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하늘에서 달처럼 생긴 거대한 물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자기장으로 인티의 알을 건드리자 바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일종의 마법이었네.’
인티의 알을 끌어 내리자 하늘에서 거대하게 빛나던 달이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아주 높은 상공에서 떨어지는 작은 운석 같은 것이 보였다.
그 운석이 바로 인티의 알이었다.
‘알을 거대한 달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은 사라졌어. 아마 이걸로 인티를 광적으로 믿으려는 사람들의 수가 조금은 줄겠지.’
여기까지는 일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중요했다.
저 커다란 알을 지상으로 잘 떨어뜨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잘 떨어뜨려야 했다.
게다가 적당한 높이에서 멈춰 세워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커다란 운석을 지구에 충돌시키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
자기장으로 거대한 구체를 끌어 내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지름이 약 500m나 되는 구체였고, 그 무게도 상당했다.
그런 물체가 상공 약 50km에 위치했었고, 나는 그 먼 곳의 자기장을 조작해야 했다.
‘할 수 있어. 그리고… 해야만 해.’
내 몸 주위로 전류가 계속 튀었다.
동시에 전류가 튈 때마다 몸 곳곳에 통증이 발생했다.
자기장을 무리해서 쓰는 탓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요양이나 하러 가야겠네.’
지난번 토스카의 행성을 무너뜨린 후.
당시의 나는 말 그대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나는 그 죽을 뻔한 짓을 또다시 하고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죽을 정도는 아니겠네.’
물론 장기 몇 개가 망가질 거 같았지만 지난번처럼 시체와도 같은 상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아주 약간은 더 무리해도 괜찮을 듯했다.
‘좀 빨리 내려와라.’
나는 계속해서 자기장을 조작했다.
그리고 인티의 알을 끌어 내릴수록 알 수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조작하기 쉬워지네.’
인티의 알을 끌어 내리는 게 어려웠던 이유는 다름이 아닌, 그 알이 너무나도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알이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알을 조작하기 쉬워졌다.
‘…할 수 있겠네.’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는 애매했다.
인티의 알 자체는 매우 무거워서 내 자기장으로 다루기 상당히 어려운 물체였다.
거기다 방금 말한 것처럼 그 물체는 너무나도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원래의 나였으면 절대 성공 못 했을 일이다.
정확히는 회귀 전의 나였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나도 많이 강해지기는 했네.’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이 지구에서… 전류를 다루는 데 있어서만큼은 내가 최강이라는 것을 말이다.
‘뭐, 됐고……. 저 알은 거의 다 내려왔네.’
빠르게 추락하던 알은 어느새 눈에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알을 슬슬 멈춰야 했다.
안 그랬다가는 진짜 운석 하나를 지구에 충돌시키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파지직―
나는 전류를 불러내며 더욱더 집중했다.
이제 저 무거운 물체를 적당한 높이에서 멈춰 세워야 했다.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해… 그리고 저 알 주위로 내가 적당히 자기장을 부여한다면…….
“…됐다.”
인티의 알은 도시의 상공, 적당한 위치에 멈춰 서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거대한 구체는 약 2km쯤의 상공에 멈추었다.
“…후우.”
인티의 알을 멈춰 세운 후,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진아.”
하세리는 바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너 지금 코에서 피가 너무 많이……. 아니, 잠깐만. 너 지금 눈과 입에서도 피가…….”
“괜찮아. 죽을 정도는 아니야.”
나는 바로 몸을 다시 일으켰다.
상당히 어지러웠지만 이 악물고 버텼다.
“빨리 끝내자.”
“기다려, 유진아.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네 몸을 계속 혹사시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인티는 점점 강해지고 있어. 조금이라도 빨리 인티를 저기서 끌어내야 해.”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걱정 마. 지금 하는 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니까.”
“그냥 내가 저 알을 깨면 안 될까? 너 그 몸 상태로 더는…….”
“누나는 힘을 아끼고 있어. 아마… 누나에게는 해야만 하는 또 다른 역할이 분명 있을 테니까.”
이 말과 함께 나는 거대한 알을 바라봤다.
지금부터 나는 저 알을 무너뜨려야 했다.
하윤경의 분석에 따르면 저 알은 상당히 두꺼웠다.
하지만 그 성분이나 구조로 봤을 때…….
‘강력한 전류로 지져 버리면, 어찌어찌 깨뜨릴 수 있겠어.’
이미 어떻게 할지 생각은 다 해 놓았다.
그걸 실행만 하면 됐지만 역시 내 몸 상태가 마음에 걸렸다.
하세리에게는 괜찮다고 했지만 지금 내 상태는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뭐, 해야지.’
다른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나는 신을 상대할 때 늘 목숨을 걸었다.
지금까지 목숨을 판돈으로 싸웠는데, 이제 와서 안 그러는 것도 웃겼다.
그렇게 나는 확실히 마음을 먹은 후, 상공에 떠 있는 구체를 향해 전류를 날렸다.
파지지직―!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전류를 불러냈다.
