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 한 달 】
움직이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뼈가 이상하게 어긋난 탓에, 그리고 근육도 곳곳이 찢어진 탓에.
거기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그만하고 싶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자꾸만 들었다.
그냥 이대로 쓰러지고 싶었다.
거기다 더 나아가 그냥 이대로 죽어 버릴까 싶은 충동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아으윽.”
이제 움직이는 걸 넘어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아마 폐 부분도 다친 것 같았다.
사실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오늘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후에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어지간한 시체보다 더한 몰골이 된 건지라 치료받는다고 해도 원래의 몸으로 못 돌아갈 것이 뻔했다.
“키아아악! 더, 더, 덤벼라, 박유진!”
“그래. 덤벼, 새끼야.”
하지만 나는 미래에 대해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키에에엑?!”
“X도 아닌 게 X나 나대네.”
나는 내게 돌진해 오던 토스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얼굴에 맞은 토스카는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내 몸이 이 꼴이 됐어도… 지금의 너는 확실히 밟아 버릴 수 있어.”
나는 토스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그의 얼굴에 다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크악?! 케엑?! 께에엑?! 꾸와아엑?!”
“…진짜 X도 아니네.”
내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하는 토스카를 바라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너의 이 X 같은 세계가 무너지니까 너는 진짜 신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지는구나.”
“꾸에에엑?!”
“시끄러워.”
“쿠억?!”
나는 토스카의 정수리에 자바니아를 내리찍었다.
죽일 생각으로 칼날을 내리찍은 것이었는데, 토스카는 죽지 않았다.
“그래도 꼴에 신이긴 한가 봐. 목숨이 질기네.”
“아아아……. 그, 그만……. 제, 제발… 나, 나 아픈…….”
“오히려 잘됐네. 쉽게 죽으면 재미없지.”
“카아악?!”
“나를 고생시킨 만큼 처맞도록 해.”
나는 토스카를 향해 자바니아를 계속 내리찍었다.
이 망할 신의 육체가 소멸할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 방식으로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었다.
고작 단검만으로 신을 죽이기란 쉽지 않을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었다.
‘내가 겪은 고통만큼 아프게 해 줘야지.’
토스카 덕에 결과적으로 나는 한 단계 더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몸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나는 원래 전투에서 이런 사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몸과 정신이 워낙 몰린 탓인지 이성적으로 전투를 하지 않았다.
“너 곱게 죽을 생각 하지 마.”
나는 토스카의 손바닥을 밟으며 말했다.
이에 토스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토스카는 몸에서 독을 뿜어냈다.
몇 방울의 독이 내 몸에 튀었고, 그로 인해 내 피부의 몇 군데는 또 썩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미 망가진 몸이니까.’
몸이 멀쩡했을 때나 신경 썼지, 이제 독에 의한 상처 따위는 신경 안 썼다.
피부가 많이 따가웠지만 그냥 이를 악물며 참아 냈다.
그리고 토스카의 얼굴을 향해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끼아악?! 끄아에게?!”
“하아아. 됐고… 얼른 죽기나 해.”
나는 자바니아를 토스카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이제 슬슬 죽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토스카는 심장이 뚫렸음에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토스카는 심장이 뚫리자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나, 나, 나… 나를 죽이려 하지 마! 나, 나는 안 죽을 거야! 나는 위대한 분께 인정받은 몸이라고! 너 따위에게 죽지 않아!”
이 말과 함께 토스카는 내 가슴팍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몸이 워낙 망가진 상태라 토스카의 기습에 반응하지 못했다.
“으윽.”
토스카의 발차기는 상당히 약했다.
하지만 말했듯 내 몸이 워낙 망가져 있던 탓에 그 약한 공격에 나는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토스카는 나와 재빨리 거리를 벌렸고…….
“으아아아아! 바, 박유진! 너는 내가 죽일 거야! 내가 모든 힘을 이끌어 내서 어떻게든…….”
토스카는 양손을 땅바닥에 가져갔다.
그러자 정체 모를 기운이 토스카의 몸에 모이기 시작했다.
“네가 나의 세계를 무너뜨렸지만… 그래도 아직 끌어낼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어! 힘을 어떻게든 끌어내면… 키악?! 까아아아악?!”
“내가 그걸 그냥 지켜보겠냐, 이 X신아.”
“끄엑?!”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토스카에게 전류를 날렸다.
지금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건 토스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날린 약한 전류에도 토스카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쿨럭.”
하지만 나 또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약한 전류를 한 줄기 날리자 나는 피를 한 움큼을 토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주하나는 지금… 저 안에 있는 거 맞냐?”
나는 근처에 있던 커다란 파리지옥을 가리켰다.
그 파리지옥은 거대한 나무에 깔려 있었다.
그로 인해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수준이었으나 나는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저 파리지옥이 주하나를 삼킨 그것이 맞다고 말이다.
“주하나? 그 인간 여자? 그, 그래! 마, 맞다! 그 여자는 지금 저 안에서 지금쯤 녹는…….”
“저기서 어떻게 꺼내는데? 이 질문에나 대답해.”
“어, 없을 거야! 네가 나를 죽이지 않는 한, 나의 저 식물이 한번 먹은 걸 뱉어 낼 리가…….”
“그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죽여야겠네.”
