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 광기의 치료 】
“더 이상 허튼짓할 생각하지 마십시오.”
더스트는 이 말과 함께 고민수의 등에서 칼을 뽑았다.
그리고 고민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즉사는 못 시켰네.”
더스트는 바닥에 쓰러진 고민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고통 없이 죽이려고 했다만……. 너무 급하게 칼을 휘둘렀나 보네. 그러니 지금이라도 얼른 죽여 주자.”
더스트는 총칼을 들어 올려 이번에는 고민수의 목 쪽을 겨냥했다.
그는 단번에 고민수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하윤경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자, 잠깐만. 지금… 고민수를 죽일 생각이야?”
“죽여야 합니다. 그가 하윤경 님을 더 현혹하기 전에,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기는 한데……. 그냥, 뭐랄까…….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력이라…….”
“망설이고 계시는 게 보입니다.”
더스트는 차분하게 말했다.
“고민수를 죽일지 살릴지 빨리 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빨리 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고민수를 저대로 놔두면, 얼마 안 가서 테니 말입니다.”
“아… 아아앗.”
하윤경은 재빨리 고민수 쪽을 바라봤다.
고민수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숨소리는 매우 약했다.
마치 곧 죽을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고, 고민수……. 너…….”
하윤경은 더스트의 말처럼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의 계획을 위해서라면 고민수는 죽는 편이 나았다.
방해물이 하나라도 사라지는 편이 더 좋았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고민수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을 것을 생각하니…….
“뭐야……. 나 왜…….”
하윤경은 자신의 떨리는 손을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속 무언가가 고민수를 죽는 걸 바라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바라보던 더스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몰래 죽이든가 해야겠군.’
아까 하윤경과 단둘이 있을 때, 더스트는 고민수에 관해 하윤경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만 들었을 때 하윤경은 고민수를 위험한 인물로 판단을 내렸다.
‘하윤경만큼 엄청난 지식을 지닌 남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위험한 건 아니야.’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민수는 방해가 될 요소가 충분했다.
그렇기에 더스트는 그의 주인을 위해 고민수를 죽일 생각이었다.
‘하윤경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이라면 몰랐겠지만, 이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으니…….’
더스트는 고민수 옆에 망설이는 하윤경을 바라봤다.
하윤경이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민수가 죽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근데 의외네. 위대하신 분이 손쓴 거면 고민수를 가차 없이 버릴 텐데, 저 여자 안에 아직도 이성적인 면이 남은 건가?’
더스트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하윤경을 기다렸다.
그로서는 지금 급할 이유가 없었다.
‘박유진은 그 셋을 상대하느라 바쁠 테고, 이민아? 그 늑대인간은 확실히 쓰러뜨리고 왔으니까.’
급하게 하윤경을 쫓아온 탓에 더스트는 이민아가 죽었는지 확실히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민아가 다시 일어서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더스트는 확신을…….
“…어?”
갑자기 근처에서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더스트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이 X발 새끼야.”
“컥?!”
더스트의 바로 앞까지 달려온 이민아.
그녀는 더스트의 얼굴을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녀의 주먹을 맞은 더스트는 뒤로 멀리 날아갔다.
“허억, 허억.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 어? 고민수 씨? 어?”
이민아는 근처에 쓰러져 있던 고민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이내 고민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네가 이렇게 한 거냐?”
“으, 응?”
“네가 이렇게 한 거냐고, 이 개 같은 년아.”
이민아는 고민수 옆에 있던 하윤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고민수 씨가 죽으면 박유진은 분명 스스로를 자책할…….”
“내, 내가 한 게, 아윽?!”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고도 더 죽이고 싶던 거냐?”
이민아는 하윤경을 목을 붙잡아 조르기 시작했다.
이에 하윤경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으으윽!?”
“고민수 씨가 죽으면 너라도 길동무로…….”
“하윤경 님이 한 게 아닙니다.”
