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 습격 】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당장 열어요!”
“으음?”
이진성은 결투의 방 바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갑작스러운 이민아의 등장에 나와 이진성, 두 사람 모두 당황했다.
덕분에 서로의 공격이 닿기 직전에 전투가 멈추었다.
“민아야, 이게 무슨 짓…….”
“당장 열라고요! 박유진 풀어줘요!”
“…….”
이진성은 잠시 말없이 이민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내 쪽을 슬쩍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서 붉은색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손을 휘둘렀다.
“하아, 민아야. 대체 무슨 일이니?”
나와 이진성을 가두고 있던 반투명한 벽들이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이진성은 이민아를 향해 차분히 입을 열었는데…….
“박유진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윽?”
이민아는 냅다 이진성을 향해 돌진했다.
“박유진 지금 엄청 다쳤잖아?!”
“으윽.”
이민아의 돌진에 이진성은 뒤로 쓰러졌다.
이진성이 바닥에 넘어지는 모습, 오늘 처음 본 것이었다.
“…호오. 키가 많이 커졌구나.”
하지만 넘어진 와중에도, 이진성은 이민아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뭐, 흥미로울 만했다.
지금 이민아는 키가 이진성과 거의 비슷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진성이라면… 이민아가 최근에 각성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을 터였다.
“힘도 많이 세진 거 같고……. 후훗. 박유진이 너를 잘 가르쳤나보구나.”
“박유진에게 왜 저런 짓을 한 거냐니까?”
“…크큭.”
이민아에게 멱살을 잡힌 와중에도, 이진성은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러니까… 그의 눈빛에 다시금 광기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번 보자!”
이 외침과 함께 이진성은 이민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결투의 방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이번에는 나와 이진성이 아닌… 이진성과 이민아를 가둔 결투의 방이었다.
* * *
“민아야. 얼마나 강해졌는지 내게 보여주렴. 어서!”
“크르르.”
이민아는 이진성을 노려보며 늑대인간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지금 이성을 반쯤 잃은 상태였다.
‘유진이가 다쳤어. 저 손에 의해.’
박유진의 몸 곳곳에서 피가 나는 걸 목격했다.
이민아는 박유진이 다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상처를 준 게 자신의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이미 이민아에게 있어 박유진은 가족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힘을 완전히 이끌어냈나 보구나. 이제야 조금… 라이칸의 모습과 비슷해졌네.”
하지만 이민아가 분노했거나 말거나, 이진성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중이었다.
광화로 이성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눈에 기쁨의 빛이 보였다.
“더 강해지거라. 나를 뛰어넘어 보거라. 강해지면 아무것도 잃지 않을 거야. 나처럼 그 누구도 잃지 않을 거야.”
“크아아아!”
이민아는 이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이진성의 얼굴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으나, 이진성은 쉽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약해! 힘이 아직 약해! 내가 너에게 준 라이칸의 힘을 더 이끌어내! 라이칸은 이렇게 약하지 않았다고!”
“…크르르르.”
“으윽?”
이민아는 이진성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에 이진성은 휘청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가 이렇게 휘청거린 건 매우 오랜만이었고, 이진성 또한 그걸 알고 있었다.
“…하하하.”
하지만 이진성은 웃었다.
머리 울리며 어지러웠지만, 그는 진심으로 기쁜 듯이 웃었다.
“우리 가족 중 제일 약했던 네가 이런 힘이라니! 좋아! 아주 좋아! 그 힘을 더 끌어내거라!”
이진성은 이 외침과 함께 이민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이민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크아윽? 크르르르.”
이진성의 주먹을 맞고 뒤로 밀려났지만, 이민아는 재빨리 다시 균형을 잡았다.
그런 후, 그녀는 바로 반격을 이어나갔다.
이민아는 미친 듯이 이진성에게 주먹을 날렸고, 이진성 또한 미친 듯이 이민아를 공격했다.
두 사람 모두 이성을 잃은 채, 짐승과도 같은 싸움을 이어나갔다.
“크하하하! 그래, 이래야 내 딸이지!”
이민아의 주먹을 맞는 와중에도 이진성은 웃었다.
이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전투.
이진성은 이 전투에서 진심으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크르르르.”
이민아는 그런 이진성을 짐승과도 같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녀에게서 기쁨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크아아아!”
어째서인지는 몰랐지만, 이민아는 이 싸움에서 이유 모를 후련함을 느끼고 있었다.
* * *
“…차라리 이러는 편이 낫네.”
나는 결투의 방에서 싸우는 이진성과 이민아를 바라봤다.
부녀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싸우는 방식이 매우 비슷했다.
본능에 몸을 맡긴, 짐승과도 같은 움직임.
과격함 그 자체인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이게 맞다.”
나는 이진성에게 주먹을 날리는 이민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이었으면 이민아가 이진성에게 대드는 저 모습을 절대 볼 수 없었을 거다.
“많이 달라졌구나, 민아야.”
지금의 이민아는 회귀 전의 이민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민아는 지금 이진성의 그늘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유진아, 괜찮아?”
“음? 아, 세리 누나? 언제 온 거야?”
“방금 왔어.”
하세리는 숨을 고르며 나게 말했다.
“민아가 냅다 이곳으로 뛰어가서… 나도 빠르게 따라온 거거든.”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용혈에 내 지인이 있거든. 그 사람이 알려줬어.”
