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4화 (4/115)

제4화.

에라이!

니가 그러고도 친구냐!

민폐덩어리지!

‘어쩔 수 없지. 에라이.’

꽈악.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 때려눕히고 햄찌 데리고 튀어야겠다.’

그럴싸한 계획을 세웠다.

1레벨이지만 해볼 만했다.

상대가 고레벨 몬스터, NPC, 혹은 게이머도 아닌 일반 병사들쯤이야.

“야! 그냥 싸워!”

“뀨우?”

“그냥 다 패 버리자고!”

“뀨! 알겠다!”

햄찌와 더불어 적들과 맞서 싸웠다.

퍽! 퍼억! 퍽!

“으악!”

쾅! 콰앙!

“으아아아악!”

빠악!

“커헉!”

적들이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오오! 된다! 돼!’

평타가 생각대로 시원하게 훅훅 뻗어나가는 걸 보니, 스킬 계승이 제대로 이루어졌단 게 실감이 났다.

내 평타는 사기다.

본캐의 평타는 <무적창법>이라는 스킬.

AI 시스템이 게이머를 도와준다는 개념이다.

게이머의 피지컬이 아무리 좋아도 인간인 이상 종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는 법.

하지만 AI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다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 가능하다.

<무적류 기본 공격>은 그 <무적창법>을 계승한 평타.

덕분에 1레벨 쪼렙 캐릭터인데도 싸우는 데 큰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캐릭터가 내 의지대로 잘 따라와 준다는 뜻.

<무적류 기본 공격>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1레벨이라 숙련도가 1성밖에 안 되지만, 이런 어중이떠중이 들쯤이야.

기본 평타로 적들을 때려눕히면서, 중간중간 스킬도 섞어 줬다.

휘익!

빠아악!

“으악!”

본캐가 즐겨 사용하던 발차기인 <질풍각>으로 덤벼드는 적의 무릎을 찍고.

퍼억!

“컥!”

권법인 <유성권>으로 적의 턱주가리를 강타했다.

‘일단 다 써 보자.’

<질풍기류>도 써 봤다.

“커헉!”

덤벼들던 병사의 멱살이 마치 손에 착! 하고 감기듯 붙잡혔다.

그다음은?

‘메치기!’

<천둥작렬>을 콤보로 써봤다.

부웅!

그러자 적이 뒤로 훌쩍 넘어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이거지!’

<질풍기류>가 잡기.

<천둥작렬>이 상대를 메치는 기술이라 이거지?

명칭은 동양식으로 바뀌었지만 내 본캐가 가진 기술들이 맞네.

아아! 이 손맛!

처음 격투술을 배우던 그 시절의 추억이여!

두 스킬 모두 내가 판타지 서버에서 활동하던 당시 무왕 레오니드라는 고레벨 NPC에게 배웠던 격투 스킬이다.

레벨이 더 오르면 이런 기본적인 것들 말고도 더 강력한 스킬들도 해금되겠지?

“뀨우우! 뀨우! 뀨우우우우!”

몸을 곰처럼 거대화시킨 햄찌도 커다란 앞발을 휘두르며 적들을 때려눕히는 중이었다.

짜식.

좀 치네.

그렇담 나도 질 수 없지!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뀨우? 햄찌 열여섯이다! 뀨!”

“난 그럼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어?”

없네.

“꾸웨에에에엑!”

“내, 내 허리! 허리이이!”

“끄으으윽!”

적들이 마치 지렁이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꿈틀대고 있었다.

“야! 튀자!”

“뀨!”

적들을 뒤로하고 햄찌와 함께 냅다 줄행랑쳤다.

“뀨우우우! 주인놈아! 너무 재밌다! 옛날 생각난다! 뀨우우우우!”

“너두? 야! 나두!”

“뀨우우우우!”

“히히히!”

우리는 뛰면서 마주 보고 미친 듯 웃었다.

그 옛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재밌게 게임을 즐기던 그때 그 기분이었다.

햄찌와 함께 순수하게 모험을 즐기던 시절 말이다.

그래! 이게 게임이지!

재밌다, 재밌어!

* * *

“야! 일단 숨자!”

“뀨! 알겠다!”

햄찌를 데리고 커다란 건물 뒤 장독대 뒤에 숨었다.

“허억, 허억!”

또 숨이 찼다.

숨이 차 본 것도 얼마 만이야?

[연오랑]

생명력 : ■■■■■■■■■□

지구력 : ■□□□□□□□□□

기 : ■□□□□□□□□□

방금 벌어진 전투로 기와 체력이 바닥나 있었다.

1레벨 캐릭터답네.

이러니 숨이 차지.

“뀨! 주인놈아! 이제 어떡하냐!”

“어떡하긴.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지. 붙잡히면 진짜 x되는 거야.”

중성화수술이라니.

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생각부터.’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지금 위치부터 확인해 봤다.

대명 제국 황궁.

서쪽 외곽.

하급 관리들의 숙소.

‘황궁이라.’

황궁이란 황제의 집.

경비가 삼엄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엄청나게 강한 경비병들이 득실거릴 테고.

조금 전에 싸웠던 병사들은 허수아비라고 생각함이 옳을 터.

‘계속 싸우는 건 자살행위야.’

더 소란을 일으켰다간 더욱 강한 적들이 몰려오겠지.

이미 비상이 걸려 있을 테지만.

‘넘을 수 있나?’

멀리 보이는 담벼락을 힐끗 바라봤다.

‘어림도 없겠네.’

담벼락 높이가 30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표면이 맨들맨들하고 잘 닦여 있어서 타고 올라갈 엄두도 안 난다.

