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 * *
“오빠, 이제 좀 괜찮아?”
“어제보다는 훨씬 괜찮아졌다.”
나는 병실의 침대에 누운 채 힘겹게 대답했다.
어제 주하나와 함께 게이트 밖으로 나온 이후.
나는 바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그리고 약 열두 시간의 수술을 받았다.
“그런 것치고는 안색이 아직 안 좋은데?”
“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난 거야. 안색이 좋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유나의 눈가에 내 손을 살며시 가져갔다.
“눈이 왜 이렇게 부었냐? 나 수술하는 동안 계속 울기라도 한 거냐?”
“오, 오빠가 내 입장이면 안 그랬을 거 같아?”
유나는 눈 주변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내가 한 달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났는데, 거의 죽은 상태로 나타난 거라고 생각해 봐. 오빠는 안 울 자신 있어?”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다른 건 몰라도 지난 한 달 동안 유나가 꽤 마음고생을 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한 달이나 지났다라…….’
아무래도 내가 들어갔던 그 게이트는 다른 게이트와 차이가 있던 듯했다.
보통의 게이트에 들어간다고 원래 세계와의 시간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토스카의 그 세계에서 나와 주하나는 길어 봤자 하루를 보냈어. 하루를 보냈는데, 원래 세계는 한 달이 지난 거고.’
앞으로 신을 몇 명 더 상대해야 했으니 이 점을 유의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주일 싸우러 갔다가 반년 넘게 지나 있는 참사는 피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유나야.”
“응?”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민아. 이 녀석 한 달 동안 잠을 아예 안 잔 건 아니지?”
내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든 이민아.
이민아를 어제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당히 야위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나와 재회했을 때, 이민아는 내게 달라붙으며 광적일 정도로 내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나는 수술을 받았어야 해서 이민아를 어떻게든 떨어뜨렸지만 그때 이민아가 보인 모습은 여러모로 뭐랄까……. 애절했었다.
“잠을 아예 안 잔 건 아니야. 나흘에 한두 시간씩은 잤으니까.”
“…얘 나 사라졌다고 어디 박살 내고 다니거나 그러지 않았지?”
“뭐, 부수지는 않았고……. 2주 정도 오빠가 들어갔던 그 게이트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하더라고.”
“못 들어갔을 텐데.”
“맞아. 게이트의 입구에서 계속 튕겨져 나가더라고.”
“이 녀석도 진짜…….”
나는 이민아의 머리에 손을 가져가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이민아는 잠든 채 내 손에 얼굴을 비볐다.
‘앞으로 얘 두고 어디 못 가겠네.’
신들의 게이트에 들어가게 되면 이민아를 데리고 들어가든지… 아니면 빠르게 복귀하는 방법을…….
“이민아 양도 마음고생을 꽤 한 거 같네요.”
“네, 그러게요.”
나는 내 옆의 침대에 누워 있던 주하나에게 대꾸했다.
나도 꽤 심하게 다쳤었지만 주하나의 부상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도 나와 같이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었다.
“그나저나 주하나 씨는 몸 괜찮아요?”
“수술 좀 받으니까 낫네요.”
주하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치료 마법으로 자신을 치료하고 있었다.
“어차피 제 부상은 그렇게 심한 게 아니었거든요. 심한 부상을 입은 건 박유진 씨였죠.”
“뭐, 그렇기는 했죠.”
“네, 그러니까 저는 괜찮으니 박유진 씨는 본인 몸부터 챙기세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주하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잠든 이민아 곁으로 다가갔다.
“주하나 씨. 움직여도 괜찮은 건가요?”
“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게 아니었거든요.”
주하나는 대꾸하며 이민아를 살폈다.
정확히 말해, 여전히 붕대가 감긴 이민아의 팔을 살폈다.
“회복이 아직도 더디게 되는 중이네……. 흐으음, 게이트 안에서 가져온 그 꽃을 쓰면 효과가 얼마나…….”
“음? 주하나 씨? 그러고 보니 그 꽃…….”
“아, 그 꽃이요?”
주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본인 침대 옆의 탁자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탁자의 서랍을 열자 그곳에 커다란 꽃송이들이 있었다.
나와 주하나가 게이트 안에서 구한 그 꽃송이들이 말이다.
“그 꽃들… 계속 갖고 계신 거였어요?”
“힘들게 구한 꽃이었잖아요.”
“하지만 파리지옥에서…….”
“보호막 마법으로 어떻게든 잘 보관했죠.”
주하나는 내 곁에 다가와 내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박유진 씨께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걸로 도움이 됐을까요?”
“도움이 엄청 됐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의 목숨을 살렸을 때부터 도움이 안 된 적이 없었죠.”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주하나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내 곁에 앉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유나는 어색하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 박유진 씨. 혹시 괜찮다면 앞으로 저와…….”
주하나는 내게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맺기 전에 병실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좋은 시간 방해해서 죄송해요, 주하나 씨.”
하세리는 병실에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그런 후, 하세리는 내 쪽을 바라봤다.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 몸은 괜찮아졌어?”
“많이 나아졌지. 그보다 누나. 나 누나에게 묻고 싶은 게…….”
