요.”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바위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에 무언가 엄청난 게 곧 나타날 거 같고… 저의 이런 불길한 예감은 대부분 다 맞더라고요.”
* * *
“여기 생태계는 특이하네요.”
“네,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출발한 지 약 한 시간이 지난 후.
나와 주하나는 숲을 걸으며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본 적도 없는 풀과 나무들이 있고, 심지어 생물들도…….”
“말 그대로 저희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신기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진짜로 처음 보는 종류의 장소였으니 말이다.
“그보다 주하나 씨. 이민아의 팔을 치료할 약재 같은 건 보이나요?”
“일단 계속 찾는 중이에요.”
주하나는 아까부터 발동 중이던 마법진을 내게 보여 주며 말했다.
“이 마법진에 이민아 양 팔에 새겨진 저주를 기록해 놨어요. 이 마법진과 공명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안 보이나 보네요.”
“네. 아주 약간의 공명조차 없네요.”
“뭐, 일단 계속 찾아보도록 하죠.”
그나저나 지금 이민아의 팔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게이트의 핵이 전혀 안 보이네.’
아무리 둘러봐도 안 보였다.
수원에 나타난 게이트를 닫으려면 반드시 찾아야 했는데 말이다.
‘차라리 돌아가서 어떻게든 와이번에게서 알아내고 올까? 지난번에는 절대 안 털어놓았지만, 다시 시도하면 결과가 다를 수도…….’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그때.
“…어?”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이었다.
뭐, 먹구름이 나타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나타난 건 무언가 이상했다.
“주하나 씨. 느낌이 이상하니, 일단 돌아가는 게…….”
“자, 잠시만요. 이거 분명……. 아, 찾았어요!”
일단 우리의 세계로 복귀하는 게 좋다고 판단하던 중.
주하나는 근처의 바위산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산 중턱에 있는 검은색 꽃 보이죠? 마법이 지금 저 꽃과 공명하고 있어요.”
“으음…….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나는 주하나가 가리킨 바위산을 향해 거미줄을 날렸다.
그리고 그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 주하나가 말한 검은색 꽃을 꺾어 갖고 왔다.
“이거 맞죠?”
“네, 잠깐만요. 확인을 빠르게 할게요.”
주하나는 내가 가져온 꽃을 빠르게 살폈다.
마법으로 그 꽃을 잠시 분석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거 맞아요. 이 꽃을 이용해 포션을 만들면 이민아 양의 저주를 완화할 수 있을 거예요.”
“잘됐네요. 그럼 일단 이 꽃을 가지고 돌아가도록 하죠.”
“네? 지금 돌아간다고요? 하지만 게이트의 핵을 아직 못 찾았잖아요?”
“지금 게이트의 핵을 찾을 때가 아닌 거 같아서요.”
나는 어두워진 하늘을 다시금 올려다보며 말했다.
“무언가가 오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는 어떻게 보면 적진 한가운데죠. 이런 곳에서는 저희가 너무 불리해요.”
“뭐가 온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박유진 씨의 감을 믿도록 할게요. 그럼 지금 게이트로 돌아가는 거죠?”
“네, 빠르게 복귀를…….”
나는 주하나를 데리고 왔던 길을 돌아가려고 했다.
근데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쿠쿠쿠쿵―!
“으윽?”
“꺄, 꺄아아악?! 바, 박유진 씨?!”
지진이 일어났다.
근처의 바위산들이 흔들리며 무너지기 시작했고, 울창했던 숲 또한 무너졌다.
거기다 근처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주하나 씨,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주하나를 내 품에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들어 올리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 분명 평지가 있었어.’
아까 왔던 길들을 떠올리며 나는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갑작스러운 지진의 원인은 모르겠지만 우선 안전한 곳으로 가야 했다.
일반적으로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넓은 평지로 가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주하나를 품에 안은 채 넓은 평지 쪽으로 달려갔는데.
“음?”
그 평지에 못 보던 것이 하나 생겼다.
“주하나 씨. 저 호수……. 아까 없지 않았나요?”
“네. 저도 저 호수를 본 기억이 없는데…….”
엄청난 크기의 호수.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분명 아까 이곳을 지나갈 때만 해도 없던…….
“와하하하! 네, 네가 박유진이구나?!”
상황을 파악하려던 중, 호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체불명의 언어였지만 이번에도 그 언어가 이해가 되었다.
“히히히! 드,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어! 헤헤헷!”
이상한 말투를 쓰는 존재.
뭔가 싶어서 호수를 들여다봤는데…….
“크, 크크큭! 내, 내 힘을 보여 주마!”
호수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인간의 형상에… 두꺼비가 섞인 모습의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