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 * *
“박유진! 나 왔어!”
“어, 왔구나.”
고민수의 빌딩의 최상층, 그러니까 부엌과 거실 등이 있는 거주 공간.
거기에서 쉬던 중, 이민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금방 왔네.”
“네가 오라고 해서 바로 온 거지.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니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보고 싶어서 부른 거지.”
“…으음, 그, 그런 거면… 내, 내가 특별히 와 줘야지! 네, 네가 그렇게 내가 좋다는데 당연히…….”
“그래,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고, 이민아는 기분 좋다는 표정으로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그나저나 그 지하 연구소는 이제 안 쓰고, 이 건물을 쓴다고?”
“이 빌딩의 시설들이 더 좋거든. 작업을 계속할 거면, 여기가 더 좋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고민수 씨와 하윤경? 그 두 사람은 지금…….”
“위층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아마 곧 끝날 거야.”
“그 작업이라는 건… 인공적인 신의 기운을 만드는 거지?”
“맞아. 아마 지금쯤 마무리를…….”
“박유진, 이건 어디에 버려야 하는 거냐?”
이민아와 이야기하던 중, 와이번이 대뜸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플라스틱이 맞냐? 이 행성의 물질들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어, 플라스틱 맞아. 분리수거 적당히만 해놔. 밖에 버리고 오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알겠다. 그리고 네 옆의 그 인간은… 네가 말한 너의 반려냐?”
“반려…는 아니고,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될 거다.”
“흐음, 그럼 역시 첩으로 들어가야…….”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가서 일이나 마저 해. 내가 강제로 명령해줘?”
내가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여주자, 와이번은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다시금 옮겼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반지로 명령하지는 마. 기분 이상하거든.”
와이번은 툴툴거리며 쓰레기들을 마저 치우러 갔다.
그리고 이민아는 그런 와이번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니까 저 여자가 네가 붙잡았다는 신이야?”
“신이었던 존재지. 이제는 신이 아니거든.”
“신기하네. 근데 방금 저 사람… 너를 반려 어쩌고 한 건…….”
“신경 쓰지 마. 별거 아니니까.”
“흐음, 신경 안 쓰고 싶어도 신경 쓰이는데…….”
이민아는 내 어깨에 머리를 슬쩍 기대며 중얼거렸다.
“그보다 반려라……. 만약 내가…….”
“또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뭐, 뭐라는 거야?! 나, 나도 상상 정도는 할 수 있거든.”
“아, 그래, 뭐…….”
나는 피식 웃으며 대충 넘어가 줬다.
그리고 그러던 중, 고민수와 하윤경이 계단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아, 다 끝났어.”
“완성한 건가요?”
“응, 일단 만드는 거 자체는 성공했어.”
하윤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의 소파에 몸을 날렸다.
“이제 네 몸에 그것을 어떻게 안전하게 장착할지를 생각해야지.”
“조금 이따 하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나도 마음 같아서는 조금 쉬고 하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
고민수는 냉장고에서 포션 한 통을 꺼내며 말했다.
“일주일이 지났어. 네 말대로라면 이제 곧 그 마지막이 신이 오겠지.”
“네, 아마 오늘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니까. 아, 윤경아. 한 잔 마셔. 피로회복제야.”
“고마워, 오빠.”
하윤경은 고민수가 건넨 포션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10분만 쉬고 바로 다시 시작할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너도 따라와야 해. 네 몸에 주입하는 거니까, 네가 옆에 있어야 하거든.”
“그래도 너무 걱정할 건 없어.”
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려오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우리가 만든 신의 기운은 네 몸에 전부 안전하게 들어갔거든.”
“오빠, 그래도 시뮬레이션과 현실은 다를 수 있으니 확인 작업은 제대로 해야지.”
“나도 알아. 특히 유진이는 지금 상황에서 어디 다치면 안 되니… 철저히 해야지.”
“두 분 모두 감사드려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두 분 덕에 이렇게까지 준비할 수 있었네요.”
“인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아, 맞다. 그보다 유진아. 너 오늘 윤경이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니?”
“…아. 그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하윤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게 할 말이라니?”
“혹시… 세리 누나를 다시 만날 생각이 있는지 여쭈고 싶었거든.”
“아……. 세리 만나는 거?”
내 말에 하윤경은 눈동자가 떨렸다.
“그건… 안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내 의지로 한 짓은 아니라지만, 내 손으로 세리의 가족을 전부 죽이고… 상당히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어. 생각이 있으면 안 만나는 게 맞을 거 같은데.”
“그래도 이제 남은 유일한 가족인데…….”
“유일한 가족이니까 안 만나려는 거야. 나는 더 이상 그 아이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라고 하윤경은 고민수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일이 전부 잘 끝나면… 나는 내 미래를 위해 생각해둔 것이 따로 있어.”
“그런가요?”
“응. 오빠도 기억나지. 내가 어젯밤에 말한 거.”
“그거야… 으음, 근데 그 약이 과연 내게 통할까?”
“오빠의 유전자 정보만 있으면 불가능하지는 않아. 물론 악용되지 않도록, 오빠에게만 쓰고 그 자료들은 바로 완전히 폐기처분 해야지.”
“그, 두 분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건가요?”
나는 두 사람에게 의문을 표했고, 이에 두 사람은 멋쩍은 표정으로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하윤경이 천천히 입을 다시 열었다.
