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228화 (228/240)

228화

* * *

“아으윽.”

나는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더럽게 아프네.”

숨을 완전히 거둔 더스트.

나는 그의 가슴에서 자바니아를 뽑아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더스트의 몸이 먼지가 되기 시작했다.

“…하.”

나는 먼지가 되는 더스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웃은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먼지가 되어 가는 그의 몸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별처럼 말이다.

‘성령이라더니, 그거와 관련된 건가 보네.’

성령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별과 관련된 무언가인 듯싶었다.

“네가 어디서 뭐 하다 온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편히 쉬어라.”

나는 빛나는 먼지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한 뒤, 몸을 근처의 나무에 기댔다.

“아파 뒈지겠네.”

나는 내 왼쪽 어깨를 바라봤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몸은 왜 멀쩡한 날이 없는 거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코트의 주머니에서 붕대들을 꺼냈다.

일단 급한대로 지혈을 시작했지만 이건 말 그대로 응급처치일 뿐이었다.

제대로 치료를 못 받으면 죽을 수도…….

‘아니. 죽지는 않겠다. 대신 왼팔을 평생 못 쓰겠지.’

뭐, 사실 안 죽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팔 하나쯤이야 그냥 기계 팔 같은 걸 구하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팔을 잃으면 많이 귀찮아질 터였으니 빨리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게 좋았다.

‘하윤경에게 가 보자.’

아마 지금쯤이면 고민수의 치료를 얼추 다 했을 것 같았다.

하윤경의 지하 연구실로 가면 일단 당장에 필요한 치료는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이동하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는데…….

“…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뭐, 전보다는 괜찮기는 하네.”

고민수가 내게 만들어 준 전투화.

이 전투화는 착용자에게 순간적으로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게 해 준다.

대신 그 반동으로 다리를 심하게 다치는 편이었다.

그 단점을 고민수가 지난번에 손보기는 했다만…….

‘그래, 전보다는 낫네. 지난번에는 다리뼈가 완전히 박살 났는데, 이번에는 그냥 힘이 안 들어가는 정도니까.’

물론 다리 쪽의 감각 중 8할이 안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다.

근데 지금 문제는 다리가 아니라 내 어깨였다.

제때 어깨를 치료 못 받으면 그냥 왼팔을 절단해야 할 판국이었다.

“…하아아. 그래, 기계 팔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온몸의 힘을 뺐다.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윤경이 기계 팔 같은 건 끝내주게 잘 만드니까, 좋은 걸로 하나 부탁하든가 해야지.’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죽는 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냥 너무 힘들어서 잠시 기절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왼팔이 아깝기는 했지만 더 이상 무언가를 할 힘이 안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별수 없이 그냥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더스트, 이 쓸모없는 놈.”

같은 시각.

괴수들의 신은 욕을 중얼거리며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동안 신들을 잘만 죽였으면서 인간 하나를 못 죽인 거냐? 뭔 말도 안 되는…….”

“배가 불렀구나. 내가 살다 살다 더스트가 쓸모없다는 소리를 다 듣네.”

“네년은…….”

“더스트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네가 시킨 일을 정말 잘하지 않았어? 더스트의 손에 쓰러져 간 신들만 엄청 많다고.”

신전 안으로 들어온 한 여자.

그 여자의 등장에 괴수들의 신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여자는 그저 미소만을 지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 대단한 더스트가 박유진에게 진 건 말이 안 되기는 해. 박유진이 인간을 초월한 강함을 손에 넣었다 해도, 더스트에게는 못 미치니까. 이건 더스트가 봐줬다고 봐야겠네.”

“…쓸모없는 놈. 인간 출신들은 하나같이…….”

“그런 것치고는 너는 더스트를 꽤 알차게 써먹었잖아? 더스트의 자존심을 다 밟아 버리면서 말이야. 어쩌면 너의 그 방식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오죽하면 더스트가 죽음을 원하게 된…….”

“시끄럽다. 그보다 네년은 여기에 왜 온 것이냐? 내 영역에 침범한 건 규율에 위반되는…….”

“먼저 규율을 위반한 건 너야. 더스트를 인간을 죽이기 위해 보낸 시점에서 위반한 거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을 몰랐군.”

괴수들의 신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규율을 위반하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를 찾아온 거냐?”

“잘 아네.”

“하나만 묻지. 내가 규율을 어겼다고 바로 나를 찾아오는 게 맞나? 신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참작을…….”

“너에게 원한을 가진 신들이 많아. 너를 공격할 명분만을 기다린 친구들이 꽤 많다는 거지. 지금은 나 혼자 왔지만, 곧 너를 묻어 버리기 위해 더 많이 올 거야.”

“그렇겠군.”

괴수들의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네년도 참 대단하군.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인간을 회귀시켰을 때는 뭔가 싶었는데, 그 인간 하나가 나의 계획을 완전히 막다니.”

“나는 인류를 사랑하는 여신이야. 수많은 인간을 보아 왔으니, 당연히 인간을 보는 눈이 뛰어날 수밖에 없지.”

“…그 눈이 문제였던 거군.”

괴수들의 신은 이 말을 끝으로 갑자기 움직였다.

상당히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들어 올려 그대로 여자의 양쪽 눈을 향해 내리쳤다.

챙!