나는 자바니아를 토스카의 정수리에 다시 한번 내리찍었다.
하지만 토스카는 이번에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일방적으로 맞는 것에 익숙해진 건지 토스카는 내게 비릿한 미소를 지어 주고 있었다.
“너… 너는 나를 절대 못 죽일 거야, 박유진. 이 세계는 계속해서 내게 힘을 주거든, 키키킥. 이 힘을 계속 받는 한, 내 생명력은 어떻게든 유지를…….”
“아직 이 세계가 덜 파괴되었다는 말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주위로 다시금 전류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럼 계속 파괴하다 보면… 언젠가 이 세계는 너에게 힘을 못 주겠네.”
이 말과 함께 나는 다시금 이 행성의 자기장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 자기장을 건드리려고 했는데, 그 순간.
“…으으.”
엄청난 고통이 내 몸을 다시 한번 덮쳤다.
뼈가 부서지고,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여기서 계속하면… 뭔가 과다 출혈로 죽게 될 거 같단 말이지.’
내 몸이 망가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지금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여기서 자기장을 또 건들면 나는 다시금 피를 온몸에서 흘릴 게 뻔했다.
그렇다 보니 지금 나는 죽을 위험이 꽤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말했듯 신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 리스크는 당연히 감수해야 했다.
파지지직―
나는 눈을 감은 채 행성의 자기장을 마구잡이로 휘젓기 시작했다.
광석들을 끌어 올려 대지를 무너뜨리고, 온갖 자성체들을 이용해 행성의 생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토스카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러는 중이었다.
“…아.”
토스카의 행성을 망가뜨리던 도중 내 오른쪽 눈이 아파 왔다.
그리고 이내 내 오른쪽 눈은 시야를 잃었다.
“하, 미치겠네.”
아무래도 최소 몇 달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몸을 극한까지 망가뜨린 거라 재활하는 데 분명 오래 걸릴 터였다.
하지만 신을 이기기 위해 이 정도 희생은 뭐… 싸게 먹힌 게 아닐까 싶다.
“아, 안 돼! 내, 내 힘이! 내 세계가! 더, 더 이상 내게 힘이 더 이상… 키아아악?!”
“자, 토스카. 내 질문을 잘 듣고, 똑바로 대답하도록 해.”
나는 몸을 일으키던 토스카를 걷어차 그를 다시 쓰러뜨렸다.
그런 후, 그의 명치를 밟으며 그를 노려봤다.
“너, 이제 내 손에 죽는 거 가능해졌냐?”
“나, 나, 나는… 나는 신이다! 네, 네가 뭔 짓을 해도 나는 결국 부활을…….”
“그래, 그건 알아, 새끼야. 아무튼 네 반응을 보니까 이제 죽을 수는 있나 보네.”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 미소가 꽤 무서웠는지 토스카는 날뛰기 시작했다.
“바, 박유진! 자, 잠깐만 기다려 봐! 나, 나는 죽기 싫어! 부, 부활하겠지만, 며, 몇백 년 동안 영혼이 흩어진 채…….”
“내 알 바 아니야, 이 X 같은 새끼야.”
파지지직―!
나는 자바니아에 전류를 집중시켰다.
몸 상태 때문에 강력한 전류를 불러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토스카 또한 몸 상태가 망가진 건 똑같았다.
이 새끼를 죽이기 위한 전류는 강할 필요가 없었다.
“끄아아아악!”
나는 전류가 흐르는 자바니아를 토스카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그런 후, 이번에는 그의 머리에 찔렀다.
그다음에 복부에, 명치에, 다리에…….
아무튼 찌를 수 있는 곳은 전부 찔렀다.
그렇게 몇 분 후.
“…겨우 죽였네.”
토스카는 이내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초점 풀린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음?”
토스카가 확실히 죽었는지 그의 시체를 살피던 중.
토스카의 입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왔다.
내 주먹 크기의 보석이었는데…….
“…게이트의 핵이구나.”
나는 그 보석을 들어 올리며 뒤쪽을 슬쩍 바라봤다.
내가 이 행성을 무너뜨리던 와중에도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거대한 게이트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X 같은 것도 이제 없앨 수 있겠네. 그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근처에 있던 커다란 파리지옥을 바라봤다.
바위와 나무들에 깔린 파리지옥.
일단 저것을 베고 저 안에 있는 주하나를…….
“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자마자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토스카를 죽인 직후라 그런지 온몸의 긴장이 풀린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아. 안 돼.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긴장 풀지 마.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파리지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주하나를 데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거기까지 마무리 지어야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었다.
* * *
“…그래서 토스카는 결국 죽은 건가?”
“그,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분이여. 토스카 님도 결국…….”
“박유진은 참 나를 재밌게 하는구나.”
괴수들의 신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런 상황 자체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인간 따위가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려고 할 줄이야. 이것 참…….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고 있구나.”
“위대하신 분이여. 그럼 이제는 어떻게…….”
“아직 보낼 수 있는 나의 수하들은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구나. 여차하면… 조만간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
“직접… 움직이신다는 말씀입니까? 고작 인간 하나 때문에…….”
“그 인간 하나가 명부 신을 세 명이나 죽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박유진을 이쯤 되면 위협이라 판단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괴수들의 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신전의 구석에 있던 그의 검을 슬쩍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