“내가 어젯밤에 나와 민수 오빠의 미래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좀 했어. 그리고 나온 결론이…….”
하윤경이 내게 설명하려던 그때.
“음?”
“뭐지?”
갑자기 아래층에서 경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하윤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온 거 같아.”
“…신이요?”
“응, 신의 기운이 이 행성에 일정 수치 이상으로 포착되면 울리게끔 설정했거든.”
하윤경은 계단을 향해 뛰어갔고, 다른 사람들 모두 그녀를 따라갔다.
“왜 그래, 박유진? 무슨 일이야?”
“네 옛 주인이 이곳에 오려는 모양이다.”
“뭐?”
내 대답에 나를 따라오던 와이번은 놀랐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얼른 하윤경을 따라갔다.
“어디 보자……. 수치 집계, 위성을 통해 위치를…….”
“나타나는 건가요?”
“응, 지금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나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위치는… 위치는……. 어? 잠깐만… 이건?”
하윤경은 몸이 굳었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모니터를 재차 확인했다.
“어…어? 뭐야? 진짜로?!”
“왜 그래요, 하윤경 씨?”
“그게…….”
하윤경은 천장을 슬쩍 바라봤다.
“그 게이트가… 이 건물 위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고민수 씨.”
“알아. 건물 외부에 설치한 카메라가…….”
고민수는 근처에 있던 리모컨을 들어, 버튼 몇 개를 눌렀다.
그러자 근처의 모니터가 켜지며, 현재 위치한 건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건물 위의 상공에… 거대한 균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도록 하죠.”
나는 재빨리 판단을 내리며 말했다.
“챙겨야 할 물건들만 빠르게 챙기고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요.”
“알겠어요. 그럼 윤경아. 나와 올라가서 만들고 있던 신의 기운만 챙기자.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챙겨야 해.”
“알겠어, 오빠. 그럼 나랑 같이…….”
전부 빠르게 움직이려던 그 순간.
이유 모를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매번 생명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느껴진 일종의 불안감.
그런 직감…….
“다들! 제 주위로 모이세요! 어서!”
“뭐라고?”
“어서 오세요, 어서!”
나는 모니터를 다시 바라봤다.
이제 막 모습을 형성하기 시작한 게이트.
그 게이트에서부터 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파지지직―!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자, 나는 재빨리 전류를 불러냈다.
그리고 자기장을 이용해, 이 건물 내의 모든 철들을 주위에 모으기 시작했다.
빈틈없이 최대한 많은 철들을 모아, 일종의 방패를 주위에 감싸게 했고…….
콰콰콰쾅―!
이내 엄청난 빛과 함께 주변이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다들 괜찮으시죠?”
“어, 일단 다친 사람은 없는 거 같아.”
“그럼 잠시만요.”
건물이 무너져내린 후.
공격받기 직전, 내가 자기장으로 주위에 벽을 세운 덕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파지지직―
나는 다시금 전류를 일으켜, 자기장으로 주변의 건물 파편들을 치웠다.
“후우. 다들 나오세요. 일단 여기서 빠르게 빠져나가야…….”
“박유진.”
먼저 앞장서서 나간 이민아는 떨리는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음? 이민아, 왜…….”
“저거… 뭐야?”
“왜 그래? 뭐가… 아.”
나도 건물 파편들에서부터 빠져나오자, 눈앞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무너져버린 건물 앞.
그곳에 키가 약 3m가 되는 거인, 아니, 괴수가 있었다.
온몸에 망토를 두르고 후드까지 쓴 존재.
그의 몸이 어떤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거대한 뱀 꼬리는 보였고… 그의 얼굴은 이 지구의 생명체의 것이 아니었다.
“괴수들의 신이야.”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와이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섬겼던 주인이었지.”
“응, 그럴 거 같더라.”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다른 몬스터들과 함께 온 낌새는 안 보이는 걸로 보니… 나를 직접 끝내러 온 건가?”
“적어도 좋은 의도를 온 것 같진 않네.”
고민수는 하윤경과 같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너를 죽일 생각으로 가득해 보여.”
“그럼 뭐… 싸워야죠.”
나는 깊게 심호흡했다.
“고민수 씨, 하윤경 씨. 만들었던 신의 기운은 못 챙겼죠?”
“맞아. 그 신의 기운은… 아마 이 무너진 건물 아래의 어딘가에 있을 거야.”
“부서지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죠?”
“인공적인 거라지만 신의 기운이야. 고작 이런 건물에 깔렸다고 부서지지 않아.”
하윤경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은 그걸 찾아주세요. 그리고 와이번. 너는 이 두 사람을 지키도록 해.”
“알겠다.”
“유진아.”
고민수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너는 저 신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일단 버텨보죠. 고민수 씨와 하윤경 씨는 신의 기운을 최대한 빠르게 찾아봐 주세요.”
고민수와 하윤경은 잠시 망설였지만, 두 사람은 이내 무너진 건물더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와이번은 그런 두 사람을 따라갔다.
그렇게 나는 이민아와 단둘이 괴수들의 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민아. 강요하지는 않을게. 너는 저 신과 못 싸우겠으면…….”
“싸울 거야. 전에 말했잖아. 네가 죽을 일, 절대 없게 할 거야. 그리고 만에 하나 네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난 네 곁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을 거야.”
“뭐, 너를 말릴 수는 없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자바니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민아와 함께 눈앞의 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