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2화 (2/115)

제2화.

“카렐 녀석이 다른 세계에서 환생했고, 충분히 성장했다.”

카렐은 내 기사였던 NPC로 참 똘똘하고 선량한 녀석이었다.

내가 법왕 마우그리스라는 빌런을 만나 고전할 당시.

카렐은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구를 구했고, 세계를 구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지금 수억 명의 게이머들이 BNW의 판타지 서버를 즐길 수 있는 건 나뿐만 아니라 그 녀석의 공도 크다는 거다.

그때 사부는 카렐의 고귀한 희생을 높이 평가했고, 녀석의 영혼에 끈을 매달아 놓았다고 했다.

녀석이 다른 세계에서 환생한다면, 다시 이 세계로 데려올 수 있도록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게 <다른 세계>다.

<다른 세계>란 게임 BNW의 다른 서버들을 뜻했다.

BNW의 서버는 총 3개.

제일 처음 오픈한 서버가 내가 활동하던 <판타지> 서버.

그리고 동양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무림> 서버.

마지막으로 현대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어반> 서버.

어쩌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서버가 있을 확률이 매우 컸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다른 서버로 갈 수 있게 됐다는 거다!

1111의 법칙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슈퍼계정인데도 다른 서버에 캐릭터 생성이 막혀 있는 상황이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

사부는 가능하다.

사부는 나를 <디버프 마스터>로 만들어 준 999레벨의 히든 NPC.

이 게임의 법칙마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신적인 존재.

나 하나쯤 다른 서버로 보내 주는 건 일도 아니다.

낚싯대로 다른 세계의 신적 존재―예컨대 청룡 같은―를 낚는 양반이 그 정도도 못 하겠어?

“하지만 네 녀석이 다른 세계로 가려거든 육체는 여기 놔두고 가야 할 게다.”

아?

캐릭터가 통째로 이동하는 게 아니란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부캐다! 부캐!’

가슴이 터질 듯 두방망이질을 쳤다.

잠들어 있던 게이머의 본능이 깨어나는 듯했다.

“게다가 이 우주의 법칙이 네 녀석에게 온갖 페널티를 가할 테니, 숱한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될 게다. 운도 더럽게 안 따라줄 테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게 될 게다.”

예?

부캐를 1레벨부터, 그것도 극악의 난이도로 플레이할 수 있다고요?

오히려 좋아.

사부님 앞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괴성을 질러 댔을 거다.

“그래도 가겠느냐?”

“예! 사부님!”

엎드려 절해야죠!

‘부캐다, 부캐야! 부캐를 키울 수 있다니! 크흑!’

눈물이 찔끔 나왔다.

카렐을 다시 이 세계로 데려오는 것만 해도 즐거운 일인데, 부캐를 키우며 다시 BNW를 즐길 수 있다니!

복귀다!

드디어 복귀라고!

* * *

그날 밤.

“오빠,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현역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가 물었다.

“응. 있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뭔데에? 요 근래 많이 힘들어 보여서 걱정했단 말야.”

아내는 현역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내 상태를 섬세하게 살피곤 했다.

서서히 말라 죽어가던 내가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아 보이니까, 아내의 표정 역시 밝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런 아내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사실 나….”

아내에게 다른 서버에서 부캐를 키우게 됐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

“정말?! 정말로 복귀하는 거야?!”

“응. 정말이야.”

“잘됐어! 정말 잘됐어!”

아내는 내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언젠가부터 오빠가 게이머 생활 그만두고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였거든. 정말 다행이야.”

“티 많이 났어?”

“난 오빠 표정만 봐도 다 알아.”

“미, 미안. 걱정시키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걱정시켜도 돼. 오빠 걱정하는 게 내 일인데.”

“여보….”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나 눈과 아내와 눈이 서로 마주쳤다.

번쩍!

스파크가 튀었다.

그 뒤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

3일 후.

햄찌 녀석과 함께 마법진 위에 올랐다.

마법진의 용도는 카렐이 환생한 세계에 내 영혼을 담을 그릇을 찾아 빙의시키는 것.

그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내 스킬체계가 고스란히 계승된단다.

이곳 판타지 서버에서처럼 다른 서버에서도 <디버프 마스터>라는 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판타지 서버로 로그인해서 본캐를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단다.

역시 사부님은 전지전능하시다니까?

“다녀오겠습니다, 사부님.”

“오냐.”

아홉 번 절을 마치자 사부가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준비됐냐?”

“뀨! 준비됐다! 뀨우!”

“그래, 그럼 가자.”

번쩍! 눈부신 섬광이 나와 햄찌를 휘감았다.

내 게임 인생 제2막의 서막이 올랐다.

* * *

[알림: 로딩 중….]

[알림: <무림> 서버에 접속하셨습니다!]

오호?

무림 서버에서 환생했구만?