사실 나는 전류의 위력이 태생적으로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전류의 활용이 너무나도 뛰어나 S급에 가까워진 헌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한계를 조금씩 뛰어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최서희와 비슷……. 아니,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겠다.’
그래도 그 최서희와 비교는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만 해도 내게 있어 엄청난 발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정도의 수준이기만 하면 충분했다.
‘신의 기운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지만, 그 점만 빼면… 저 알은 그냥 엄청 큰 알에 불과해.’
저 알의 성분과 구조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알을 이 높이까지 끌어 내린 시점에서 저것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만 더.”
무리해서 전류를 내 안에서 끌어내자 몸의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문제가 생기는 게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 해야만 했다.
파지지직―!
약 5분 동안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전류를 계속 날렸다.
그리고 잠시 뒤.
“…됐다.”
거대한 알이 깨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 사이로 전류를 집중시켰고, 그러자 알의 균열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러다가 이내 그 알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허억, 허억……. 후우우. 좋았어.”
알이 산산조각 나는 걸 확인한 후, 나는 바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나는 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진아. 너 피를 지금 너무 많이 흘렸어.”
“…좀 흘리기는 했네.”
눈과 입, 그리고 코에서 피가 엄청나게 쏟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곳곳이 찢어진 피부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러 번은 못 할 짓이네.’
행성 규모의 자기장을 건드는 건… 아무래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인 듯했다.
한 번 할 때마다 몸이 이렇게 망가지는 걸 보니 확실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날 좀 일으켜 줘. 저쪽으로 빨리 가 봐야 해.”
“이 상태로 싸우려고?”
“싸워야 해. 더는 지체할 수도 없어. 저놈이 그사이에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나는 하세리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러니까 얼른 가자. 가서 어서 저놈을 죽이고…….”
“죽이기는 누구를 죽인다는 거냐?”
와이어를 타고 건물 아래로 내려가려던 순간, 여러모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대단하군. 나의 아내가 목숨을 바쳐서 만든 달을… 지상으로 끌어 내리다니.”
정체불명의 언어였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그 언어가 머릿속에 전부 이해가 되었다.
“인티 님이 맞죠? 잉카 제국의 위대한 태양신 인티?”
“잘 아는구나. 한때 이 행성의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던 한 명의 신이었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그런 나와… 나의 다른 신들을 버렸지.”
“인간도 자신의 신을 선택할 권리가 있던 거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인티 님과 인티 님의 신들은 필요 없어졌기에 잊힌 거예요. 그것 때문에 화낼 이유는…….”
“인류 따위가 선택은 무슨 선택을 감히 한다는 말인가?!”
그 말과 함께 멀리서 누군가가 날아왔다.
부서진 거대한 알의 잔해에서 붉게 타오르는 남자가 날아오고 있었다.
“대답해 보거라. 너희 인류 따위가 감히 신을 선택할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그럼 역으로 묻죠. 저희는 왜 신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거죠?”
나와 하세리가 있는 건물의 옥상으로 날아온 인티.
그는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봤다.
“어이가 없군. 나약한 존재들을 우리가 이끌어 주었건만, 이런 배은망덕한 대답을…….”
“수천 년 전에 저희를 이끌어 준 건 고맙네요. 하지만 이제 인티 님 같은 분 빠질 때가 됐어요.”
“건방진…….”
“제가 틀린 말은 안 했잖아요?”
이 말과 함께 나는 불타는 남자를 향해 전류를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아.”
몸에서 전류가 안 나왔다.
아니, 억지로 끌어낸다면 끌어낼 수는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몸이 진짜로 무너질지도 몰랐다.
‘토스카와 싸울 때 이미 한 번 몸이 망가져서 그런가. 행성의 자기장을 건드는 짓은… 많이 힘드네.’
아무래도 전류를 이용한 싸움을 힘들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류를 안 쓰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전류 없이 싸우면 인티를 이길 가능성이 많이 떨어지는…….
“각오하거라. 비록 네놈 때문에 내가 완전한 힘을 가진 채 현계를 못 했지만… 네놈 하나쯤은 죽일 수 있을 거다.”
이 말과 함께 인티는 더욱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거대한 화염구를 하나 날렸다.
“에라이.”
상당한 크기의 화염구였다.
나는 재빨리 하세리를 안아 들고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콰쾅―!
화염구는 우리가 있었던 옥상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으아악?! 유, 유진아?!”
“꽉 잡아.”
나는 하세리를 안아 든 채 재빨리 근처의 건물을 향해 와이어를 날렸다.
그리고 와이어를 타고 안전하게 지상에 내려올 수 있었다.
“괜찮아, 누나?”
“허억, 후우우. 너 맨날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거야?”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는 대충 대꾸한 뒤, 하늘을 올려다봤다.
“퀼라에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찬양하는 인간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욱 강해진다. 네놈이 나를 일찍 깨운 탓에 전성기 때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나를 보면…….”
“말이 참 많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인티는 전력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인티는 태양의 신이라 불을 쓰고…….’
나는 내 옆의 하세리를 바라봤다.
내 시선을 느낀 하세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했다.
“왜 그래, 유진아?”
“…누나,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
지난번에 신이 하세리를 데리고 가라고 한 이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