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 한때는 신이었던 존재 】
“안녕하세요, 김진철 씨.”
“간도 크네. 여기를 또 오다니.”
김진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난리를 치고 여기를 다시 올 줄이야.”
“과거의 일은 덮어 두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요?”
“X랄하네. 나를 죽이려 들고 이렇게 뻔뻔히 다시 찾아오는 건 무슨…….”
“그래도 저를 이렇게 맞이해 주셨네요?”
“…너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김진철은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너와 일을 조금 평화롭게 처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거든.”
“평화롭게 처리라……. 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물어도 괜찮을까요?”
“너에게서 그 신의 힘을 뺏는 게 많이 힘들어 보이거든.”
“쉽지 않겠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김진철은 그런 나를 차분하게 바라봤다.
“내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았으면, 강성규를 이용해 계속 너를 압박할 생각이었어.”
“근데 저에게 들켰네요.”
“그렇지. 그래서 일이 많이 꼬였어.”
김진철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는 하세리가 아끼는 인간이야. 내가 너에게 해를 끼치는 순간, 하세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세리 누나가 두려우신가 봐요?”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 하세리는 마음만 먹으면 내 세력을 혼자서 괴멸시킬 수 있거든. 그래서 하세리의 분노를 괜히 사고 싶지는 않아.”
“그럼 지금은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 거죠?”
“나랑 협조를 하는 건 어떨까?”
김진철은 기회를 노리는 맹수와도 같은 눈빛을 보였다.
“지금 너의 그 힘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너의 그 힘은 지금 고액의 상품과도 마찬가지야.”
“그래서요?”
“나와 협력을 하자. 너에게서 그 힘을 이용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김진철은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설명했다.
“해외에서 너의 그 힘을 써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에게서 의뢰를 받고, 너는 가서 그 사람들의 요구를 고액의 값을 받고 일해 주는 거야. 그러면 너와 나는 돈을 엄청나게…….”
“제가 그걸로 얻는 이득은 있을까요?”
“돈이지. 너는 70 갖고, 내가 30을 갖는 걸로 할게. 내가 너에게 해외의 놈들에게 연락을 닿게…….”
“김진철 씨, 제가 겨우 그런 일을 하기 위해 협조를 할 것 같나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겨우 이런 제안에 넘어갈 거라 생각했다면, 저를 만만히 봐도 너무 만만히 보신 거예요.”
“야, 그러지 말고…….”
“그리고 김진철 씨는 지금 제안을 하실 입장이 아니에요.”
“무슨 소리냐?”
“으음, 일단…….”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현재 나는 김진철의 암시장에 위치한, 그의 개인 응접실 안이었다.
그리고 응접실 안에 나와 김진철 외에도 김진철의 부하들이 있었다.
내가 허튼짓을 하려고 하면, 그들은 언제든 나를 공격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김진철 씨의 부하분들을 내보내 줄 수 있을까요?”
“내가 왜 그래야 하냐? 네가 내게 뭔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제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예요.”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리모컨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목숨이 아깝다면 제 말을 어서 들으시죠.”
“저건…….”
“네, 뭔지 잘 아시죠?”
내 손에 들린 작은 리모컨을 본 김진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김진철 님, 괜찮으십니까?”
“야, 너! 너 대체 뭔 짓을…….”
이러한 김진철의 반응에 그의 부하들은 내게 적대적인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목숨 아까우면 부하들을 전부 내보내시죠.”
“…하아아. 에라이.”
김진철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봤다.
“전부 나가 있어.”
“네? 하지만…….”
“나가라면 나가. 어서.”
“…네, 알겠습니다.”
김진철의 부하들은 전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나가는 걸 확인한 후,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김진철에게 말했다.
“본인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아시겠죠?”
“그 리모컨을 어떻게 손에 넣은 거야? 아니, 그보다 나에 대해서 어떻게…….”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사를 했거든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필요한 건 전부 알고 있죠.”
나는 내 손에 들린 작은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김진철 씨가 하윤경에게 고개를 숙이던 이유가 바로 심장 때문이시더라고요? 인공 심장이고, 그 심장 안에 하윤경이 장치를 심어 뒀고.”
나는 리모컨에 달린 유일한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누르는 시늉을 하자 김진철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멈춰! 제발 멈춰!”
“이 버튼을 누르면 김진철 씨의 심장이 멈춘다는 것까지 알고 있죠.”
“너… 그 리모컨을…….”
“하윤경이 이 리모컨을 많이 만들었더라고요?”
나는 주머니에서 다른 색의 작은 리모컨을 꺼내며 말했다.
“예를 들어, 이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면…….”
“크아아악!”
“김진철 씨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겠죠.”
심장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쓰러진 김진철.
나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 외에도 하윤경은 다양한 리모컨들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아, 물론 김진철 씨의 심장을 정지시키는 리모컨은 엄청 많았어요.”
“아으으윽…….”
“쉽게 말해,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리모컨을 없앤다고 해서 제가 김진철 씨를 못 죽이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만약 제가 죽으면 제 동료가 저 대신 다른 리모컨의 버튼을 누를 거고요.”
