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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208화 (208/240)

208화

퀼라의 몬스터 군단을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머릿수가 더럽게 많을 뿐이었다.

“보고받은 사진과 영상으로 봤지만, 특이하게 생긴 해골 병사들이네.”

“아마 잉카 제국의 옛 병사들이겠지.”

나는 자바니아로 해골 병사의 검을 막으며 대꾸했다.

복장이나 무기를 봤을 때 오래전에 존재했던, 그 잉카 제국의 병사들이 맞는 것 같았다.

다만 그 병사들은 살아 있는 게 아닌 전부 죽은, 말한 것처럼 해골들이었다.

“끝이 없네.”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거야. 약 1,500마리나 있으니까.”

하세리는 화염을 해골 병사들에게 날리며 말했댜.

“단둘이서 이 많은 수를 상대하는 거라 많게 느껴지는 거지.”

“그치. 그래서 보통은 단둘이서 이렇게 많은 적을 상대하지 않잖아.”

“그래, 보통은 그렇지.”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아까 오면서 확인했는데, 근처의 민간인들은 전부 대피했더라.”

“응, 나도 그렇게 보고받았어.”

하세리는 점점 더 큰 불길을 불러내며 말했다.

“그럼… 우리 간만에 날뛰어 볼까?”

“날뛰어야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통은 두 명이서 1,500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하세리는 보통의 헌터가 아니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엄청난 양과 위력의 전류와 화염.

그 두 속성의 공격이 해골 병사들을 향해 날이갔다.

* * *

“민간인 피해는 없지?”

“없어. 우리 둘이 날뛰면서 건물들이 몇 개 무너졌지만, 큰 피해는 아니야.”

“그렇구먼. 해골 병사들은 다 잡은 거지?”

“얼추 다 잡았어. 도망친 무리가 있지만, 얼마 안 되는 수니 큰 상관 없을 거야.”

“으음, 알겠어.”

나는 자바니아를 단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아무튼, 지난 며칠 동안 페루의 헌터들은 저런 해골 병사들을 매일 상대했다는 거지?”

“그렇지. 싸워 봐서 알겠지만, 해골 병사들은 강하지는 않아. 하지만 수가 엄청나게 많아.”

“그치. 들어 보니까 며칠 동안 거의 만에 가까운 해골 병사들이 공격했다면서?”

“맞아. 그래서 헌터들이 겨우겨우 막았대. 방금 우리가 싸운 1,500마리는 별것 아니었던 거지.”

“그렇겠네.”

나는 대꾸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바다 위에 나타난 거대한 게이트.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작은 게이트들.

게이트의 존재로 인해 바닷가 근처에는 민간인이 아예 없었다.

“페루의 헌터들은 퀼라에게 유효한 공격을 아예 못 먹였겠지?”

“그러니까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거지.”

하세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됐고, 우리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 퀼라나 몬스터들의 반응이 더 없다고 하니까 잠깐 숨을 돌릴 틈은 있을 거야.”

“그래, 좀 돌아가서 생각 좀 정리하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퀼라에 대해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겠어.”

“특이한 신이었지?”

“특이하다기보다는… 무언가 숨기고 있어. 뭘 숨기고 있는지 추측을 해야겠어.”

“무언가 중요한 걸 숨기는 거 같아?”

“근거는 없지만… 응, 중요한 걸 숨기는 거 같았어.”

나는 아까 잠깐 대화를 나눴던 퀼라에 대해 떠올렸다.

그 여신에게 특이한 점들이 확실히 있었다.

‘지금까지의 신들은 나를 보자마자 나를 죽이려 들었어. 근데 퀼라는 먼저 도망갔어.’

퀼라는 마치 지금은 나를 상대할 때가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즉, 그녀는 무언가 더 큰 걸 노리는 게 확실했다.

게다가 그것 말고도…….

‘분명 또 다른 신이 있었어.’

나는 아까 마주쳤던 퀼라를 다시 떠올렸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또 다른 신의 기운을 확실하게 느꼈다.

‘누구지? 분명 퀼라의 근처에 어떤 존재가 있었어. 근데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잠시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당장 생각해도 뭔가 명확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정보를 조금 더 모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돌아가자, 누나. 뒤처리는 페루 정부에서 해 주기로 했지?”

“아마 자국의 헌터들을 보낼 거야. 그러니 너와 나는 신을 상대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돼.”

* * *

“나라 상태가 말이 아니네.”

나는 하세리와 숙소로 돌아가며 페루의 수도를 둘러봤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고,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만 같은 도시.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폭동이라도 일어난 거야?”

“응, 정부에게 책임을 따지는 무리도 있고… 이 틈에 물건들을 훔쳐 가려는 사람들도 있고…….”

“개판이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로 쪽으로 가면 안 되겠네.”

“응, 아마 골목길 쪽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거야.”

하세리는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하며 말했다.

“페루 쪽 지인이 안 들키고 숙소 가는 길 알려 줬어. 이 길 따라 가면 될 거야.”

“…페루에도 지인이 있는 거야?”

“각 나라마다 지인 한두 명 정도는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각 나라의 헌터 협회 쪽 사람과 연이 있는 거지.”

“누나의 인맥은 볼 때마다 대단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후, 저 멀리서 집단으로 소리치는 사람들을 다시 바라봤다.

“근데 누나.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저 사람들 내 이름 부르는 거 같다?”

“네 이름 맞을 거야.”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페루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바라봤다.

