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 * *
“너는 진짜 날고기 먹는 걸로 괜찮겠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나는 구운 것보다 날로 먹는 게 더 맛있다고.”
“뭐, 그렇겠지. 그래도 더 먹고 싶으면 말해. 고기 많이 구워 놓을 거니까.”
“알겠어. 구운 고기도 맛있으니까.”
이민아는 상당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한쪽에 쌓인 날고기들을 바라봤다.
늘 느끼는 거지만 늑대인간의 식성은 참으로 특이한 것 같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주하나 씨. 혼자서 고기 굽는 거 괜찮으세요? 도움이 필요하신 거면…….”
“괜찮아요. 제가 또 요리는 자신 있거든요. 고기 굽는 것쯤은 혼자서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박유진 씨는 지금 환자잖아요.”
주하나는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저는 힐러예요. 그래서 환자에게 일은 절대 안 시키는 편이죠.”
“에이, 환자라니요. 저 이제 몸 많이 좋아졌는걸요.”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박유진 씨는 아직 환자예요. 박유진 씨의 몸 곳곳은 아직 회복 중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뭐, 고기 굽는 것쯤은 저도…….”
“쉬고 계세요. 요리는 제가 다 할 테니까요.”
주하나는 나를 근처 의자에 반강제로 앉히며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박유진 씨. 같이 오신 저분은…….”
“고민수 씨요?”
“네, 고민수 씨. 아까 얼핏 들었는데, 저분이 그 ‘바렐’이라는…….”
“네, 한국 최고의 마도구 제작자이시죠.”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근처에서 고민수는 유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그 두 사람을 부르려고 했는데.
파지지직―!
유나의 손에서 갑자기 전류가 튀어나왔다.
“우와와! 와! 신기해요!”
“별것 아니란다. 그냥 아주 간단한 마도구지.”
“우와. 이런 걸 즉석에서 만드시다니…….”
“나는 평생 이런 물건들만 만들고 살았거든. 이 정도는 별것 아니야.”
고민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유나는 자신의 손에서 나오는 전기들을 신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건 또 뭔가요?”
“별것 아니야.”
고민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여동생과 이야기하다가 네 이야기가 나왔거든. 유나가 자기도 너처럼 전기를 다룰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말을 해서 말이야.”
“그래서 저 장갑을 만들어 준 건가요?”
나는 유나가 낀 장갑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나의 오른손에 끼워진 검은색 장갑에서 전류가 나오고 있었다.
“간단한 기술이야. 애초에 저런 건 호신용 장비로 시중에서 구할 수 있잖니?”
“글쎄요. 호신용 장비에서 나오는 전류가 저렇게 강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유나의 장갑에서 나오는 전류의 위력이나 양은 결코 호신용 따위가 아니었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몬스터도 쓰러뜨릴 위력인데요?”
“약한 몬스터쯤은 잡을 위력이야.”
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호신용 아니겠니? 요즘처럼 몬스터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시대에, 저런 호신용 물품 하나쯤은 있어야지.”
“저건 호신용으로 쓰다가 사람을 죽일지도 모를 물건이에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게다가 유나에게도 꽤 위험하지 않을까요? 유나가 전류를 잘못 날렸다가는 실수로 자기 몸에…….”
“그건 걱정 마. 내가 그 정도도 생각 안 한 건 아니거든.”
고민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장갑은 기본적으로 착용자를 해치지 않아. 착용자에게 절대 전기가 튀지 않도록 마법을 걸어 놨거든.”
“아, 그래요?”
“나는 마도구만 수십 년을 만든 사람이야. 마도구의 안전적인 측면은 당연히 고려했지.”
게다가, 라고 고민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마도구는 사람을 못 죽이게끔 설정해 놨어. 사람에게 공격할 시, 그 사람을 딱 기절시킬 정도로만 전기를 출력하게 했거든.”
“그런 세세한 설정도 가능한 건가요?”
“내 실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나는 평생 이런 마도구만 만들어 온 사람이니까.”
“으음, 하기야, 그렇겠군요.”
“일반인은 딱 기절시킬 정도고, 헌터 상대로는 조금 더 강하게 출력하게끔 해 놨어. 아마 D급 헌터들까지는 기절시키는 게 가능하고, C급부터는 해 봤자 화상일 거다.”
“저 장갑은 일반인들과 헌터들도 구별이 가능한가요?”
“딱히 어려운 기술이 아니야.”