“에라이, X발.”
김진철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소파에 다시 앉았다.
“나도 알아, X발. 나도 안다고. 네가 한 이야기, 하윤경에게 한참 전에 들었던 거야.”
“그럼 추가적인 설명은 할 필요 없겠군요.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잘 아시는 거 같으니까요.”
“X 같은 새끼.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많은 걸 원하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하윤경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할 거예요.”
“왜? 내 모든 재산이라도 다 뜯어가게?”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갔다.
그 벽에 수많은 화면들이 있었다.
암시장의 실시간 상황들을 전부 보여 주는 화면들이었다.
“하지만 이 암시장에서 제가 많은 걸 요구할 거예요. 요즘 어떤 상황인지 아시잖아요. 신들이 막 쳐들어오고 있는 마당이라 물자가 많이 필요하거든요.”
“…물자만 제공하면 되는 거냐?”
“그것 말고도 더 요구할 수 있고요.”
나는 다시금 김진철 쪽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요즘 전국의 암시장들을 통합하고 있다면서요?”
“…하지 말까? 네가 원한다면…….”
“아니요, 계속하세요. 그리고 가능한 빨리 통합시키도록 하시죠.”
“…하라고?”
“네, 그리고 김진철 씨는 한국의 모든 암시장을 지배하도록 하세요.”
물론, 이라고 말하며 나는 김진철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김진철 씨를 제가 지배할 거지만 말이에요.”
* * *
“자, 하윤경. 이게 네가 필요하다는 것들이지?”
“오, 좋아. 최고급 세스트랄의 깃털. 그리고 드라고스놔우트의 심근. 거기다가 이거는…….”
“그래, 확인하고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김진철에게 다시 얻어 오면 되니까.”
나는 하윤경에게 대충 대꾸한 후, 근처에 있던 고민수에게 다가갔다.
“부탁하신 물건들인데, 마음에 드시나요?”
“상당히 마음에 들지.”
고민수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최상급의 소재들이야. 시중에서 절대 못 구하는 것들인데, 용케도 구해 왔구나?”
“암시장에서 구해 온 것들이니까요. 의외로 암시장의 물건들이 시중보다 더 품질이 좋을 때가 많더라고요.”
“나도 진작 암시장을 쓸 걸 그랬나?”
고민수는 커다란 철을 꼼꼼히 살피며 말했다.
“좋아. 이거면 충분하겠어. 네가 부탁한 코트는… 이 재료들이라면 오늘 내로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거 같네.”
“부탁드릴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고……. 아, 그리고 이 말도 해야겠네.”
고민수는 하윤경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내게 작게 말했다.
“윤경이를 한번 확인해 봐. 저 녀석 뭔가 꾸미는 거 같아.”
“…인지하고 있도록 할게요.”
“그래, 알아서 하거라.”
이 말을 끝으로 고민수는 내가 암시장에서 들고 온 물자들을 다시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근처에 있던 신예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코트는 마음에 드냐?”
“네. 마음에 들어요.”
신예진은 내가 구해다 준 새 코트를 입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가볍고, 방어력이 더 좋고……. 무엇보다 스승님이 입고 다니는 것과 비슷해서…….”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 코트 말고도 암시장에서 장비들 더 가져왔으니까, 한번 확인해 봐.”
확실히 김진철을 안 죽이고 내 꼭두각시로 만들기를 잘한 것 같았다.
그 거대한 암시장에서 온갖 물자들을 공짜로 얻어 낼 수 있었으니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건 매우 유용했다.
‘그래도 상대가 김진철이니 방심은 하지 말자.’
김진철은 언제 내게 반격을 할지 모르니 확실하게 이에 대비하고 있는 편이 좋을 듯했다.
하지만 뭐, 당장은 그 인간에게서 뜯어낼 수 있는 걸 최대한 뜯어낼 생각이었다.
‘김진철은 처리했으니, 당분간은 내가 가진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노리는 사람이 없을 거야. 강성규는 지금 하세리가 인맥을 이용해 몰락시키고 있는 중이니…….’
이번 사건은 얼추 잘 마무리한 것 같았다.
물론 강성규를 상대하다가 김진철을 잡아 버린 건 전혀 예상 못 했지만, 그래도 내게 이득이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몸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 재정비도 거의 다 끝마쳤으니…….’
그래, 준비는 다 됐다.
다음 신을 맞이할 준비를 말이다.
그리고 내 감에 의하면, 뭔가 곧 또 다른 신이…….
“야, 박유진! 지금 신의 기운이 감지됐어!”
“그래, 그럴 거 같더라. 이번에는 한국의 어디냐?”
“…한국이 아닌데?”
“뭐?”
나는 하윤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윤경은 근처의 컴퓨터를 조작하며 말을 계속했다.
“남미 쪽에서 그 하이퍼 게이트인가 뭔가가 감지되고 있어.”
“남미? 남아메리카?”
“어, 지구 반대편에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상대할 신은 조금 더 복잡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