멀리 날아갔던 더스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고민수 님은 제가 죽인 겁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죽은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러네. 아직 살아 계시네.”
“그렇습니다. ‘아직’은 살아 계십니다.”
이민아는 더스트를 노려봤고, 이에 더스트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역시 늑대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회복력이 빠르십니다. 분명 머리를 바위에 처박은 뒤, 뒤통수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찍었는데, 이렇게 빨리 다시…….”
“X발, 너 때문에 지금 아직도 X나 아파.”
이민아는 대꾸하며 고민수를 슬쩍 바라봤다.
‘빨리 치료를 받게 하든가 해야 해.’
고민수는 오래 못 버틸 거라고, 이민아는 직감했다.
그래서 그녀는 고민수를 데리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 새끼가 하윤경을 데려갈 테고……. 게다가 저놈이 과연 나와 고민수 씨를 순순히 보내 줄지는…….’
“생각이 많아 보이십니다. 그렇다면… 제가 깔끔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더스트는 소총의 총구에 칼을 착검하며 말했다.
“저는 이민아 님이 고민수 님을 못 데려가게 할 겁니다. 고민수 님은 이 자리에서 서서히 죽어 갈 거고, 이민아 님은 이 자리에서 제 손에 죽게 될 겁니다.”
“…그래, 깔끔하네.”
이민아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를 빠르게 죽이고, 하윤경과 고민수 씨를 데리고 자리를 뜬다. 그래, X나 깔끔하고 X나 단순하네.”
“그게 그렇게 쉬울…….”
“잔말 말고 붙어, 이 개새끼야.”
이 말과 함께 이민아의 신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조금 더 커지고, 손톱이 더 길어졌다.
하지만 신체의 그러한 변화보다 더스트의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
그가 느끼는 건 따로 있었다.
‘이 기운……. 뭐지? 이거 평범한 늑대인간의 기운 같지가…….’
더스트가 속으로 생각하던 그때, 이민아는 갑자기 움직였다.
갑자기,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다.
더스트가 반응조차 못 할 속도였다.
“크억?!”
이민아는 더스트의 머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 * *
콰쾅!
“음?”
멀리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뭔지는 몰랐지만 땅이 약간 흔들릴 정도였다.
그 진원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설마 스스로 각성한 건가?”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건 이민아가 완전히 각성한 것이었다.
내가 언젠가 날 잡아서 각성시키려고 했던 걸, 스스로 해낸 것이었다.
‘…맞네. 저건 각성한 거 맞아.’
회귀 전에 이민아가 완전히 각성한 모습을 봐서 알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이 기운은 내가 기억하는 그 늑대인간의 기운이 맞았다.
‘자기 딸에게 지상 최강의 늑대인간 유전자를 주입하는 미친놈이 어딨을까 싶었는데…….’
매우 놀랍게도 그런 미친놈이 있었다.
아니, 미친놈들이었다.
암만 봐도 이민아의 가족은 전원 미친놈들이 맞았다.
‘지금 이민아는 더스트와 싸우는 거 같은데……. 더스트가 뭘 했길래 이민아가 각성한 거야?’
산의 반대쪽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당히 궁금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쪽으로 달려가 확인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바… 박유진…….”
“이제 진짜 빨리 끝내야지.”
나는 조원선의 불타는 창을 피한 뒤,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런 후, 나를 붙들고 있는 세 명의 적을 바라봤다.
‘슬슬 지치고 있나 보네.’
이지현은 자기 체력을 생각 안 하고 내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기에 금방 지치는 게 당연했다.
조원선은 기계 몸을 오래 쓰니까 신체 자체에 전반적으로 무리가 가는 듯했고…….
‘정수민은 무거운 몸을 오래 움직일 수 없겠지.’
캅테리온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 몬스터는 몸이 상당히 무거운 탓에 장시간의 전투를 못 했다.
정수민은 그러한 특징을 그대로 가져온 듯했다.
“조원선 씨.”
“카으으……. 으그그…….”
