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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92화 (192/240)

192화

* * *

“…X나 힘드네.”

나는 힘겹게 거대한 파리지옥을 자바니아로 베었다.

파리지옥 자체가 꽤 크고 두꺼운 탓에 이걸 갈라 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나는 그나마 남아 있던 모든 힘을 동원해 파리지옥의 중앙을 갈랐다.

그렇게 몇 분간의 사투 뒤.

“…됐다.”

파리지옥의 몸통을 완전히 베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그 틈 사이로 엄청난 양의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산성이네.’

막 엄청 위험한 산성 액체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양이었다.

강한 산성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 양에 빠지면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하나는 이 산성 용액이 가득한 파리지옥에 몇 시간 빠져 있었다.

‘괜찮으려나?’

주하나는 힐러라 신체적인 능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주하나는 지금쯤…….

“어? 박유진 씨? 박유진 씨 맞으세요?”

“주하나 씨? 괜찮으세요?”

파리지옥 내부에서부터 주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파리지옥에 낸 틈을 더 크게 벌리자 이내 주하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주하나의 모습을 매우 멀쩡했다.

“안 다치신 거 같네요?”

“네, 방벽 마법으로 제 몸을 지키고 있었거든요. 슬슬 마력이 떨어져서 걱정되기는 했는데……. 아니, 뭐야? 바, 박유진 씨? 몸이 왜…….”

주하나는 나를 보자마자 서둘러 파리지옥 밖으로 나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모, 몸이 왜……. 아니, 몸 상태가 지금……. 박유진 씨. 지금 심각한…….”

“네, 저도 제 상태가 심각한 거 알아요.”

나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괜찮다고 허세를 부리기 위한 미소였지만 아쉽게도 주하나에게 나의 허세가 통하지 않았다.

“박유진 씨. 얼른 여기에 누우세요. 지금 당장 치료받으셔야 해요. 이 상태로 움직이면…….”

“일단 이 세계를 빨리 빠져나가죠.”

나는 어떻게든 정신 줄을 붙잡으며 말했다.

“제가 이쪽 세계의 동물들을 거의 다 죽여 놨지만, 그래도 아직 몇 마리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빨리 이곳을…….”

“거의 다 죽이다니요? 그러고 보니 이 늪지대…….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저 파리지옥에 갇힌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많은 일이 있었죠. 이 행성을 무너뜨리고, 토스카를 죽이고……. 네, 많은 일이 있었어요.”

슬슬 버티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여기서 쓰러지기 전에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는 게 좋아 보였다.

“아무튼 얼른 가죠. 여기서 치료받는 것보다 돌아가서 치료를…….”

“박유진 씨. 그러니까 지금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요.”

“그럴 시간이 없…….”

나는 이 세계를 빠르게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매우 당연한 생각을 못 했었다.

주하나가 실력 있는 힐러라는 점과… 의사 말은 들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엇?”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자 내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렸다.

아니,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내 온몸의 힘이 빠진 것이었다.

“박유진 씨!”

주하나는 나를 재빨리 붙잡았다.

“자, 여기에 천천히 누우세요. 네, 누우시고… 정신 잃지 마세요. 어떻게든 깨어 있어야 해요.”

“…그건 무리일 거 같네요.”

나는 바닥에 누운 채 주하나를 올려다봤다.

점점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방금까지 고통으로 가득했던 몸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거 같네요.”

“피만 많이 흘리신 게 아니에요. 아, 아무튼, 말하지 말고 정신을 유지하는 데 최대한 집중하세요. 제가 치료를…….”

“정신 차리고 있을 힘도 없네요.”

그래,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주하나 씨. 이거 게이트 핵이니까… 여차하면 이걸 부수고 게이트 밖으로 나가도록 하세요.”

“박유진 씨. 잘 들으세요. 저는 박유진 씨와 함께 이곳을 나갈 거예요.”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나는 게이트의 핵을 주하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향해 옅게 미소를 지었다.

“저를 잘 치료해 줄 거라고 믿을게요, 주하나 씨. 옛날에 했던 것처럼요.”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옆에서 주하나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조차도 이제 들리지 않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지금 내 몸은 살아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즉,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사실 지금 어느 정도 죽음을 각오한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 죽을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내 옆에 주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하나라면 이번에도 나를 구해 줄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 * *

박유진이 정신을 잃자 주하나는 순간적으로 침착함을 잃었다.

‘어떻게 하지? 지금 내가 뭐를 해야…….’

주하나는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그 경험 덕에 주하나는 어지간한 환자들을 봐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박유진의 경우는 달랐다.

‘몸 상태가 너무 심각해. 내가 치료할 수 있을까?’

박유진은 지금 살아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진작 죽었어야 정상인 수많은 상처들을 박유진은 몸에 지니고 있었다.

‘뭐부터 치료해야 하는 거지?’

주하나는 마법으로 빠르게 박유진의 몸을 스캔했다.

그녀는 박유진이 어떤 상처들을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했는데…….

“…어? 아니, 뭔……. 진짜로…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박유진의 몸에 생긴 수많은 부상들.

그걸 보자 주하나의 머리는 더욱더 하얘졌다.

‘당장 치료 안 하면 죽을 가능성이 높아. 근데 문제는… 혼자서 치료할 수 있는 부상들이 아니야.’

주하나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를 치료하는 건 주하나에게 있어 언제나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했다.

지금 눈앞의 환자가 박유진이었으니까.

“이, 일단 피부터 수혈을 해야 하는데… 마법으로 인공 피를…….”

주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법을 쓰기 시작했으나 그녀는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못 살려.’

