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 인공적인 힘 】
“야, 이민아. 뭐 하고 있었냐?”
“그, 그냥 앉아 있었어.”
하윤경의 지하 연구소.
그곳의 거주 공간.
거기서 이민아는 소파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행위였으나…….
“너 털을 생각보다 많이 날리는구나.”
지금은 이민아가 늑대인간 상태로 그 소파에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소파 곳곳에 그녀의 갈색 털이 흩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나 지금 인간 상태로 못 돌아가고 있다고.”
“알고 있어, 인마. 그나저나 사람 말은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네?”
“이건 시간 지나니까 되더라고. 아까는 말을 못 해서 답답해 뒈지는 줄 알았다고.”
“익숙해져라. 앞으로 그런 일들 자주 있을 테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모습을 바라봤다.
양쪽 팔과 다리는 갈색 털로 뒤덮여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들이 자라나 있었다.
‘꼬리는 전보다 더 길어진 거 같네.’
나는 이민아의 긴 꼬리를 살며시 만졌다.
이에 이민아는 몸을 떨며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야! 꼬리는 만지지 말라니까!”
“좋으면서.”
“…싫지는 않지.”
이민아는 평소와는 달리 그냥 얌전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무언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어째서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아까 내가 한 말들 때문인가?’
몇 시간 전, 내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때.
그때 나는 내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인 탓에… 이민아에게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
나는 이민아의 꼬리를 만지며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급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머리 위에 귀가 생겼네.”
“끼에?! 야! 귀! 귀는 만지지 마! 귀는 진짜 예민하다고!”
이민아는 얼굴이 붉어지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원래 있던 귀는 사라진 거지?”
“으, 응. 얼굴 옆에 있던 귀는 사라지고, 머리 위로 동물 귀가 생긴 거 같더라.”
“걱정 마. 늑대인간의 힘을 가라앉히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아는 게 좀 많잖아.”
나는 손을 이민아의 머리 위로 가져가며 대꾸했다.
그러면서 슬며시 그녀의 늑대 귀를 만졌다.
“아읏? 으으, 너, 거기… 만지지 말라고…….”
“익숙해져라. 앞으로 내가 자주 만질 거 같으니까.”
“아니, 그건 또 뭔 소리냐?”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딱히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이민아는 내 손길을 꽤 즐기는 편이었다.
“그, 근데… 나 이거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있는 거 맞지? 이번에 변신한 거는 느낌이 많이 달라서…….”
“되돌아갈 수 있으니까 걱정 마. 네가 지금 늑대인간의 힘을 못 다루는 건, 새로운 느낌의 힘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시간 지나면 익숙해질 테니까 마음 급하게 먹지 마.”
“너 믿어도 되는 거지?”
“나 믿어서 손해 본 적 있냐?”
“…한 번쯤 있지 않았을까?”
“으음, 딱히 할 말은 없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빨리 늑대인간의 힘을 거두려고 하는 거냐?”
“그냥… 느낌이 이상해서. 특히 내 키가 좀 많이 커져서, 기분이 뭔가 좀 이상해.”
“하긴, 키가 얼추 2m쯤 되는 것 같더라.”
나는 이민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억상 이민아는 이것보다 더 커질 예정이었다.
내재된 힘을 완전히 이끌어 낸 이민아는 여기서 약 50cm는 더 커졌으니 말이다.
“키가 갑자기 커지니까 기분이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뭔가…….”
이민아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이왕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거면, 그냥 완전히 늑대인간으로 변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보통 늑대인간들은 변신하면 얼굴을 포함해서 몸 전부가 변하잖아. 근데 나는 팔과 다리, 그리고 신체 일부분만 변하는 게……. 이러면 늑대인간이 아니라 그냥 수인이잖아.”
“그게 왜?”
“…안 멋있어.”
이민아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작게 중얼거리며 대꾸했다.
“얼굴까지 완전히 늑대로 변하면 더 멋있을 거 같은데, 수인처럼 얼굴은 안 변하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근데 말이야.”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이 좋은 거 같아.”
“그래?”
“얼굴을 드러내 놓고 싸우는 편이 훨씬 예쁘잖아.”
“…응?”
이민아는 내 말에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는 말을 잃었다.
마치 내 말에 어떤 답변을 해야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몰라.”
이민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대꾸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야, 근데 이야기 나온 김에… 너 아까 밖에서 내게 그… 어…….”
“키스한 거?”
“아이씨! 야, 그! 뭐, 어, 그! 마, 맞는데! 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왜 내게…….”
“그러게. 왜 한 것이었을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때 심신 미약 상태라 그랬는지,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인 거였거든.”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인 거면, 그…….”
“…에휴, 됐다. 여기서 더 뜸 들여 봤자 뭐 하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숨기는 것도 웃기기는 했다.
