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그 광경에 나는 당황했고…….
“뭐, 뭐, 뭐, 뭐야?!”
토스카도 어째서인지 당황하고 있었다.
“이, 이 식물은 하루에 한 번밖에 식사를 안 하는데?! 바, 박유진을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아낀 건데……. 이, 이러면 다른 수단을…….”
토스카가 당황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자바니아로 나를 묶고 있던 나무줄기를 베었다.
그런 후, 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바, 박유진! 어디 가는 거야?!”
파리지옥을 이곳저곳 살피던 토스카는 나의 도주에 반응을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늦게 반응했다.
내가 전력을 다해 도망치자 토스카는 나의 속도를 못 따라왔다.
“자, 잡아!”
토스카의 외침에 늪지대의 동물들이 일제히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전류와 거미줄을 이용해 어떻게든 추격을 따돌렸다.
‘토스카는 이 세상의 생물들만을 다룰 수 있다고 했어.’
즉, 그렇다는 건 무생물은 토스카의 영향 밖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근처에 있던 거대한 바위산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주하나.’
주하나를 삼킨 거대한 파리지옥.
토스카의 말에 따르면 저 파리지옥에 삼켜진 사람은 하루 동안 고통받다가 죽는다고 했다.
즉, 다르게 말하면 주하나는 하루는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하루 안에 구해야 하는 건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일단 이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당장은 중요한 건 추격을 따돌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파지지직―!
나는 내 뒤쪽을 향해 전류를 날려 수십 마리의 동물들을 감전시켰다.
그런 후, 거미줄까지 날려 그들이 더더욱 나를 못 쫓아오게끔 했다.
‘찾았다.’
어느새 도착한 바위산.
그 바위산에 작은 동굴이 있었고, 나는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나는 전류를 이용해 동굴의 입구를 무너뜨리고 거미줄로 무너진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
“…잠깐 숨을 돌릴 수 있겠네.”
나는 완전히 어두워진 동굴의 바닥에 누웠다.
동굴의 입구를 완벽히 막은 탓에 동굴 안으로 공기가 잘 못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이 동굴에서 그리 오래 쉬지는 못 할 듯했다.
쾅!
쾅!
“…하아.”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토스카의 동물들이 동굴에 들어오려고 계속 시도하는 듯했다.
느낌상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만 같았다.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해결법을 찾아야 해.’
나는 전류를 조금 불러내 그 빛으로 내 상태를 살폈다.
“에라이.”
우선 내 코트의 상태가 심각했다.
회귀 전에는 흠집이 어지간해서 나지 않던 코트였다.
하지만 토스카의 독에 의해 코트의 절반이 녹아내린 상태. 사실상 누더기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독의 신이라고 했지? 하아아. 이름값 확실히 하네, X발.”
나는 욕을 중얼거리며 내 몸을 다시금 살폈다.
코트가 녹아내린 덕에 내 몸을 방어할 수단이 사라졌었다.
그 결과 나는 적들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뼈가 몇 군데 부서졌네. 그리고 거기다가…….’
나는 검게 썩은 피부 몇 군데를 바라봤다.
“진짜 괜히 독의 신이라고 불리던 게 아닌가 보네.”
별의별 다양한 독들이 내 몸에 닿은 탓인지 그냥 몸 곳곳이 고통스러웠다.
주하나가 있었더라면 이 독들 중 몇 개는 치료했겠지만…….
“하아아, 주하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
나는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거대한 파리지옥에 먹힌 주하나.
그녀를 구하는 것 또한 생각을 해야 했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까 토스카를 상대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토스카를 이기지 못한다.
토스카를 게이트 밖으로 유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이 세계를 빠져나가야 해.’
우선 돌아가서 재정비를 한 번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돌아갈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아니,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하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보면 그녀 덕분에 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전에도 목숨을 빚졌는데, 또다시 빚지게 된 것이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주하나를 버리고 가는 거야. 근데 내가 과연 주하나를 버리고 갈 수 있을까?’
나는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이 상황을 타파할 답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주하나를 버리고 갈 수는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세계에 오래 남아 있을수록 내가 불리… 아니야. 내가 이 세계를 벗어나서 재정비를 한다고 해도, 내가 과연 토스카를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토스카를 이 세계 밖으로 유인할 방법은 어떻게…….’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나도 침착하게 생각하기 힘들어졌다.
지금까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냈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토스카를… 이 세계에서 이길 수 없는 건가?”
토스카가 불러낸 이 거대한 늪지대.
이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승산이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 고민하는 모습이네.
“음?”
- 네가 이렇게 고민하고 곤경에 빠진 모습이라니……. 흔치 않네.
