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 * *
나는 근처 건물을 향해 날아간 강성규를 바라봤다.
‘곧 일어나겠네.’
내 주먹을 맞은 강성규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다만 세게 맞기는 했는지 그는 몸을 당장 못 일으키고 있었다.
“야, 출발해! 어서!”
“어서 시동 켜!”
내 등장에 당황하고 있던 강성규의 부하들, 아니.
자세히 보니 김진철의 부하들이었다.
보니까 김진철이 강성규에게 사람 몇 명을 붙여 준 듯했다.
아무튼, 그 부하들은 커다란 밴에 타고 있었고 그 밴 안에는 유나가 있었다.
“…어딜 가려고.”
파지지직―
나는 전류를 발생시키며 자기장을 일으켰다.
그러자 출발하려던 밴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게 되었다.
“뭐, 뭐야?!”
“차가 안 움직여!”
차가 안 움직이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이민아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괜찮냐?”
“어? 으, 응, 나는 괜찮은데……. 근데 너… 눈빛이…….”
“괜찮으면 저 차에서 얼른 유나를 꺼내 줘.”
나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민아를 묶어 두고 있던 사슬들이 풀렸다.
“김진철이 보낸 부하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을 거야. 빠르게 제압하고, 유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있어.”
“하지만 박유진, 너…….”
“어서.”
나는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이민아는 움찔하더니 내가 붙들고 있던 밴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유나는 이민아가 알아서 하겠지.’
팔을 다쳤다 해도 김진철이 보낸 부하들 쯤은 문제없이 이길 거다.
애초에 이민아가 이렇게 쉽게 제압당한 건 김진철의 부하들 때문이 아닌, 내 눈앞의 저 망할 A급 헌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후우우.”
나는 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건물의 벽으로 날아갔던 강성규가 조금씩 떨기 시작했다.
“바, 박유진 씨. 뭔가 오해가 있던 거 같은데…….”
“오해 따위는 없었어.”
“크아아악!”
나는 강성규의 종아리를 향해 자바니아를 던졌다.
그러자 강성규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대로 넘어졌다.
“사람을 가려서 시비를 걸었어야지, 이 X신 새끼야.”
나는 자바니아를 회수하며 강성규를 바라봤다.
바닥에 넘어진 채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남자.
이 광경이 뭔가 참 익숙했다.
‘그때도 그랬었지.’
회귀 전, 내가 강성규를 죽이던 그 밤.
강성규는 무릎을 꿇은 채 내게 자비를 구했다.
그는 매우 뻔뻔하게 나보고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유나를 죽인 건 실수였다고, 절대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말이다.
‘개소리였지.’
유나는 누가 봐도 잔인하게 살해당했었다.
단순히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강성규는 유나를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죽였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용서를 구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내게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박유진 씨. 이, 이건 오해예요. 이, 이건 제 의지로 그런 게 아니라, 저, 저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진짜 변하지 않네.”
“크아아악!”
나는 자바니아를 강성규의 손을 향해 내리찍으며 그에게 차갑게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은지……. 참 대단하네. 사람이 이렇게 한결같기도 쉽지 않은데.”
“대, 대체 뭐라는…….”
“알 것 없어.”
몸을 일으키려던 강성규를 나는 발로 차 넘어뜨렸다.
“원래 나는… 그쪽을 죽일 생각 없었어. 내게 시비를 거는 것쯤이야, 그냥 적당히 넘어가 줄 생각이었거든.”
“그, 그럼 제발…….”
“하지만 이건 선을 넘은 거야.”
나는 옆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민아는 김진철의 부하들을 제압한 후, 유나를 밴에서 데리고 나오고 있었다.
사슬로 몸이 묶인 유나를 말이다.
“나는 몰라도 내 가족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이, 이건… 김진철이 시켜서 한…….”
“알아. 하지만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른 너에게도 잘못이 있는 거야.”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려 강성규의 목을 향해 겨냥했다.
그러자 강성규는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X발! 나는 안 죽어! 안 죽을 거라고!”
강성규는 자기장을 이용해 근처의 전봇대를 내 쪽을 향해 날렸다.
하지만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 전봇대는 공중에서 그대로 멈추었다.
“…진짜 한결같네.”
나는 전봇대를 옆에 떨어뜨리며 내게서 멀어지는 강성규를 바라봤다.
그는 다친 다리를 이끌며 매우 비참한 모습으로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진짜… 회귀 전과 이렇게 똑같을 수가.’
회귀 전에도 강성규는 내게 죽기 직전에 발악했다.
물론 다 의미없는 짓이었다.
결국 그때의 강성규는 죽었고…….
“이번에도 죽여야지.”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강성규를 향해 다가갔다.
* * *
강성규는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박유진에게서 멀어지고자 했다.
“아악! 으윽?”