“많겠지. 그래서 내가 온 거야. 그것 말고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에게 알려 주려고 온 거기도 하지.”
* * *
약 한 시간 동안 하세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덕분에 내가 없는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 그럼 일단 수원에 나타났던 그 게이트는 사라졌다는 거지?”
“세 시간 전에 소멸을 확인했어. 하지만 말한 것처럼, 지금 그것보다 더 귀찮은 일이 하나 발생했거든.”
“나를 의심하는 세력들이 한 달 사이에 생겨났다는 거?”
“귀찮은 일이지.”
하세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사라지고 일주일 정도 지나자 헌터 한 명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니더라고. 박유진처럼 약한 인간은 신의 기운을 지닐 자격이 없다, 박유진이 약하니까 신의 습격에 제대로 대응 못 하는 거다, 자기와 같은 A급 헌터가 신의 기운을 가지는 게 맞다고…….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다니더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이거에 선동당했고?”
“선동당한 사람들이 있기는 있더라고. 국내에도 있고, 국외에도 있어.”
“국외에도 있다고?”
“내 예상이지만, 선동을 시작한 그 헌터 말이야.”
하세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해외 정부들에게서 지시를 받은 게 아닌가 싶어.”
“해외 정부들?”
“내 추측일 뿐이야. 하지만 나름 그럴듯해. 네가 지닌 그 신의 힘을 원하는 해외 정부들은 많아. 네가 그걸 포기하면 그쪽은 어떻게든 네가 포기한 그 힘을 얻으려 달려들겠지.”
“으음, 이 여론을 무시하는 방법은…….”
“당장은 상관없겠지만, 계속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너무 오래 무시하면 네가 진짜로 약하다고, 네가 진짜로 신의 힘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선동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니까.”
“결국 언젠가 맞이해야 할 문제라는 거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회귀 전이라면 대중들의 여론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함부로 무시하기 힘든 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이 유나에게 뭔 짓을 할지 몰랐기에 신중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해외 정부들이라…….’
하세리의 추측은 상당히 그럴듯했다.
아니, 그럴듯한 게 아니라 맞는 것 같았다.
‘내가 신의 힘을 포기하면 다른 정부들이 그 힘을 어떻게든 얻으려 하겠지.’
신들이 언제 어디서 인간을 습격할지 몰랐다.
그래서 해외 정부들이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한국이야 내가 있으니 대처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신의 기운을 지닌 인간이 없는 해외 정부들은 아니었다.
‘신의 습격에 대한 방어 수단을 얻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거겠지.’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일이 귀찮아졌으니 그 인간들을 썩 좋게 보기는 힘들 것 같았다.
뭐,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세리 누나. 누나가 보기에 지금 가장 좋은 해결책이 뭐인 거 같아?”
“가장 쉬운 방법은 네가 강하다는 걸 보여 주는 거지. 근데… 이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하세리는 말하다 말고 나를 유심히 살폈다.
“너 뭔가 조금… 달라진 거 같다? 더 강해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 강해진 수준이 전보다 다른 것 같아.”
“…많은 일이 있기는 했지.”
“나중에 시간 되면 등급 검사를 받으러 갈래? 너 확실하게 등급이 오른 거 같거든.”
“뭐, 그건 나중에 하자. 됐고, 누나. 지금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닌다는 헌터가 있다고 했잖아?”
“그치.”
“그 사람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이 사람이야.”
주하나는 스마트폰으로 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 줬다.
그리고 사진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소속 길드가 없는 프리랜서 헌터지만, A급 헌터로 실력은 확실한 사람이야. 이름은…….”
“강성규.”
“응? 유진아, 너 이 사람 누군지 알아?”
“…알지.”
나는 나도 모르게 매우 차갑게 대꾸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 박유진 씨.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되는…….”
“괜찮아요, 주하나 씨. 제 몸상태는 제가 가장 잘 아니까요.”
나는 주하나에게 대꾸하며 내 짐들을 챙겼다.
그러면서 하세리에게 말했다.
“네 시간 뒤에 협회로 찾아갈게. 그리고 그동안 이민아의 치료 좀 부탁해. 주하나 씨와 구해 온 약초가 있으니까, 효과가 있을 거야.”
“알겠어. 근데 너 진짜 괜찮은 거야? 무리해서 움직이지는 마.”
“걱정 마. 내 몸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하세리에게 대꾸한 뒤, 이번에는 유나 쪽을 바라봤다.
“세리 누나나 주하나 씨와 붙어 다니도록 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항상 조심하고.”
“알겠는데, 오빠.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아까 그 강성규? 그 사람을 보니까 오빠 눈빛이 완전히 달라지던데?”
“…그런 게 있어.”
“뭔데 그래? 혹시 그 사람, 오빠가 아는 사람이야?”
“뭐, 모르는 사람은 아니지.”
그래,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잘 너무 잘 아는 인간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강성규는…….
‘유나를 죽인 새끼니까.’
회귀 전, 유나는 A급 헌터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나는 그 새끼를 죽이기 위해 이를 악물고 강해졌다.
강성규가 바로 그 새끼였고… 그 새끼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