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치료를 잘했네. 솔직히 이렇게 잘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와이번을 감옥 위층의 지하 연구소로 옮긴 후.
나는 바로 와이번을 위한 본격적인 치료를 진행했다.
고민수와 하윤경이 가져다 놓은 마도구들을 이용해 간단한 치료를……. 아니, 사실 간단하지는 않았다.
와이번의 상처가 꽤 심각했던 것도 있고, 고민수와 하윤경.
그 두 사람이 가져다 놓은 마도구가 꽤 다루기 어렵기도 했으니까.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 마도구들을 이용해 치료를 못 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별 다양한 상황을 맞이했던 인간이었다.
그래서 마도구들을 어느 정도 다루는 게 가능했고…….
“대단하네. 일반적인 지식만으로는 이렇게 치료하기 힘들 텐데.”
덕분에 하윤경은 진심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이 마도구들의 쓰는 법을 안다고 해도, 치료 대상의 상태를 완벽히 알아야만 제대로 치료할 수 있어. 혹시 너는 의학 지식도 있는 거야?”
“저는 일단은 암살자인지라, 인간의 신체에 관한 지식들을 얕게나마 알고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게다가 마도구를 다루는 것도 약간이지만 알거든요.”
“얕은 지식이 아닌 거 같은데? 와이번의 상태가 어땠는지 나도 잘 알아. 그래서 그걸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나도 잘 알거든.”
하윤경은 침대 위에서 잠든 와이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너 의외로 이쪽 분야에 소질이 있네? 나중에 한번 내게 제대로 배워 볼래?”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몸을 이용해 싸우는 편이 더 취향이거든요.”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후, 나는 다시금 와이번 쪽을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하윤경 씨가 봐도 와이번의 치료는 잘된 거죠?”
“이 정도면 완벽에 가깝지. 내가 특별히 더 건들 건 없어 보여.”
“다행이네요.”
“근데 와이번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건 역시 이유가 따로 있는 거겠지?”
“와이번은 신에 도달했던 존재였죠. 지금은 신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 강할 거예요.”
“그래서 이용하려고?”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곧 마지막 신을 상대하는 데 약간의 전력이라도 더 모아야죠.”
“와이번이 과연 너의 말을 따를까?”
“따르게 만들어야죠. 다음 공격이 있을 때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니까, 그사이에…….”
“흐음, 일주일이라.”
하윤경은 내 말을 끊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왜 일주일이라 생각한 거야?”
“그야… 그냥 감이죠. 그동안 신들이 쳐들어왔던 주기를 생각하면…….”
“너의 감은 상당히 정확하네.”
하윤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마침 잘됐네. 이야기 나온 김에… 잠시 나 좀 따라올래?”
“와이번은 여기에 혼자 남겨 두고 가도 되겠죠?”
“괜찮을 거야. 아마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못 일어날 테니까. 그리고 깨어난다 해도, 네가 그 반지로 통제할 수 있잖아.”
“네, 뭐, 그렇기는 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윤경을 따라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하윤경의 연구실 안쪽으로 향했다.
“네가 와이번을 치료하는 동안, 내가 미리 지구 전체를 스캔했어.”
“뭘 스캔했다는 거죠?”
“신의 기운을. 신이 언제 또 올지 몰라서, 내가 또 탐지기를 썼거든.”
“그렇군요. 그래서 신의 기운이 감지됐나요?”
“몇 시간 전에 감지됐어.”
하윤경은 모니터를 켜며 말했다.
“하지만 감지만 됐다는 게 문제야.”
“정확한 위치는 파악 못 하셨다는 거죠?”
“맞아. 말 그대로 신이 나타날 징조만 알게 됐고, 그 이상의 정보는 없……. 아, 하나 있네. 아마 계산이 맞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157시간 이후에 신이 이 행성에 모습을 드러낼 거야.”
“약 일주일 뒤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고, 이에 하윤경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감지된 신의 기운은 지금까지와는 느낌이 달라. 조금 더 강하고 무엇보다… 많아.”
“많다니요?”
“그 신과 함께하는 생명들이 많이 감지되고 있어.”
“생명들이라면 몬스터들인가요?”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몬스터들일 확률이 높지.”
“그럼 그 많다는 건…….”
“지금까지 신들은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고, 그 게이트 안에는 몬스터들이 있었어.”
하윤경은 모니터에 그래프 하나를 띄우며 말했다.
“여기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신들이 소환한 게이트에서 관측된 몬스터의 숫자는 대략 이 정도였어. 근데 오늘 관측된 것은…….”
“약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네요.”
“열 배 정도가 아니야. 거의 30배야.”
“그러니까 그 신이 나타날 때 저 수의 몬스터들도 함께 올 거다, 이거죠?”
“맞아. 그리고 이게 문제야.”
하윤경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이 정도의 수는 너 혼자서는 무리야.”
“맞는 말씀이에요. 이 물량이면 아무리 저라도 힘들죠.”
“이것에 대처할 방법은 있겠어?”
“뭐, 없는 건 아니죠. 저쪽에서 물량으로 승부해 오면, 저도 물량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겠죠.”
나는 턱을 매만지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하윤경이 보여 준 그래프 속 몬스터의 수는 확실히 엄청났다.
