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 잠깐의 휴식 】
하세리가 손을 휘두르자 인티가 날렸던 불길이 전부 사라졌다.
이에 인티는 더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어떻게 인간 따위가 나의 공격을…….”
“말씀드렸잖아요. 이분은 그냥 인간이 아니라고요.”
나는 피식 웃으며 인티에게 말했다.
“인류 최강의 화염술사예요. 그것도 제가 가진 신의 기운을 나누어 가진 화염술사니… 아마 인티 님의 좋은 상대가 될지도 모르죠.”
“좋은 상대? 헛소리를 하는구나. 화염술사 따위가 나의 태양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뭐, 곧 알게 되겠죠.”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 뒤 하세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나. 주변을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날뛰도록 해.”
“하지만 주변에 건물들이……. 게다가 사람들도 모이고 있어.”
“으음, 그러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인티와 전투가 일어나는 거리.
이 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몇몇 헌터들이 사람들을 막아 세우고 있었지만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을 전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 자! 오거라! 나의 신도들이여!”
인티는 모이는 사람들을 보며 기쁜 듯이 외쳤다.
“나를 찬양해라! 나를 우러러봐라! 그게 곧 나의 힘이니!”
인티 주위에서 타오르던 화염이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는 실제로 점점 더 강해지는 것만 같았다.
“…누나. 저놈이 더 강해지기 전에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런 거 같은데,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내 불 때문에 사람들이 다치면…….”
“괜찮아.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할게.”
“하지만…….”
“누나, 나 믿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하세리를 바라봤다.
“내가 전부 해결할게. 그러니까 누나는 마음껏 날뛰어. 평소에 불을 마음껏 못 내뿜어서 은근 불만이 있었잖아?”
“…그렇기는 해. 내가 전력으로 불을 내면 매번 사람들이 다쳐서…….”
“이번에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그냥 마음껏 날뛰고, 저놈을 이기도록 해.”
이 말과 함께 나는 와이어를 던져 근처의 건물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세리가 과연 얼마나 해 줄 것인지 솔직히 말해 잘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기대 이상으로 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 * *
“뭐지? 박유진, 저 인간은 어디로 가는 거냐?”
인티는 건물들 사이로 사라진 박유진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을 뿐, 그는 이내 다시금 앞을 바라봤다.
“도망친 건가? 허,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어차피 결국 나의 추종자들에게 사냥당할 뿐일 텐데.”
“유진이를 너무 만만히 보는 거 아니야?”
“해 봤자 인간이다. 신인 나에게 있어 그는 만만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 나도 만만하게 보이는 거야?”
“흐음.”
인티는 잠시 말없이 하세리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는 질문이구나. 내게 그런 질문을 날린 인간은 네가 처음이다. 인간 따위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내가 만만하게 보인다는 거지?”
“인류 최강의 화염술사라고 했느냐? 그래……. 인류 중 최강이라면 분명 강하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인류 중에서 최강이어도, 신과는 엄청난 격차가…….”
“말로 하지 말고 행동을 보여 봐.”
“음?”
하세리는 인티를 향해 불덩이를 날렸다.
이에 인티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 불덩이는 도중에 멈추었다.
“행동으로 보여 주기를 원한다면 보여 주도록 하마.”
이 말과 함께 인티는 더 큰 불덩이를 소환해 그대로 하세리에게 날렸다.
하세리 또한 손을 들어 올리며 집중했다.
‘내가 못 이길 존재가 아니야.’
하세리는 박유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신이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었다.
신의 기운만 있으면 인간도 신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도 유진이처럼… 신을 이길 수 있어.’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후, 하세리는 불을 다루는 데 집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에게 다가오던 거대한 불덩이는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왜 인간 따위가 나의 불을 다루는 것이냐?”
“내가 더… 더 강하기 때문이겠지.”
하세리는 힘겹게 대답했다.
인티의 화염을 다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잠깐의 방심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헛소리를 하는구나. 인간 따위가 나보다 강하다고?”
“으윽?!”
멈춰 섰던 불덩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덩이는 하세리를 향해 조금씩 다시 다가갔다.
이에 하세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집중했다.
‘집중해. 밀어내는 거야.’
하세리는 앞으로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불덩이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쓸데없는 발악을 하는구나.”
인티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하세리에게 불길을 날렸다.
하지만 하세리는 그 불길 또한 다시 막아 세웠다.
“감 잡았어.”
그녀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휘두르자 불길은 인티를 향해 역으로 돌아갔다.
“발악은 네가 해야 할 거야.”
“하, 괜히 박유진이 인류 최강이라고 부른 게 아닌가 보구나.”
하세리가 날린 불길을 맞은 인티.
그는 큰 타격이 없는 모습이었다.
“네년이 나와 감히 싸울 수 있게끔… 허락을 내려 주마.”
인티는 이 말과 함께 하세리를 향해 화염을 날렸고, 하세리 또한 인티를 향해 화염을 날렸다.
거대한 두 불길은 중간에 만났고, 그 결과 엄청난 열기의 불길이 도심에 퍼졌다.