머릿속에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내 목에 걸려 있던 푸른색 돌멩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 고민하는 거 같으니 힌트 하나를 줄게. 토스카, 그 두꺼비는 자신의 세계에서만큼은 최강이야. 신들 중에서도 토스카의 홈그라운드에서 이길 신은 별로 없어.
“응, 그건 아까 토스카를 상대하면서 확실히 느꼈어. 근데 뭐 어떻게 하라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뭘…….”
- 그럼 간단하잖아. 토스카를 이기지 못하겠다면 토스카의 이 세계를 무너뜨리는 거야.
“…뭐?”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의문을 표했다.
이 세계를 무너뜨리라는 건 대체…….
- 토스카의 이 세계는 지구보다 작은 행성이야. 그리고 너의 지구와 비슷하게, 이 행성의 핵에도 자기장이 흐르고 있어.
“그게 뭐 어쨌다는… 어?”
처음에는 뭔 소리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녀의 말의 의도를 눈치챘다.
“설마 이 행성의 자기장을 나보고 조정해 보라고?”
- 네가 토스카의 이 세계를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가 암만 전류를 극한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해도 행성의 자기장을 다루는 짓은 불가능해. 아니, 이론상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내 전류로는 그런 위력이…….”
- 너의 한계를 뛰어넘어 봐. 지난번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그 감각, 아직 기억하고 있지?
“당연하지. 그 감각을 어떻게 잊는데?”
나는 내 손을 바라봤다.
최서희를 상대할 당시에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막고 있던 어떤 선을 넘었다.
그 선을 넘던 감각을 아직도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하지만 그 동안 연습했는데도 그 선을 아직도 제대로 못 넘고 있고, 무엇보다 나의 한계를 넘는다고 해도 행성의 자기장은 내가 어떻게…….”
- 저번의 그 여자……. 신예진이었나? 거미의 신에게 힘을 받고 꽤 날뛰더라고?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 긴말하지 않을게. 내가 힘을 빌려줄게. 그 힘으로 이 상황을 타파해 보도록 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내 머릿속에서 더 이상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목에 걸린 푸른색 돌멩이는 빛을 내며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내게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행성의 자기장을 건드리라고?”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었다.
회귀 전의 나도 한 적 없는 짓이었다.
아니, 생각조차 한 적 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내가 전류를 그 누구보다 잘 다루고, 자기장을 그 누구보다 잘 활용해도… 행성의 자기장을 건드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
나는 다시 헛웃음을 지으며 동굴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눈을 감고 집중하자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 행성을 두르고 있는 자기장이 말이다.
하지만 느껴지기만 할 뿐.
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행성의 자기장은 내가 어떻게 하기에 너무나도 거대한 힘이었다.
그러니까 인간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우웅. 우우웅.
내가 망설이는 와중에도 엔드리온의 조각은 계속해서 진동했다.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쾅!
쾅!
쾅!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무래도 토스카가 다루는 동물들이 계속 동굴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오래 있을 수 없겠네.’
이제 진짜로 뭐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이…….
“…크큭. 그래. 이 상황에서 뭘 현실적인 걸 따지고 있냐.”
나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밑져야 본전이겠지.”
나는 내 주위로 전류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류의 일부를 엔드리온의 조각에 흘려보냈다.
‘아차피 토스카를 이기려면 토스카의 이 세계를 어떻게든 무너뜨리기는 해야 해. 결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 해 봐야지.’
엔드리온의 조각에서 엄청난 양의 전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읏?”
내 안에 정체 모를 힘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힘은 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나를 내 한계 쪽으로 끌어당겼다.
‘선이… 또 느껴지네.’
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마다 느껴진 선.
나는 그 선의 근처로 또다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어찌어찌 그 선을 한 발자국 넘을 수 있었다.
그래, 지난번처럼 말이다.
그 이상 넘어가는 건 도저히…….
-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해 봐.
머릿속에 다시금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그걸 듣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여기서부터는 내 스스로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행성의 자기장을 건든다라…….’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걸 하려면 나를 가로막던 그 선을 완전히 넘어야 했다.
‘아직 겨우 한 발자국이야.’
한 발자국.
즉, 아직 한 발은 선 뒤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 발마저 선을 넘게 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 해. 어떻게든 해내자. 해내야만 해.’
단순히 토스카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회귀하면서 다시 만난 인연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또다시 구해 준 주하나를 위해.
내가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는 지금 넘쳐났다.
그걸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집중을…….
“…아.”
몇 분 동안 끝없이 집중했다.
어떻게든 전류를 내 한계까지 끌어모았다.
그러자 눈, 코, 그리고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어?”
…넘었다.
남은 발 하나도 선을 넘었다.
나를 틀어막던 선을 완전히 넘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느꼈다.
나는 내 한계를 넘은… 아니.
내가 인간에게 주어진 무언가의 한계를 넘게 되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