분명 주르륵 미끄러질 게 분명하다.

에라이.

1레벨 쪼렙 캐릭터 주제에 저길 어떻게 넘어?

스파이더맨이라면 모를까.

‘배수로나 하수도 같은 거 어디 없나?’

주변을 훑어보았다.

“뀨! 주인놈! 하수도 찾냐! 뀨우!”

“어떻게 알았냐?”

“그거 주인놈 특기 아니냐! 뀨우! 주인놈 시궁창 매니아다! 침투하고 탈출할 때 하수도 좋아한다! 뀨! 옛날에도 자주 이용하지 않았냐!”

좀 더럽긴 해도 침투와 탈출에는 하수도만 한 게 없다고!

엣헴!

“일단 조심조심 돌아다니면서 하수도부터 찾아보자.”

“뀨! 알겠다!”

쩝.

본캐 같았으면 황궁 전체를 날려버리고 유유히 날아가 버렸을 텐데.

별수 없지.

약하면 쥐새끼처럼 도망 다녀야지.

“가자.”

“뀨!”

햄찌와 함께 조심조심 건물을 빠져나와 도망칠 만한 루트를 찾아봤다.

“어?!”

운이 좋게도 작은 개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어서 옵쇼!’

개구멍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래, 개구멍은 못 참지.

“일단 여기로 지나가 보자.”

“뀨! 주인놈 먼저 가라! 뀨우!”

“그래.”

비좁은 개구멍에 머리부터 들이밀고, 낮은 포복으로 낑낑대며 몸을 움직였다.

근데 이거 뭐야?

신발 아니야?

슬쩍 고개를 들어보았다.

“음.”

번쩍번쩍 황금색 갑옷을 입은 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일단 인사부터 박고 보자.

* * *

아 씨.

어쩐지 개구멍이 딱 보이더라니.

“날이 참 좋죠? 그죠오? 하하. 하하하하.”

“여기서 뭐 하는 것이냐?”

사내가 엄격·근엄·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보수 중인 개구멍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냐?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잡일꾼인가?”

“어. 그게. 그러니까.”

그때.

“뀨! 주인놈아! 뭐 하냐! 빨리 가라! 햄찌 기다리고 있지 않냐! 뀨우!”

반대편에서 햄찌가 소리쳤다.

야!

좀 닥쳐!

진짜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이게 무슨 소리냐?”

“어, 그게요.”

뭐라고 하지?

“빨리 가라! 뀨우! 놈들이 쫓아오면 어떡하냐! 뀨! 우리 잡히면 죽는다! 뀨우! 햄찌 죽기 싫다! 빨리 가라!”

X됐다.

“이놈!”

사내가 내 뒷덜미를 낚아채 개구멍에서 질질 끌어내었다.

‘순순히 잡히겠냐?’

끌려 나오자마자 <무적류 기본 공격>을 사용해 사내의 빈틈을 노렸다.

타핫!

커다란 손바닥이 내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

이게 아닌데?

“감히.”

사내가 엄격·근엄·진지한 목소리로 분노를 드러냈다.

“금의위 위사에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알고 계셨나요?]

<금의위>란 명 제국 황제의 직속 친위부대로, 강력한 무사들로 이루어진 전투 집단이랍니다!

번쩍번쩍 멋진 황금색 전투복은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죠!

금의위에 소속된 무사들은 <위사>라고 부른답니다!

친절하긴 한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휘리릭!

<선풍각>과 <유성권>을 동시에 사용했다.

탁, 타악!

어?

이번에도 막혔다.

‘어쭈? 막아?’

<질풍기류>로 놈의 소매 깃을 잡고.

‘넘긴다.’

<천둥작렬>로 메치기를… 으응?

왜 안 넘어가?

“하압!”

안 돼도 다시 한번!

끙!

사내는 마치 바윗덩어리라도 된 듯 꿈쩍도 안 했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아무리 1레벨이지만 성인 남자 하나쯤은 가볍게 메칠 수 있을 텐데?

이게… 렙 차?

“무슨 무공이냐?”

“네?”

“방금 내 소매를 잡아챈 손기술 말이다.”

이 서버에서는 무술을 무공이라고 부른단다.

“이게 뭐냐면요.”

“아니, 그보다.”

“예?”

“황제 폐하의 검인 금의위 위사에게 무력을 행사하다니!”

그 순간.

번쩍!

황금색 섬광이 번뜩이고.

후욱!

사내로부터 강력한 기가 뿜어져 나와 날 덮쳤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나.

“쿨럭, 쿨럭쿨럭!”

기침을 했더니 피가 왈칵 쏟아졌다.

[연오랑]

생명력 : ■□□□□□□□□□

지구력 : □□□□□□□□□□

기 : □□□□□□□□□□

기와 체력은 고갈되고.

남은 생명력은 고작 10퍼센트.

“끄으으윽.”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알림: 경고, 경고!]

[알림: 내상을 입으셨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합니다!]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합니다!]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합니다!]

생명력이 빠르게 하락했다.

눈앞이 회색으로 물들어갔다.

죽어가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해, 햄찌야. 도와줘.”

개구멍 반대편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주인놈아. 뀨우.”

햄찌가 개구멍으로 고개를 쏙 내밀더니 대답했다.

“햄찌도 잡힌 거 같다. 뀨우.”

“뭐? 너도?”

그때.

“잡았다! 이놈!”

“쥐새끼 요괴를 잡았다!”

반대편에서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망했다.

나 이제 죽는 거야?

게임 시작 10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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