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245화 (245/412)

#245화

“반갑소, 스펠로 경. 경이 아직 대문을 지키고 있는 걸 보니, 용살자께서 안에 계신 모양이군.”

“그렇소.”

창밖 너머에서 목소리가 번졌다.

“이미 여럿이 이 문을 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우리는, 안면이 좀 있잖소?”

“그건 사실이지.”

“그러니 작은 선물을 준비했소. 자, 넣어 두시오. 서운하지 않으실 거요. 그리고 잠깐만 시간을 주시오. 얼굴만 뵙고 바로 나오겠소.”

“…여럿이 왔다가 돌아갔다는 얘긴 들으셨어도, 왜 돌아갔는지는 듣지 못하셨나 보군.”

“음…?”

“경께선 방문객들의 접견 신청을 거부하지 않으셨소. 대신, 한 가지를 전하라 이르셨지.”

“그게 무엇이오?”

“털어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사람만 들어오라고 말이오.”

“……?!”

“방문객을 즉시 최우선으로 조사하실 것이며, 작은 부정이라도 남김없이 밝혀내서 책임을 묻겠다 하셨소. 정말 청렴결백하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신원을 보증해 주실 것이고.”

“허….”

“하지만 벌써 먼지를 묻히고 계시군. 안면이 있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돌아가서 집안 정리부터 하는 게 좋으실 것이오. 그리고 다시 오시오.”

“그, 그래야겠군. 고맙소, 경. 내 그리하리다.”

거, 일 열심히 하네.

소파에 기대앉은 이안은, 멀어지는 마차 소리를 들으며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밤새 이어진 조사가 끝난 뒤, 스펠로는 일행의 안내와 경호를 자처했다. 이안은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에게 일종의 임무를 내렸다.

방금 창밖으로 이어진 대화가 바로 그 결과였다.

이안이 잠에서 깬 이후로 벌써 세 번째 손님이었다. 물론, 돌아가는 것도 세 번째였다.

조사를 받으며 눈치 빠른 귀족 몇과 대화를 나눠 본 결과, 이안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받을 퀘스트가 없다는.

아무래도 게임에서의 라클리프는, 플레이어가 발을 들였을 때 이미 어떤 식으로든 멸망한 상태였던 모양이었다.

부패와 역병의 도시가 아니라도, 공작의 손에 망자의 도읍으로 거듭났겠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본래는 죽었을 수많은 이들까지 살린 셈이 된 것이다.

퀘스트라도 있다면 모를까. 먼지 풀풀 풍기는 귀족과 관리들의 앞가림까지 신경 써줄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게임에서 그랬다면… 결국 여긴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망하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가 아무리 용을 써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란 게,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이니까.

…알 게 뭐야. 일단은 구했으면 그만이지.

잡념을 떨치며, 이안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아무런 제목도 적혀 있지 않은, 불길하게 거뭇한 표지가 드러났다. 쇼파 아래에도 비슷한 책이 두 권 더 놓여 있었다. 크랄렌의 책상에서 일지와 함께 챙겨 나온 마법서들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들만 잔뜩 쓰여 있었다. 변방에서 본 것보다 더 고차원적인 헛소리였다.

‘야영할 때 불쏘시개로나 써야겠네.’

크랄렌의 일지는, 놈의 머리와 공허의 표식과 함께 증거로 제출했다. 공허의 표식은 직접 폐기하겠다는 명목으로 되찾아 왔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내성에 남겨 뒀다.

중앙에서 파견 나올 조사단을 위한 선물이었다. 아침까지 이어진 길고 지루한 조사에 전부 응해 준 것도 그래서였다.

모든 게 명확하고, 부정할 수 있는 자료와 증거가 있어야 그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 테니까.

물론 공식적인 문서에는 전부 고티어와 나세르의 이름을 쓰긴 했지만.

어쨌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불똥이 튈지 모르니까… 그 양반에게도 말해 둬야지.’

책을 아래로 내려놓은 이안이, 소파 등받이에 뒤통수를 기댔다.