“저와 같이 돌아가죠. 조원선 씨의 가족분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나, 나는…….”
조원선은 기계 몸을 다시금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조원선의 눈빛이 혼란에 빠진 것이 확실히 보였다.
“박유진! 너는 내가 죽일 거야!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거니까!”
“끝까지 남 탓이나 하고 있네.”
나는 내게 돌진해 오고 이지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나는 와이어를 그녀의 목을 향해 던졌다.
“케엑?!”
“스스로의 인생을 좀 돌아보도록 해.”
이성을 잃은 채 무리한 돌진을 계속하던 이지현.
그런 그녀의 체력은 한계에 도달했는지 전반적인 힘과 속도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목에 감긴 와이어를 잡아당기자 이지현은 너무나도 쉽게 넘어졌다.
“아, 아프잖아! 너는 또 나를…….”
“쓰러져 있어.”
“케엑?!”
몸을 일으키려던 이지현의 얼굴을 향해 내 무릎을 날렸다.
이지현의 얼굴에도 돋아나 있던 칼날들 때문에 내 무플에 상처를 입었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었다.
방금의 내 공격으로 이지현이 다시 쓰러졌다는 게 중요했다.
“한 명은 됐고…….”
나는 재빨리 단검을 들어 올렸다.
언제 다가온 건지 조원선이 나를 향해 창을 내리치고 있었다.
“결국 스스로 정신을 못 차리나 보네요.”
“크으으, 으으그극…….”
“이렇게까지 하기는 싫었는데, 어쩔 수 없군요.”
파지지직―
나는 내 몸 주위로 전류를 발생시켰다.
“그러고 보니 조원선 씨의 그 기계 몸……. 철로 이루어졌었죠?”
“크극?!”
내가 주먹을 쥐자 조원선은 공중에 서서히 떠오르더니 이내 그의 기계 팔다리가 그에게서 떨어졌다.
“저를 이기려면 철로 이루어진 몸은 안 쓰는 게 좋을 거예요.”
이 말과 함께 내가 손을 휘두르자 팔다리가 전부 박살 난 조원선은 정수민 쪽으로 날아갔다.
“너도 어서 가.”
그리고 쓰러진 이지현을 들어 올려 그녀도 정수민 쪽으로 던졌다.
“크으으으아아…….”
“그러게 적당히 뛰어다녔어야지.”
정수민은 확실히 체력이 바닥났는지 잘 못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보자마자 정수민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금 내게 다가오려고 했는데…….
“거기까지만 해.”
나는 한곳에 모인 세 사람을 향해 강한 전류를 날렸다.
그것도 그냥 전류가 아닌, 보통 사람은 즉사시킬 위력의 전류였다.
그 전류를 직격으로 맞은 정수민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그의 두꺼운 껍질은 상당 부분이 파손되었다.
그건 정수민뿐만이 아니었다.
“…후우우.”
정수민 옆에 있던 이지현과 조원선.
그 두 사람도 그 전류를 맞았다.
그리고 내가 전류를 거두자 완전히 정신을 잃은 세 사람은 그대로 쓰러졌다.
“이걸로 당분간은 조용히 있겠지.”
나는 손가락 끝에서 거미줄을 꺼내 그대로 세 사람을 향해 날렸다.
상태를 보아하니 오랫동안 깨어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묶어 놓는 편이 좋아 보였다.
‘그나저나 결국 죽이지는 못했네.’
회귀하면서 내가 많이 착해진 건지, 마음이 여려진 건지……. 원래 같았으면 이런 인간들은 가차 없이 죽였을 거다.
그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들에게 또다시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아아. 조원선 씨. 조원선 씨는 얼른 가족에게 돌아가세요.”
그리고 이지현과 정수민도 슬쩍 바라봤다.
이 둘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마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또한 분명 있을 터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민아나 보러 가야지.”
느낌상 이민아는 늑대인간의 힘을 더욱 각성한 것 같았다.
과연 얼마나 각성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