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 신이 나타난 세상 】
“하윤경, 이거 고칠 수 있겠어?”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하윤경은 절반 정도 녹아 버린 내 코트를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방어력은 기대하지 마. 잘해 봤자 기존의 80%의 내구도밖에 못 살릴 테니까.”
“그거라도 복원해 줘.”
나는 하윤경에게 내 코트를 넘기며 말했다.
“고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 거 같냐?”
“3일? 길어 봤자 4일 정도 걸릴 거다.”
“알겠다. 그럼 부탁할게.”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겠지.”
“크큭, 잘 아네.”
나는 근처의 소파에 가서 앉으며 내 손을 들어 올렸다.
내 손가락에 끼워진, 하윤경을 통제하는 반지.
그 반지를 보자 하윤경은 나를 노려봤다.
“네가 그 게이트에서 안 죽어서 아쉽네.”
“내 목숨이 좀 많이 질긴 편이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 후, 몸에 힘을 빼며 소파에 편히 앉았다.
그러자 긴장하고 있던 근육이 풀렸고, 몸을 뒤덮고 있던 통증이 조금 완화되었다.
‘여기에 바로 오는 건 무리였나 보네.’
나는 아픈 근육들을 매만지며 속으로 생각했다.
몇 시간 전, 나는 병원에서 바로 하윤경의 연구소로 이동했다.
평소라면 큰 어려움 없이 이곳으로 왔겠으나 내 몸이 영 좋지 않은 상태였다.
북한산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오느라 꽤 고생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이곳에 와야 했어.’
재정비를 위해 하윤경을 만날 필요가 있었다.
네메이아의 코트를 고쳐야 했고, 그 외에도 하윤경에게 얻어 가고자 하는 장비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신의 힘에 대해서도 물어봐야지.’
언제까지 빌려온 힘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회수당할 걱정이 없는 힘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중에 하윤경과 이와 관련해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스승님.”
“아, 돌아왔어?”
근처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신예진.
그녀의 등장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시킨 일은 잘했어?”
“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주소로 가서 그 뭐냐, 공터에 세워진 빌딩? 그 빌딩에 스승님의 편지를 전하고 왔어요.”
“잘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국 최고의 마도구 제작자에게 A/S를 맡겼으니 아마 3일이나 4일 뒤에 방문하면 될 듯했다.
“근데 스승님. 몸 괜찮으신 건가요?”
신예진은 내 옆에 앉으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한 달만에 나타나서는 거의 죽어 가고 계셨는데……. 물론 수술을 받으셨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안색이 안 좋으세요.”
“좋아지고 있으니까 걱정 마. 죽지 않았으면 된 거지.”
나는 피식 웃으며 신예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뭐, 그건 그렇고 너에게 부탁할 게 하나 더 있는데 괜찮을까?”
“무슨 부탁이죠?”
“이 사람에 대해 알아 와 줘.”
나는 스마트폰으로 강성규의 사진을 신예진에게 보여 줬다.
“강성규라는 인간인데, 최근에 이 인간이…….”
“네, 알아요. 스승님에 대한 이상한 소문 퍼뜨리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니더라고요.”
“잘 아는구나. 아무튼, 이 인간에 대해 조사 좀 해 줘.”
“조사라면,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그냥 뭐… 이 인간의 주변인들, 그리고 이 인간이 평소에 어디를 언제 가는지.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거야.”
“무엇이죠?”
“다른 건 아니고, 강성규가 누구랑 연락하고 다니는지 파악해 줘.”
나는 신예진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강성규가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니는 것 같거든. 그래서 그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봐 줬으면 해.”
“알겠어요. 그것 말고 더 시킬 게 있을까요?”
“당장은 더 없어. 그러니까 강성규에게만 집중해 줘.”
“알겠어요.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너 편할 때 출발하도록 해.”
“그럼 지금 바로 갈게요.”
내게 인사한 뒤, 신예진은 근처의 그림자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신예진이 가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쪽으로 향했다.
“일 시작했냐?”
“진작에 시작했지.”
하윤경은 지하 연구실에서 약품들을 꺼내며 대꾸했다.
“네가 시킨 일을 빨리 끝내야 나도 내 할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 할 일이라는 게, 신과 관련된 일이냐?”
“그것 말고 더 있겠냐?”
하윤경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네가 내가 연구하는 걸 또 금지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해 둬야지.”
“자기 처지를 이제 완전히 이해한 것 같구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후, 이내 진지하게 말을 계속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없는 한 달 동안 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거지?”
“맞아. 네가 잡아 온 그 여신을 이용해 실험을 이어 나갔지.”
“그래, 와이번을 잘 썼겠지. 이야기 나온 김에, 와이번은 잘 있지? 미쳐 버리게 하거나, 죽이거나… 그런 짓은 안 했지?”
“아랫층에 잘 살아 있으니까 걱정 마.”
하윤경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잡아 온 그 여신은 매우 귀한 실험체야. 인간들은 널리고 널렸으니 막 실험한 거지만, 이 여신이 망가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래, 그게 너답다.”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이내 말을 계속했다.
“됐고, 와이번은 그렇다 쳐. 신에 대한 네 연구는 문제없이 진행됐어?”
“그런 편이지. 인간을 신으로 만든다든가, 그런 건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인간을 한 단계 진화시키는 건 근 시일 내에 가능할 거야.”
“너의 그 끈기는 참 대단하기는 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끈기를 다른 곳에 써 줄 필요가 있겠어.”