하지만 이에 대한 준비만 잘하면… 어쩌면…….
“하윤경 씨. 근데 이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타날지는 아직 모르는 거죠?”
“게이트가 어디에 나타날지 예측이 안 되고 있어. 하지만 만약 그 신이 너를 노리는 거면, 분명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나지 않을까?”
“만약 진짜로 저를 노리는 거면… 그래도 한국 내에서 나타나겠죠.”
괴수들의 신.
그는 분명 나를 노릴 거고, 그렇다면 하윤경의 말대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날 터였다.
즉, 한국에 게이트를 들고 올 가능성이 높았다.
‘엔디미온의 말에 따르면, 괴수들의 신은 물량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야. 그렇다면 만약 물량으로 승부를 본다는 그 장점을 퇴색시킬 수만 있다면…….’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물론 이게 진짜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밑져야 본전이었다.
뭐, 우선 그 전에…….
“하윤경 씨.”
“응?”
“하윤경 씨는 고민수 씨에게 이제 머릿속을 치료받을 생각이시죠?”
“아마 내일 저녁쯤? 그때쯤이면 민수 오빠도 많이 회복했을 것이거든.”
“그럼 잠시 어디 갔다 올게요. 만약 그사이에 와이번이 일어나면 바로 제게 연락을 줄 수 있을까요?”
“가능하지. 근데 이번에는 또 어디 가는 거야?”
“도움을 구하려고 가는 거죠.”
나는 근처에 뒀던 내 코트를 챙기며 말했다.
“물량으로 승부를 걸어온다면, 저 또한 물량을 준비해 줘야죠.”
* * *
“박유진. 자네는 지금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가?”
“예,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진성 님.”
한국 최대의 규모의 길드인 ‘용혈’.
나는 현재 그 길드의 길드장인 이진성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조만간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이 나라에 나타날 겁니다. 그거에 대처하려면 이진성 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상황부터 마저 설명해 보도록 해라.”
이진성은 소파에 무표정하게 앉은 채 말했다.
“대체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어째서 나타나는 거지?”
“…조만간 또다른 신이 마지막으로 침입할 것입니다.”
“흐음, 마지막 신?”
“예, 그렇습니다.”
“…계속 이야기해 보도록.”
“그 신은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을 휘하에 둔, 물량으로 승부를 보는 신입니다. 그에 대처하기 위해 이진성 님의 길드의 힘이 필요합니다.”
“…….”
이진성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왜 마지막 신인 거지? 이번에 올 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신이 침입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냐?”
“예, 확신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예요.”
“그 근거는?”
“…또다른 신이 말해 줬다고 하면 믿을 건가요?”
“또다른 신이라. 하긴, 너는 이미 신과 연이 있던 녀석이었지.”
이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 질문이다. 어째서 그 신이 엄청난 물량의 몬스터들과 함께 올 거라고 알고 있는 거지? 이런 정보는 협회에서 들은 것도 없는데.”
“제 지인 중에 기술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 있거든요.”
“협회의 기술력보다 뛰어난 지인인가 보네?”
“예, 협회의 연구원들보다 훨씬 앞선 지식을 지닌 사람입니다.”
“…흥미롭네.”
이진성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금 자네가 요구하는 걸 요약하자면, 전국에 있는 내 길드 인원들을 모아 전투에 투입하라는 게 맞나?”
“…예, 결론만 말하면 맞습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설득해 보게.”
이진성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말했다.
“전국에 내 길드 건물들을 세웠고, 그 길드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있지. 전국에 내 길드 사람들을 전부 모은다면, 그래. 엄청난 전력이 될 거야. 하지만 대체 왜 나는 내 길드 사람들을 너를 위해 싸우게 해야 하는 거지?”
“저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에요.”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죠. 그리고 헌터의 의무는 사람들을 지키는 거고요.”
“내 길드만 싸우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닙니다. 저는 다른 길드들에게도 똑같이 요청을 할 것입니다.”
“근데 자네는 하세리와 친분이 있지 않나? 하세리가 비상 소집령을 내리면 전국에 수많은 헌터들이 알아서 모일 텐데, 굳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는 건가?”
“용혈은 협회 소속의 길드가 아니기 때문이죠. 비상 소집령이 내려져도 움직여야 할 의무가 없죠.”
“잘 아는구나. 그래서 나를 설득하러 온 거니? 위협이 닥쳤을 때 내가 안 움직일까 봐?”
“그렇죠. 그리고 저는 반드시 용혈의 헌터들을 저와 함께 싸우게 하고 싶어요.”
“호오.”
이진성은 나를 바라보며 아주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당연히 용혈의 헌터들이 가장 뛰어난…….”
“아부는 아주 잘하는구나.”
이진성은 나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입가에는 아주 작은 미소가 유지되었다.
“뜬끔없지만, 지금 내 막내딸이 어디 갔는지 알고 있나?”
“이민아라면 아마 협회 쪽에…….”
“그럼 당장 이곳에 올 일은 없겠군. 좋아. 박유진.”
이진성은 이 말과 함께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하지만 공짜로 들어주지는 않을 거다.”
“제가 뭘 해야 하죠?”
“간단해. 나와 싸워서 이겨 보도록 해라.”
“…네?”
이진성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