“하긴. 누나의 지인은 어디에 가나 있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지인분이 내가…….”
“이진성 씨와 싸운다는 걸 알려줬지.”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걸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이진성 씨는 이 나라 최고의 탱커 중 한 명이자…….”
“1대1에 있어서는 최강이지.”
“맞아. 그리고 네가 그 이진성 씨와 1대1로 싸우게 됐다는 걸 들었던 거야.”
“놀랐어?”
“당연히 놀랐지.”
하세리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진성 씨와 1대1로 싸우는 건 자살행위야. 근데 그걸 네가 하고 있다는데, 당연히 놀라지.”
“안 죽었으면 된 거지.”
“으휴, 됐고. 이거나 받아.”
“응? 포션이야?”
“상처 부위에 발라.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될 거야.”
“고마워, 누나.”
나는 하세리가 건넨 포션을 내 관자놀이에 발랐다.
그리고 하세리는 다른 상처 부위에 포션을 발라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저 두 사람…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좀 과격하게 싸우고 있긴 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진성과 이민아, 두 사람 모두 피를 엄청나게 흘리고 있었다.
특히 이진성은 기쁜 듯이 계속 싸움을 이어 나갔다.
기쁜 듯이, 짐승처럼 말이다.
“근데 말리고 싶어도 못 말려. 누나도 알겠지만, 저 결투의 방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못 없애거든.”
“그렇기는 하네. 우리 둘이 암만 불과 전기를 날려봤자, 저 상자에는 흠집도 안 나겠지.”
하세리는 한숨을 쉬며 말한 뒤, 걱정스럽게 이민아와 이진성을 바라봤다.
“근데 저러다 둘 중 한 명은 죽는 거 아니야?”
“걱정 마. 저 둘은 저 정도 갖고 안 죽어.”
내가 저 둘을 여러 번 상대해봐서 잘 알았다.
저 부녀는 목만 남아있어도 움직일 존재들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목만 남아도 움직일 것에 확신했다.
“그냥 기다리자. 아마 10분 정도 지나면 싸움이 끝날 테니까.”
나는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그동안 누나도 잠시 쉬고 있어.”
“응, 뭐… 근데 너 괜찮아?”
“괜찮다고는 말 못 하겠다. 저 아저씨와 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
나는 내 갈비뼈 쪽을 매만지며 말했다.
뼈가 몇 군데 부서진 것 같았다.
“안 괜찮으면 지금이라도 병원을…….”
“괜찮아. 이따 가면 되니까. 그보다 누나… 혹시 최성구 씨의 연락처 있지?”
“최성구? 최성구라면……. 아, 혹시 부산 쪽 길드의…….”
“응, 그 호탕하신 길드장님.”
“있지. 근데 그분은 갑자기 왜?”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찾아갈 것 같거든.”
괴수들의 신의 공격을 보다 확실히 대비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부산의 가장 큰 규모의 길드에게도 개인적으로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뭐, 근데 일단…….’
나는 눈앞의 광경을 다시 바라봤다.
우선 저 부녀의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 * *
“허억, 허억.”
“으윽, 크르르르.”
얼만지도 모를 시간이 흐른 후.
이진성과 이민아는 거친 숨을 내쉬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민아야. 대단해. 이 방 안에서 나와 이토록 대등하게 싸우다니.”
“크르르… 시끄러워요. 저는 그저 박유진을 위해…….”
“그 친구를 아주 좋아하나보구나. 크크큭. 뭐, 박유진 정도면 내 사위로 충분하지.”
“…무슨 소리를…….”
“그나저나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겠구나.”
이진성의 눈동자가 차츰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잘 봤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어느새 이성을 되찾은 이진성은 결투의 방도 서서히 없앴다.
“…뭐 하는 거죠?”
이민아 또한 차츰 이성을 되찾으며 물었다.
이에 이진성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너는 충분히 강해졌다. 나를 어쩌면 진짜로 이길지도 모를 정도로 강해졌지. 우리 가족으로서, 나의 딸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어.”
“…가족?”
“이렇게까지 강해지느라 고생 많았어, 민아야. 우리 길드에 네가 해줄 역할이 많으니, 앞으로 나의 딸로서 기대하마.”
이진성의 말에 이민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원래는 기뻤어야 했다.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 하던 존재에게 인정받은 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민아는 별 감정이 안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옆으로 시선을 살짝 돌렸다.
“…….”
옆에서 박유진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마치… 그녀에게 선택을 맡기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
이민아는 전에 박유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떠오르자, 이민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저는.”
이민아는 마음을 정리한 후, 다시금 이진성을 바라봤다.
“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이제 벗어나도록 할게요.”
“…그래.”
이민아의 대답에 이진성은 잠시 놀란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잠시였을 뿐, 이진성은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네 선택이라면… 존중해주마.”
이 말과 함께 이진성은 다가오던 박유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길드원들에게 네 요청 사항을 전달하도록 하겠다. 필요할 때 불러서, 원하는 대로 쓰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박유진은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진성은 다시금 이민아를 바라봤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내게 다시 오도록 하거라.”
이 말을 끝으로 이진성은 훈련장의 출구로 향했다.
그렇게 거구의 사내가 사라지자…….
“박유진.”
이민아는 바로 박유진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있어야만 하는 곳으로 달려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