“그건 무슨 소리냐?”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나는 근처의 의자에 가 앉으며 말했다.
“최근에 뉴스를 봤다면 내가 무슨 신의 기운을 가졌다느니 뭐라느니……. 그런 걸 한 번쯤은 들었겠지?”
“들었지. 게다가 최근에도 그런 말을 자주 들었어. 너는 신의 힘을 가질 자격이 없어서 그걸 내놓아야 한다, 뭐, 이런 소리들을 말이야.”
“그래. 그렇다면 이 신의 힘이라는 거. 혹시 네가 만들 수 있겠어?”
“…뭐라고?”
내 말을 이해 못 한 건지 하윤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가지는 그 신의 기운을 나보고 만들라는 거야?”
“뭐, 그렇지? 가능하겠어?”
“으으음…….”
하윤경은 들고 있던 약품들을 내려놓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네가 가진 이 신의 기운……. 이 기운을 가지고 있어야 신에게 공격이 가능하다고 했지?”
“그렇지.”
“그리고 신예진에게 지난번에 들은 건데, 이 신의 기운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증폭시켜 준다는 거 같은데, 이것도 맞아?”
“확언은 못 하지만, 일단은 맞다고 하자.”
“흐으으음.”
하윤경은 턱을 매만지다가 이내 근처에 있던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뒤, 기계는 빛을 내며 나를 스캔했다.
“방금 그건 뭐냐?”
“네가 지니고 있는 이능력들을 한번 확인하려고.”
하윤경은 근처의 모니터를 살피며 말했다.
“흐음, 확실히 네 안에 이질적인 기운이 있어. 어디 보자……. 이 기운의 정보를 저장하고, 그 구조를 분석하면……. 으음…….”
“왜? 뭐 있어?”
“아니, 특별한 건 아니고, 네가 지닌 그 기운에 불순물이 조금 섞였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크게 특별한 건 아니야.”
“그러냐? 뭐, 그렇다면 다시 물을게.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이 신의 기운을 네가…….”
“만들 수는 있을 거야.”
하윤경은 대답했지만, 어째 목소리에 확신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복제품을 만드는 것에 불과해서 원본에 비해서는 많이 약할 거야.”
“할 수는 있다는 거지?”
“네가 얼마나 바라느냐에 따라 다르지.”
하윤경은 모니터에 띄워진 그래프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만든 모조품 기운을 갖고… 기본적으로 신을 공격할 수 있어야겠지?”
“그건 기본적으로 가능해야지.”
“그리고 기존의 능력들을 강화시켜 주는 건…….”
“그건 되면 좋고, 안 되면 없어도 괜찮아. 가장 중요한 건 네가 만든 그 기운으로 신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해.”
“그 정도면… 아마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하윤경은 근처의 다른 컴퓨터로 가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어. 이런 종류의 연구는 나도 처음이거든.”
“하기야. 너는 지금까지 인간을 진화시키는 것에만 집중했지, 이런 신의 기운 같은 것은 처음이잖아.”
“맞아. 하지만 기본 골자는 비슷하니까 어찌어찌할 수는 있을 거 같아.”
하윤경은 자료들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이제야 조금 살맛이 나네. 신에 대한 연구를 더욱더 할 수 있다니, 흐흐흐.”
“신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게 그렇게 좋냐?”
“당연하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을 진화시킬 수 있는 연구면 다 좋거든. 나는 인류를 보다 한 단계…….”
“에휴. 다른 건 몰라도, 너는 절대 내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면 안 되겠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하윤경을 바라봤다.
“너는 평생 이 지하에서 살게 될 테니, 그런 줄 알아.”
“흐흐, 상관없어. 연구를, 그리고 지식으로 계속 탐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진짜 미치기는 했구나.”
그래, 새삼 느끼는 거지만 하윤경은 미쳐 버린 인간이 맞았다.
천재지만, 동시에 광인이었다.
절대로 이 지하 연구소를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되었다.
“뭐, 됐고. 와이번은 살아 있다고 했지?”
“응, 지금 바로 아랫층 감옥에 있을 거야.”
“한번 보러 가야겠네.”
나야 며칠 만에 보는 거지만, 와이번 입장에서는 나를 약 한 달 만에 보는 것일 터였다.
오랜만에 나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
“스승님.”
“음? 신예진?”
와이번을 보러 가려던 순간, 신예진이 근처의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갔다 왔네? 그 사이에 정보를 얻어 온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뭔가 이건 알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뭔데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났어?”
“큰일은 아니고……. 이거 보세요. 강성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신예진은 스마트폰을 꺼내 내게 영상을 하나 보여 줬다.
그 영상에서 강성규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 박유진이 돌아왔다고 들었어요. 한 달이나 게이트에 있다 온 박유진이요. 그것도 한 달 만에 거의 죽은 채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인간에게 뭘 믿고 맡기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박유진에게 도전장을 던집니다. 저와 싸우라고. 그리고 지면 지니고 있는 신의 힘을 얌전히 내놓고 꺼지라는…….
“…이게 왜?”
“아마… 스승님은 진짜로 강성규와 싸우게 될지 몰라요. 지금 여론의 분위기 자체가…….”
신예진이 내게 말하던 중, 이번에는 주머니에 있던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하세리에게 온 전화였고, 그걸 보자마자 나는 직감했다.
강성규와는 이번 생애도 악연을 이어 나갈 것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