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 더스트 】
“고민수 씨?”
“뭐야? 너 언제 온 거니?”
“방금 왔어요. 고민수 씨 데리고 오려고 한 건데…….”
나는 고민수 옆의 하윤경을 바라봤다.
하윤경은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뒷목에는 방금 고민수가 내리친 기계 장치가 달라붙어 있었다.
커다란 원형의 장치였다.
“하윤경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나도 과격한 방법을 쓰려고 하는 거지.”
고민수는 하윤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내가 마도구로 윤경이를 계속해서 스캔했어. 그리고 분석한 결과, 윤경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는 걸 확인했어.”
“그 무언가가… 혹시 신의 기운 같은 거였나요?”
“비슷한 기운이었지만, 무언가가 달랐어.”
고민수는 쓰러진 하윤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에게서 느껴지는 신의 기운과 비슷했어. 하지만 동시에 이질적이었어. 그 기운에서 무언가 섞인 것만 같았어.”
“이질적인 기운이라.”
“아무튼 윤경이의 머릿속에 있는 그 이질적인 기운 때문에, 윤경이가 이 꼴이 난 게 아닌가 싶었어.”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하윤경이 어렸을 때, 어떤 신이 하윤경의 머릿속을 건드렸다고 했거든요.”
“나는 지금 그 신이 남기고 간 잔재를 없앨 생각이야.”
고민수는 여러모로 복잡한 눈빛으로 하윤경을 바라봤다.
“나는 아직 윤경이에게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어렸을 때의 윤경이는 분명 착한 얘였거든.”
“하윤경이 다시 착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가요?”
“윤경이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다니는 그 기운을 없애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런가요?”
나는 하윤경이 착해질 수 있다는 말에 딱히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수는 꽤 확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러니까 시도하려는 거지. 그리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야.”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고민수 씨에게 하윤경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 고민수 씨도 하윤경이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시잖아요. 머릿속이 엉망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범죄자에게…….”
“그래도 나는 윤경이를 포기할 수 없어. 포기해서는 안 되거든.”
“하윤경에게 빚진 거라도 있나요?”
“빚진 건 없어. 그냥 전에 못 했던 일을 지금 하려는 것뿐이야.”
“전에 못 했던 일이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으나 고민수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어. 윤경이가 하루아침에 미쳐 버렸을 때, 그때 내가 뭐라도 했다면… 일이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자세히 묻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이거는 물어야겠어요.”
나는 고민수가 들어 올린 하윤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윤경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 거죠? 늘 말하는 거지만, 이 여자는 걸어 다니는 폭탄이에요. 잘못했다가는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몰라요.”
“내 집으로 데려갈 생각이야. 이 일을 진행하려면, 내 전용 장비들이 필요할 테니까.”
“고민수 씨의 집에 있는 그 장비들로… 하윤경의 머리를 수술할 생각인가요?”
“수술은 아니고, 그냥 단순한 작업이야. 얘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이상한 걸 빼내는 것뿐이니까.”
“그런 게 수술이에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하윤경의 머릿속을 고칠 수 있는 건가요?”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성공할 거라고는 보장은 못 하지.”
“흐음.”
나는 잠시 속으로 생각들을 정리했다.
고민수는 이미 이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아마 그를 막기는 힘들 듯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럼 그 일이 잘되기를 바랄게요.”
“잘해야지. 잘해야만 해.”
“대신 이것만 조심해 주세요. 하윤경의 발목에 있는 저 발찌를 절대 풀지 마세요. 저게 풀리는 순간, 하윤경은 진짜 폭탄이 될 테니까요.”
“…주의하도록 할게.”
“네, 그것만 주의해 주세요. 그것 말고는… 딱히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하윤경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
이게 과연 좋은 선택인지는… 솔직히 확실치 않았다.
어쩌면 하윤경이 이 상태, 그러니까 미쳐 버린 상태인 게 더 다루기 쉬울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지. 만약 하윤경이 제정신을 차리고, 착한 인간이 된다면… 훨씬 더 쉽게 협조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도박이기는 했지만… 뭐, 상관없었다.
애초에 목숨 건 도박을 여러 번 해 봤고, 이 정도 도박은 충분히 할 만했다.
“지금 바로 출발하려는 건가요?”
“가야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네가 잘 설명해 줘.”
“알겠어요. 근데 고민수 씨. 지금 하윤경의 목에 붙인 기계는…….”
“사람을 잠들게 하는 마도구야. 붙이면 최대 72시간 동안 잠들지.”
“이 상태로 집에 데려간다고 하셨죠?”
“부천에 있는 내 빌딩에 데려가서 바로 일을 시작해야지.”
“혹시 내일 고민수 씨의 빌딩에 찾아가도 될까요?”
“으음.”
고민수는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틀 뒤에 오도록 해. 내일은 많이 바쁠 거 같으니까.”