고민수는 공구들을 정리하며 설명했다.
“애초에 헌터들은 일반인들에게 없는 특별한 기운? 마력? 그런 걸 지니고 있거든. 그 차이를 감지하는 마법도 있어서, 만드는데 어렵지 않아.”
“그런 마법도 있었군요.”
나도 처음 듣게 된 정보였다.
일반인과 헌터를 구별할 수 있다니.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고민수 씨. 혹시 마도구 중에 헌터를 구별할 수 있는 마도구가 있을까요?”
“내 집의 창고에 몇 개 있을걸? 왜? 필요하니?”
“하나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어. 그건 나중에 내가 구해 볼게. 근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하지 말고, 최대한 즐기도록 해.”
고민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그를 따라 앞을 바라보니 유나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 이거 어때? 나도 오빠처럼 전기를 낼 수 있어.”
“왜 이렇게 신났어, 인마.”
“그야… 나도 오빠처럼 능력 같은 거 갖고 싶어 했으니까. 마도구를 쓰는 거지만, 오빠처럼 전기를 날리니까…….”
“조심히 써, 알겠지?”
“당연하지. 오빠가 있을 때만 쓸 거니까 걱정 마.”
“그럼 됐다.”
나는 피식 웃으며 유나를 바라봤다.
나처럼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자 참으로 신난 모습이었다.
그렇게 잠시 유나와 웃으며 시간을 보낸 후.
“박유진 씨! 고기 다 됐어요! 고민수 씨도 오세요.”
“알겠어요.”
주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나야, 먼저 가 있어. 주하나 씨와 이민아와 먼저 먹고 있어도 되고.”
“음? 오빠는?”
“세리 누나와… 고민수 씨가 데려온 그 조수분을 데리고 오려고.”
“알겠어. 빨리 와야 해?”
“당연하지.”
유나를 먼저 보낸 후, 나는 고민수에게 물었다.
“지금 하윤경은… 세리 누나와 함께 있는 거죠?”
“아까 세리가 윤경이를 따로 데리고 가더라고.”
“세리 누나가 하윤경의 정체를 알아차린 거 같지는 않던데 말이에요.”
“그래, 알아차리지는 못한 거 같더라. 근데 세리가 따로 데려간 걸 보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던 거 같기도 하구나.”
“아까 저쪽으로 갔죠?”
“응, 아마 저쪽에 있는 저수지로 갔을 거야.”
“그렇다면… 고민수 씨도 먼저 가서 고기 드시고 계세요.”
이 말과 함께 나는 하세리와 하윤경을 찾으러 출발했다.
‘근데 참… 이곳은 공기가 좋기는 좋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강원도에 와서 잡은 커다란 펜션.
하세리와 이민아, 두 사람 모두 나를 위해 돈을 많이 써 준 덕에 꽤 시설이 좋은 곳으로 올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잡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
내가 돈이라도 보태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나보고 그 어떠한 돈도 내지 말라고 했다.
덕분에 말 그대로 몸만 끌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나도 이제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헌터 협회에서 일한 덕에 돈이 꽤 모인 상태였다.
그래서 돈이 요즘 부족하지는 않았다만, 하세리와 이민아는 내가 돈 쓰는 걸 보기 싫었던 듯했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위해 돈을 써 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근데 이런 시국에서도 돈의 가치가 어떻게든 유지는 되고 있네.’
나는 숲속에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신이 쳐들어와 현재 사람들 사이에서 지구 종말 이야기까지 나오는 중이었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도 화폐의 가치가 유지되다니.
뭐랄까, 참 신기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세상이 개판이 나자 돈의 가치가 들쑥날쑥해졌는데 말이야.’
뭐, 생각해 보면 이건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이 없었다.
그때 사람들은 진지하게 이제 모든 게 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절망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에는 나라는 희망이 있지.’
내가 어떻게든 쳐들어오는 신들을 막아 냈다.
그 덕인지 사람들은 이 모든 걸 이겨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 하나에 의존하는 게 썩 좋은 건 아니지만 희망이 아예 없이 세상이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근데 전 세계의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 같아서 은근히 부담스럽기도 하네.’
회귀 전에도 나는 유명하다면 꽤 유명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이렇게 과할 정도의 유명세를 얻으니 꽤 신경이 쓰였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에 하세리와 같이 등급 검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 사람들이 많이 몰릴 거 같다고도 했는데……. 이게 맞는 거려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근처의 저수지로 향해 걸어갔다.