“…아.”
그 광경에 하세리는 놀라며 주위를 둘러봤다.
싸움에 열중한 나머지 그녀는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그리고 실제로 인티의 세뇌에 걸려 다가오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방금의 화염에 덮쳐질 위치에 있었으나…….
“어?”
그 사람들 중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박유진이 그 사람들을 재빨리 피신시킨 덕이었다.
“누나.”
근처의 사람들을 순식간에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온 박유진.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하세리 곁에 다가왔다.
“말했잖아. 마음껏 싸우라고. 주변은 신경 쓰지 마. 내가 전부 보고 있으니까……. 누나는 저놈과 싸우는 것에 집중해.”
“…응, 알겠어.”
하세리 또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녀에게 있어 지금 박유진은 그 어느 때보다 든든했다.
“최선을 다해 싸워, 누나. 솔직히 불을 다루는 신과 언제 또 싸워 보겠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박유진은 와이어를 날리며 다시금 사라졌다.
하세리는 그 모습을 지켜본 뒤 다시금 인티를 바라봤다.
“…그치. 내가 언제 불로 신을 상대해 보겠어.”
하세리는 어느새 평소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채였다.
특유의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동시에 각오를 다진 표정이었다.
거기다가… 이 상황을 약간은 즐기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렇게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말고는 없겠지.”
이 말과 함께 하세리는 다시금 화염을 불러내 인티를 향해 날렸다.
* * *
‘사람들은 다 피신시킨 거 같네.’
나는 근처에 보이던 마지막 민간인을 페루의 헌터에게 넘겼다.
이걸로 인티를 보러 달려오던 민간인들은 전부 구한 것이었다.
‘자, 그럼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야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하세리와 인티의 싸움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엄청나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실제로 엄청난 싸움이었다.
거대한 크기의 화염이 도심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화염으로 이루어진 바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인티는 하세리에게 확실히 정신이 팔린 거 같네.’
내가 원하는 전제 조건은 갖춰졌다.
방심한 인티에게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인티를 끝낼 생각이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덕에 전류를 조금 낼 수 있겠어. 이 전류로 이 푸른 돌멩이에 전류를 넣고, 그것을 이용해…….’
계획 자체는 완벽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변수가 있었다.
“으윽.”
나는 내 심장 쪽을 부여잡았다.
아무래도 신체에 가해진 부담이 꽤 큰 것 같았다.
‘죽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침대에만 누워 있겠네.’
자바니아로 강화된 신체.
그것도 인티의 강력한 공격을 흡수해 강화된 신체였다.
‘신체 강화가 끝나면 그 반동으로 몸에 부담이 가해져. 근데 이번에는 극도로 신체가 강화됐으니… 반동이 좀 많이 크겠네.’
신체 강화가 풀리면 나는 분명 쓰러질 거다.
그러니 신체 강화가 풀리기 전에 전투를 끝내야 했다.
‘아마 신체 강화는 3분 정도 뒤에 풀릴 거야. 그러니…….’
나는 인티를 바라봤다.
어차피 나는 그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내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그 한 번의 공격에 몰아줄 생각이었다.
“후우우.”
나는 내가 신은 전투화 쪽에 손을 가져갔다.
고민수가 준 전투화였다.
고민수의 말에 따르면 전투화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총알과도 같은 속도로 빨라진다고 했다.
물론 고민수는 그 기능의 사용에 주의하라고 했다.
한번 쓰면 신체에 부담이 될 거라 사용 후에는 전투 불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다.
“상황이 딱 좋네.”
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나는 몇 분 뒤에 쓰러질 예정이었다.
전투화의 그 기능을 쓰기에 매우 적합한 상황이었다.
“…해 보자.”
나는 인티 쪽을 향해 몰래 다가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화염이 몰아치는 전장을 지나가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코트와 강화된 신체를 믿고 그냥 그 불길을 정면으로 맞으며 지나갔다.
‘따갑네.’
엄청난 열기의 불 때문에 피부 곳곳에 화상을 입었지만 나는 이 악물고 참았다.
신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버텨 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인티의 뒤쪽으로 접근해 적당한 곳에 잠시 몸을 숨겼다.
“…힘 좀 빌린다.”
이 말과 함께 나는 목에 걸린 푸른 돌멩이를 향해 전류를 조금 흘려보냈다.
그러자 이내 그 푸른 돌멩이에서 엄청난 양의 전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윽?!”
그 엄청난 양의 전류를 다루려고 하자 몸 곳곳에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정신 줄을 붙잡으며 손을 전투화 쪽으로 가져갔다.
‘단 한 번에 끝낸다.’
나는 자바니아에 모든 전류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전투화의 버튼을 눌렀고…….
“…후우.”
깊은숨을 내쉰 뒤 나는 인티를 향해 달려갔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안에 100m 넘는 거리에 있던 인티에게 접근했다.
인티는 하세리와의 싸움에 집중하던 탓에 나의 접근을 아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심장을 향해 나는 자바니아를 내리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