나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이민아에게 마음이 있었다.
근데 회귀 전의 경험 때문에 회귀한 이후에 그 마음을 최대한 억눌렀다.
하지만 역시, 나는 쉽게 변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있잖아, 이민아. 아무래도 너랑 내가…….”
“좋아해.”
“음?”
“좋아한다고, 개새끼야.”
이민아는 갑자기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너, 너도 나 좋아한다고 아까 말했잖아. 그, 그거에 대한 답이야.”
“…결국 또 이렇게 되는 거구나.”
“음?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결국 나와 이민아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듯했다.
회귀 전이나 회귀 후나, 나는 이민아에게서 멀어질 수 없었다.
“…이민아.”
“으, 응? 왜?”
“나로 괜찮겠냐?”
나는 회귀 전에 이민아에게 했던 질문을 이번에도 똑같이 했다.
“나는 썩 괜찮은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지. 너는 나 같은 인간을…….”
“너는 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야. 그것만으로 충분해. 게다가…….”
이민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너는 죽지 않을 거야. 네가 죽을 일이 없도록 내가 할 거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죽게 되더라도… 네가 죽는 그 순간까지 네 옆에 있을 거야.”
“…너도 참 한결같구나.”
“그게 무슨 뜻이야?”
“좋은 의미로 한 말이야.”
나는 이민아를 바라보며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에도 똑같은 말 들었는데, 얘는 진짜 한결같구나.’
나랑 이민아의 관계가 회귀 전과는 다른 결과가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이민아를 믿을 생각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이민아 만한 파트너는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민아.”
나는 이민아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 잘 부탁한다는 거…….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 맞는 거지?”
“크큭.”
“왜, 왜 웃는데?!”
“귀여워서.”
이 말과 함께 나는 이민아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심신 미약의 상태로 하는 게 아닌, 제정신인 상태로, 내 의지로 한 행동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내가 이민아를 피하기 전, 단둘이서 시간을 자주 보냈던 때.
그 시절이 조금이지만 생각이 났다.
“아.”
이민아는 잠시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그녀는 갑자기 나를 붙잡더니 그대로 소파에 눕혔다.
그리고 이민아는 내 위에 올라탔다.
“…이민아?”
“몰라. 네가 나쁜 거야. 아무튼 너 때문이라고.”
이민아는 이 말과 함께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이에 나는 그녀를 피식 웃으며 바라봤고, 이민아는 불만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맨날 나만 휘둘리는 거 같네.”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
“시, 시끄러워. 그보다 너……. 이참에 말하는 건데.”
이민아는 살짝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너 하세리라든가 주하나라든가…….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리기만 해 봐. 그럼 내가 친히 너를 죽일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조심하도록 할게.”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회귀 전에도 이민아는 비슷한 말을 했었다.
이런 걸 보니 이민아는 참으로 한결같은 녀석이라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 * *
“둘이서 이야기를 잘했나 보네.”
약 한 시간 뒤.
하윤경은 계단을 통해 올라오며 내게 말했다.
“얘가 아주 편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잠들었네?”
“네,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이네요.”
나는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든 이민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완전히 인간 형태로 되돌린 후, 이민아는 그동안 피로가 한 번에 몰렸는지 바로 잠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올라온 걸 보니 잠시 여유가 생기셨나 봐요?”
“그치. 민수 오빠의 치료는 얼추 끝나서 오빠가 일어나기만 기다리면 되고……. 네가 내게 부탁한 그 세 명도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났어.”
“오, 벌써 끝내셨나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거든. 그냥 내가 주입한 외부 유전자들만 제거하면 끝이야.”
하윤경은 턱을 매만지며 천천히 설명했다.
“다만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려. 밑에서 기계들에게 시술 맡겨 놨고, 아마 완전히 인간의 형태로 돌아오려면 몇 시간 걸릴 거야.”
“그렇군요.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잠시 올라온 건가요?”
“그렇지. 게다가 너에게 따로 할 말이 있어서 올라온 거기도 해.”
“할 말씀이라면…….”
“내가 평생을 연구해 온 그것 말이야.”
하윤경은 이 말과 함께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내 머릿속을 어떤 신이 이상한 짓을 한 탓에 시작하게 된 연구였지만, 그 내용물은 그래도 꽤 쓸 만하다는 말이지. 그래서 아마… 지금부터 준비하면, 네가 쓸 최후의 카드로써 완성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제가 뭘 해 드릴 게 있을까요?”
“몇 개 있지. 그중 하나는… 네가 여기 지하 감옥에 가둬 둔 여신 있지?”
“와이번이요?”
“혹시 그 여신을 따로 만나고 와 줄 수 있을까? 그 여신에게서 네가 얻어 와 줬으면 하는 게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