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 암시장의 주인 】
“당장에라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요?”
“윤경이가 분석한 게 맞는다면, 신들은 기본적으로 이질적으로 기운을 항상 지니고 있어.”
고민수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네가 가지고 다닌다는 그 신의 기운인가 하는 게 이 기운과 비슷한 것일 거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 기운 자체는 엄청 특이한 마력 구조를 지니고 있어. 하지만 특이한 것일 뿐, 분석이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야.”
고민수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와이번을 위아래로 살폈다.
그의 눈빛에 와이번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고민수는 마법으로 와이번의 몸을 스캔했다.
“확실히 특이한 마력 구조야. 연구할 가치가 있겠어.”
“이 기운을 분석해서 마도구들을 만드실 수 있을까요?”
“만들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걸릴 거야. 이건 나도 처음 보는 구조의 마력이라 혼자서 완벽히 분석하려면 몇 주가 걸리겠지.”
“흐음, 만약 혼자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내게 조수라도 붙여 주게? 그건 크게 도움이 안 될 거야. 애초에 내 수준을 따라올 사람은 이 나라에 별로 없거든.”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하지만 그래도… 고민수 씨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과학자가 한 명은 있죠.”
이 말과 함께 나는 반지가 끼워진 손을 들어 올렸다.
“하윤경! 이쪽으로 내려와 봐!”
“아으으읏?!”
내 외침에 위층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하윤경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박유진?! 나는 갑자기 왜 부른 거야?”
“너를 부르는 데 다 이유가 있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윤경. 앞으로 고민수 씨의 연구 및 개발에 네가 도움을 주도록 해.”
“뭐? 내가?! 고민수를?! 도우라고?! 안 해! 못 해!”
“너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냐?”
나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이에 하윤경은 상당히 떨리는 눈빛으로 나와 고민수를 번갈아서 바라봤다.
“나, 나보고 고민수의 연구를 도우라고? 내가?”
“어, 너 말이에요, 너.”
대충 대꾸한 후, 나는 고민수를 다시 바라봤다.
“하윤경을 조수로 부리는 건 괜찮은가요?”
“윤경이 수준의 연구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지. 근데 그게… 뭐랄까.”
고민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윤경이가 내 말을 잘 따를지 모르겠네. 미쳐 버리기 전에도 청개구리 같은 애였는데, 미쳐 버린 후에 아예 사람 말을 안 들었거든.”
“그건 괜찮을 거예요. 제가 명령을 내리면, 하윤경은 무조건 들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나는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고민수에게 보여 줬고, 그는 이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 반지와 윤경이의 저 발찌……. 이것도 윤경이의 작품이지?”
“네, 하윤경이 만들어 놓은 걸 제가 슬쩍했죠.”
“어려지는 약과 완전한 굴복의 반지라.”
고민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하윤경을 바라봤다.
그런 후, 그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지. 원래라면 공짜로 일은 안 하지만, 신들이 공격해 오는 상황이니 내가 무상으로 해 주도록 할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별것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자, 그러니… 윤경아. 신에 대한 자료들을 전부 넘겨 봐라.”
“뭐라고? 야, 고민수! 그 자료들은 내가 거의 평생을 바쳐서 얻어 낸 거야! 내가 그걸 너에게 쉽게 넘길 거라고 생각을…….”
“하윤경, 앞으로 고민수 씨의 말을 무조건 듣도록 해.”
“…읏?”
내 말에 하윤경은 온몸을 순간적으로 떨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하윤경은 근처의 컴퓨터로 가 파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유진, 이 개새끼가……. 이게 내가 어떻게 모은 자료들인데……. 이렇게 감히…….”
나를 욕하는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이런 상황은 익숙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고민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민수 씨. 혹시 더 필요하신 것들이 있을까요?”
“크게는 없단다. 굳이 꼽자면 내 건물에서 물건들을 몇 개 들고 와도 괜찮은지 묻고 싶은데, 괜찮겠니?”
“물건들을 들고 오는 건 전혀 문제 없어요. 하지만 이 지하 연구소는 최대한 사람들 눈에 안 띄었으면 해서, 그 물건들을 안 들키고 가져오는 건…….”
“그건 전혀 문제가 없을 거란다.”
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스텔스 기능을 지닌 마도구를 쓰면 되거든. 게다가 공간 변이 마법이 적용된 가방 안에 몇 톤의 물건들을 담을 수 있을 테니……. 그래, 아무튼 내 말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물건들을 가지고 올 수 있을 거다.”
“알겠어요. 원하는 이 연구소를 편하게 이용해 주시죠.”
“야, 박유진.”
자료들을 정리하던 하윤경이 나를 대뜸 불렀다.
“너 고민수를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니냐? 고민수가 갑자기 너를 배신하고 이 연구실로 이상한 일을 벌이면…….”
“적어도 너보다는 믿을 만하니까, 너는 내가 시킨 일이나 해.”
나는 하윤경의 말을 끊으며 대충 대꾸했다.
하지만 하윤경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고민수를 너무 신뢰하고 있기는 하지.’
내 성격을 고려하면 나는 너무 쉽게 고민수를 이 지하 연구소에 부른 것이었다.
그리고 하윤경이 지적한 것처럼 이건 꽤 위험할 수 있었다.
고민수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 그럼에도 나는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수의 실력을 고려하면, 이런 위험 부담을 지고 갈 만해.’
하윤경과 비슷한 경우였다.