하지만 그의 공격은 막혔다.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가 검으로 막은 것이었다.

“괴수들의 신이여. 다른 신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규율에 따라…….”

“인간 출신 따위가.”

괴수들의 신은 다시 한번 여자를 향해 공격했으나 남자는 검으로 또다시 그의 공격을 막았다.

이에 괴수들의 신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네년도 참 특이한 여신이야. 인간에게 신격을 부여해 우리들의 세상에 데려온 것도 모자라 그 인간을 반려자로 삼다니 말이다.”

“내 선택이야. 내가 누구를 선택해서 사랑하든, 그건 네 알 바가 아니잖아?”

“신이나 되는 존재가 인간 따위에게 몸도 마음을 내주는 건 격이 떨어지는…….”

“그런 너는 지금 인간 하나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지 않아? 게다가 더스트도 어떻게 보면 인간인데, 너는 더스트를 꽤 잘 이용했잖아, 안 그래?”

“시끄럽다. 신들의 수치 따위가 잘도 말하는구나.”

“신들의 수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넌 그냥 네가 마음에 안 드는 신이면 다 죽이고 다녔잖아.”

여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괴수들의 신을 바라봤다.

“아무튼, 이제 포기하도록 해. 너를 완전히 몰락시키기 위해 벼르던 신들이 전부 이곳으로 오고 있어. 그렇게 되면 너는…….”

“나를 너무 얕보는군. 이런 상황을 내가 아예 생각을 안 할 줄 알았나?”

괴수들의 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과 별의 여신, 알로케. 인류를 위하는 신들 중에 네년이 제일 강력하고, 동시에 내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이지.”

“갑자기 그건 왜?”

“네년의 힘은 인류의 시간과 인류가 가지는 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지.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인류는 얼마 없고, 그중 가장 강력한 건 박유진이 속한 그 행성이지.”

“그러니까 그건 갑자기 왜?”

“그 행성만 어떻게든 없애면 네년의 힘은 약해질 거고, 그렇게 되면 나를 막아설 건 더 이상 없을 거다.”

“하, 상황이 답이 없어서 미쳐 버린 거야? 너에게 더 이상 남은 수단은 없어. 박유진이 속한 그 행성을 어떻게 없애려고? 너는 이미 너의 패를 다 써 버린 거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뭐, 그럼… 네가 직접 가서 그 행성을 없애기라도 하게?”

“…크크큭.”

“…야, 아니지? 그런 짓을 했다가는 네 신격에 문제가…….”

“네 말대로 나에게 더 이상 남은 수단은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 네년을 무너뜨리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 눈앞에 있으니……. 위험을 감수해야겠지.”

괴수들의 신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뒤에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공이 갈라지며 생기는 균열, 그러니까 게이트였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야! 어서 잡아! 어서!”

“예!”

알로케스라 불린 여신은 남자에게 명령을 내렸고, 남자는 바로 움직였다.

“야, 말리우스! 너 거기 서!”

알로케스의 주변에 작은 별들이 나타나 괴수들의 신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괴수들의 신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게이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라졌습니다.”

“나도 알아. 하아아. 말리우스, 그 괴수 새끼. 또 뭔 일을 꾸미는 거야?”

“그는 직접 움직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건 과연 무슨…….”

“…엔드리온과 아라고노트를 불러. 일단 그 둘을 통해 박유진에게 따로 연락 좀 해 봐야겠어.”

* * *

“으, 으음.”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까 분명 눈을 감은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아으으으…….”

오래 기절해 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체감상 약 10분 정도 지난 듯했다.

‘뭐지?’

몸이 어째 평소보다 더 무거웠다.

마치 무언가가 내 위에 올려진 것만 같았다.

“…아.”

그리고 눈을 떠서 상황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었다.

“너였냐, 이민아?”

“크으으……. 아아, 으어어, 에.”

“하, 아직 말을 못 하고 있나 보네.”

나는 멀쩡한 오른팔을 들어 올려 이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민아는 내 손길을 별 반응 없이 받아들였고, 동시에 아주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민수 씨는 괜찮냐?”

내 질문에 이민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니 고민수가 죽은 건 아닌 듯했다.

“잘했어. 오늘 네 덕을 많이 보네.”

“케으으.”

“근데 너 모습을 보니까 각성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크으으으.”

이민아는 갑자기 내 말을 끊으며 내 왼쪽 어깨를 바라봤다.

상태가 여전히 심각한 내 어깨를 말이다.

이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죽는 거 아니니까.”

“키이잉.”

이민아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코를 내 코에 가져와 살며시 비벼 대기 시작했다.

“크큭, 너 아직 이성을 완전히 되찾은 건 아니구나.”

이런 이민아의 모습을 회귀 전에 자주 봤었다.

인간과 늑대인간, 그 경계에 걸쳐진 상태.

지금 이민아가 그런 상태였다.

“으으으, 크에에, 아아.”

이민아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을 못 하는 듯했다.

대신 그녀는 피로 얼룩진 내 입술 주변을 핥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도 오랜만이네.”

각성한 이민아를 보고 옛 생각이 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 이성과 본능의 경계가 희미했던 탓이었을까?

얼굴을 내게 가까이 가져온 이민아를 바라보니 다양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입술을 이민아의 입술 쪽으로 또다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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