‘…저깄네.’
몇 분 뒤, 나는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둘에게 안 들키게끔 조용히 다가가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민수 아저씨의 조수가 될 정도면 마법 실력이 상당하겠네?”
“…네, 제가 마법을 못하는 건 아니죠.”
모습이 달라진 하윤경은 하세리의 질문에 대충 대꾸했다.
하윤경은 고민수의 마도구를 이용해 모습을 완전히 바꾼 상태였다.
붉은색 머리카락은 검은색으로, 그리고 얼굴도 다른 사람의 형태로 달라져 있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어릴 때부터 마법을 잘하다니……. 누군가가 떠오르네.”
“…누군가가 떠오른다고요?”
“타고난 마법사이자 과학자였어. 하지만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하아아.”
하세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청난 사람이었는데……. 옳은 길을 갔었더라면 세상이 훨씬 좋아졌을 텐데.”
“옳은 길……. 세상이 훨씬 좋아져? 저, 저는, 아니, 나, 나는… 내가 얼마나 세상을 위해…….”
하세리의 말에 하윤경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못 했다.
하윤경이 자신의 정체와 관련된 말을 못 하도록 내가 온갖 제약을 다 걸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내가 끼어들어야지.’
나는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세리 누나. 여기서 뭐 해?”
“음? 아, 유진아. 그냥 지윤이와 대화 좀 하고 있었어. 뭔가… 지윤이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참고로 하윤경이 지금 쓰고 있는 이름은 백지윤.
고민수가 데리고 온 꼬마 조수, 천재 마법사, 입양 딸……. 뭐, 대충 그런 설정으로 하윤경을 위장시킨 후, 이곳에 데려온 거였다.
“그 사람과 완전히 다르게 생겼는데……. 뭐랄까, 그냥 비슷한 느낌이 들어. 너무나도 비슷한 그런…….”
“그 사람이 누군데?”
“…있어.”
하세리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나는 하세리가 누구를 떠올리는지 바로 눈치챘다.
‘이 누나도 감이 참 좋다니까.’
아무래도 일단 이 둘을 떼어 놔야 할 것 같았다.
“세리 누나, 먼저 펜션으로 돌아가. 지금 고기 다 구워졌다니까, 얼른 가서 먹어.”
“응? 알겠어. 근데 너는…….”
“고민수 씨가 지윤이를 데리고 근처를 더 구경시켜 달라고 내게 부탁했거든.”
“그래? 그럼 나도…….”
“누나는 먼저 가서 먹고 있어. 나도 지윤이와… 단둘이 이야기 좀 나누고 싶거든.”
“으음……. 알겠어.”
하세리는 뭔가 아쉽다는 표정이었지만 별말 없이 내 말을 따랐다.
그렇게 하세리가 어느 정도 멀어진 뒤.
“이상한 이야기는 안 했겠지?”
“하고 싶어도 못 해. 네가 내게 온갖 명령을 다 해서 강제적으로 말을 못 하게 되는…….”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 그런 의미에서… 신예진.”
“네, 스승님.”
내 말에 하윤경의 그림자에서 신예진이 튀어나왔다.
“윤경이의 말처럼, 하세리 씨에게 윤경이는 이상한 말을 안 했어요.”
“그럼 다행이네.”
“뭐, 뭐야? 박유진, 신예진은 언제부터 내 그림자에…….”
“만약을 대비해서 너를 미행하라고 시켰어. 네가 워낙 폭탄 같은 인간이라, 감시를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았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 뒤, 신예진을 바라봤다.
“고생했다. 그리고 배고프지? 얼른 가서 너도 밥 좀 먹어라.”
“그… 저도 펜션 쪽으로 가도 괜찮은 건가요? 사람들이 제가 왔다는 걸 모를 텐데…….”
“괜찮아. 어차피 너를 다 아는 사람들이라 네가 왔다고 특별히 불편해하지 않을 거다.”
이 말을 하며 나는 하윤경을 다시금 슬쩍 바라봤다.
‘일단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긴장은 놓지 말아야지.’
고민수가 어떤 생각으로 하윤경을 데리고 나오자고 한 건지 몰랐다.
아마 고민수에게도 나름의 계획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계획이 뭐든 간에 나는 하윤경을 계속 지켜볼 것이었다.
이 폭탄 같은 여자는 말 그대로 언제 문제를 터트릴지 몰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