그의 시선이 어둑어둑해지는 넓은 방안을 훑었다. 두 개의 침대에는 메브와 샬롯이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집 한 채를 통째로 숙소로 받았음에도, 일행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가장 큰 방 하나에 모여서 잠들었다. 아마 서로의 곁이 아니면 맘 편히 잠들 수도 없게 된 것이리라. 몹시도 지치고 피곤한 시간을 보낸 뒤에는 더더욱.

어쨌든, 가장 먼저 눈을 뜬 건 이안이었다.

침대를 양보해서 잠자리가 불편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충분히 쉬어서였다.

이번 전투에서 그는, 그저 가장 까다로운 부분만 전담하지 않았던가.

실질적인 전투와 몸을 써야 하는 일 대부분은 동료들의 몫이었다.

물론 마력을 꽤 소모하긴 했지만, 이전까지의 전투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수준도 아니었다.

심지어 상대가 의회의 의원이자 마족이기까지 했는데도.

‘…하긴. 쉽게 갈 때도 있어야지.’

그러기 위해 준비도 많이 했고, 힘든 과정도 거쳤으니까.

문득 소파 옆에 놓인 간이 탁상으로 손을 뻗은 이안이, 그 위에 놓인 술잔을 들며 내뱉었다.

“그 손, 떼는 게 좋을 거야.”

“……!”

소파 아래에서 조용히 뻗어 나와 마법서를 움켜쥐던 흰 손이 굳어졌다. 손이 쑥 들어가더니, 곧 머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테사이아가 기어 나왔다.

“어떻게 알았어…?”

“잘.”

피식하며 대답한 그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안 보여서 어디 구석에라도 있나 했더니. 밑으로 기어들어 왔었군.”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주문쟁이잖아. 쓸 줄 아는 주문은 없지만.”

“안 읽는 게 좋을 거다. 첫 주문을 사령술로 익히려는 게 아니면.”

“당연히 아니지. 그냥 무슨 내용일지 궁금했어. 살짝만 보려고 한 거야. 살짝만.”

테사이아가 엄지와 검지를 까딱이며 미소 지었다.

퍽이나 그러시겠지.

이안은 다시 한번 코웃음을 흘리고는 술을 홀짝였다.

슬며시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테사이아가, 푸석한 은발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주근깨랑 짝귀는 어디 갔어? 눈 뜨니까 안 보이던데.”

“아까 일어나서, 내보냈다. 시킬 일들이 있어서.”

“시킬 일?”

“…그 수인 광전사의 신변을 확보하고, 교회도 대관하라고 했어. 나간 김에 먹을 것도 준비하고, 배편도 알아보고.”

슬쩍 테사이아를 돌아본 그가 덧붙였다.

“심심하면 너도 내려가 있든가. 아마 곧 돌아올 거야. 그땐 다들 깨울 거고.”

“됐어. 이안이랑 있을래.”

장난스럽게 미소 지은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이제 곧, 오래 못 보게 되잖아.”

“…뭐, 그렇지.”

잠시 멈칫한 이안이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가는 그를 잠시 빤히 바라보던 테사이아가, 이윽고 덧붙였다.

“그냥, 우리랑 같이 남부로 가면 안 돼? 어차피 그 대단한 사명도 끝났잖아.”

“안 돼.”

“왜…?”

왜긴 왜야. 남부는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지.

생각하면서도, 이안이 말을 이었다.

“내 뒤에 붙은 꼬리가 너무 많아. 너도 알겠지만, 덕분에 가는 곳마다 개판이 되고 있지. 너희가 해야 할 일들에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술잔을 내려놓은 이안이, 주석 술병을 들어 술을 따르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남부로 가는 건, 그 꼬리를 다 잘라낸 후가 될 거다. 너는 가서 자리나 잘 잡고 있어.”

“…알았어. 쉽진 않을 것 같지만, 뭐든 도움이 될 수 있게 해 볼게.”

장난스럽게 콧잔등을 씰룩인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은혜는 갚아야지. 안 그래?”

은혜 갚는 귀쟁이라. 귀하네.

속으로 읊조리며 술병을 내려놓은 이안이 턱짓했다.

“저 녀석이나 잘 도와라. 고난이 많을 거다. 너라도 힘이 되어 줘.”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해야지, 뭐. 내가 아니면 누가 쟬 돕겠어. 그런데, 그 징그러운 줄무늬 야옹이는 어쩔 거야? 걘 타락자잖아.”