박유진과 빠르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 온갖 의료진들을 부르면 살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박유진을 빠르게 게이트 밖으로 데려가는 건 불가능했다.

즉, 주하나는 지금 당장 박유진을 치료해야 했지만 그녀는 본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내 실력으로는… 내 마법으로는… 이건 치료할 수 없어.”

박유진을 살리려면 주하나는 그의 근육 조직과 뼈, 그리고 장기 등을 하나하나 전부 섬세히 치료해야 했다.

그러나 주하나에게 그 정도의 능력은 없었다.

‘아니야, 뭐라도 해 보자. 일단 응급 처치만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그다음에 박유진 씨를 데리고 나가면…….’

주하나는 마법을 발동하기 시작했으나 그녀는 박유진을 살리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그 사실 때문에 주하나는 마법의 발동에 제대로 집중을…….

“…응?”

마법의 발동에 애를 먹던 중, 주하나는 문득 자신의 몸 안에서 이질적인 기운을 느꼈다.

주하나는 그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박유진 씨가 내게 준… 신의 기운?’

지금까지 체내에 보관만 하고 있던 그 기운이 어째서인지 주하나의 몸 안에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주하나는 고개를 갸웃했으며 그와 동시에…….

“…할 수 있는 건가?”

주하나는 어째서인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에서 존재감을 신의 기운.

이 기운과 함께라면 주하나는 박유진을 살릴 수만 있을 거 같았다.

이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함께 주하나는 다시 한번 박유진의 치료를 시작했다.

* * *

“으으으…….”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몸 곳곳에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니 아직은 죽지 않은 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주하나가 나를 살려 낸 것일지도 몰랐다.

“아… 으…….”

나는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고개만 겨우 들 수 있는 정도였다.

‘그나저나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죽지 않은 건 확실했다.

나는 분명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일단 여기는 아직 토스카의 세계야.’

주변에 폐허가 된 늪지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즉, 나는 아직 내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서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주하나 씨?”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대답이 없었다.

“으으……. 주하나 씨.”

다시 불렀으나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내 근처에 쓰러져 있는 하얀 머리의 힐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하… 아윽……. 주하나 씨.”

쓰러진 주하나의 모습을 본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하나가… 죽은 건가? 아니, 그래도 죽은 거 같지는 않아. 하지만 상태가 어째…….’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하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어떻게든 손을…….

“너무 걱정할 거 없어. 그 여자는 잠든 것뿐이야.”

“그렇다. 그러니 너 자신을 더 신경 쓰도록 해라, 박유진.”

“음?”

분명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내 곁에 어느새 거대한 거미와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형체가 불분명한 여자가 있었다.

“…엔드리온? 그리고… 아라고노트?”

“그렇다.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인가?”

“오, 그래? 박유진을 직접 만나는 거 처음이라고, 아라고노트?”

“그렇다네, 엔드리온.”

거미는 거대한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내 나를 다시금 바라봤다.

“토스카를 이 늪지대에서 쓰러뜨리다니. 신도 하기 힘든 걸 용케도 해냈구나.”

“에이, 그것보다 나는 행성을 초토화시킨 게 더 대단한데? 행성을 무너뜨리는 건 보통 인간이 할 업적이 아니라고.”

“너희 둘… 왜 여기에…….”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고, 이에 푸른 빛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토스카의 이 세계는 신계 쪽이라 직접 올 수 있었거든. 물론 오래 있을 수는 없어. 다른 신들에게 우리가 이러는 거 걸리면 꽤 곤란해지거든.”

“…신계?”

“어어… 그건 설명하자면 복잡해. 그나저나 저 백발 인간, 대단하더라. 신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너를 살려 내다니. 너는 사실상 죽은 상태였잖아? 죽은 사람을 살려 낸 거지.”

“엔드리온.”

아라고노트가 갈라지는, 무언가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오래 있을 수 없다. 본론만 말하고 빨리 가야 한다.”

“으음, 알겠어. 그럼 박유진.”

“응?”

“다곤과 토스카를 죽이고, 와이번을 포로로 잡은 거. 사실상 명부 신 세 명을 무력화시킨 거야. 세 명이나 쓰러졌으니, 괴수들의 신, 그 새끼도 이제 슬슬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하겠지.”

엔드리온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말을 계속했다.

“이대로만 계속해 줘. 이대로 괴수들의 신을 몰아붙이면 우리가… 으음, 아니다. 다음 단계는 지금 말하기 애매하니까. 아무튼, 우리가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이 페이스를 유지해 줘.”

“…왜 도와주는 거야?”

“응?”

“대체 인류를 왜, 나를 왜 도와주는…….”

“괴수들의 신, 그놈에게 빚진 게 있거든.”

엔드리온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말이다.

“그것 말고도 나는 인류의 편이거든. 여기 있는 아라고노트도 마찬가지고……. 으음, 그리고 그 외에도 몇 명 더 있다는 걸…….”

“엔드리온. 이제 진짜 곧 가야 한다.”

거대한 거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에 엔드리온은 한숨을 쉬더니 내 곁에 몸을 낮췄다.

“항상 고마워, 박유진. 너의 고생의 보상은 우리가 언젠가 주도록 할게.”

“고마우면 그냥 정보나 조금…….”

“미안, 그건 다음 기회에……. 아, 그래도 이건 말해 줄 수 있겠다.”

엔드리온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괴수들의 신 성격상, 아마 다음에는 그 명부 신을 보내겠지. 그렇다면… 박유진, 네 동료들 중에 빨간 머리 화염술사 있었지?”

“…하세리?”

“다음 신을 잡을 때 그 여자를 데리고 가도록 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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