자바니아가 박혔던 그의 왼쪽 종아리와 그의 오른손.
강성규는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그대로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그의 본능은 계속 그를 움직이게 시켰다.
왜냐하면 안 움직이면 그는 무조건 죽게 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안 죽어. 안 죽을 거야.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어.”
강성규는 중얼거리며 멀쩡한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자동차들과 전봇대 등, 강성규가 다룰 수 있는 모든 자성체들이 박유진을 향해 날아갔다.
강성규는 그가 할 수 있는 발악들을 했으나 그것들은 박유진에게 통하지 않았다.
“괴, 괴물…….”
강성규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강성규가 날린 공격들을 박유진이 가볍게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짓은 그만해.”
박유진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강성규가 사용하던 쇠사슬.
그러니까 이민아를 묶는 데 사용하던 사슬들이 그에게 날아와 그의 몸을 붙잡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에 강성규는 이 상황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쓰던 그 사슬은 오직 본인만이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 사슬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있었다.
“놀랄 것 없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으아악?!”
박유진이 자바니아를 강성규의 왼손에 내리찍자 강성규는 다시금 고통스러운 비명을 외쳤다.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 내가 너보다 자기장을 훨씬 잘 다루니까 이런 게 가능한 거야.”
“대체… 어떻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강성규는 궁금했다.
박유진은 그저 전류를 쓰는 데 특화된 헌터였고, 강성규는 자기장을 쓰는 데 특화된 헌터였다.
즉, 자기장을 다루는 건 애초에 강성규의 전문 분야여야만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전류를 쓰기 위해 태어난 박유진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강성규는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건지,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도 궁금했다.
하지만 현재 답을 못 얻는 상황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곧 죽게 될 새끼가 별걸 다 궁금해하네.”
“크악?!”
박유진은 이번에 자바니아를 그의 오른쪽 다리에 내리찍었다.
그러면서 박유진은 강성규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그래도 답을 해 주자면, 내게 원동력이 있었거든.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원동력. 그거 하나 때문에 나는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어.”
“무, 무슨…….”
“그런 의미에서 고맙다고 말해야겠네. 내가 이렇게 강해질 수 있던 건 네 덕이었으니까.”
“…뭐라고?”
고통 때문에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강성규는 방금 들은 박유진의 말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안 된 박유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그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성규는 의문을 가지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됐고, 이제 죽어.”
박유진은 자바니아를 강성규의 목을 향해 가져갔다.
그리고 그 순간, 강성규는 박유진의 눈빛을 보다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아… 아아.”
박유진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분노로 가득했다.
그 분노가 전부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했다.
“왜… 내가…….”
강성규는 김진철의 지시를 따른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박유진의 여동생을, 아니. 처음부터 박유진을 건들지 말았어야 했어.’
후회됐지만 이제 어쩔 수 없었다.
강성규는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는데, 그 순간.
“박유진, 멈춰 봐.”
이민아가 그들의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민아?”
“멈춰 봐. 너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너 지금 눈 돌아갔다고.”
“나도 알아.”
나는 대충 대꾸하며 다시금 강성규를 바라봤다.
이에 강성규는 몸을 떨며 내 눈을 피했다.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이 새끼는 유나를 건드렸으니까. 내 가족을 건들면 나는…….”
“그러니까 일단 진정을…….”
“이민아.”
나는 차갑게 말했다.
“제발 꺼져 줘. 이건 내가 할 일…….”
“박유진, 잘 생각해. 네가 저 인간을 죽이는 순간, 선을 완전히 넘어 버리는 거야.”
“선 같은 건 진작에 넘었어.”
“그래, 넘었겠지. 하지만 너는 살인이라는 선은 지금까지 안 넘었잖아.”
“…그랬었지.”
그래, 생각해 보면 나는 회귀 후에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죽인 적은 없다.
이민아 말대로 나는 당장은 살인자가 아니었다.
“잘 생각해. 아니, 유나를 생각해. 네가 그 선을 넘어 버리면, 유나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라고.”
“…….”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강성규를 안 죽이는 게 맞았다.
회귀 전, 유나를 잃었을 당시.
그때는 진짜 잃을 게 없었기에 악인들을 죽이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금은 유나도 있고… 유나 외에도 잃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살인이라는 마지막 선을 넘는 건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랬다.
“…비켜, 이민아.”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지금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 인간은 죽일 거니까.”
강성규에 대한 분노가 너무나도 컸다.
과거에 유나를 죽인 원수였고, 이번에도 유나를 다치게 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내 분노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못 비켜. 유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너를 위해서라도 그건 못 할 거 같아.”
이민아는 이 말과 함께 눈빛이 늑대인간의 것으로 변했다.
“이 인간을 죽일 거면 나부터 쓰러뜨리고 가.”
“…못 쓰러뜨릴 줄 알고?”
나는 전류를 불러내며 이민아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