하윤경은 존재 자체가 폭탄이었지만 그걸 안고 갈 정도로 그녀의 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났다.
고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위험 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고민수의 실력을 고려하면 이 정도 위험을 감수할 만했다.
‘게다가 뭐… 고민수가 혹시라도 이상한 짓을 벌이려 해도, 그에 대한 안전장치는 준비됐지.’
여차하면 고민수를 제압할 방법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뭐, 근데 굳이 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까.’
내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고민수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는 다른 목적 없이, 순수하게 나를 도와주려는 것 같았다.
물론 의심을 완전히 거두면 안 되겠지만 걱정 안 해도 괜찮다고 내 직감이 말해 줬다.
‘그래, 일단 고민수가 일을 시작할 수 있게끔 도와주자.’
잘만 하면 고민수가 신에 대항할 엄청난 걸 만들어 줄지도 몰랐다.
그러니 최대한 협조해 주는 것으로 하고…….
“그럼 고민수 씨. 일을 진행하고 계세요. 저는 잠깐 갔다 올 곳이 있으니 먼저 가 볼게요.”
“알겠단다. 천천히 갔다 오거라.”
“네. 그리고 하윤경. 너는 고민수 씨 말 잘 들어라. 안 들으면 알지?”
“…X 같은 새끼.”
하윤경은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 욕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 쪽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바, 박유진! 자, 잠깐만 기다려!”
와이번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졌어! 내가 졌으니까 여기서 꺼내 줘.”
“제가 왜 그쪽을 그 감옥에서 꺼내 줘야 되는 거죠?”
“뭐든지 할게. 네 말이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나를 여기서 꺼내 줘! 아니, 꺼내 줄 필요는 없으니…….”
와이번은 떨리는 눈동자로 하윤경을 슬쩍 바라봤다.
“제발 저 여자에게서만 떨어뜨려 줘! 제발! 저 여자가 내게 주는 고통을 더는 못 버티겠어!”
“흐음.”
나는 와이번을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와이번은 진심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내 도움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완전히 꺾인 게 아니네.’
나에게 대항할 마음이, 나에게 탈출할 마음이 아직 보였다.
그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와이번을 저 감옥에서 꺼내면 안 됐다.
“딱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드네요. 그냥 계속 거기 계시도록 해요.”
“제발! 제발!”
와이번은 처절하게 외쳤으나 나는 그 외침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다시 계단으로 향했고, 가는 도중에 하윤경에게 작게 말했다.
“와이번을 더 혹사시켜. 마음이 완전히 꺾이게끔 말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꺼. 근데 너는 지금 어디 가는 거냐?”
“할 일이 있거든. 그리고 그것 말고도 오랜만에 친구와 대화나 나누러 가려고.”
* * *
“개새끼.”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냐?”
“나쁜 새끼.”
“나를 끌어안은 채로 욕하는 건 대체 뭐냐?”
“몰라, 새끼야.”
이민아는 나를 세게 끌어안은 채로 중얼거렸다.
“내가 잠든 사이에 어디 가 버리고. 한 달 만에 반 죽은 채로 돌아오더니, 바로 수술받고, 내가 잠든 사이에 또 사라지면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알겠어, 인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네가 사과한다고 내가 그렇게 쉽게 기분을 풀 거 같아?”
“자, 자. 착하지? 진정하자.”
나는 이민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이민아는 몸을 살짝 떨었다.
“내가 개냐?!”
“늑대도 개과 아니었나?”
“야! 나는 늑대인간이라고, 늑대가 아니라! 그리고 내가 겨우 이런 걸로 기분을 풀 거 같아?!”
“그래서 싫냐?”
“으으으…….”
이민아는 내 말에 대꾸를 못 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끌어안은 채 내 손길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나 쉬운 여자 아니다, 새끼야.”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인마.”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 없는 한 달이 많이 힘들었냐?”
“…너 다시는 내게서 떨어지지 마, 새끼야.”
이민아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떨어지면 넌 내게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인마. 알겠어.”
나는 이민아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금 나와 이민아는 나의 집 거실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야 며칠만이지만 이민아에게 있어서는 나를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팔은 좀 괜찮아졌냐? 그 게이트 안에서 약초를 구해 왔는데, 효과가 있었어?”
“효과는 있는 거 같더라고.”
이민아는 붕대로 감긴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힐러분들도 내 팔이 매우 좋아지고 있대. 아마 몇 주 뒤면 완전히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더라고.”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네.”
나는 이민아의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전보다 좋아진 게 눈에 보였다.
아마 2주일?
2주일 정도가 지나면 이민아도 다시 싸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되면 이민아의 진면목을 내가 끌어내면 될…….
우우웅―
“음?”
이민아의 팔을 확인하던 중,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에 확인하려고 했는데, 이민아가 내 팔을 붙잡았다.
“확인하지 마.”
“왜?”
“신예진, 그년이 연락한 거 같단 말이야.”
“…그럼 더욱 확인해야 해. 걔에게 중요한 일을 맡겼거든.”
“…쳇.”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이민아는 혀를 차며 내 팔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내가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진짜로 신예진에게서 왔네.’
역시 이민아의 감은 좋아도 매우 좋았다.
그나저나 신예진이 보낸 메시지의 내용이….
[스승님. 강성규가 누구와 연락하는지 추적했어요. 알아본 결과, 강성규는 대림 쪽의 암시장으로 연락하고 있었어요.]
“…흠.”
예상치 못 한 장소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도 오랜만에 한번 가 봐야겠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