“이틀 뒤의 아침에 찾아가도록 하죠.”
“그래, 그때 보자.”
이 말과 함께 고민수는 하윤경을 품에 안아 든 채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그를 붙잡아 세웠다.
“고민수 씨.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뭐를?”
“하윤경은 이곳에 왜 데려온 거죠?”
“아, 그거.”
고민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옅고 작은 미소였다.
근데 그 미소에 여러모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윤경이와 세리를 만나게 하고 싶었거든.”
“네, 그런 목적이신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윤경이가 스스로 제정신 차릴 기회를 주려고 했던 거야.”
고민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윤경이는 원래 착한 얘였거든. 그래서 자신의 가족을 직접 만나면… 혹시나 싶었어. 윤경이가 어쩌면 스스로 머릿속의 그 기운을 몰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네요.”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거겠지.”
고민수는 감정 표현 자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는 감정이 참으로 풍부했다.
‘하윤경과 과거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참으로 궁금하네.’
근데 당장은 그 궁금증을 풀 수 없을 듯했다.
분위기를 보니 고민수는 과거 이야기를 할 것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걱정 마. 텔레포트 기기를 쓸 거니까.”
이 말과 함께 고민수는 코트 주머니에서 무슨 리모콘같이 생긴 물건을 꺼냈다.
고민수가 그 리모컨의 버튼들을 몇 개 누르자 그는 하윤경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고민수와 하윤경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뭔가 많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 같았다.
‘뭐, 다행히 하윤경은 여기에서 사고를 치지는 않았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고민수가 뭔가 나쁜 일을 꾸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윤경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만에 하나 하윤경이 내 통제를 벗어나면…….
“후우, 됐다.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말자.”
하윤경이 함께 와서 긴장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녀는 이 펜션에 없었다.
물론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히 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쉬러 가자.”
나는 다시금 펜션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몸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어.’
당장 전투를 해도 전혀 문제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조만간 본격적인 재활 치료를 하면 될 것 같았다.
“근육이 많이 빠지기는 했어.”
운동을 최근 들어 아예 못 한 탓이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신체 능력은 남아 있었으니 체력을 다시 기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얼른 들어가 보자.”
펜션 밖으로 나온 지 시간이 꽤 흐른 상태였다.
지금 펜션 안의 분위기가 어떨지 여러모로 궁금했다.
‘이민아, 하세리, 주하나, 신예진, 그리고 유나.’
그 다섯이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감이 안 잡혔다.
‘뭐, 네 명의 성격상, 유나에게 억지로 술을 먹였을 것 같지는 않고……. 흐음, 안의 분위기가 진짜로 어떠려나.’
나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펜션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으에? 야, 박유진. 너 어디 가뜨아 이이지에 와?”
상당히 취한 모습의 이민아가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휘청거리며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펜션의 거실 쪽으로 끌고 갔다.
“이민아, 괜찮냐?”
“아아에? 나? 괜찮지! 나 안 치했어!”
“…취했구먼.”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를 적당히 재울 생각이었다.
근데 그러려던 순간.
“야, 이민아! 너 왜 유진이 손잡고 있어?!”
“윽?”
“유진이, 일루 와!”
소파에 앉아 있던 하세리가 나를 끌어당겼다.
“민아와 놀지 말고, 누나와 놀자!”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나와 팔짱을 낀 채 머리를 내 가슴에 기댔다.
“세리 누나? 누나도 취한…….”
“어? 박유진 씨?!”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주하나가 나타났다.
“박유진 씨, 이제야 오셨네요?”
“…괜찮으세요?”
“으으으음, 으음. 피곤해여.”
얼굴이 붉어진 주하나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날렸다.
그런 후, 그녀는 내 무릎을 베개로 삼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야, 박유진!”
이민아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앞에 주저앉았다.
“너… 나 빼놓기만 해 봐. 죽는다.”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이민아는 내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그 모습은 뭐랄까……. 애교 부리는 강아지와도 같았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이 상황에 여러모로 혼란스러워하던 중, 근처의 그림자에서 신예진이 나타났다.
이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너는 대체 왜 그림자에 숨어 있던 거냐?”
“술자리가 워낙 격해져서, 저는 도중에 도망쳤거든요.”
신예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세 분은 술로 진실 게임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그 게임이 격해지고, 다들 미친 듯이 마셨고……. 네, 그래서 다들 이렇게 됐네요.”
“…유나는?”
“먼저 들어가서 자고 있어요. 그리고 스승님께 이렇게 전해 달라고 했어요. 그… 이제부터 여자 문제는 알아서 해라……. 라고요.”
“…그치. 내가 알아서 해야지.”
나는 내게 달라붙은 세 명의 여자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뭔가 회귀 후, 처리해야 할 일들이 회귀 전보다 더 많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