“지금 이 나라는 혼돈에 빠졌어. 어떤 사람들은 너만 믿어야 하고, 너만이 이 나라를 구원할 수 있다고 하는 중이고… 어떤 사람들은 너에게 도움을 받기 싫다고도 하고 있어. 그래서 저렇게 거리에 나와서 시위하는 거고…….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어떤 무리는 정부를 탓하면서, 정부를 뒤집으려는 시도도 하고 있지.”

“…개판이네.”

“말 그대로 개판이지.”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부는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사람들은 뭉치지 못하고 분열하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퀼라가 데려온 몬스터들이 나라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지.”

“이런 상황이면 헌터들도 제대로 못 싸우겠네.”

“그래서 너를 부른 거지. 이쪽의 헌터들만으로는 퀼라를 못 막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니까.”

“그렇구나. 아무튼… 저기 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건…….”

“어떤 무리는 너를 욕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너를 찬양하는 거지.”

“과도한 찬양은 사양인데.”

“그냥 최대한 저 사람들과 엮이지 마. 지금 몇몇 사람들은 너를 신앙심에 가까울 정도로 찬양하려고 한다니까.”

“그건 좀 무섭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됐고, 돌아가자. 여기서 괜히 오래 있다가 사람들에게 들키면…….”

나는 하세리와 같이 바로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근데 그 순간 문득 귀에 들려온 이름이 있었다.

“음?”

나는 뒤를 돌아봤다.

페루의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거리.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 어떤 집단은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잘 몰랐기에 그 정확한 내용은 몰랐지만 이름 하나는 확실히 들려왔다.

“인티? 누나, 방금 저 사람들 인티라고 말했지?”

“인티? 어어… 그,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인티……. 인티라면 잉카 제국이 섬겼던 태양신이야.”

나는 인티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여기서 왜 그 이름을 외치는 거야?”

“잠시만…….”

하세리는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스페인어로 잠시 대화한 후, 하세리는 전화를 끊으며 내게 다시금 말했다.

“페루의 지인에게 물어보니까, 저 사람들은 인티를 찬양하는 집단이라고 하던데.”

“인티를 찬양한다고? 언제부터?”

“들어 보니까 퀼라가 모습을 드러내고 얼마 안 지나서부터라더라.”

하세리는 내게 설명했다.

“퀼라는 인티의 아내였잖아? 그래서 인티만이 퀼라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 다들 인티에게 기도해 퀼라를 막게 해라……. 대충 이런 식으로 한다는데……. 그냥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타난 사이비 같은데?”

“…사이비라.”

나는 인티의 이름을 외치는 무리를 바라봤다.

“퀼라가 나타난 지 며칠 안 됐을 텐데, 그 며칠 사이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았다고?”

“상황 자체가 극단적이라 저렇게 모일 수 있던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어. 맞아, 그럴 수는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내 감이 저것이 무언가 수상하다고 내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일단 돌아가자.”

나는 다시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재정비를 한번 제대로 할 필요가 있겠어.”

이번에 상대할 신은 무언가 달랐기에 나도 조금 다르게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 * *

“하윤경, 내 말 들리지?”

숙소로 돌아온 후.

나는 혼자 내 방에 들어가 바로 하윤경에게 연락을 했다.

- 어, 잘 들려. 근데 한국은 지금 새벽이야. 왜 갑자기 새벽에 전화를…….

“지금 페루에 나타난 신을 분석해 줘.”

- 뭐? 갑자기?

“네가 최근에 만든 신을 감지하는 그 기계 말이야. 그거로 신이 지구에 어디에 나타나든 바로 추적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서?”

- 아직 프로토타입이기는 한데, 아마…….

“페루에 나타난 퀼라라는 여신이 있어. 그 여신이 지닌 기운을 분석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여신이 혼자가 맞는지 확인해 줘.”

- …혼자가 맞는지 확인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번에는 신이 한 명만 온 게 아닐지도 모르거든. 아무튼, 지금 빠르게 확인해 줘.”

- 근데 그거 결과 나오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특히 그 신은 지금 남미에 있어서, 그걸 분석하려면 몇 시간이…….

“알겠어. 그럼 최대한 빨리해서 알려 줘. 아, 그리고 네가 하는 그… 인공적인 신의 기운을 만드는 거 말이야.”

나는 하윤경에게 최대한 차분히 말했다.

“네가 극한으로 연구 일정을 끌어당긴다면, 며칠 안에 끝낼 수 있어?”

- …운만 다 따라 주면 열흘 내로 가능할 거 같기는 한데, 야. 네가 인간이라면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면…….

“극한으로 해. 쓸 수 있는 자원을 다 써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만들어. 그리고 퀼라, 그 여신에 관한 분석 결과도 세 시간 안에 보내도록 해.”

- 야, 너는…….

하윤경은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일단 반지를 통해 하윤경이 뭘 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 그녀가 말을 안 들으면 그냥 강제로 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나저나 퀼라…….”

그 여신은 아직은 나랑 싸울 때가 아니라며 물러났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퀼라가 물러날 당시에는 정황이 없어서 제대로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굳이 기다려 줄 필요가 없겠지.”

퀼라가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면 나는 그 타이밍을 못 노리게끔 기습을 하면 됐다.

“흐음.”

나는 약 30분 동안 말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빨리 끝내는 게 낫겠다.”

이 혼잣말과 함께 나는 다시금 하세리를 데리러 방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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