[알림: 캐릭터를 생성해 주십시오!]

[알림: 이 세계에서, 당신은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 <천인>이란 존재로 활동하게 됩니다!]

[알림: 천인으로서 사용할 이름을 입력해 주십시오!]

[입력: ]

<무림> 서버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들이 활동한다는 컨셉.

여기서 말하는 <천인>이란 게이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문득 귀찮아져서 <닉네임 랜덤생성> 버튼을 눌렀다.

게이머라면 누구나가 공감하겠지?

닉 만드는 게 어디 보통 일이냐고.

고민하다 보면 튜토리얼보다 시간을 배로 잡아먹는 게 닉네임 짓는 거잖아.

[알림: 시스템이 당신의 이름을 무작위로 추첨합니다.]

[알림: 추첨, 완료!]

[알림: 당신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알림: 당신의 이름은 <연오랑>입니다!]

[알림: 앞으로 당신은 무림 서버의 배경이 되는 세계에서 <연오랑>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괜찮은데?’

연오랑?

이 정도면 만족.

이런 S급 닉네임이 아직도 남아 있었어?

[알림: <무림> 서버에 접속하셨습니다!]

[알림: 로딩 중….]

[알림: 로딩, 완료!]

[알림: <무림>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눈앞의 풍경이 바뀌며 알림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알림: 스킬 체계가 계승되었습니다!]

[알림: 우주의 법칙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알림: 행운이 300% 하락했습니다!]

[알림: 악운이 300% 증가했습니다!]

[알림: 우주의 법칙에 의해, 당신의 캐릭터 <연오랑>은 매우 나약하고 볼품없는 존재입니다!]

[알림: 행운을 빕니다!]

‘매우 나약하고 볼품이 없다고…?’

뭔가 불길한데?

대명 제국 황궁 외곽

내서당[內書堂]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수술실

도움말이 떠올랐다.

[알고 계셨나요?]

내서당[內書堂]이란 환관, 즉 내시를 양성하고 가르치는 교육기관입니다!

동양 세계관이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을 배려해서, 시스템이 낯선 용어를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 주는 모양.

친절도 하셔라!

‘내서당? 내시를 양성하고 가르친다고?’

그때.

“어허!”

시퍼런 칼을 든 환관―내시―이 나를 내려다보며 눈을 부라렸다.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어찌 입을 연단 말이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놈이 양물을 자른다니 아주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양이로구나! 시끄러우니 얌전히 있도록 해라! 한칼에 끝내 줄 터이니!”

“자, 잠깐만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꽈악!

주변 다른 환관들이 내 팔과 다리를 꽉 붙들고 있는 바람에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알림: 준비하십시오!]

[알림: 곧 거세가 시작됩니다!]

[알림: 거세가 끝나면, 아쉽지만 더 이상 성인콘텐츠를 즐길 수 없게 됩니다!]

[알림: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알림: 거세 후에는 성욕을 자극하는 매혹 계열의 스킬에 면역이 된다는 장점이 있답니다!]

[알림: 거세를 하면 탈모에 걸리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알림: 거세를 하면….]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게 맞아?

맞냐고.

겜 시작하자마자 이런 위기에 처하는 게 말이 돼?

“놔요! 놔! 이거 놓으라고! 야! 놓으라고! 야 이 미친놈들아! 놔! 으아아아악!”

“어허! 이놈이!”

“놔! 이 고자 새끼들아!”

“금방 끝난다 하지 않았더냐! 눈 한번 질끈….”

너 같으면 얌전히 있겠냐아아아!

“퉤!”

팔을 붙들고 있던 환관의 눈을 향해 침을 탁! 뱉었다.

“악!”

환관이 붙들고 있던 내 팔을 놓쳤다.

지금이다!

번개처럼 주먹을 휘둘러 그 환관의 죽빵을 후려갈기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퍽! 퍼억! 퍽! 퍽! 퍽!

환관들을 단숨에 때려눕혔다.

이게 피지컬이지!

오랜만에 복귀지만, 평범한 NPC들쯤 두들겨 패는 건 일도 아니란 말씀!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해!’

일단 문을 박차고 나가 미친 듯이 내달렸다.

부캐고 나발이고 1레벨부터 거기(!)가 잘리는 대참사만은 피해야 할 거 아냐?

“잡아라!”

“게 서라!”

뒤돌아보니 내 거기(!)를 자르려는 놈들이 마치 개떼처럼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내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자, 잡히면 잘려 버려…!!!’

너무 오랜만이라 깜빡했다.

이 게임, 어딘가 나사 빠진 게임이었지.

그래.

그랬지.

방심하면 사람 하나, 아니 게이머 하나 병신 되는 건 일도 아닌 게임이었어.

복귀 첫날.

나는 목숨 그 이상의 것(!)을 지키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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