“그건 샬롯이 알아서 하겠지.”

죽이든, 살리든.

술을 들이켜며, 이안은 팔메르를 떠올렸다. 심문실에서 눈을 뜬 그는, 꼬리가 잘렸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샬롯이 앞에 서자, 굴욕적인 표정으로 그녀의 명령에 따랐다. 과거, 그녀가 이안에게 그랬던 것처럼.

“죽일 생각이다.”

샬롯의 잠긴 목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그녀가 푸스스 침대 위로 몸을 일으켰다.

“필요한 얘기를 전부 들은 뒤에.”

“잘 잤어, 야옹아? 몸은 좀 어때?”

“괜찮다. 개운하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그녀가 이안이 앉은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테사이아가 킥킥댔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인데. 더 못생겨졌네.”

샬롯의 한쪽 얼굴에는, 이마에서 턱까지 이어진 네 가닥의 흉터가 깊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안이 보기에도 저건 완전히 아물 상처가 아니었다. 이미 온몸이 흉터투성이인데,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이다.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상처지. 투쟁과 승리의 흔적이니까.”

술병을 들며 내뱉은 그녀가 입을 벌린 채 술을 콸콸 흘려 넣었다.

손톱에 찍힌 자국이 가득한 기다란 목이 꿈틀댔다.

빈속에 저렇게 들이부으면 속 쓰릴 텐데.

덜컹.

1층에서 문소리가 뒤를 이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을 다 끝낸 모양이군.”

곧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빵. 소시지. 아마도 해산물 스튜. 어쩌면 면 요리일지도 몰랐다.

“와우….”

샬롯과 테사이아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른 아침 이후로, 다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것이다. 해가 질 때가 다 되었으니 한나절 이상을 굶은 셈이었다.

“……!”

메브가 벌떡 일어난 건 그때였다. 모여 있는 일행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 그녀가, 부스스한 머리칼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내뱉었다.

“벌써 식사 시간인가?”

“…식욕이 있으셔서 다행이군.”

또 예전처럼 삶의 의욕을 잃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낮게 웃음 지은 이안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갑시다. 먹고 갈 곳이 있으니.”

***

걸신들린 것처럼 식사를 마친 일행은, 곧바로 마차에 올랐다. 말과 마차는 저택 뒤편의 정원으로 옮겨 둔 상태였다.

“아, 팔메르는 내일 아침에 인도받기로 했습니다. 저, 아니 나세르가 처분 책임자로요.”

마차에 오르고서야 기억이 난 듯, 필립이 말했다.

마차가 출발하는 것을 느끼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군. 배는?”

샬롯과 테사이아의 시선이 동시에 필립에게로 돌아갔다. 슬쩍 둘의 눈치를 살핀 필립이 덧붙였다.

“이틀 뒤 오전에 출항하는 상선이 있다고 합니다. 도시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상인들은 죄다 이번 주 내로 떠날 예정이라더군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마차가 멈췄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창을 열자, 군기가 바짝 든 스펠로의 얼굴이 드러났다.

“경, 출타하십니까?”

“그렇소. 교회에 갈 생각이라서.”

“역시 신실하시군요…. 제가 경호하겠습니다. 언제 경을 만나려는 이들이 달라붙을지 알 수 없어서요.”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겠군.

이안은 낮게 웃음 지었다.

사실 그가 스펠로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그저 귀찮은 일을 피하고 일행을 편히 쉬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스펠로 본인을 비롯한 도시의 귀족들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용살자와 정화자에게 결백을 증명받은 몇 없는 기사인 것이다. 사실상 면죄부나 다름없었고, 앞으로 불어닥치게 될지도 모르는 피바람에서도 무사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이안에게 깍듯한 것이리라.

“그럼, 부탁하겠소.”

“예. 교회 내부로도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창문을 닫았다. 스펠로가 탄 말의 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슬쩍 이안을 돌아본 필립이 말을 이었다.

“아까는 시키신 게 많아서 여쭤보지 못했습니다만. 교회로 가시는 건 역시….”

“그래. 백금룡을 뵐 거다.”

“……!”

이안의 대답에, 필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랬다. 놀란 표정으로 그를 돌아본 건 메브뿐이었다.

가벼운 옷차림에 정화자의 로브만 걸친 그녀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따라 나온 것이다.

“위대한 백금룡을 뵌다고? 지금?”

“미룰 필요 없잖소. 의뢰를 끝냈으면, 보고를 해야지.”

보상도 받고.

입을 뻐끔거린 메브가 탄식했다.

“그런… 그런 줄 알았다면, 갑옷과 검을 정갈하게 걸치고 나왔을 것을. 필립, 왜 알려 주지 않았느냐?”

“아,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리. 제 거라도 벗어 드릴까요?”

필립이 냉큼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미안한 표정이 된 메브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지. 내가 음식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었어.”

두건을 벗은 그녀가 떡지고 뻗친 머리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테사이아도 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이안이 풀썩 웃음 지었다.

“쓸데없는 짓들 하지 마시오. 그 양반은, 우리 겉모습 같은 건 신경도 안 쓸 테니까.”

“그래도 어찌… 고결한 분을….”

곧 마차가 멈췄다. 나세르가 문을 열었다. 문 좌우로는 말에 탄 스펠로와 세 명의 경비병이 길을 만들듯 늘어섰다.

더럽게 눈에 띄네, 진짜.

이안은 실소를 삼키며 마차에서 내렸다.

한쪽 대문이 덩그러니 열린, 거대한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는 커다란 유리창들로 웅장하게 장식되어 있었겠지만, 지금은 반 이상 깨진 채로 방치된 음산한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본 이안이 걸음을 옮겼다.

일행이 차례로 뒤를 따르는 가운데, 마차 문을 닫은 나세르가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십시오.”

계단을 오르다 멈칫한 이안이, 미간을 좁힌 채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야. 너도 따라와, 필립.”

“……? 저도요?”

나세르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그래.”

드물게도 정말 기쁜 듯한 미소를 지은 나세르가 후다닥 따라붙었다.

교회 내부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적당한 높이의 단상과, 그 주위로 잔뜩 피어오른 촛불만이 황량한 예배당을 밝혔다.

“이 큰 도시에 사제님이 한 분도 남지 않다니…. 그래도, 청소는 해 둬서 다행입니다.”

필립의 말을 끝으로, 장내에 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이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공간에서 작은 부적을 꺼냈다.

아르케아스가 자신을 부를 때 쓰라고 준 물건. 이안은 부적을 잠시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에게 물어야 할 질문도, 들어야 할 말도 아주 많았다.

다시 만날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만큼,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보상도.

화륵-

이안의 손아귀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가 손에 든 부적을 그 안에 던졌다. 부적이 삽시에 불타면서, 한순간 황금빛으로 번쩍이고는 수많은 불티를 흩뿌렸다.

솨아아-

예배당 허공에 휘몰아친 불티들이, 곧 눈부신 황금빛 글자로 화했다.

이안의 스킬로도 읽을 수 없는. 진언이라 부르는 용의 주문이었다.

진언 아래로 눈 부신 빛의 구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로 흐릿한 실루엣이 번졌다.

…순간이동 마법이라도 되나. 이걸 가르쳐 달라고 하고 싶은데.

이안이 생각하는 사이, 빛의 구 너머로 황금빛 안광이 아른거렸다.

“……!”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일행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테사이아도 마찬가지였다. 불멸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의, 일종의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심에 사로잡힌 것이다.

무릎을 꿇지 않은 건 이안뿐이었다.

“……?”

그는 점점 선명해지는 실루엣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솨아아아아-

그 순간 빛의 구가 사방으로 금가루 같은 빛을 뿜으며 흩어졌다.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거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그 한복판의 샛노란 안광이 휘어졌다.

“반갑구나, 이안. 전보다 얼굴이 좋아졌네. 다행이야.”

“귀하는….”

눈을 한차례 깜빡인 이안이, 이윽고 말을 맺었다.

“…못 본 사이에 좀 작아지셨군.”

커다란 유리병을 품에 안은 아르케아스는, 난쟁이의 모습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